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과 같은 성별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어떤 견해든 갖고 있나요? 모든 젊은 남성이 그런 경향이 있고 나는 그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지 않올수 없어요. 비록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요. 우선 첫째로, 요즘은 모든 젊은 남성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예뻐지려 하고 여자처럼 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은 색조 화장도 하고 분도 발라요. 이런게 우리 시대 케임브리지에서의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내생각에 이건 사람에 대한 약간의 의존성을 암시하는것 같아요. 며칠 전에 색빌웨스트라 불리는 작은 애완견이 나를 보러 찾아왔어요. (내 귀족의 사촌이 대저택놀을 상속받을 거래요.) 그러자 내 요리사가 "거실에있는 부인은 누구죠?"라고 말했죠. 그는 소녀 같은목소리에다 온통 하얗고 진지하며 큰 보라색 눈과폭신한 볼살을 지닌 페르시안 고양이 같은 얼굴을 - P127

지녔어요. 당신은 그와 같은 생명체의 연애 사건들은 존중할 수 없겠죠. 그런데 젊은 여성들도, 자기보호로 또는 모방으로, 또는 진심으로 곧잘 자기 성별을 좋아해요. 나의 귀족은 (아,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얘기해줄 귀족이 두세 명은 있어요. 그들은 내게 흥미로워요)지독하게 동성애적이에요. 그래서 한 여자 사촌에대한 열정에 사로잡혔고 그들은 함께 티롤이나 산악휴양지로 도망쳤는데 그들의 남편들이 비행기로 쫓아갔대요. 두 여성의 어머니들은 이 일을 깊이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런 일탈 중 어느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당신에게 비밀 하나를 말하자면, 나는 내 귀부인이 다음번에는 나와 함께 달아나자고 부추기길 원합니다. 그러면 당신에게내려가 그에 관한 모든 걸 말해줄게요. (...) - P128

동정심의 결여에 관해서는 아마 당신이 옳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자기방어 차원에서 나는 그 방법의 기이함이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데 일부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겠습니다.우선, 실험의 기술적인 특성들을 느끼는 게 어떤 감정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체호프에 대해 한 말에 동의합니다. 다만 러시아작가들은 우리보다 엄청난 이점을 갖고 출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오래된 문학적 배경이 없으며 묘사하기에 훨씬 더 단순한 사회라는 점에서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변명이며 당신의 비평 속에상당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런 실험들로 당신을 괴롭히는 이유는 내분석적인 두뇌를 작동시키는 대신 내 동정심을 해방시킬 어떤 방법을 발견할 때까지는 평화롭게 누울수가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지금 소설가가 그렇게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어쨌든 영국에서는요.
와서 만나요. 말로그 질문에 대해 논쟁합시다.
아무튼 당신의 편지는 내게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편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P130

어쩌면 내게 좋은 책 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건이러한 비평의 부족, 또는 오히려 내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매우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나는 언제나 어쩌면 모건 포스터를 제외한 누구도 내가 해낸 걸 파악하지 못한다고 느껴요. 사람들의 의견은 막연하게 충돌해요. 그래서 나는 매번 - P132

나 자신을 위해서 그 전체를 새롭게 다시 창조해야만해요. 아마 모든 작가가 지금 같은 배를 타고 있을거예요. 이게 전통과 결별하기 위해 우리가 치르는형벌이며 그 고독이 비록 흥미롭게 읽히지는 않더라도 더욱 흥미로운 작품을 만듭니다. 어쩌면 나는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내 언어들과 혼자 살아야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진심이 아니에요. 토론되고 칭송받고 비난받는 건 커다란 자극제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편지를 간직해서몇달후에 아주 주의 깊게 읽어볼 거예요. 지금은 다양한 의견들이 쌓이도록 놔두고 있어요. (여기 대단히 지적인 사람들이 보낸 두 통의 편지가 있어요. 하나는 모든 관심이 셉티머스와 레치아에게 집중돼서 댈러웨이 부인 자신이 실패자라고 말하는 리튼 스트레이치가 보낸 편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더러 좀 더 체호프처럼 글을 쓰라고 간청하고 내가 ‘게으른 부자들의 생활을 깊이 응시한다‘는 사실을 한탄하는 찰스 생어의 편지입니다.) 그런 다음 모두가 잠잠할 때 나는 내 구멍에서 기어 나와 그 의견들을 종합할 거예요. (...) - P133

하지만 당신에게 간청하는데, 사물이 중요하지않고 사물이 기록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당신의 신조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어떻게 내가 그걸 믿는다고 비난할 수 있죠? 나는 당신이 어떤 상상의 작품에서 표현을 사유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지않습니다. 어떤 사물이 더 잘 표현될수록 그건 더 완전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내게 로버트 스티븐슨은 서툰 작가예요. 그의 사유가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그가 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그의스타일은 몹시 불쾌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당신은 내용으로부터 분리된 기교를 즐길 수 있는지 난 모 - P138

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당신을 잘못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당신이 의미하는 걸 모르겠어요.
그러나 비평은 얼마나 어려운가요! 단 하나의 단어도 두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내 작품에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비난은 불쾌하고 찬사는 유쾌하지만 어느 쪽도 내가 하고 있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늘 주장하듯이, 스스로가 느끼는 즐거움만이 유일한 길잡이이며, 그 즐거움이 현재 네 권의책을 더 계획하도록 저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 정원은 서섹스에서 선망의 대상입니다.
(...) 정말로, 나는 무더운 날의 정원만큼 사랑스러운건 없다고 생각해요. 중년의 나이인 나는 이런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을 심오한 신념으로 말합니다.
이제 나더러 비평을 써서 내 영혼을 판다고 말하며 내 모든 에너지를 영원히 소설 쓰기에 헌신하길 소망하는 한 (서른세 살) 여성으로부터 나를 지켜야겠습니다. 아, 당신들 독자들이란!
- P139

나는 여전히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해서 글을 쓰는 대신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고 이 모든 문제가 끔찍이 어렵다는 걸 깨닫습니다. 형식은 무엇일까? 인물은 무엇일까? 소설은 무엇일까? 나를 위해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주세요. 물론 사람들이 시에 관해 생각하듯이 아무도 100년동안소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숨통이 짓눌린 채 잠에서 깨어나 완전히 어둠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인정하겠지만, 흥미로운 시대입니다. 단지 소설가에게만 혼란스럽죠. 당신이 나이가 많은 빅토리아 시대 작가들, 그리고 젊은 조지 왕조 시대작가들로 분류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모두가 내가 객실로 가서 새벽까지 일어나 앉아 논쟁해야만 한다는걸 증명합니다. 엠피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 P143

아, 내가 전례없이 지금 글을쓸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였죠. 이게 50페이지를 쓰는동안 내내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환상이에요. 하지만 내가 글을 빠르게, 순식간에 쓰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고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라고 느끼죠. 하지만 한 가지, 나는 당신이 나를 자기중심주의자로 만들도록 놔두지는 않겠어요. 결론은, 당신의 글에 대해서는 왜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왜 언제나 내 글, 내 글, 내 글이죠? 이런 이유로, 내 생각에 당신은 아주 여러 방식으로 풍부하고 나는 단지 막대기에 묶인 완두콩 같아요. (…) - P145

(...) ‘적확한 단어‘에 관해 말하자면, 당신이 정말틀려요. 스타일은 아주 단순한 문제예요. 그건 순전히리듬이죠. 일단 당신이 리듬을 얻기만 하면, 당신은잘못된 단어를 쓸 수가 없어요. 그러나 반면에 나는적절한 리듬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전의 절반이 지나도록 아이디어와 비전으로 가득한 채 여기에 앉아있고 그것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죠. 이제 이것, 즉 - P150

리듬이 무엇인가는 매우 심오하고 단어들보다 훨씬더 중대합니다. 어떤 광경, 어떤 감정은 마음속에 이런 파동을 창조해요. 파동이 그것에 딱 맞는 단어들을 만들기 훨씬 이전에요.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면서(이게 내 현재 믿음이에요) 이 파동을 다시 포착해 작동하도록 설정해야만 합니다. (이런 게 단어들과는 아무상관이 없어 보이죠.) 그런 다음 이 파동이 마음속에서부서지고 요동치면서 그것에 딱 맞는 단어들을 만듭니다. 하지만 분명 내년에 나는 다르게 생각하겠죠. 그리고 내 캐릭터에 관해 말하자면, (나자신에 관한 질문에만 답변해서 당신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겠네요) 쾌활한 범속함이 부족하다는 데 동의해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내 아버지의 책들 사이에서 혼자 멍하니 보냈죠.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익힐 기회라고는 전혀 없었어요. 공 던지기, 장난, 비속어, 천박함, 소란스러운 싸움, 질투 같은 거요. 나는 그저 내 의붓오빠들에게 분노하고 내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펜타인 호수 주변을 지치도록 걸었을 뿐입니다. - P151

