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편견들도 작용했다. 나는 실감나고 자세한 상황 속의 사실적인, (사람들 표현에 따르자면) ‘생생한 캐릭터들에게 호감이 간다. 나는 전통적(구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방식의 서술에 끌린다. 진실의 한 층이벗겨지면 더 다른 층이 더 풍부한 진실의 층이 드러나는 방식, 의미 있는 세부 묘사의 점진적인 첨가, 캐릭터에 대한 뭔가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대화와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우연한 발견, 존재감 없는 캐릭터, 기법이나 기술이 전부인 이야기들, 간단히 말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거나 설사 일어난다 해도 세상이 미쳐간다고 보는 작가의 음산한 시선을 확인시켜주는 내용뿐인 이야기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 글 속에 과장된 언어를 잔뜩 집어넣는데, 나는 그러한 글도 믿지 않는다. 나는 추상적이거나 제멋대로이거나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단어나 구나 문장에 반 - P356
대한다. 나는 구체적인 단어의 효력을 믿는다. 그게 동사든 명사든 마찬가지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제대로 쓰이지 않은 듯한 글. 단어들이 서로 충돌하고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는 피하려 한다. 독자가 무슨 이유에서든 글을 읽다가 방향과 흥미를 잃는다면 독자는 그 글을 피하게 되고, 결국은 잊어버린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도 부주의함은 피해야만 한다. 이 책의 출간 목적이 단정치 못한 글쓰기 또는 빈약하고 제대로 쓰지 못한 글들을 반대하기 위함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그 안에 담긴 내용 덕분에 그러한 종류의 작품들에 당당히 맞설만한 위치에 서 있다.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고 조리가 맞지않는 행동들에 대한, 통속적이거나 얼빠지거나 뻔하고 멍청한글들이 유행했던 시절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러한 날이 지났다는 것에 감사해야만 한다. - P357
나는 글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소 직설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단편들을 뽑으려 애썼다. 나는 우리를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것들에빛을 던져줄 수 있는, 때로는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생생히 담긴 글들을 선정하고 싶었다. 단편소설은 집이나 자동차처럼 오래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설령 아름답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보는 동안 즐거움을 주어야하며 그 안의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 ‘실험적‘ 또는 ‘혁신적‘ 작품을 찾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지 - P357
못할 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의견을 좇아, 나 역시도 한눈에 "의심스러워 보이는" 글은 피하려 했음을 인정한다.) 도널드 바셀미의 「그 여인의 정원에서 딴 바질이 실험적 또는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셀미는 항상 그러하듯 이 경우에도 예외이다. 종종 ‘의심스러워 보이는‘ 바셀미의 작품들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으며, 누구나 간직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고르기 위한 기준과도 같은 글이다. 또한 바셀미의 글들은 좀 이상한 방식으로 감동적인 경우가 흔하고, 이 역시 또다른 기준이 된다. - P358
막심 고리키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 난 뒤 이렇게 비교를 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펜이 아니라 통나무로쓴 것처럼 조악해 보인다. 다른 이들의 모든 작품은 거짓 같아보였다." 학생이든, 문학 선생이든, 비평가든 아니면 다른 작가든 상관없이 사려 깊은 독자 아무나에게 물어보라. 모두가 한입으로 말할 것이다. 체호프는 생존했던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라고말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체호프가엄청나게 많은 단편소설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ㅡ 체호프보다더 많이 쓴 작가는 설령 있다 해도 몇 안 된다. 더 큰 이유는, 체호프는 우리를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 동시에 죄를 사해주는, - P371
오로지 진실한 예술만이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감정을 드러내는 걸작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체호프가 ‘성인처럼‘ 신앙심이 깊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체호프는 성인이 아니었다. 체호프는 위대한 작가이자 완벽에 가까운 예술가였다. 체호프는 다른 작가에게 이렇게 훈계한 적이 있다. "당신의 게으름이 행마다 줄줄 흘러나오고 있군. 당신은 문장을 제대로 쓰지 않았어. 그래야 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 예술이란 건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체호프의 단편들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훌륭하다(그리고 없어서는 안 된다). 체호프의 작품들은 그가 살았던 당시 인간의 활동과 행동에 대해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설명을 더없이 명확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그렇기에그 글들은 모든 세대를 뛰어넘어 가치가 있다. 문학을 읽는 자라면, 예술의 초월적 힘을 믿는 자라면(믿어야만 한다), 언젠가는 체호프의 작품을 읽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 가장 적절한 때다. - P372
가치 있는 소설은 사람들에 관한 소설이다.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리라. 어쨌거나 소설에선, 일부 작가들이 믿듯 기교가 내용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이름이 없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쉽게 잊히는 ‘캐릭터‘, 이 생에서 별로 할 일이 많지 않거나 더 나쁘게는 같은 부류에게 생각 없고 부주의한 짓을 하는 데 열을 올리는 불운한 피조물들이 등장하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이 충분히 많은 것 같다. 가치 있는 소설에서는, 소설 속 행동의 의미가 소설 밖 사람들의삶으로 전환된다. 이 점은 정말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최고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서 미덕은 그런 식으로 인식된다. 충절, 사랑, 의연함, 용기, 고결함이 언제나 보답받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은 훌륭하거나 고귀한 행동 혹은 자질로 인식된다. 그리고 우리는 악하거나 비열하거나 단순히 멍청한 태도를 있는그대로, 즉 악하거나 비열하거나 멍청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막아야만 한다. 삶에서 절대적인 것은 적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원한다면 약간의 진리라고 해두자.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P427
이 책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처음 읽는 이들을 위한 선집이 아니다. 이 책을 편집한 테스 갤러거가 적었듯이, 카버의 모든 작품을, 평소 그의 글을 사랑하여 미완성작을 포함해 그 작가가 쓴 모든 글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카버는 물론이거니와 전혀 다른 카버를 만나볼 수 있다. 기존의 카버만을 원하는 독자라면 고개를갸웃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버의 또다른 면까지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만 할 책이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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