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2권을 읽으려는데 1권의 내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무려 3년이나 되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한 번 읽은 책을 기억한다는 말은 전설 속의 백만 년 전의 얘기다. 1권의 내용을 몰라도 전혀 상관없는 여행기인데도 굳이 1권을 읽었다. 처음 읽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쓰면서 어쩐지 쓸쓸하다.






아테네 플라카지구, 로마의 포로로마노, 이스탄불 골든혼, 파리라탱지구, 빈의 제체시온,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의 집, 이런 곳에 가고 싶었다. 다른 대륙에도 관심이 없지는않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곳은 주로 유럽의 도시들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훌륭한 사회를 만들어 좋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사건들을 만났고, 그 주인공들이 살고 죽은 도시의 공간을 알게 되었다.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과비천함, 열정의 아름다움과 욕망의 맹목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를 그곳에 가서 들어보고 싶었다. - P5

아테네

비행기 표를 예약했을 때는 이런 정보와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다녔는데, 정작 아테네에 발을 딛자 그 무엇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아테네 여행자들이 무턱대고 아크로폴리스부터 찾는것은 이런 불안감을 얼른 해소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아테네는 괜찮은 동네에 있는 역사 전문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크지 않아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고, 주변의 특색 있는카페와 ‘가성비‘ 좋은 식당들에서 자잘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이 도시에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 유적을 보기 위해서인데, 고대 유적은 대부분 신타그마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 가는 쪽에 몰려 있다. 여기를 ‘과거의 공간‘이라고 하자. 그 반대쪽 오모니아 광장 방면의 도심과 외곽은 시민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현재의 공간‘이다.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을 신타그마 광장 부근과 플라카지구는 과거와 현재가 뒤엉긴 ‘혼합 공간‘이다.  - P20

이틀 정도면 아테네의 역사 공간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그래서더 길게 머무르는 여행자들은 미노타우루스의 미로를 품고 있는 크레타섬, 포세이돈 신전의 기둥만 남은 수니온곶, 신탁(神託)의 전설이떠도는 델피 신전 같은 곳으로 당일치기 소풍을 간다. 아테네 관광청은 온오프라인으로 다채로운 당일치기 여행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여행사들은 아테네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기차를 타고 북쪽 내륙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을 방문하거나, 흰색 담벼락과 푸른색 지붕으로유명한 산토리니섬으로 날아가 와인 투어와 생선 요리를 즐기는 일정을 권한다. 메테오라와 산토리니는 가볼 만한 곳이긴 했지만, 아테네 여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는 않겠다. - P21

첫날 아침 신타그마 광장에서 ‘해피트레인‘을 타고 아크로폴리스를 본 다음 아고라를 거쳐 플라카지구로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광장모퉁이에서 출발하는 ‘해피트레인‘은 조그만 전기자동차에 폭이 좁고 지붕이 없는 나무 객차를 여러 개 단 꼬마열차인데, 주요 관광지마다 정류장이 있었고 플라카의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후에는 큰길을 다니는 ‘홉온홉오프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국립 고고학 박물관, 국립 아테네공과대학교를 보았다. 정류장이 해피트레인보다 많고 더 먼 곳까지 갈 뿐만아니라 2층은 지붕이 없어서 거리가 잘 보였다. - P21

한국인 여행자야 말할 것도 없다. 경제 발전을 이루고 해외여행의 자유를 얻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인은 세계의 모든 이름난 도시를무리 지어 또는 홀로 탐사하는 중이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사피엔스는 7만년 전쯤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났다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몇만 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유라시아대륙을 걸어서횡단했거나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의 후손인 한국인에게는 ‘역마살 유전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토록 미친 듯이 지구 표면의 모든 이름난 도시를 쏘다니겠는가. - P22

고대 그리스 건축물의 핵심은 돌기둥이 아닐까 싶다. 길이, 모양,재질이 무척 다양한데 특히 주두(기둥의 윗부분)의 스타일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주두를 매끈하게 다듬기만 하거나, 부드럽게 부풀려문양을 음각하거나, 꽃잎 모양의 장식이 밖으로 나오게 깎은 돌기둥들을 감상하는 것은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는 승용차의 차종을 알아맞히는 놀이만큼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돌기둥의 다양성을 감상하기에 최적인 공간은 그리스가아니라 터키에 있다. 돌기둥 수백 개가 천장을 받치고 있는 ‘지하궁전‘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이스탄불 편에서 하겠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 마음의 돌기둥‘을 만났다. 에레크테이온신전의 ‘카리아티드(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여신상으로 만든 돌기둥)‘였다. - P28

옷자락을 부드럽게 늘어뜨리고 다리 하나를 살짝 구부린 채 현관 지붕을 이고 선 6개의 여인상은 얼굴이 훼손되어 표정을 알 수 없고 팔꿈치 아래가 떨어져 나갔지만 서로 다른 옷과 머리 모양과 뒤태가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리아티드가 ‘카리아의 여인‘이라는 해석이 있다. 아테네군은페르시아와 손잡았던 카리아로 쳐들어가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를노예로 만들었는데, 그걸로도 부족해서 카리아의 여인들에게 에레크테이온의 지붕을 이고 서 있도록 벌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믿기 어려웠다. 남자들 대신 징벌을 받는 여인들을뭐 하러 그렇게 멋진 형상으로 빚는단 말인가. 카리아티드의 모델이누구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돌기둥을 여인의 형상으로 조각한 창의적 발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유럽 도시에서는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썼기 때문에 돌기둥이 전혀필요하지 않은 현대식 건물에도 카리아티드를 연상시키는 여인상을부조해 놓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 P30