(…) 그래요, 난 당신이 좋은 시를 쓰는 게 좋아요. 나의 고별 강연은 그다지 일관성이 없었어요. 나는 감정, 아이디어 같은 어떤 것이 되기 이전의 사물 그자체에 대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어요. (신의 선물이긴하지만) 전통과 그 모든 말들에 대한 감각을 지닌 당신에게 위험성은 이게 너무 쉽게 나타나도록 한다는거예요. 내 말은 과시적으로 표현적으로 쓰기 위해 - P155

무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사물이 스스로 보이게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양손을 모으고 바깥에 서있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타고난 작가들은, 은수저를 지닌 채 너무 일찍 준비된 경향이 있어요. 나는 당신이 지금까지 드러나게 해 온 것보다 더 기이하고 더 깊고 더 모난 생각들이 당신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신은 호손든상을 받을 거죠, 아 그래요, 그럼 나는 약간 질투 나고 자랑스럽고 메스꺼울 거예요....... - P156

그리고 내 펜을 잉크에 살짝 담갔다가 깨끗한 종이 위에 마치 저절로인 듯 이런글자들을 썼어요. ‘올랜도: 전기‘ 이걸 쓰자마자 내 몸은 황홀함으로, 그리고 내 두뇌는 아이디어들로 넘쳐흘렀죠. 나는 열두 시까지 빠르게 썼어요. 그런 다음 한 시간 동안 로맨스를 썼죠. 그래서 매일 아침 열두 시까지 소설(나만의 소설)을 쓰고 한 시까지 로맨스를 쓰려고 해요. 하지만 잘 들어 봐요. 올랜도가 비타로 밝혀진다고 가정해 보세요. 모두가 당신과 당신 육체의 욕망, 그리고 당신 정신의 유혹에 관한 거예요. (당신에게 마음은 없죠. 메리 캠벨과 함께 시골길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내 인물들에게 때때로 달라붙어 있는 일종의 현실의 희미한빛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마치 굴 껍데기 위의 광택처럼요. (그런데 그건 또 다른 메리, 즉 메리 허친슨이 생각나게 하네요.) 내 말은, 시빌 콜팩스 가 내년 10월에 - P181

"버지니아가 비타에 관한 책을 썼어요."라고 말하면, 오지가 친구들과 장황하게 지껄이고 바이어드가 깔깔댈 그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요. 괜찮겠어요? 그렇다. 또는 아니다, 라고 말해 주세요. 하나의 주제로서 당신의 탁월함은 대개 당신이 귀족 출생이라는 점으로부터 발생해요. (하지만 400년 동안 내내 귀족이면 어뭘까요? 그리고 그 덕분에 화려한 묘사적 문구들을 위한 기회가 엄청 풍부하게 주어지는 거죠. 또한 나는 당신 안의 어떤 아주 이상하고 불일치한 가닥들을 풀었다가 다시 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게요. 캠벨에 관한 문제를 자세히 논의하는 거죠. 그리고 당신에게 말했듯, 내가 하룻밤에 전기를 혁명할 수 있는 방법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래서 만약 당신이 동의한다면 나는 이걸 공중으로 던져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해요. (...)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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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척 많은 글을 써왔어요. 언제나 당신의 엄격한 시선이 세상 어디에서나 나를 찾아내는 가운데요. 당신이 여기에서 격려해 주면 좋겠어요. 내가 끄적이는 글에 아무도 진심으로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들이 왜 관심을 갖겠어요? 당신 생각에는 내가 언젠가 정말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나요? 어쨌든 나는 전보다는 더 잘 해낼 수 있어요. 비록 여전히 끔찍이 헐벗고 불모인 조각들이지만요. 또 독서를 많이했어요. 주로 18세기 작품들이에요. 그게 내 약점이었죠. 글쓰기는 신성한 예술이에요. 내가 더 많이 쓰고 읽을수록 글쓰기를 더 많이 사랑하게 돼요. p24


아마도 바네사에게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누가 알겠어요? 그게 조용히 많은 걸 배우는 과정이 되겠죠. 하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아주 많은 걸 느낄 만큼 충분히 원기 왕성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 나와 맞는 건 여성들이지 이런 생기 없는 생명체들은 아니에요. (...)
나는 무척 많은 글을 써왔어요. 언제나 당신의 엄격한 시선이 세상 어디에서나 나를 찾아내는 가운데요 당신이 여기에서 격려해 주면 좋겠어요. 내가 끄적이는 글에 아무도 진심으로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들이 왜 관심을 갖겠어요? 당신 생각에는 내가 언젠가 정말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나요? 어쨌든 나는 전보다는 더 잘 해낼 수 있어요. 비록 여전히 끔찍이 헐벗고 불모인 조각들이지만요. 또 독서를 많이했어요. 주로 18세기 작품들이에요. 그게 내 약점이었죠. 글쓰기는 신성한 예술이에요. 내가 더 많이 쓰고 읽을수록 글쓰기를 더 많이 사랑하게 돼요. - P24

내가 왜 이런 건지는 외부적인 이유들로 조금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생활방식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 어쩌면 내가 나이가 들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엘리엇이 그녀의 첫 소설 《성직자 생활의 풍경 Sceneof Clerical Life》을 썼을 때, 그녀는 마흔 살에 가까웠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 현재의 느낌은 사랑이나 마음, 또는 열정이나 성이 없는 이 모호하고 꿈같은 세계가 내가 정말 관심 있고 흥미롭다고 여기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들이 당신에게는 꿈이고 내가 그것들을 전혀 적절하게 표현하지는 못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내게는 완벽하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발 내가 만족스러워하거나 내 견해가 어떤 전체를 포함한다고는 한순간도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다만 내가 정말 느끼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는게 솔직히 내가 조금도 이해하지 못 하는 것들 속에서 흙투성이가 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내게는 그게 문학에서 무시무시하고 용납할 수 없어 - P26

보이는 어리석은 실수 중 하나입니다. 이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건 그저 동물적이고 흉측하죠. 하지만 물론 어떤 위대한 작가는 그들을 다루어 아름다워지게 만들고 조각상을 남자와 여자로 변화시킵니다. 당신이 나의 까다롭고 미성숙한 정신을 이해하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보낸 글들은 단지 실험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그 글들은 결코 내 완성된 작품으로서 내세우지 않으려고 해요. 그것들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가 불태워질 거예요! 그러나 당신이 무척 솔직해서 나는 매우 기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작품에 대한 비평이 너무 적어서 내가 어떤 인상을 주는지 정말 모르겠거든요. 하지만 제발 기억해주세요. 만약 내가 글을 쓸 때 무정하다면, 실제로는 내가 무척 감상적이며 그걸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당신과 아기들에게 헌신적이며, 단지 착한 어린아이처럼 취급받고싶을 뿐이라는 것을요. - P27

당신의 칭찬은 엄청나게 과장된 것 같아요. 내가추측하기에 당신이 나보다 극적인 본능을 더 많이지녔기 때문에 나의 장면들에서 그것을 간파하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칭찬을 무척 감사히 받겠어요. 그리고 내 모든 말들이 수증기가 아니라는 어떤 확신을 갈망합니다. 내 말들은 그런 덩어리 속에서 하나씩 쌓여갑니다. 만약 그것들이 단지 진흙탕에 불과하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나 스스로는 마지막 부분이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내가 훨씬 더 즐기면서, 그리고 내 눈앞에 그게 있다는 감각을 갖고그 부분을 썼어요. 언젠가 <멜림브로시아>가 당신 책장에서 먼지 쌓인 책이 되어 줄리언 벨이 읽으려고해도 읽을 수 없는 때, 이 편지가 얼마나 허영으로 보일까요! 하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할 만한 많은 것들이 있어요. 우리가 언제나 후세대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요. 나는 서둘러이 편지를 씁니다. 옷을 차려입고 외출하기 직전에요. 나는 문장들을 보기 좋게 만드는 내 능력에 대한맹목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대담한 조각들도 제멋 - P33

대로 놔뒀다가 다음 겨울에 새롭게 윤을 내려고 한다는 걸 여기에 덧붙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이 타협에 대해 나를 비난할까 좀 걱정했어요.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그 속편이 유일하게 가능한 거라고 꽤 확신했어요.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살아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흔들림을 끌어내고 싶어요. 내가 그런 시도를 하는 건 매우 적절하지만 시도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 당신이나를 얼마나 격려해 주는지요! 이것이 전혀 달라지게 만듭니다. 정말로 흥미로운가요? 당신이 그렇게말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때로는 이 책이 얼마나 창백하고 투명하게 내게 읽히는지 당신은전혀 모릅니다. 내가 충분한 열기를 가지고 쓰는데도불구하고요.(…) - P34

그래서 서평가들의 손에 의해 조금씩만 맛보고있죠. 하지만 지난주 당신들 칼럼 속 ‘상냥한 매‘의글은 찻숟가락만큼의 작은 양도 삼킬 수가 없습니다. 그는 지적 능력에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이 ‘그에게 아주 명백하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아무리 많은 교육과 행동의 자유도 그것을 눈에 띄게 바꾸지 못할 것이다‘라는 베넷 씨의 결론에 동의합니다. 그러면 상냥한 매는 16세기보다17세기가 더 많은 뛰어난 여성들을 낳았고 17세기보다는 18세기가, 그 모든 30년보다 19세기가 더 많은 뛰어난 여성들을 낳았다는, 내게는 (어떤 다른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려야만 했지만요) 명백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요? 내가 뉴캐슬 공작 부인을 제인오스틴과, 절세의 오린다를 에밀리 브론테와, 헤이우드 부인을 조지 엘리엇과, 애프라 벤을 샬럿 브론테와, 제인 그레이를 제인 해리슨과 비교할 때, 지적 능력의 발전은 내게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해보입니다. 남성과의 비교는 나를 전혀 자살로 이끌지 않아요. 교육과 자유의 효과는 과대평가될 여지 - P62

