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본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고목을 보며


그 많던 꿈이 다 상처가 되었을 게다
여름 겨울 없이 가지를 흔들던 세찬 바람도
밤이면 찾아와 온몸을 간질이던 자디잔 별들도
세월이 가면서 다 상처로 남았을 게다
뒤틀린 가지와 갈라진 몸통이
꽃보다도 또 열매보다도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인데


내 몸의 상처들은
왜 이렇게 흉하고 추하기만 할까
잠시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게 하던
감미로운 눈발이며
밤새 함께 새소리에 젖어 강가를 돌던
애달픈 달빛도 있었고
찬란한 꿈 또한 있었건만
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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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의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을 너무 오래 본다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 용기와 비겁함은 매 순간 행해지는 하나의게임이다. 우리는 어쩌면 자유를 얼핏 엿보는 숙명적인 시각을겁내는지도 모르겠다. 감옥 창살 사이로 쳐다봐야만 하는 습관, 차가운 철창을 양손으로 붙잡는 것이 주는 편안함. 비겁함은 우리를 죽인다. 감옥을 안전으로, 철창을 손이 쉴 곳으로 여기는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자유인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풍경>을 다시 보고, 비겁함과 자유의 이야기임을 다시알아본다. 부르주아는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을 볼 때 통째로무너진다. 내 자유가 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두렵다. 나는 미친 사람들 중에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가능성은 보통의 부르주아 순응주의자들에겐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설명을 해줄라치면 그들은 단어에 발목이 붙들려용기를 잃고 자유를 잃을 것이다. <노란 새>는 우리에게 이해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 P355

자기비판은 너그러워야 한다. 너무 날카로우면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다. 어쨌든 내가글을 다시 쓴다면, 이전에 썼던 글과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뭐가 다르냐고?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
나의 자기비판은 예를 들어 내가 쓰는 글에 관한 것일 때 그 글이 좋은지 나쁜지 말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이 고통과 깊은 환희가 뒤섞이는, 기쁨이 결국 고통이 되는 지점까지이르지 못하는 것에는 고민한다. 그 지점이 인생의 가시이니까.
나는 우리가 놀라서 "아!"라고 외치는 순간에, 하나의 존재가자기 자신과 최대한으로 만나는 일에 자주 실패한다. 때때로 자신과의 만남은 다른 존재와의 만남 덕분에 이뤄지기도 한다. - P361

내 직관은 글로 옮기려 할 때 더 명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글쓰기는 필수다. 한편으로 글 쓰는 일은 감정을 감추지 않는 방법이고(상상의 비의도적 변신은 다만 그것에 이르는 방식이다), 또 한편으로 나는 글 쓰는 과정 없이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쓴다. 내가 만약 신비로운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감정을 감추는 게 주목적도 아닐뿐더러 감정을 감추지 않고는 그걸 명확하게 옮길 능력도 안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감추는 것은 글쓰기의 한 가지 기쁨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타인에게서 매우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신비로운 태도를 자주 취한다. 일단 글로 쓰면, 나는 냉정하게 그것을조금 더 명확히 밝힐 수 있을까?  - P382

어쩌면 내가 고집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나는 자연의 신비가 가진, 다른 명료함으로 대체될 수 없는 어떤 고유한 명료함을 존중한다. 또 흙탕물이가라앉으면 물이 맑아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물이 맑아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위험을 감수한다. 터무니없는 자유나무분별함 또는 교만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떠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내게는 습관이 됐다. 나는늘 모험을 깊이 지각해왔는데, 여기서 ‘깊이‘라는 말은 ‘핵심적으로‘란 뜻을 의미한다. 모험의 그런 의미가 나를 무질서한 삶과 글쓰기에 대해 더 넓게,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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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이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쓰러질 것은 쓰러져야 한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뽑힐 것을 뽑혀야 한
그리하며 빈 들판을 어둠만이 덮을 때
몇 날이고 몇 밤이고 죽음만이 머무를 때
비로소 보게 되리라 들판 끝을 붉게 물들이는 빛을
절망의 끝에서 불끈 솟는 높고 큰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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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날을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 처럼 울부짓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쳐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회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난을 치다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켤레 또는 조기 한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歸路


온종일 웃음을 잃었다가
돌아오는 골목 어귀 대폿집 앞에서
웃어보면 우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서로 다정하게 손을 쥘 때
우리의 손은 차고 거칠다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 풀어져
어둠이 덮은 가난 속을 절뚝거리면
우리는 분노하고 뉘우치고 다시
맹세하지만 그러다 서로 헤어져
삽작도 없는 방문을 밀고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음성은 통곡이 된다

그날


젊은 여자가 혼자서
상여 뒤를 따르며 운다
만장도 요령도 없는 장렬
연기가 깔린 저녁길에
도깨비 같은 그림자들
문과 창이 없는 거리
바람은 나뭇잎을 날리고
사람들은 가로수와
전봇대 뒤에 숨어서 본다
아무도 죽은 이의
이름을 모른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그날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목계장터


하늘을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제 나루에
아흐레 나를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지리산 노고단 아래
ㅡ황매천의 사닷 앞에서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높은 목소리만이 들리고
사방이 어두울수록
큰 몸짓만이 보인다
목소리 높을수록
빈 곳이 많고
몸짓 클수록 거기
거짓 쉽게 섞인다는 것
모르지 않으면서
자꾸 그리로만 귀가 쏠리고
눈이 가는 것은
웬일일까

대나무 깎아 그 끝에
먹을 묻혀
살갗 아래 글자 새기듯
살다 가는 일은
서러운 일이다
낮은 목소리로 작은 몸짓으로
살갗 아래
분노를 감추고
살다 가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침 저녁
짙푸른 하늘을 머리에 민
노고만을 우러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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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신동엽 시인의 옛집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도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은 훨훨 탄다
삼십년 전 신혼살림을 차렸던
깨끗하게 도배된 윗방
벽에는 산 위에서 찍은
시인의 사진
시인의 아내는 옛날로 돌아가
집 앞 둠벙에서
붉은 연꽃을 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옛 백제의 서러운 땅에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모닥불 옆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몇 개의 굵고 붉은 낱말들이여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내것은 버려두고 남의 것을 쫓아
허둥대며 비틀대며 너무 멀리까지 왔다
색다른 향내에 취해 속삭임에 넋나가
이 길이 우리가 주인으로 사는 대신
머슴으로 종으로 사는 길임을 모르고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소경이 되었다
앞을 가로막은 천길 낭떠러지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었다
천지를 메운 죽음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바보가 되었다
남의 것을 쫓아 허둥대는 사이
우리 몸은 서서히 쇠사슬로 묶였지만
어떤 데는 굳고 어떤 데는 썩었지만
우리는 그것도 모르는 천치가 되었다
문득 서서 귀를 기울여보면

눈을 떠라 외쳐대는 아우성 그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동은 터오는데 새벽 햇살은 빛나는데
그릇된 길잡이한테 휘둘리며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제는 풀잎의 이슬로 눈을 비벼 뜰 때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시고
크게 소리내어 울음 울 때
허둥대던 발길 우리것 찾아 돌릴 때
머슴으로 종으로 사는 길을 버리고
우리가 주인되어 사는 길 찾아 들 때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제는 얼뜬 길잡이 밀어제키고
우리가 앞장서서 나아갈 때

책 뒤에

시골이나 바다를 다녀보면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열심히 산다. 나는 내 시가 이들의 삶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내 시가 그들의 생각이나 정서를 담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 길로 들어선 지 30년이 되었으니 길도 터득이 되었으련만 시는 내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88년 4월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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