그리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유럽에서는 가난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정부가 국내총생산의 두 배에 육박한 대규모 국가 채무의 존재를 회계 분식으로 장기간 숨겨온 사실이 밝혀진2009년에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은 뒤로 실업률이 20%를 넘나드는 등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해운업자를 비롯해 부자가 많지만 세금을제대로 걷지 못해 정부는 만성적 재정적자에 허덕인다.
그런데도 아테네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아둥바둥 애쓰는 기색이없었다. 모두가 ‘조르바‘처럼 극단적으로 느긋하게 살지는 않겠지만악착같이 무언가를 해보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었다. 한국 같으면 누군가 틀림없이 플라카 초입에 튜닉과 가죽 샌들 대여점을 냈을것이다. 서울 서촌이나 전주 한옥마을, 경주 대릉원의 한복 대여점처럼, 그리고 시 정부는 아마도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소크라테스복장‘의 문화해설사를 투입해 지나가는 관광객을 붙들고 "좋은 구두를구하려면 어떻게 하슈?" 따위의 질문을 던지게 했을 것이다. 분명 대박이 날 것 같은데, 플라카에는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 P40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통념을 흔드는 질문을 던졌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유란 ‘폴리스의 자유‘ 또는 ‘집단의 자유‘였다. 자신들이 페르시아나 다른 도시국가에 지배당하거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 인권, 평등 같은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도노예제와 성차별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폴리스의 영광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천착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에서 도덕법을 끌어내려했다. 출신 배경이 어떠하든 만인이 똑같이 자유를 누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남자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인격적 이념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인기 극작가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연극에서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교활한 개자식‘이라고 비난했다. - P71

플라카의 골목을 걸으며 생각해보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왜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고정관념, 광신, 시기심, 무지, 무관심, 변덕이 그를죽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떤 지식인은 국회의원을 차라리 추첨으로 뽑자고 주장한다. 국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충분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나는 이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반드시 중우정치로 흐른다면서 덕과 진리를 아는
‘철학자의 통치‘를 옹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들이 각자 훌륭해지지 않고, 훌륭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훌륭해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 시민들보다 얼마나 더 훌륭하며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더 큰 관심을 가지고얼마나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가? 나는 직접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관론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 P73

아테네는 한 국가의 수도이고 3천 년 역사를 품고 있지만 화려하지도고풍스럽지도 않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초라해 보였다. 오래된 역사도시는 역사 유적이 시민의 생활 공간과 분리된 경우가 많은데, 그둘이 아테네처럼 분명하게 나뉜 도시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로마와 이스탄불도 어느 정도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아테네만큼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없는 인간 본연의 한계 때문이다.
세상에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는 일이 많다. 학자들은 ‘경로 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우연히어떤 길에 들어서고 나면 더 좋은 길을 알아도 가던 길을 벗어나지못한다는 것이다. - P74

여러 차례의 영토 빼앗기 전쟁과 주민들의 대규모 상호 이주 사태를 겪었던 만큼, 그리스와 터키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오스만제국 시대에 400 년 동안 섞여 살았던 만큼 음식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어떤 것이 어느 쪽에서 먼저생겨서 다른 쪽으로 전파되었는지 밝혀내기도 어렵다.
술도 그랬다. 그리스 국민 술로 통하는 ‘우‘는 이스탄불에서 포도주 찌꺼기로 만든 재탕 와인을 증류해서 만들었지만 그리스에서는곡물 주정으로 제조한다. 40도짜리여서 얼음을 타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물이 섞이면 뿌옇게 변한다. 숙성할 때 향신료로 쓰는 미나리과풀 ‘아니스‘의 어떤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식욕을 돋운다고 식전에마시는데, 뭐라고 꼭 집어낼 수는 없지만 거북한 냄새가 나서 다시 - P84

마지막 밤, 불 밝힌 파르테논과 리카비토스 언덕 꼭대기가 보이는 식당에서 아테네를 생각했다. 철학과 과학과 민주주의가 탄생한고대 도시, 1천500년 망각의 세월을 건너 국민국가 그리스의 수도로부활한 아테네는 비록 기운이 떨어지고 색은 바랬지만 내면의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어제의 미소년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은 끝에 주름진 얼굴을 가진 철학자가 되었다고 할까.
그 철학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큰소리로 말하지 않고 오래된 양복에 가려진 기품을 알아볼 책임을 온전히 여행자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비행기가 아테네 공항 활주로를 이륙할 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다시는 못 볼지 몰라. 하지만 ‘야수(Teld Gou, 잘 있어!‘는 내키지않아. 왠지 모르게 또 보게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거든. 그러니 높고도 쓸쓸한 도시여, ‘따레메 (Ta A&E, 또 봐)!‘ - P87

로마,
뜻밖의 발견을허락하는 도시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를 비롯해 이탈리아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도시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로마를 온전히 대신할 만한도시는 없다.
로마는 무엇이 특별한가? 우선 예술적 기술적 수준이 높고 규모가 큰 고대 유적이 유럽의 어떤 도시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많다. 둘째, 세상에 하나뿐인 바티칸 교황청 덕분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걸출한 건축물과 예술품을 품고 있다. 셋째, 19세기 후반 출현한 이탈리아 국가 수립의 역사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 문명은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빅뱅‘을 일으켰고 로마제국에서 ‘가속 팽창‘을 했다. 로마는 서구 문명의 가속 팽창 흔적을 지닌 도시답게,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명의 발전 양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단한 번 여행으로 로마의 모든 것을 보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며칠 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지만, 도시의 윤곽을 어렴풋이나마 가늠해보면서 반드시 가보고 싶었던 공간 및 군데를 밟아본 게 - P93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로마도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로마에 가서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착각이다. 이탈리아는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나라여서 어떤 도시도 혼자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지 못한다. 알프스에서 지중해 한가운데로 장화처럼 뻗어 나온 이탈리아반도는 면적의 75%가 비탈진 산과 언덕이다. 한반도의 백두대간처럼 이탈리아반도에는 아펜니노산맥이라는 등뼈가 있으며, 한반도의 1.5배인 30만 제곱킬로미터의 국토에 6천만 명이 산다.
프랑스,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 지방과 로마를 포함한 중부 지방, 3면을 지중해가 둘러싸고 있는 남부 지방, 사르데냐와시칠리아를 비롯한 섬들은 기후와 지형, 역사, 산업, 언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이며 이탈리아 말을 한다는 것 말고는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 P94