가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비록 다른 성에 대한 비관주의가 항상 즐겁고 기운을 돋아 줄지라도, 자신들 앞의 증거에 대해 그토록 확신하며 거기에 탐닉하는 건 베넷 씨와 상냥한 매의 작은 낙천성 같습니다. 따라서 비록 여성들은 남성들의 지성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바랄 모든 이유가 있더라도 위대한 전쟁과 위대한 평화가 공급하는 것보다 더많은 증거를 얻을 때까지 그걸 사실이라고 발표하는건 현명하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만약 상냥한매가 위대한 여성 시인을 발견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면 어째서 오디세이의 작가가 여성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스스로 입을 막으려 들까요? 물론 베넷 씨와 상냥한 매가 아는 만큼 내가 그리스어를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사포가 여성이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녀를 호머와 아킬로쿠스와 함께 그 시대 가장 위대한 시인들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고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베넷 씨가 명백히 그녀보다 우월한 남성 시인들 50명을 댈 수있다는 건 반가운 놀라움입니다. 만약 그가 그 이름들을 출간할 거라면 나는 우리 성별에 그토록 소중한 복종의 행위로서 그들의 작품을 구매할 뿐만 아나라,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외우겠다고 약속할 겁니다. - P63

우리는 그녀의 작품들이 완전한 형태로 알려졌던 당시 사람들의 견해로 우리의 판단을 보충합니다. 그녀가 2,500년 전에 태어난 건 진실입니다. 상냥한 매에 따르면 그녀와 같은 천재성을 지닌 여성시인이 기원전 600년부터 18세기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기간에 잠재적인 천재성의 여성시인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따라서 그 기간 보통 정도의 실력을 지닌 여성 시인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잠재적인 평범성의 여성 작가들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사포는없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17세기나 18세기까지는 마리코렐리도 바클리 부인도 없었습니다.
좋은 여성 작가들뿐 아니라 나쁜 여성 작가들의 완전한 결핍에 대해 설명하려면, 나는 그들의 능력에 어떤 외부의 제약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상냥한 매는 2등급 또는 3등급능력의 여성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고 인정하니까요. 만약 그들이 강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다면, 어째서 그들은 이러한 재능들을 글쓰기와 음악, 또는 회화에서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비록 너무 멀기는 - P66

하지만, 사포의 경우가 이 문제에 작은 불빛을 비춰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A. 시먼즈를 인용합니다.

‘몇 가지 상황이 레스보스에서 서정시가 발전하도록 돕는 데 기여했다. 에올리언 사람들의 관습은 그리스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회적 · 가정적 자유를 허락해 줬다. 에올리언 여성들은 이오이아 여성들처럼 하렘에 갇혀 있지 않았고, 스파르타 여성들처럼 엄격한 규율에 종속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남성 사회와 자유롭게 섞이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사실 현재까지 역사상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익숙했다.

그리고 이제 사포에서 에델 스미스‘로 건너뛰겠습니다.
‘내가 알 수 있는 한, 예로부터 항상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공부하는 여성들을 방해하는 건 지적인 열등성을 빼고는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은 - P67

남성 못지않게 많은 음악가를 배출했다‘라고 상냥한매가 말합니다. 에델 스미스가 뮌헨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한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까? 그녀 아버지로•부터 반대가 없었습니까?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자기 딸들을 위해 제공하는 음악 연주와 노래, 공부덕분에 그들이 음악가가 되기에 적합해졌다고 여겼을까요? 에델 스미스는 19세기에 태어났습니다. 상냥한 매는 이제 회화가 여성들의 손이 닿는 범위 내에 있지만 위대한 여성 화가는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그게 아들들이 교육을 받은 이후에도 딸들을 위해물감과 작업실을 허락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고딸들이 집에 머물기를 요청하는 가족의 명분이 없는것을 의미한다면, 회화는 여성들의 손이 닿는 범위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생각에, 그들은 회화를 향해 돌진하며 남자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더욱 기이하게 고통스러운 일종의 고문을 무시해야만 합니다. 게다가 이건 20세기의 일입니다. 하지만상냥한 매는 위대한 창조적 정신이라면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할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예컨대,
아일랜드인 또는 유대인들처럼 교육이 제한되고 종속당한 국민 출신인 역사 속 위대한 천재 중 단 한 사 - P68

람이라도 들 수 있을까요? 셰익스피어를 존재할 수있게 해 준 환경은 자신의 예술에 선배들이 있었고, 예술이 자유롭게 토론되고 실천되는 한 집단의 일원이 되며 스스로 행동과 경험에 대한 최대한의 자유를 지닌 것이라는 사실은 내게 반론의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아마도 레스보스에서는, 이런 환경이 여성들의 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래로는 그런 적이 전혀 없었지만요. 그런데 상냥한 매는 가난과 무지를 극복한 몇 남성의 이름을 댑니다. 그의 첫 번째예는 아이작 뉴턴입니다. 뉴턴은 농부의 아들이었어요. 그는 문법학교에 보내졌죠. 그는 농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목사인 삼촌이 그가 일을 면제받고 대학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아홉살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보내졌습니다. 말하자면 1920년에 뉴넘에 들어가길 소망하는 시골 변호사의 딸들이 직면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양의 반대에 뉴턴은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좌절감은 베넷 씨와 오를로 윌리엄스 그리고 상냥한 매가 쓴 글들로 더 커지지는 않았 - P69

습니다.
그것은 제쳐 놓고, 내 요점은 엄청난 수의 더 작은 뉴턴들을 배출할 때까지는 큰 뉴턴을 얻지 못할거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라플라스, 패러데이, 그리고 허셜의 경력에 대한 탐문으로 당신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아퀴나스와 성 테레사의 삶과 업적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테일러 부인에 대해 오해한 것이 존스튜어트 밀이었는지 그의 친구들이었는지 결정하지 않더라도 상냥한 매가 나를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길 바랍니다. 가장 이른 시대부터 현재까지 여성들이 우주의 전체 인구를 출산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동의할 거라 생각됩니다. 이 직업에는 많은시간과 힘이 들었습니다. 이 직업은 또한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되게 만들어 왔으며, 부수적으로 그들 안에 이 종족의 가장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한 특성들을 자라게 했습니다. 상냥한 매와 나의 차이는그가 남성과 여성의 현재 지적 평등성을 부인한다는 - P70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베넷 씨와 더불어 그가 여성의 정신은 교육과 자유에 의해 현저히 영향받지 않는다고 단언한다는 점입니다. 여성의 정신은 최상의 업적을 낼 수 없으며 영원히 현재와 같은 상태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나는 여성들이 향상돼 왔다는 사실은 그들이 여전히 향상될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반복해야겠습니다. 나는 왜 119 세기가 아닌 19세기에 그들의 향상에 한계를 둬야만 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필요한건 교육뿐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가져야만 합니다. 여성들은 두려움 없이 남자들과 달라야 하고 자신의 차이를 터놓고 표현해야만합니다. (나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똑같다는 상냥한 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정신의 모든 활동성이 장려돼 남성들만큼 자유롭게, 그리고 조롱과 겸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발명하고 상상하고창조하는 여성들의 중추가 언제나 현존해야만합니다. 나의 정말 중요한 견해는, 이런 조건들이 상냥한 매와 베넷 씨가 한 말과 같은 진술들에 의해 방해받는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자신의 견해가 알려지고 존경받게 만드는 데 여성보다 훨씬 더 위대한 재 - P71

능을 가졌으니까요. 분명 만약 미래에 그런 의견들이 만연하다면 우리는 반ㅡ문명화된 야만인들의 상태로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최소한 이것이 내가 한편으로는 지배의, 다른한편으로는 노예 상태의 영속성을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되는 퇴보는 노예가 되는 되보와 그저 맞먹기 때문입니다. - P72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스콧ㅡ몽크리프가 찬사의 어록에 내가 몇 마디 해 주길 원하네요. 당신도 함께하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하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나도 안할거예요. 하지만 프루스트는 표현에 대한 나의 욕망을 너무자극해서 내가 문장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아, 내가 그렇게 쓸 수 있다면! 나는 외칩니다. 그리고 그가 놀라운 진동과 포화 상태와 강화를 획득하는 순간에 (그 안에는 성적인 어떤 것이 있어요) 나도 그렇게 쓸수 있다고 느껴서 펜을 잡지만 나는 그렇게 쓸 수가 없어요. 어느 누구도 내 안에 언어의 신경을 그로록 흥분시키지는 않아요. 일종의 집착이 돼 버렸어요. 하지만 나는 소설 속 스완에게로 되돌아가야만합니다.(...) - P79

(..) 당신이 소설쓰기에 관해 한 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왔습니다. 내가 포기해야만 한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내가 소설 쓰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당신은 말합니다. 나는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나는 책 안에 사람들 없이 책을 쓰는 방법은 알지 못 - P96

합니다. 아마 당신은 내가 어떤 ‘인생관‘을 시도하지말아야 한다는 것 같은데요? 나 자신의 감각으로 자신을 제한해야만 한다고, 내가 서정적이고 묘사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하며 그들에게 영향을주고 입체감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뜻 같은데요?
아, 하지만 나는 글렀습니다! 사실, 나는 우리 모두 그렇다고 생각해요. 내가 포기한다고 말하는 건 지금 가능하지 않고, 앞으로도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문학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 거예요. 이 세대는 다음 세대가 순조롭게 나아가도록 힘껏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에 의해 아무것도성취되지 못할 것이라는 데 당신과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파편들, 문단들, 어쩌면 한페이지뿐. 하지만 더 이상은 없습니다. 내게는 제임스 조이스도 실패투성이로 보입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나는 그의 승리를 볼 수도 없어요. 용맹한 접근, 그것만이 내게 명백한 전부예요. 그 외에 대개는 충돌과 조각들입니다(나는 그를 부분적으로 단 한 번 읽어 봤을 뿐입니다).
내가 보기에, 인간의 영혼은 때때로 자신을 새롭게다시 발명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 - P97

요. 따라서 아무도 그걸 전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죠. 우리 중 최고의 작가는 코나 어깨, 또는 항상 움직이며 돌아서 버리는 무언가를 잠깐 스치듯 볼뿐입니다. 하지만 휴 월폴과 H. G. 웰스 같은 작가들과 눌러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언뜻 보고서 멋지고 살집 좋은 괴물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하게 거대한 유화로 그리는 편이 내게는 더 나아 보입니다. 물론, 이건 아직 서른 살이 안 된 당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더욱 완전한 어떤 게 주어질수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부분적으로는 나, 그리고 어떤 다른 작가들이 먼저 우리의 시도를 했기 때문일 겁니다. 요점에서 벗어났네요. 신경쓰지마세요. 전혀 읽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할 당신보다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나는 그저 끄적이고 있을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장호의적일 때조차도, 지나가면서 보내는 간헐적인 신호, 즉 배와 밤, 폭풍, 암초와 바위, 그리고 흐릿하고 무정한 달로 이어지는 감상적인 은유 이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편지를 받길 소망합니다. 그래야 내가 더 나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덜커덕거리지 않고요. - P98

당신은 자신이 몹시 형편없다고 말했어요. 그랬죠? 당신은 자기 간이 썩어 가고 있으며 어떻게 밤새도록 문학의 선조들에 관해 읽고 나서 걷다가 새벽이 되었는지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비참했고 당신이 쓴 모든 걸 찢어 버렸으며 당신은 결코, 결코쓰지 못할 거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당신의 이런 상태를 당신이 상상하기에 안정적이고 기반이 탄탄하며 자애롭고 근면하지만(당신은 따분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도달할수 없고 어쩌면 비현실적인, 내 상태와 비교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마흔살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게다가 나는 10년마다 즉, 스무살 때, 또 서른 살 때, 다른 종류들의 고뇌가 나를 몹시 사로잡아서 횡설수설과 읽기에 만족하지 못한 채 단호히 다 끝내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약 내가 한 돌판 대신 다른 돌판을 밟음으로써 서있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소멸될 수 있었다면, 오히려 그에 대해 종종 감사했을 겁니다. 나는 이걸 한편으로는 당신이 나를 무미건조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있다는 허영심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느끼고 숙고하는 우리 모두가 반복되는 대재 - P99

앙의 공포와 함께 그렇게 살아간다는 징표로서 말합니다. 고뇌 속에 한밤중이 시작되는 것이죠. 세월은10년마다 내 생각에 지금 인류에 보편적인 광대한성향과 맞먹는 개인적 성향 중 하나를 데려오는 것 같습니다. 삶이 허물 벗겨지고 직면되고 거절돼야만 하며, 그런 다음 황홀한 새 조건들을 받아들여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계속됩니다. 당신이 마흔살이 될 때까지요. 그때까지는 어떻게 하면 삶을 더욱 꽉 움켜쥘 수 있을지가 유일한 문제인데 그래서 삶은 너무 빨리 빠져나가는 듯 보이고 그래서 또 무한히 욕망하게 됩니다.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서른 살에 나는 여전히 쓰고 읽고 부지런히 찢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서평을 제외하고는) 단 한마디도 출판하지 못했죠. 나는절망했습니다. 어쩌면 그 나이에 가장 작가일 수도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대상이 너무 가깝고,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쓸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대상에 대해 펜을 들수 있기 이전에 멀어져야만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스무 살, 서른살,
마흔 살에, 그리고 틀림없이 쉰, 예순, 그리고 칠순에도 내게는 그게 과업입니다. 내 경우로 보면, 특별 - P100

히 고결하거나 영웅적인 건 아닙니다. 내 모든 성향이 글쓰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단 한페이지 또는 한 문단을 성취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가 내게는 숭배의 대상입니다. 당신이 말했듯 스승도 성인도 선지자도 좋은사람들도 없지만 예술가들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문장은 형편없이 난해하군요. 사실, 나는 내 편지 쓰는 역량의 끝에 도달하고 있어요. 나는 말할 게 더욱 많지만 그것들은 침대보 아래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발상들이 내 안에서 새롭게 되거나 다시 한번 불가분해질 때까지 불을 응시하고 책을 손으로 만지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또한 나는 내 동료 피조물들 안에 많은 흥미와 재미, 순수한 즐거움과 뛰어난 재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산을 버리고 운에 맡긴 채 우정, 대화, 관계, 단순한 일상적 교류 같은 당신의 인간적능력을 발휘해 모험을 감행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젊은 사람들이 눈앞에 책을 그토록 오래 들고 있나요? 프랑스 문학이 풍경위로 푸른색조처럼 떨어집니다.
그러나 내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있는 것이 - P101

아니라 그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당신은 내게다시 편지를 써야만 합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어떤 것이든요. 호가스 출판사를 위한 무언가는 어떤가요?
레너드가 미래에 대한 내 소망에 자신의 소망을 보탭니다.
당신의 버지니아 울프


추신
추신을 덧붙입니다. 내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겁니다. 내가 때때로 성취한다고 당신이 말한 그 아름다움은 오직 그것을얻는데 실패하는 것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싯돌을 함께 갈고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서요. (나는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이런 비정해 보이는 고투가 없다면, 그 결과가 작은 데이지와 수선화, 즉 멍청히 웃는 달콤함, 그리고 나비매듭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우리 세대가) 더욱 위대한 아름다움의 성취는 결국 포기해 - P102

야만 한다는 사실에 나 역시 동의합니다. 《전쟁과 평화》, 스탕달, 제인 오스틴의 어떤 작품들, 그리고 로렌스 스턴 같은 책들 안에 있는, 완전함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겁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 안에 그러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이 좀듭니다. 그의 책을 단 한 권만 읽어 보았지만요. 이 글을 쓰고 나서야 그 진위가 의심스러워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그리고 비록 우리는 매번 실패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전체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실패했어야 할 만큼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닌 게 분명해요. 나는 포기해야만 합니다. 책이 완성됐을 때요. 하지만 책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닙니다. 계속 지루하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은 그런 종류의 말을 전혀 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나는 왜 내가 비록 때로는 잘하는 것에 나자신을 제한하려고 하지만 언제나 인간들에 의해 안전함의 작은 원 바깥으로 계속 끌어내져 소용돌이로 이끌리는지 스스로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라앉을 때요.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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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아우른 ‘인연의 지도‘처럼 보였다.
여자라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그에겐 책과 사람이 학교였고, 그는 ‘대화보다 더 좋은 가르침은 없다‘라는 깨달음을 일찍이 터득한다. 대화로 영감을 얻고 나면 글쓰기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말로 큰다. 당신이 존재와 영혼의 확장을 도와주는좋은 대화 상대를 찾는다면, 어서 이 책을 열고 살아 움직이는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라고 귀띔하고 싶다"
-은유 작가

수사네 쿠렌달(Susanne Kuhlendahl)

일러스트레이터. 복잡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어 사람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매력을 느껴 그래픽 노블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산문 <빵>,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예술성 높은 작품을그래픽 노블로 만들었다. 지금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올랜도》를 준비 중이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세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글이 영원히 기억될 가치를 가질 것인지,
단 몇 시간 만에 잊힐 만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큐 가든>에서 이렇게 썼다.
타원형 화단에서 달팽이는 자신의 집 안으로 아주 부드럽게 움직이는것처럼 보였다. 곧 달팽이는부드러운 흙 위에서 움직일 준비를할 것이다. 달팽이가 시든 나뭇잎을 피할지 아니면 처리할지를 결정하기도 전에 비트 잎 사이로 인간의 발이 나타났다.