어떤 순서로 무엇을 보아야 할지, 로마 여행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직 로마에만 있는 것은 되도록 빠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가령콜로세오를 비롯한 고대 유적과 가톨릭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이다.
도시 전체에 널린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건물과 광장, 미술관, 박물관, 기념관들은 마음이 끌리는 곳을 골라서 다녔다. 어차피 다 볼 수없고, 비슷한 것은 다른 도시에도 많으니까.
고대 유적 구경은 콜로세오에서 시작했다. 아테네의 슈퍼스타가파르테논이라면 로마의 슈퍼스타는 콜로세오다. 지중해의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르렀지만, 지하철 B선 콜로세오역 근처를 바삐오가는 직장인과 학생들은 아무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내게는 여행지였지만 그들에게는 숨 가쁜 하루를 여는 생활의 터전이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되도록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 P100

공화정 시대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원로원 건물은 그리 화려하지않은 외관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었지만, 카이사르가 최후를 맞았던 앞마당은 완전한 폐허였다.
로마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에는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거의 없다.
그나마 그가 잠시라도 머물렀을 원로원 건물이 보이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카이사르는 B.C.1세기 중반 아주 잠깐 최고 권력자로등극했을 뿐 황제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로마의 정치체제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제국의 황제 또는 강대한 국가의 절대 권력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캐사르, 카이저, 시저, 차르 등은 표기법과 발음이 다르지만 모두 카이사르에서 나온 말이다. - P116

공화파는 암살에 성공했지만 카이사르를 지지했던 로마 시민들의 분노를 감당하지는 못했다. 내전으로 치달았던 로마의 정세는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내전을 평정하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으로써 안정을 찾았다. 공화정을 공식 폐지한 아우구스투스황제는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할 목적으로 카이사르를 신격화했고,
후임 황제는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했다. 로마 황제들은 ‘카이사르‘
라는 칭호를 대물림하면서 청년 카이사르의 조각상을 도시 곳곳에세웠는데, 이 전통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 P122

폐허가 된 원로원 마당에서 절충하기 어려운 것들이 공존했던 인간 카이사르의 생애를 돌아보았다. 그는 귀족이었지만 평민파에 가담했다. 어떤 술수도 마다하지 않고 권력 투쟁을 벌였지만 이긴 후에는 정적을 너그럽게 포용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공화정을 사실상 폐지했지만 민중의 소망과 요구를 존중했다. 원로원의 부패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 시민의 권리를 확장했으며 빈민과 해방 노예,
속주의 민중을 돕는 개혁 조처를 밀어붙였다. 보기 드문 정치적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 P122

‘절반 뚜벅이‘로 로마 구경을 했다. 숙소에서 출발점으로 가고 종료지점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 그리고 다음 행선지가 멀리 있을 때만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걸어서 다녔다는 뜻이다.
카피톨리노 언덕 앞 베네치아 광장 근처 골목의 식당에서 가벼운점심을 먹은 다음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서 캄피돌리오 광장, 판테온,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을 거쳐 포폴로 광장까지 도심의 북쪽지역을 탐사하려면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고달프긴 했지만 저녁밥이 잘 넘어갔고 밤에 잠도 쉬이 들었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로마에 있지만 이탈리아 전체를 대표하는 시설이다. 전면에 있는 기마상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통일을 이끈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이고, 기마상 양편에 부조한 사람들은건국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무명용사들이다. 에마누엘레 2세뿐만 아니라 가리발디, 카보우르, 마치니 등 이탈리아 통일 주역들의 유품도전시하는 이 기념관은 현대사와 관련한 기획전을 꾸준하게 연다. 이탈리아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시간을 넉넉하게 들일 만했다. - P128

가리발디의 영웅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1862년에는 4만 군사를 끌고 오스트리아제국 군대를 제압해 베네치아를 탈환했으며1867년에는 교황청을 가장 악독한 비밀결사체라고 비난하면서 로마로 진군했다. 로마를 이탈리아왕국의 수도로 선언하고서도 실제로는사르데냐왕국의 토리노에 머물렀던 에마누엘레 2세는 프랑스 군대가프로이센과 싸우기 위해 떠나자 지체 없이 로마를 점령해 통일운동의 마침표를 찍었다.
가리발디는 단순한 군사 영웅이 아니라 확신에 찬 휴머니스트이자 투철한 공화주의자였다. 노예제 폐지에 대한 신념이 불확실하다며 링컨 미국 대통령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강력한 신념의 소유자였던 그는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부여하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는 입법을 시도했다.
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리발디만큼 많은 일을 한 사례는 흔치않다. 역사 공부를 하려고 로마에 가는 건 아니겠지만, 이탈리아 건국역사를 대충이라도 알면 로마 여행의 맛이 더 깊고 풍성해질 수 있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 P132