버지니아는《세월》에서 이렇게 썼다.


침묵은 깊어만 갔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엘리너는 자신의머리 위의 아치형으로휘어진 네모난 천장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대포 소리가 울렸다.
공기가 위로 치솟았다.
이번에는 바로 그들의머리 위에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에서 이렇게 썼다.

이런 신체적 감각을 어떻게 하면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 너머에 있는 허공을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거실 너머의 계단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은 텅 비어 보였다.) 무엇인가를 갈망하지만 얻지 못하는 그녀의 몸은 경직되고,
공허하며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하고 있지만 얻지 못하는 것 ㅡ 간절하고,
간절하게 원하는 것 ㅡ 아, 쥐어짜는 마음을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하고 또 끊임없이 원하는 이 마음을!

1937년 4월 27일 버지니아 울프는 라디오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언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어들, 영어 단어들로 가득한 메아리가 나를일깨우고 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말들은 수 세기 동안 자연을 떠돌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사람들의 집과 거리그리고 들판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그것을 쓸 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의 말에는 다른 기억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오래된 말들에새로운 쓰임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게 하기위해서인가요? 아니면 그 안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서?
또는 그 안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인가요?

여기 나 자신은 지금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 어떠한 문장도 꺼내지 않는다.
나는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나는 외쳤지만, 그 순간 내가 완전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진짜 죽음, 이었다.

1941년 3월 28일 금요일,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내 사랑, 당신이 나에게완벽한 행복을 선물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누구도 당신이 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내 말을 믿으세요.
하지만 나는 이것을 절대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당신의 인생을 망치고 있어요.
바로 이 광기 때문에 말이죠.
그 누구도 나를 설득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내가 없다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갈 거예요.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보여주는 이 글조차 제대로 쓸 수 없어요. 그래도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 병이 나를 덮치기 전까지 우리는 완벽하게 행복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신 덕분이에요.
그 누구도 당신만큼 잘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우리의 첫날부터 바로 오늘까지.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요.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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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망에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가 있었으나, 이를 차치하고라도 나의 공적 자아는 더 이상 한국에 돌아와야 할 동기를 부여받지 못했다. 마로니에 공원 맞은편, 커다란 게시판에촘촘히 붙은 포스터를 기웃거려도, 볼 만한 공연, 가슴 뛰게하는 이름 하나를 찾을 수 없었다. 자기만의 언어로 연극을 만드는 이름 두어 개가 나는 필요했기에. 게시판 위에는 흰 바탕에 파란 글씨로 쓰인 낡은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 ‘연극은 시대의 희망이다.‘ 그때, 연극은 도무지 희망이 아니었다. 그때, 내 속에서 오래 간직한 꿈 하나가 사그라졌다. - P54

나의 꿈은 언젠가 관객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관객觀客 보는 사람들의 학교. 이때 관은 행위이며 객은 그 행위의 주체를가리킨다. 또 객을 풀어보면 집을 뜻하는 갓머리 부에 음을 제공하는 각자가 결합돼 있는데, 후자는 뒤쳐짐과 입이 결합되어, 앞에 온 사람과 뒤에 오는 사람의 말이 다름을 지시한다. 요컨대 각자 다른 생을 살다가 하룻밤 극장의 지붕 아래 결집하여 무언가를 함께 바라보는 우연의 공동체가 관객인 것. 그들 저마다의 시선이 자유로이 편력할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내가 꿈꾸던 학교의 일이었다.
서구에서 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테아트론dhicarron에서 찾을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테아트론은 무대가 아니라 객석을 칭하는 용어였다. 극장이란 무엇보다 보는곳이었고, 그곳의 제1주체는 관객이었던 것이다.  - P54

쩌면 극장에서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주체성은 관객의 주체성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순간 무언가를 바라보고, 이미 본 것과 지금 본 것을 연결하며, 그렇게 펼쳐가는 의식의 지형도로 생을 꾸리고, 자신을 구축한다.
이때 바라보는 일이 그저 매끄럽기만 하다면 생은 아프지도 아름답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때로 무언가에막히고, 충격으로 아득해지고, 성찰의 거리를 취하고, 다시금용기와 다정으로 몰두하고, 기필코 뒤돌아 나 자신을 또한 응시함으로써 굳건해진다. 그리고 어떤 예술은 이 같은 시선의아찔한 편력을 돕는다. 종종 그런 작품은 ‘스캔들을 일으킨다‘고 말해지는데, 스캔들의 어원인 스칸달론skandalon은 ‘발을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부리‘를 의미하며, 이때 넘어지는 것 역시, 시선의 일이라 할 수 있다. - P55

관객으로서 나는 언제나, 걸려 넘어지고 틈으로 추락해버릴 아름다움을 좇아 극장에 간다. 객석에 운집한 각각의 생이 동시에 떨리는 순간은 얼마나 귀한지. 그 전율이 일으키는파문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지. 살면서 그런 연극을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희박한지. 고백하건대 나의 경우, 한국 연극에서스캔들을 만나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말하자면 드라마적 과잉의 천편일률뿐이었다. 관객에게 슬픔이 내려앉기도 전에 무대 위에서 배우가 오열했다. 그러면 관객은 멀찍이물러섰다.
지극히 섬세한 조형적 아름다움과, 응집된 절제와, 고요와, 의식을 깨우는 현실의 난입과, 때로 퍼포먼스가 그 자체로 발생시키는 감각의 충격이 거기 없었다. 드라마적 서사나감정적 해소를 다수의 관객이 선호해서라기에는 애초에 관 - P55

객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예술가의 자유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선택하는 주체는 도리어 지원 심사를 하는 비평가에 국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떤 취향과 유행과 명분을 핑계로, 작품들의 세계는 단조로워졌다.
하여 나는 감히 다른 세계를 꿈꾸었고, 창작자나 비평가를 변화시키는 대신 관객을 변화시키는 일에서 희망을 보았다. 기실 한국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주저하는법을 배우며 자라왔다. 그리하여 창작자의 의도나 비평가의답안을 모범으로 여기고, 미처 이해할 수 없는 건 자신의 무지탓이라 꼬리를 내리는 유순한 관객이 되었다. 허나 겸양의 태도는, 관객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다지 미덕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믿고 있다. - P56

그러므로 우리가 부끄러워 않고 스스로 느끼는 좋음과나쁨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새로움을 요청한다면. 보다 섬세한 사유와, 대상화하지 않는 예의와 고유한 형식미를 갖출 것을 우리가 작품들에 요구한다면 그 형식들이 다채로워지고, 관객은 그 하나하나의 힘을 바라보고, 의미를 풀어내고, 그래서 언젠가 오직 관객이 좋다고 하는 연극이 지속가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일이 삼백 년쯤 뒤에 이루어지더라도 삼백 년 전의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하고 싶던 꿈. 그런 꿈이 내게 있었다. - P56

어떤 역사의 기원을 더듬어보면 거기 어김없이 박탈이 있다는 것을. 질서가 부여되는 순간 혼돈으로 명명되어 사라지는것들. 고대 그리스, 문명이 꽃피고 직접민주주의가 이루어진시대, 그보다 먼 옛날, 문명이 야만을 분리시키기 전에, 도시국가에서 의사를 표결하는 시민이 남성에 국한되기 전에, 니체를 따르자면 아폴론적 밝음이 디오니소스적 어둠을 물들이기 전에, 도취와 환각 속에 봄이 오는 것을 기뻐하며 부활의신에게 포도주를 바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는 모든 혼돈이생의 근본으로 인정되었고, 여성과 이방인도 춤을 추었다.
그때는 아직 춤과 노래가 이야기를 입지 않았다. 특정 생을 대변하는 서사도, 서사의 주인공도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모두가 저마다의 그늘진 서사를 품고 그럼에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 앞에 생의 요동을 찬미했다. 그러다 BC 6세기,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저 축제를 도시국가의 연례행사로개편시켰고, 거기 비극 경연 대회가 도입되었다. 매년 선발된세 명의 작가가 비극 세 편씩을 준비했고, 사흘에 걸쳐 종일각 작가의 연작을 공연한 뒤 마지막 날에 우승자를 선정했다. - P72

그렇지만 배워야해, 가르치던 사람이 답한다. 우리는 곧저들의 침입 속에서 저들 언어의 물살에 휩쓸려 갈 거야. 그물살이 어느 바다를 향해 가는지 알기 위해서 이 말을 알아야 해. 그러나 저들은 우리의 말을 배우지 않잖아? 저들도 배울 거야. 다만 필요한 용어들을 익히겠지. 그것을 점유하기 위해. 잠시 후 두 사람은 가면을 벗고 자신들의 몸이었던 허물마저 벗는다. 천장에서 내려온 바에 흙빛 허물을 걸쳐 올려 보낸다. 벗은 것은 남자의 허물이나 드러난 것은 여자의 몸이었다.
다시 어둑해진 무대에 한 농부와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둘은 영어로 대화한다. 오줌에 피가 섞이고배가 부풀어 올라, 여자가 말한다. 의사를 보러 갈까? 남자가묻자, 뭘 타고? 우리가 팔아버린 말을 타고? 여자가 되묻는다. 겨우 수확한 썩은 감자들을 내어 보이며, 여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으나 아무래도 신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을 돕기로 한 것 같다고 말한다. 남자는 그래도 신께 기도하자권하고, 둘은 농기구를 내려놓고 가만히 두 손을 쥔다. - P75

연출가 루이 주베와 함께 일하다 레지스탕스 운동가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작가 샤를로트 델보는 수용소의 고돌 속에서 밤마다 침상을 찾아 대화해준 알세스트와 엘렉트라. 옹딘을 회고하며 『유령들, 나의 벗Spectres, mes compagnons』이라는 책을 썼다. 그토록 허약한 시절에 조금 더 살 용기를, 잊지않고자 하는 힘을, 지켜낼 사랑을 주었던 비극의 인물들. 유령들 갔지만 미처 못 떠난 우리를 위해 다시 오는 지금도 세계속에 가득한. 죽임 당한 동물들과 함께 우는. 끝끝내 우리가 기대 살아갈.
얼마 전 몸이 아파 CT 촬영을 앞두고 나는 잔뜩 겁을 먹었던 적이 있다. 일전에 그 기계 안에서 돌연 혈관이 다 터져버릴 듯한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었기에 두려웠고, 이번에는 정말로 혈관이 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기계 안에 누워 두 팔을 들고 숨을 멈추고, 그때, 나는 문득 당신을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은 당신. 동굴에서겁탈당한 당신, SOS를 남긴 당신과 그것을 발견하는 당신. 기계가 움직이고, 나는 당신에게로 가는 거야, 생각하니 안심이되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자리. 우리들의, 비극의 기원으로. - P81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치를 때마다 알게 된다. 슬픔의 더께와무관하게 계속되는 의식의 절차 속에서 우리는 때로 비통한애도를 잠깐씩 쉰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듯,
울음을 유발하는 특정 순간들은 꼬리를 물고 되돌아온다. 그장치들 앞에 사랑했던 우리가 무력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잔혹하고 명백하게, 사라짐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빳빳한 삼베가 죽은 이의 얼굴에 씌워질 때, 그 몸이 관에 들어갈 때, 화장장 문 뒤로 그를 떠나보낼 때, 곧 불길이 치솟을 단단한 철문 너머로 화면 속 관이 사라질 때, 돌이킬 수없는 소멸을 목도하는 마음들이 거듭 우는 일.
공연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회화와 같은공간예술이 한번 완성되고 나면 공간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 - P83

하는 것과 달리,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시간에 깃들어 발생했다가 그 흐름과 더불어 종결된다. 작품의 존재는 그것이 발생하고 있는 오직 그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관객은 사라짐의 목격자가 되어 영영 혼자만 알아볼 흐릿한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더 이상 존재가 없으므로 점차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중 어떤 기억은 되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몸에 기입된다. 그렇다 해도 흔적이 남는 것과 존재가 남는 것은 아득히도 다른 일이다. 시간예술의 근본에는 슬픔이 있다.
언젠가 매우 뚜렷하게 완전한 행복을 체감한 순간, 나는그 순간의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 격렬하게 망설인 적이 있다. 그때 그 공간의 구조, 햇살의 농도, 바닥의 온도와 내 몸의 기울기를, 그 순간을 둘러싼 모든 지나온 시간의적확한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토록 좋은 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기 위해 몸을 움직임으로써 행복의 구체를 깨지 않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을잊었다. 이토록 좋은 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이내고개 저었던 내 안의 순전함만을 기억할 뿐. - P84

끔찍한 고통은 몸에 각인되므로 쫓으려 해도 영원히 돌연한 소스라침으로 우리를 깨우는 반면,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끝내 잊히고 만다. 나는 삶으로부터 그것을 배웠고 그리하여 되도록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특별히 공연을 보고 돌아온 밤이면, 덧붙여 그 공연이 아름다웠던 날이면 졸음을 붙들고 아직은 생생한 기억을 풀어 내가 본 것들을 남겨두려 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수첩을 뒤적이며 종종 과거의 내게 감사해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현쟁디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 P84

삶에서 가장 진실한 문장은 하루의 끝, 중국 식료품점에 들어가 나누는 대화라고 리델은 쓴다. "빵이 남아 있나요?" "네." "얼마인가요?" "60상팀입니다." 그렇게 한덩이 빵을 받고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한 뒤 돌아나오는 것. 추악한 밑바닥을알아볼 만큼 서로를 더 들여다보지 않는 것. 같은 차원에서 그녀는 먼 나라의 무용한 언어를 배우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아주 간단한 문장만을 말하며 모르는 거리를 걷는 기분은 삶에의 비- 종속감을 견디게 해주므로. 가령 남은 생애 무지한 학생으로 중국어를 배우다 늙는 일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위안일 것인지.
"4,000자를 다 배우고 나면나는 구원받은 기분일 거야. 이미 너무 늙었을 거고, 생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깥에위치했다 느낄 거고, 어쩌면,
어쩌면, 행복해지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겠지." - P100

그날 본 연극은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연출한 <오이디푸스왕>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가 쓴 원작을 1804년 횔덜린이 번역한 버전이었다. 횔덜린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근친상간을 저지른 것보다 이성적 사유에 얽매인 것에서 보다 기인했다고 여겨, 도시 국가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기이전, 술과 춤에 취한 농민들이 봄을 예찬하던 옛 축제의 광란과 야만의 정신을 번역 속에 되살렸다. 이에 더해 카스텔루치는 비극 이전의 세계가 모계 사회였음을 시사하며, 오직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무대에 세운다. 장막 너머로 느리게움직이는 우아한 몸들의 유영. 이성 바깥에 놓인, 혼란하고 야만적인 사랑과 고통.
연극은 무사히 끝이 났고, 나는 밤의 정거장에서 버스를기다렸다. 그 극장 앞에서 나의 집까지, 가장 아름다운 길을 - P110

따라 돌아가게 해주는 버스가 있었다. 오래 서 있어도 지겹지않도록 일렁이는 강물을 구경할 수 있던 정거장이 있었다.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2014년 4월에 나는 혼자 운 적이 있다. 그 배가 가라앉은 지 나흘쯤 지나고, 이제 더 이상 그 어떤무지한 희망으로도 그들이 버텨주기를 바랄 수 없던 날에 그아이들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어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원망과 탄식이 치밀어 올라. 어쩐지 그들의 몸을, 오직 그 몸들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내가 몸을 갖지 못하도록 가르쳤다. 그렇게 나를 몰아갔다.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사람들은 여성으로서의 내 몸을 증오하도록 내게 가르쳤다. 그들은 내가 여성인 것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몰아세웠다. - P111

리델이 말했듯 세계가 우리의 몸을 지울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끝없이 감각한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그 몸이 존재하는 일이다. 몸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는 일. 더 아름답지 못한 것이 언제나 책망되는 몸을 데리고걷는 일. 그 몸이 수치스럽게 만져지고 살덩이로, 또는 자궁으로 취급되는 일. 그즈음 나는 특히나 더 내 몸과 관련한 바닥같은 자존감을 끌고 다녔고,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문득 수장된 아이들의 몸을 떠올렸다. 퉁퉁 불어버렸을. 형체가 일그러지고 손발이 녹아내린, 아직도 물속을 부유하는 그들을 찾아안고 아름답다고 말하며 울고 싶었다. 눈물이 흐르고 흘러도바닷물에 섞여 흔적 없을 수면 아래서. - P111

앙헬리카 리델의 연극 <힘의 집>(2009)에 나오는 대사에서 볼수 있듯이,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죽이기로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들이었다. 그런데도 세상은 죽은 여성에 대해서만 떠들었다. 마치 그녀가 죽임당해 마땅했다는듯이. 사실상세상은 죽은 여성에 대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과같다.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해 세계는 무관심하다. 살아 돌아온 여성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델보의 희곡 속에서프랑수아즈가 예견했듯, 그들의 존재는 그들이 당한 치욕을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소비되었다. 살아 돌아왔으므로 그것은 충분히 끔찍하지 않았고, 심지어 강간도 아니었다고 세계는 선고했다. 살아 돌아온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죽어야했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죽으라는 말이다. 영영 침묵하라는 것이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여자는 죽임당한다.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무력했다. 열등의 조건을 스스로 체화하며 살았다. 세계가 가르친대로 겁탈당한 내 몸을 치욕스러워했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스스로의 자유를 결박했다. 그렇 - P119

게 가부장제의 명예 남성이 되어 제목을 조르고 있었음을 깨닫는 일은 그 자체로 또 한 번 트라우마가 된다. 깨닫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말들이 너무도 뼈아프기때문이다. 한때 사랑이라 믿었던 많은 것들을 부인해야 하기때문이다. 무지했기에 방관했고 무감했기에 동조했던 순간들 속에 나 자신이 또한 가해자였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여성의 고발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 찢어지는 감정이라기보다. 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리적인 소스라침에 가깝다. 그몸들의 비명으로 온 세계가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일. 그 환멸과 피로에 휘청이는 것. - P120