바티칸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곳이다. 로마에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교황이 다스리는 별도의 도시국가인데, 이 특이한 국가의 영토는겨우 0.44 제곱킬로미터이고, 1천 명이 겨우 넘는 시민권자의 직업은성직자, 직원, 근위병이 전부다. 바티칸이라는 지명은 가톨릭 교황청보다 먼저 생겼다. 현재 바티칸의 영토는 바티칸 언덕에서 베드로 광장까지다. 이 구역은 9세기 중반 교황 레오 4세가 사라센족의 공격을막으려고 강둑을 따라 성벽을 쌓아 올리면서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이탈리아왕국은 1871년 교황청의 주권을 전면 부정하고 바티칸을 로마에 통합했지만, 1929년 무솔리니가 라테라노에서 조약을 체결해현재의 바티칸 지역을 교황청의 영토로 인정했다. - P142

나 같은 중년의 관광객은 박물관과 대성당 구경을 마치기도 전에당이 떨어져 허덕이게 된다. ‘화해의 길‘ 이면도로의 식당에 들어가점심을 대충 해결하고 테베레강을 내려다보는 산탄젤로성에 올랐다.
산탄젤로성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가족묘로 쓰기 위해 지었지만 외부 침략이나 내전이 터졌을 때는 비상 대피소로 썼다. 이 성은 강이한눈에 들어오는 군사적 요충이고 성벽도 높아서 방어하기에 좋았을듯했다. 내부의 예배당은 제법 화려했지만, 시스티나 예배당을 보고온 터라 별 느낌이 없었다.
산탄젤로성의 매력 포인트는 꼭대기에 있는 비스트로였다.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허겁지겁 점심을 때우고 온 것을 크게 후회했다.
음식 맛이 좋지 않아도 괜찮을 비스트로였다. 무엇이든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고성(古城) 레스토랑 분위기가 났기 때문이다. 다른 손님이받은 음식의 비주얼을 보니 맛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속으로 다짐했다. ‘로마에 다시 온다면 한 번쯤은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지.‘ - P150

로마 여행 셋째 날은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아침부터 해 저물 때까지 정처없이 성당과 광장, 궁전을 찾아다녔다. 로마는 확실히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였다. 아무렇게나 다녀도 거리의 향기를 맡고 공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테르미니역 광장 바로 앞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이었다. 고대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에 붙여 지은 이 성당에는 2천 년 전 로마의 돈 많은 자유민이 만든 것을 되살린 내부 정원이 있었다. 연결된 건물을 로마 국립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는데, 통유리 벽을 통해 고대의 목욕탕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훔쳐보는 게 아닌데도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 P156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 대단히 현명하거나 학식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수완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고, 나름 인생의 맛과 멋도 알았던 그는 빛바랜 명품 정장을입고 다닌다. 누구 앞에서는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돈지갑이 얄해도 기죽지 않는다. 인생은 덧없이 짧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때 거두었던 세속적 성공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로마는 그런 도시인 것 같았다.
"어때? 종종 만나서 놀면 괜찮지 않겠어?" 로마가 물었다. 테르미니역 승강장에서 공항 가는 기차에 오르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래,
가끔 만나는 건 뭐, 나쁠 것 없겠지. 다음에 보자. 바쁜 일 좀 끝나면.
차오(Ciao, 안녕!" - P165

이스탄불,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


지하궁전의 돌기둥은 실로 다양했다. 사각기둥, 원기둥, 통으로깎은 기둥 등, 모양도 두께도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주두가 아예없었고 어떤 것은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주두 장식이 있었다. 저수조 맨 안쪽의 메두사도 재활용한 석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메두사를 그런 식으로 놓았을까? 저수조 기둥은 길이가 모두같아야 한다. 너무 긴 기둥은 잘라 맞추었겠고 너무 짧은 것은 적당한 돌덩이를 괴었을 것이다. 마침 괴물 형상을 그려놓은 돌덩이 2개가 있었는데, 기둥을 받치기에 적당하게 놓다 보니 하나는 거꾸로, 다른 하나는 옆으로 놓게 되었다. 기둥을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메두사가 바로 서든 뒤집어지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일을 한 현장감독은 그것이 구름 관중을 불러 모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것이다. 이것이 메두사가 거꾸로 앉게 된 경위에 대한 나의 별 근거없는 추정이다. 그렇지만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 P190

 다양성은 좋은 것이지만 서로 다른 민족, 종교, 문화가 뒤섞이면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비화할 위험이 커진다. 1990년대에 유고연방이 해체된 직후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보스니아의 무슬림 1만여 명을 학살한 ‘인종 청소‘ 사건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오스만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두 차례나 빈을 포위 공격했다가실패하고 물러났는데, 만약 그들이 빈을 함락시키고 서쪽으로 더 진격했다면 서유럽 전체가 발칸반도처럼 되었을지 모른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세상사를 보는 관점도 달라지는 법. 1453년5월 29일 아침 벌어졌던 사건을 가리켜 유럽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라 했고, 세계의 무슬림들은 ‘콘스탄티노플 정복‘이라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메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고, 콘스탄티노플은 그에게 함락되었으니까.
메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바꾸었지만, 도시가사라지거나 몰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스만제국은 투르크족만의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민족, 상이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제국이 되었고 이스탄불은 그런 제국의 수도다운 도시로 발전했다.
이스탄불에는 투르크인,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쿠르드인이 섞여 살았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다. - P200