그러므로 몹시 아프고 고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귀 기울인다. 왜냐하면 누군가 기어코 ‘그 말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세월호 유가족들이 파리에 와 ‘국가 테러 및 재해 희생자 연대FENVAC‘ 대표와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아주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연대가 현재 누리고 있는 상식적인 권리들이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유럽 땅에 전무했다고, 기차 사고로 딸을 잃은 한 사람의 싸움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그러므로 오직 유가족만이 끝내 할 수 있다고, 아마도 용기를 주기 위해 그들은 말했다. 유가족만이, 희생자만이, 피해자만이 할 수있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끌어안고 운다. - P120

연극계 내 성폭력에 대한 대부분의 고발은 우리가 알고 있는이야기였다. 나는 밀양연극제에 간 적이 있고, 거기서 안마에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안마만 시키는 것은 아닐 거라고, 모두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 있었다. 첫 번째 고발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아득히 자책했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토록 긴 시간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않았나. 그러다 차츰 다시 반문했다. 알고 있었다고 하여 무엇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진실에 대한 고발은, 슬프게도, 오직 피해자로부터밖에는 나올 수가 없다.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며 또 한 번 깊이 아팠고, 고발자들의 세세하고 뼈아픈 진술을 읽다 결국 나는 실제로 아무것도 알지못했음을 깨닫고 다시 무너졌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 그들이 기억하는 것, 그들이 살아낸 것, 그것이 내가 몰랐던, 진실이었다. - P121

훗날 델보가 회고하기를, 아우슈비츠에서는, 날마다 목도하는 누군가의 죽음이 사실은 나의 죽음일 수 있었으리라는 공포가 그 슬픔이 온몸을 지배했노라 했다. 저것이 나일 수도있었지만 저 사람이 죽음으로써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일. 그런의미에서 모든 죽음은 나를 대신한 죽음이었노라는 감각, 수용소 바깥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프랑수아즈는 말했지만, 이곳, 우리의 현실 속에서, 모든 여자는서로를 대신해 유린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 울고 있는저 존재는 나의 얼굴이다. 이토록 뼈아픈 이입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유가족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다. 이 연극을 끝까지 올리는 일을. 이 연극을 끝까지 보는 일을. - P124

한 장르를 한 사람에게 빚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는 동안 사람에게 빚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 처음 맛보게 해준 과일을 철마다 찾아 먹고, 누군가 들려준 문장을 슬픔의 어귀마다 만져보는 일, 나를 이루는 것들은 모두, 한시절 매우 고유한 방식으로 내 삶에 도래했다가 대개는 흔한 방식으로 멀어진, 구체적으로 아름다웠던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준 것이 하나의 장르전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일이나 시 자체일 수도. 이 사실을 잊고 살기는 쉽지만 특별히 잊히지 않는 몇 경우가있는 법이다. 나는 장 끌로드 아저씨에게 오페라를 빚졌다. - P127

우리는 오로지 관극을 위해서 만날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만남이 무대를 제외한 다른 풍경을 품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에겐 극장이라으로 일종의 무덤을 훈련한 는 배경이 있었고, 그곳은 아무리 헤엄쳐도 끝에 다다를 수 없는, 한 광활한 세계가 되기에 충분했다. 모퉁이를 돌면 다른 장소가 펼쳐지고, 자리를 옮기면 시선이 바뀌고, 때로는 객석에서 유령이 출몰하고, 꼭대기 층 복도에는 스러져간 역사가 진열돼 있는 프랑스어로는 장르의 이름과 같이 ‘오페라‘라 불리는 그 오페라 극장들. 오래전 음악이라는 말이 그랬듯 허다한 시공을 품는 그 많은 오페라들. 오페라에서 만나자, 하는 신비로운 약속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던 날들. - P134

무언가를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 지닌 자신만의 역사와그 섬세한 애정의 방식. 그것만큼 내게 부러움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이 부러움은 순전한 것인데, 왜냐하면 그에게 있고 내게 없는 것이 다름 아닌 세월이기 때문이다. 나는끝내 따라잡을 수 없을 아저씨의 세월을 따라 극장별로 정해진 만남의 장소로 나가는 일이 즐거웠다. 오페라 바스티유나파리 필하모니 같은 현대식 공연장에서는 프로그램 판매대앞 로비가 좁은 샹젤리제 극장은 출입문 앞. 오페라 코믹은 마농 앞. 오페라 가르니에는 헨델 앞. 헨델 앞에서 보자, 라고말하는 일.
그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는 일에 능숙했고, 그 능력은 무엇보다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발휘됐다. 아저씨는 모든 극장의 세세한 구조를 머릿속에 꿰고 있으며, 가장 저렴한 자리가 어디 있는지, 그중 어떤 종류의 공연을 위해서는 발코니석이 좋고 또 어떤 종류의 공연을 위해서는 천국의 자리가 좋은지, 각각의 자리에서 시야가 어느 정도로 방해되는지, 몇 유로 더 지불하면서도 객석 중앙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때는언제인지 등을 전부 안다. - P135

그렇듯 내가 즐거이 훔쳐본 것은 주로 무대 밖의 가려진단편들이었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허구의 세계보다는 그 세계의 가상성을 뜻하지 않게 폭로하는 작은 것들의 침입이나는 좋았다. 그것들을 구경하느라 무대를 외면하는 동안, 무대위의 세계는 내게 실로 ‘가시성 없는 곳이 되곤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저 가상의 장면들에 좀처럼 몰입할 수 없었으므로 현실의 단편들로 눈을 돌린 것이었다. 나는 오페라라는 장르와 오래 불화했다. 그러면서도 오페라에 가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이 모순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는 것이 나의 세월이었다. - P138

오페라는 아름답고 화려하다. 장르뿐 아니라 극장 자체가 그러하다. 로비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웅장한 계단. 까만 정장을입고 티켓을 확인하며 재빠른 단어 몇 개로 굽이굽이 갈 길을일러주는 안내원. 때로는 열쇠로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는방. 붉은 융단과 볼록한 의자. 코트 걸이와 거울, 발코니로 몸을 내밀면 바라다보이는 천장화. 그 모든 사적이고 은밀한 위치에서 한때는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무대가 아닌 서로를 염탐했던 옛 귀족들의 사교, 쾨쾨한 냄새 속에 남아 있는 시절의기운 탓으로, 부르주아적인 취미의 공간에 들어서는 기분을지울수 없던.
그곳 무대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또 얼마나 웅장하고진지한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조악한 나뭇잎으로 치장한채 노래하는 사람이나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여러 개의 팔로 - P138

휘젓고 지나가는 합판 보트를 보면서도 관객은 어떻게 웃지않는지. 저 비장한 세계 속에 몰입하는 일이 그처럼 쉬운지. 국가를 지키는 영웅, 목숨을 바치는 사랑, 급작스런 선악의화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결말을 목도하는 일이 진정 아무렇지 않은지. 그것이 너무 멀지는 않은지. 우리의 지금, 여기로부터. - P139

인천으로 다녀오는 왕복 티켓을 파리에서 끊었으므로 1년 안에 올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살다 보면 그게 쉽지 않다고, 나를 영영 못 볼 것으로 그는 여겼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가지 못했다. 그런 것이 삶인 것을 그는 이미 아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그토록 오페라로 그도 도피했던 것인지.
아저씨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 그것이 단순한 선의 이상의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준 사람. 그는 내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주었다. 고통을 다루더라도 화해가 이루어지는 세계. 때로 비참한 결말일지라도 죽음 직전엔 반드시 고결한 노래가 흐르는 세계. 연극에서와 달리 오필리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직접 다뤄지는 우리가 몰랐던 말, 현실에 없었던말, 영영 못 들을 말이 전해지는 세계. 나는 떠나지만 당신을 영원히 사랑했을 것이라는,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나는 장 끌로드 아저씨에게 오페라를 빚졌다. - P150

슬픈 이야기를 해도 돼요
나는 슬픈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요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픈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아주 오래 살다 나올 수 있어요
슬픈 사람의 그림자를
몰래 쓰다듬어주다가
잠드는 것을 보고
돌아올게요

슬픈 이야기를 해도 돼요
이 세상이 슬프다는 걸 우린 알아요
슬픈 세상 속에서
슬픈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바닥에 글씨를 쓸 수 있어요
슬픈 사람의 눈물 자국을
몰래 닦아주다가
눈뜨는 것을 보고
돌아올게요 - P166

생각하고 있어요
안아보고 싶어요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이 소중해요
깊이 고마워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을 감으시기 전
당신은 잘 것이라 하시고
아빠가 말했어요
잘 자라고

세상에 남아 - P170

사는 동안에
우리도 잘 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안아보고 싶어요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이 소중해요
깊이 고마워요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P171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구하러 가지 않았어요
기다리시는걸 알아 물 밖에서 울었어요
세월이 흐른다는 말을 우리 쉽게 하지 못해요.
그래도 세월이 흘러갔어요
맑은 날 옅은 구름이 연기처럼 흩날려가요
하늘 아래 있는 것들 바닷속에도 다 있던가요. 쓱 한번 문지르면 입이 없어지면 좋겠어요
그 없는 입으로 한줌 뼈에 입맞추고 싶어요 - P172

스스로가 초라할 때 노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나만 생각하던시절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노래는 나의 비천과 무관하게 흘러, 흘러가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따금 공연을 할 때면 나는 다른 무엇보다 관객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듣고 있기에, 노래가 그 순간 존재한다. 우리를 둘러싼 풍경 속에서, 나무와 구름,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잎새와 눈물 속에서, 노래가, 완전하게.
나는 당신에게 노래를 나누어준다. 당신은 또 다른 곳으로가 노래의 일부를 나눠줄 것이다. 목도한 슬픔을 당신의 몸에 기입하며, 당신의 호흡대로 춤추며. 다시 사랑하며.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되었다가, 마침내 우리가 아닌것들로 흩어진다. 죽음 이후에는 정말로 영혼만 남게 될까. 그때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를 비춰볼 몸이 없어도. 모든 계절을 춤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춤을 추듯 객석에 - P172

앉을 수 있을까. 당신을 볼 수 있을까.