폴란드 여인 록셀라나였다. 열여덟 살에 전쟁포로로 이스탄불에잡혀 왔던 록셀라나는 노예로 팔렸다가 하렘에 들어가 술레이만 1세의 아내가 되었는데, 여섯 아이를 낳았고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여성을 제도적으로 차별해 온 이슬람 세계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술탄이 한 여인만 사랑했다고 하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한 여인을진심으로 위하지 못하는 자, 어찌 만백성의 보호자가 될 수 있으랴.
술레이만 1세는 전쟁을 많이 한 술탄이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것이라고, 쉴레마니예 자미가 보일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 P203

이스탄불이 안전하지 않다고 해서 터키 사람 가이드 M을 고용했다. 그런데 M은 탁심 광장 근처 뒷골목 어디에 있다는 ‘파묵 하우스‘
를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휴관일이라 했고, 다른 날은 동선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성실하게 우리를 안내했던 M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니 그곳에 고객을 데려가지 말라는 당국의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이스탄불은 모든 것이 낡고, 한적하고 텅 빈, 흑백의 단조로운도시로 바뀌었으며 거리에서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히브리어가 사라졌다." 파묵은 자서전에 이렇게 쓴대가를 치르는 것 같았다. 이스탄불이 단색의 도시로 변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오스만제국이 해체되어 제국의 수도 지위를 잃은 것, 둘째는 터키인이 아닌 주민들이 도시를 떠난 것이다. - P204

무스타파 케말은 단순한 군사 영웅이 아니었다. 우리의 역사 인물과 비교하자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등을 모두 뒤섞어 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전쟁 영웅, 민족주의 혁명가, 대통령, 계몽 군주, 공화주의자인 동시에 독재자였다.
그는 이슬람 문화와 터키 민족주의에 자신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접목함으로써 터키공화국을 ‘창조‘했다.
이스탄불 여행자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는 없는 것을 본다. 시민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수많은 자미들 사이에 유대교 회당과 가톨릭 성당, 정교회 성당과 개신교회가 끼여 있다. 여성들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차별받지 않으며, 머릿수건을 쓰지 않고도 사회생활을 한다. 거리에서 매를 때리는 형벌이 없으며, 하루 다섯 번 해야 하는 예배를 빠뜨려도 처벌하지 않는다. 이정표와 상점 간판의 글자는 알파벳이다. 이 모두를 무스타파 케말이 만들었다 - P210

성을 쓰도록 강제하는 법률을 만들 때 자신은 ‘아타튀르크(Atatürk,투르크인의 아버지)‘라는 성을 만들어 썼다. 무스타파케말은 이때부터아타튀르크가 되었다. 이런 성을 감히 선택한 동기가 애국심인지 자신감인지는 알 수 없다.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을 한 사람이 했다는 게 믿어지는가? 아타튀르크는 인류 문명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모순적인 인물이다.
탁월한 군사 지도자인 동시에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며, 공화주의자였지만 강력한 독재를 했다. 쿠르드족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냉혹하게 처형했으며, 질서유지를명분으로 야당을 해산하기도 했다.
직책은 공화국의 대통령이었지만 행동은 군주에 가까웠으며,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터키공화국을 서구에 접근시켰다. 평생 엄청나게 술을 마셨고 극도로 불규칙하게 생활했던 그가 1938년 11월 10일 아침 심장병으로 사망하자 터키 정부는 시신을 앙카라 민족학 박 - P211

물관에 안치하고 ‘터키공화국의 영원한 지도자‘로 선포했다.
아타튀르크의 신념과 인격은 헌법과 제도, 국민들의 마음에 각인되었고 오랫동안 터키공화국을 지배했다. 그러나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카리스마를 휘둘렀던 지도자가 사라진 세상이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터키공화국은 1950년 선거에서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아타튀르크에게 세속국가의 원리를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았던 군부가 여러 차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세력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을 ‘21세기의 아타튀르크‘라고 생각한 듯했지만, 2019년 3월 뉴질랜드에서 이슬람 사원이 테러를 당해 무슬림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사건이 터졌을 때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다시 자미로 바꾸겠다고 한그의 행태를 아타튀르크가 보았다면 아마도 크게 화를 냈을 것이다.
아타튀르크의 정치철학은 ‘세속국가론‘과 ‘공화주의‘, 그리고 ‘터키민족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아타튀르크는 터키를 ‘터키‘ 했다.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을 포용했던 이스탄불이 단색의 도시로 바뀐것은 ‘터키화‘의 불가피한 결과였다. 19세기 유럽의 어떤 지식인이
100년 후 ‘세계의 수도‘가 되리라고 예언했던 이스탄불은 변방의 가난하고 슬픈 도시로 변해갔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누군가는 아타튀르크일 수밖에 없다. - P212

 그러나 1955년 불어닥친 민족주의 광풍은 그들마저 다 몰아내 버렸다. 아르메니아계를 비롯한 다른 소수민족 주민들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그 사태 이후 이스탄불 거리에 들리는 언어는 터키말하나만 남았다. 오르한 파묵은 자전에세이 《이스탄불: 도시와 기억》에서 그때 목격한 일을 가슴 저린 어조로 회상했다.

"그들은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가곤 했던 베이올루의 상점과 이스탄불 일부를 불태우고 파괴하고 약탈했다. 술탄 메메트 2세가 이스탄불을 정복한 후 군인들이 벌였던 약탈만큼이나 무자비했다. 이틀동안 도시에 공포를 퍼뜨리고 이스탄불을 기독교인과 서양인들이생각하는 최악의 오리엔탈 악몽보다 더 지옥 같은 곳으로 만든 약탈자들을 부추기기 위해, 정부지원 조직들이 그들에게 ‘마음대로약탈하라‘고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P213

그 터키식 커피 전문 카페의 옥호에는 무대 뒤의 빈 곳을 가리키는 터키말이 들어 있었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커피 대기실‘쯤 될 것이다. 잔에 가라앉은 커피 분말을 보며 터키공화국과 이스탄불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 서울 지하철 역삼역 근처에 있는 문화원이름이 왜 터키문화원이 아니라 이스탄불문화원인지 알겠어.‘ 이스탄불은 확실히 터키공화국보다 큰 도시였다.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유산 가운데 터키 민족주의가 포용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터키식커피‘로 이름이 바뀐 ‘오스만식 커피‘ 잔 바닥의 분말처럼 가라앉고말았다. ‘자신의 궁전에 유배당한 왕‘을 보면 이런 느낌이 들까?  - P240

마지막 일정을 마친 밤, 잠들기전에 이스탄불에게 위로를 보냈다.
절망하진 마, 이스탄불, 물기를 머금은 잔 바닥의 커피 분말에서 오스만제국의 향기를 맡는 여행자도 있어. 다음에 오면 생강가루를섞은 커피를 청할게. 후미진 골목 구석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그리스정교 교회와 아르메니아정교 교회에도 들어가 보고, 파묵 하우스도가고 말 거야. 귀츨뤼 올(Güçlü ol, 힘내요), 이스탄불! - P241

파리, 인류 문명의 최전선


레알지구에 숙소를 마련한 덕에 편리하게 파리 심장부를 걸어 다녔다. 레알지구는 루브르와 시테섬, 퐁피두센터와 가까웠고 레알역에는메트로와 광역급행전철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근처에 가성비 좋은식당이 많았고 거리 분위기도 젊고 활기찼다.
파리는 문화자산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자기만의 여행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로마에서처럼 도시의 역사와 그 역사를 만든 인물들을 따라가는 데 첫 하루를 썼다.
시테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출발해 퐁네프다리-루브르 박물관-튈르리 정원-콩코르드 광장-샹젤리제 거리 -개선문-에펠탑-오르세 미술관-로댕 미술관을 거쳐 앵발리드까지. 스마트폰 기록으로는 열 시간 동안 13킬로미터를 걸었다. 이 코스는 로마로 치면 팔라티노 언덕 황궁 터에서 출발해 콜로세오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보고 포로 로마노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거쳐 판테온까지 가는 것과 비슷하다. 파리의 역사, 종교,정치의 중심 공간을 관통하는 것이다. - P250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의 수도 파리, 센강의 생 미셸 다리에서 시들어버린 꽃묶음을 보며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어떤 제도의집합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이 아닐까? 완성할 수 없음을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개선하려고 도전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때로는 망가지고 부서져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는 이해계와 생각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다투며 공존하는 다른방법을 찾을 수 없기에 포기하지 못하는 제도와 규칙과 관행, 민주주의란 그런 게 아닐까.
생미셸 다리의 꽃묶음은 프랑스 민주주의도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 P256

예술 작품을 보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루브르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끝도없이 나타나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자니 점차 그게 그것 아닌가 싶어졌다. 게다가 다빈치의 <모나리자>,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처럼 유명한 그림 앞에는 사람이 말 그대로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팔꿈치로 격렬한 전투를 치르면 가까이 갈수는 있지만, 남들도 팔꿈치를 세우기 때문에 차분하게 감상할 수는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뚝 떨어진 곳에서 까치발을 하고 다른 사람들머리 위로 보면,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오버투어리즘‘은 베네치아나 만리장성에서 생긴 현상이 아니다. 루브르에서는 수십 년 전에도 그랬다.
루브르는 한 번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아니다. 꼭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도 두세 시간은 금방 간다. 정치권력의 위세와 예술의 향취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따로따로보는 게 훨씬 나았다. 대혁명 이전 정치권력의 민낯은 루브르보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더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고, 대혁명 이후 프랑스 예술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 P261

루브르에서 샹젤리제 거리로 가려면 카루젤 개선문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튈르리 정원과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고 샹젤리제 거리를따라 에투알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까지 걷는 동안 온몸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파리의 심장부인 이 공간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정치 제제의 교체가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카루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8년에 세웠는데, 선 곳이 카루젤 광장이라 그렇게 부른다. 개선문은 로마제국의 문화 아이콘이며,
다른 도시의 모든 개선문은 로마 개선문의 복제품이라 할 수 있다.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서 있는 장군과 권력자의 과시욕을 드러낸다는 건 똑같다. - P262

베르사유 궁전의 왕과왕비,왕자, 공주들의 생애와 관련한 정보를 검색해보면 전염병이 매우 ‘공정‘ 해서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등 전파가쉽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은 대부분 농업혁명으로 인간과 가축의접촉 빈도가 높아지면서 생겼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 미생물이 물이나 체액, 공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몰랐다. 원인을 모르니 예방법과 치료제가 있을 수 없었다. 부르봉 왕가의권력자들 가운데 전염병으로 죽은 이가 그토록 많았으니 훨씬 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았던 백성들은 얼마나 죽었을지 넉넉히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은 지금도 ‘공정‘하다. 권력자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그공포에서 벗어나려면 만인을 전염병에서 해방해야 한다. 19세기 후반 이후 문명국가들은 생물학, 병리학, 공공보건학, 도시계획학, 건축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전문가들의 능력을 모아 악성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구촌에는전염병이 창궐하는 지역이 여전히 많다. 어디선가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뉴스가 들리면 그 지역의 국가조직 자체가 붕괴했거나, 아니면지극히 무능하거나, 사악하거나 또는 둘 모두인 자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해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 P287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나온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여기 살던 임금이 목 잘려 죽었다고?" "예." 한마디 덧붙이셨다. "그럴 만도 하네."
백성들이 굶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런 사치를 누린 왕의 목을 자른 것이 마땅한 처사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궁전의 왕족과 귀족들이 지극히 인간답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소거한, 생산적인 활동과는 동떨어진 삶을 영위했다는 것만큼은 더없이 분명하다.
궁전의 방마다 걸린 초상화에서 왕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생산적 활동도 하지 않고 산다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
금실 은실로 수놓은 옷, 정교하게 꾸민왕관, 무거운 망토, 요즘에는‘킬힐‘이라고들 하는 뾰족구두, 보석을 박은 단장, 이런 차림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차림새였다. 왕비들의 초상화가 말하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헤어스타일마저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생활하기에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었다.
왕과 왕비의 침대도 그랬다. 잠을 자려고 그렇게 큰 방에 그처럼높고 큰 침대를 놓은 게 아니었다. 실제로는 침실에 딸린 작은 방의 편안하고 작은 침대에서 잤다. 왕의 침실에 놓인 것은 ‘기침 행사‘를위한 의전용 침대였다.  - P293