꽃그늘 아래 계절이 바뀌는 것이
서럽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요

함께 노래했던 봄
푸르게 절망한 여름
고요했던 가을과
찬란한 고립의 겨울

그리고 다시 이 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편지할 때
마음속에 차오르는 슬픔은 우리만 아는 것
기어 통과한 세월의 이름은
우리만 아는 것입니다 - P173

세기말까지 이어진 극단적인 실험은 오늘날 다소 사그라졌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무대로 귀환했다. 그럼에도 퍼포먼스적인 것은 많은 연극에서 여전히 주요한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다만 이야기를 들으러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고통과 아름다움으로, 눈앞에서 명멸하는몸짓과 물질로, 몸은 건드려지기를 희망하고, 생은 휘청거리기를 원한다. 연극만이 펼쳐줄 수 있는, 다른 세계에 가기를나는 원한다.
카스텔루치의 연극에서, 여자들은 가위를 꺼내 자신의혀를 자르고, 노인은 하염없이 물똥을 싸고, 아들은 한없이그똥을 치우다 마침내 울고, 아이들이 배낭을 메고 걸어 나와신의 얼굴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객석은 굉음으로 진동하 - P182

고, 장막 너머 검은 가루가 폭풍처럼 휘날리고, 피아노가 불에 타고, 낡은 텔레비전이 깨지고, 몸들이 스러져 바닥에 깔리고, 서로를 껴안을 때마다 차가 충돌하는 괴음이 나고, 누군가 교황청 벽을 맨손으로 타고 올라가 까마득한 지붕 너머로홀연히 사라진다.
객석에 앉은 이는 그 장면들을 단지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소리를 겪고, 배설을 겪고, 두려움을 겪는 것이다. 나의 주체성은 그의 관객이 되는 체험만으로 조금씩 변한다. 발생하고 사그라지는 온갖 감각들의 신음 속에서, 나는 매번 조금씩아프고 다시 나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그의 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했다. 그 아름다움이 완전한 것을, 거기 불필요한 형식의 찌꺼기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때 사건이나 발생이라는 말과, 완전함, 이해라는 말은 모순을 이룬다. 그리고 모순적인 것들을 껴안고 사랑이 이루어진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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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편견들도 작용했다. 나는 실감나고 자세한 상황 속의 사실적인, (사람들 표현에 따르자면) ‘생생한 캐릭터들에게 호감이 간다. 나는 전통적(구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방식의 서술에 끌린다. 진실의 한 층이벗겨지면 더 다른 층이 더 풍부한 진실의 층이 드러나는 방식, 의미 있는 세부 묘사의 점진적인 첨가, 캐릭터에 대한 뭔가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대화와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우연한 발견, 존재감 없는 캐릭터, 기법이나 기술이 전부인 이야기들, 간단히 말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거나 설사 일어난다 해도 세상이 미쳐간다고 보는 작가의 음산한 시선을 확인시켜주는 내용뿐인 이야기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 글 속에 과장된 언어를 잔뜩 집어넣는데, 나는 그러한 글도 믿지 않는다. 나는 추상적이거나 제멋대로이거나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단어나 구나 문장에 반 - P356

대한다. 나는 구체적인 단어의 효력을 믿는다. 그게 동사든 명사든 마찬가지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제대로 쓰이지 않은 듯한 글.
단어들이 서로 충돌하고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는 피하려 한다. 독자가 무슨 이유에서든 글을 읽다가 방향과 흥미를 잃는다면 독자는 그 글을 피하게 되고, 결국은 잊어버린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도 부주의함은 피해야만 한다.
이 책의 출간 목적이 단정치 못한 글쓰기 또는 빈약하고 제대로 쓰지 못한 글들을 반대하기 위함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그 안에 담긴 내용 덕분에 그러한 종류의 작품들에 당당히 맞설만한 위치에 서 있다.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고 조리가 맞지않는 행동들에 대한, 통속적이거나 얼빠지거나 뻔하고 멍청한글들이 유행했던 시절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러한 날이 지났다는 것에 감사해야만 한다.  - P357

나는 글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소 직설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단편들을 뽑으려 애썼다. 나는 우리를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것들에빛을 던져줄 수 있는, 때로는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생생히 담긴 글들을 선정하고 싶었다.
단편소설은 집이나 자동차처럼 오래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설령 아름답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보는 동안 즐거움을 주어야하며 그 안의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 ‘실험적‘ 또는
‘혁신적‘ 작품을 찾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지 - P357

못할 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의견을 좇아, 나 역시도 한눈에 "의심스러워 보이는" 글은 피하려 했음을 인정한다.) 도널드 바셀미의 「그 여인의 정원에서 딴 바질이 실험적 또는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셀미는 항상 그러하듯 이 경우에도 예외이다. 종종 ‘의심스러워 보이는‘ 바셀미의 작품들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으며, 누구나 간직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고르기 위한 기준과도 같은 글이다. 또한 바셀미의 글들은 좀 이상한 방식으로 감동적인 경우가 흔하고, 이 역시 또다른 기준이 된다. - P358

막심 고리키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 난 뒤 이렇게 비교를 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펜이 아니라 통나무로쓴 것처럼 조악해 보인다. 다른 이들의 모든 작품은 거짓 같아보였다."
학생이든, 문학 선생이든, 비평가든 아니면 다른 작가든 상관없이 사려 깊은 독자 아무나에게 물어보라. 모두가 한입으로 말할 것이다. 체호프는 생존했던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라고말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체호프가엄청나게 많은 단편소설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ㅡ 체호프보다더 많이 쓴 작가는 설령 있다 해도 몇 안 된다. 더 큰 이유는, 체호프는 우리를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 동시에 죄를 사해주는, - P371

오로지 진실한 예술만이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감정을 드러내는 걸작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체호프가 ‘성인처럼‘ 신앙심이 깊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체호프는 성인이 아니었다. 체호프는 위대한 작가이자 완벽에 가까운 예술가였다. 체호프는 다른 작가에게 이렇게 훈계한 적이 있다. "당신의 게으름이 행마다 줄줄 흘러나오고 있군. 당신은 문장을 제대로 쓰지 않았어. 그래야 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 예술이란 건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체호프의 단편들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훌륭하다(그리고 없어서는 안 된다). 체호프의 작품들은 그가 살았던 당시 인간의 활동과 행동에 대해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설명을 더없이 명확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그렇기에그 글들은 모든 세대를 뛰어넘어 가치가 있다. 문학을 읽는 자라면, 예술의 초월적 힘을 믿는 자라면(믿어야만 한다), 언젠가는 체호프의 작품을 읽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 가장 적절한 때다. - P372

가치 있는 소설은 사람들에 관한 소설이다.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리라. 어쨌거나 소설에선, 일부 작가들이 믿듯 기교가 내용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이름이 없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쉽게 잊히는 ‘캐릭터‘, 이 생에서 별로 할 일이 많지 않거나 더 나쁘게는 같은 부류에게 생각 없고 부주의한 짓을 하는 데 열을 올리는 불운한 피조물들이 등장하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이 충분히 많은 것 같다. 가치 있는 소설에서는, 소설 속 행동의 의미가 소설 밖 사람들의삶으로 전환된다. 이 점은 정말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최고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서 미덕은 그런 식으로 인식된다. 충절, 사랑, 의연함, 용기, 고결함이 언제나 보답받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은 훌륭하거나 고귀한 행동 혹은 자질로 인식된다. 그리고 우리는 악하거나 비열하거나 단순히 멍청한 태도를 있는그대로, 즉 악하거나 비열하거나 멍청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막아야만 한다. 삶에서 절대적인 것은 적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원한다면 약간의 진리라고 해두자.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P427

이 책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처음 읽는 이들을 위한 선집이 아니다. 이 책을 편집한 테스 갤러거가 적었듯이, 카버의 모든 작품을, 평소 그의 글을 사랑하여 미완성작을 포함해 그 작가가 쓴 모든 글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카버는 물론이거니와 전혀 다른 카버를 만나볼 수 있다. 기존의 카버만을 원하는 독자라면 고개를갸웃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버의 또다른 면까지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만 할 책이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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