에펠탑은 세 가지 측면에서 파리가 지구촌의 문화수도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에펠탑은 과학혁명의 산물이다. 세계박람회장 관문을 만들기 위한 건축 공모를 할 때 프랑스 정부는 ‘기술적진보와 산업 발전을 상징할 기념물‘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에펠탑은금속 7천300톤을 포함해 전체 무게가 1만 톤이 넘으며, 자체 하중과바람의 압력을 거뜬하게 견뎌낸다. 발명왕 에디슨이 괜히 공학의 발전과 기술자들의 능력을 찬양하는 글을 방명록에 남긴 게 아니다. 프랑스의 과학자, 엔지니어, 수학자 72명의 이름을 탑에 새긴 것도 같은 - P300

맥락이다.
둘째, 에펠탑은 공화정이라는 프랑스 정치제도의 특징을 체현하고 있다. 왕이나 교황이 취향 따라 만든 게 아니라 공모 절차와 전문적 평가를 통해 디자인을 결정했으며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아니라대중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에펠탑은 민주주의 시대 도시의 주인은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이며, 시민이 선출한 정부가 합당한과정을 거쳐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정치제도가문명의 대세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계기는 1789년에 터진 프랑스대혁명이었다. 에펠탑은 이 혁명의 심장이었던 도시의 대표 건축물로손색이 없다.
셋째, 에펠탑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고대와 중세의 왕궁이나 교회와 달리 에펠탑은 개인이 디자인한 예술품이며 노예 노동이나 강제 노동 없이 축조했다. 디자인을 설계한 에펠은 물론이요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수행한 노동자들도 저마다의 권리를누리면서 일했고, 당국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안전 조처를 했다. 자본주의는 격차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지만 적어도 공공연한 강제 노동이 없다는 점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질서임이 분명하다. - P301

해가 기울어갈 시각, 에펠탑을 뒤로하고 마르스 광장 동쪽 모퉁이 방향에 있는 앵발리드로 향했다. 앵발리드는 루이 14세가 지은 군용병원 옆에 파리 경비사령부와 무기고가 들어오면서 형성된 군사시설이었다. 지금도 군사 박물관이 제일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대혁명 때 시민들은 이곳 무기고에서 총기를 대량 탈취한 다음, 소문과달리 정치범이 아니라 소수의 ‘잡범‘만 갇혀 있었던 시테섬 우안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해 수비대의 늙은 병사 80여 명을 죽였다. 나폴레옹의 시신을 안치한 성당은 중간에 오르세 미술관과 로댕 미술관을들르느라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들어가지 못했다. 죽은 이의 무덤이야 못 본들 또 어떠리. - P302

하지만 평범한 파리 여행자가 어찌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레스토랑에 감히 발을 들여놓겠는가. 그런 식당에서 한 끼를 먹으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와인을 포함하면 평소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돈을 내야 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먹었던 점심을 제외하고는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고급 레스토랑에 가지 않았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별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파리에서 먹은 음식은다 다르면서 다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영혼의 수프‘
라고 한다는 양파수프였다. 버터에 볶은 양파를 고깃국물에 끓이고치즈 가루로 그라탱을 한 다음 월계수 잎을 띄우고 구운 바게트 한토막을 올려 주는데, 파리뿐만 아니라 칸에서도 너무 짜서 먹기 힘들었다.
다른 도시에서처럼 파리에서도 잘 먹어보려고 부지런히 발품을팔았다. 숙소가 있었던 레알지구에는 저렴한 식당이 밀집한 먹자골목이 넓게 포진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인근 퐁피두센터에 갔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의 이름을 붙인 이 센터는 1977년말 개장한 복합 문화시설이다.
시장과 영화관, 서점, 기념품점,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있어서 주로젊은이들이 드나드는데, 화장실을 안내하는 발자국 모양의 화살표가마음에 들었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본 공공 디자인 중 최고였다. - P318

프랑스는 도버해협과 지중해 사이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서울강남의 한정식과 전남 진도의 한정식이 다른 것처럼, 파리 음식이탈리아에 인접한 남프랑스 칸의 음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칸 해변의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 근처 해산물 전문점에 가면 바다의 향기가그대로 풍기는 생선회 요리가 나오고, 정통 프랑스 요리를 한다는 식당의 스테이크는 피렌체의 티본스테이크만큼 두껍고 육즙이 줄줄 흘렀다. 나는 파리에서 내가 간 식당 주방장이 만든 음식을 먹었을 뿐,프랑스 음식을 먹은 게 아니었다.
여행할 때는 몰랐는데, 글을 쓰면서 알았다. 보고 왔는데 또 보고싶거나, 이번엔 못 보았지만 다음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 파리에 아주 많다는 것을 그렇지만 다시는 갈 수 없다고 상상해도, 아테네나 이스탄불과는 달리 그저 아쉬울 뿐 다른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고 자기 색깔대로 씩씩하게 잘 살아갈 친구인데 슬퍼할 게 무에 있겠는가. 그런생각이 들어서 그저 스치듯 가벼운 인사만 남기고 인류 문명의 최전선, 파리를 떠나왔다.
 ‘아비엥또(a bientôt, 또 봐)!‘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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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

당신의 궤적
김애란


겨울이다.
눈밭에 난 선배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발밑으로 전해지는 한기가
복되고 서늘하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짐작으로 알던 것을 몸으로 익히며
누군가의 보폭을 쉽게 판정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 자리에 다른 짐작을 앉힌다.

길 위에 ‘방향‘을 만든 것은
당신의 무게.
혹은 이 걸음과 다음 걸음 사이에 놓인
고민의 시차

가끔 그 고민이 궁금해
당신이 쓴 말과 쓰지 않은 말,
쓸 수 없던 말들을 가늠해본다.
무릎 꿇어 그 자국에 손을 본다.
몇 명이 지나갔는지 모를

겹겹의 발자국에 눈이 시리다.
한 발짝 또 한 발짝겨우 깊어져가는 겨울.

길에서 과분한 소식을 들은 데다
발도 시려서, 방정맞게 좀 움직여볼까 하다
능청은 잠시 고요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허공에 입김을 내뱉으며 맑게 웃는다.

그런 뒤 조금 더 딴청을 피우려다가
문득 나와 같은 시대에 같은 자리서,
글을 쓰고 있는 이들을 떠올려본다.

주머니서 ‘동료‘ 라는 말을 꺼내 한참 들여다본다.
그러곤 목례하듯,
그 이름에 입 맞추려
고개 숙인다.

나에게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길다. 그 이름을 다부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평생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그것도너무 짧은 기간이라 말한다. 몇백 혹은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불러야 겨우 호명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도 누가 정말그걸 다 불렀다면 그때 그가 발견하는 건 내 이름의 길이가 배로늘어났다는 사실일 거라 말한다. 내 이름을 듣고 나도 내 이름을잊었다. 내 이름이 궁금할 적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를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면 어렴풋이 몇몇 단서가 떠오른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살일까.

---- 침묵의 미래 - P123

태어나 내가 처음으로 터뜨린 울음, 어쩌면 그게 내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죽기 전, 허공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어떤 이의 절망, 그것이 내 얼굴이었을지 모른다.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단순한 사랑, 그것이 내 표정이었는지 모른다. 범람 직전의 댐처럼 말로 가득차 출렁이는 슬픔, 그것이 내성정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내 이름을 못 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순 있다.
당신이 누구든 내 말은 당신네 말로 들릴 것이다. - P124

나는 오늘 태어났다. 그리고 곧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하루씩 산다. 노인으로 태어나 하루 더 늙은 뒤 노인으로죽는다. 그 하루는 어느 종의 역사만큼 길며, 그 종의 하품만큼짧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우리의 이력을 단숨에 학습한다. 전생으로 태어나 전생으로 죽는다. 우리가 우리의 고유한 단어를 발음하면, 저멀리 심연으로부터 여러 개의 시간이 물수제비뜬듯 퐁, 퐁, 퐁 하고 단번에 뜀박질해 다가온다. 시공이 밀려온다. 아마 당신네 말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오래된 말이기만 하다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명일까. - P124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이다. 나는 커다란 눈(目)이자 입(ㅁ)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言)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각각의 입자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동물의 사체나 음식이 부패할 때 생기는 자발적 열이다. - P125

나는 구름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분방해 시시각각 어디로든 이동한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것과 쉽게 결합한다. 다른 영과 만나몸을 섞는다. 몸을 불려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늘로 단어에 수의를 입힌다. 나는 시원이자 결말, 미지이자 지, 거의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나는 이렇게밖에 나를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부족의 몇몇 문법을 빌려 말한대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뚜렷한 얼굴이나 몸통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우리가 누구인지 안다. - P125

취침시간 준수는 기본이다. 이들은 전시실에 있을 때나 자신인 척할 뿐 해가 지면 중앙식으로 지어진 기숙사에서 중앙식으로잔다. 밥도 규격화된 식판에 받아 중앙식으로 먹고 용변도 정해진장소에서 중앙식으로 본다. 그렇다고 이들이 ‘중앙‘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들은 단체 사진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가는 유령처럼모호하게 존재한다. 단지에선 이들에게 중앙 언어를 체계적으로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의사소통 체계가 통일되면 문제가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각 언어의 고유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타 부족끼리 말 섞는 걸 금지했다.
- P134

혈기 좋게 항의하던 이들도 이제 나이를 먹어 무거운 침묵 속에 잠긴 노인이 됐다. 마지막 화자가 됐다. 박물관은 해당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세상을 떠도 전시실을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시관에선 보름에 한 번꼴로방 하나가 비었다. 생전 화자가 앉아 있던 자리는 마네킹이 대신했다. 칠벗겨진 입술로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어쩐지 늘 한 치수커 보이는 옷을 입고서였다. 더불어 전시실 앞에는 압류 딱지마냥붉은색으로 ‘‘이라는 의미의 중앙어가 박혔다. - P135

이곳에는 그 언어만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살아간다. 그중 한 노파는 글을 알지 못하는데 수만 년 된 서사시를 한 줄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읊는다. 마치 자기 가슴에 돋을새김한 점자하나하나를 공들여 더듬어가는 모양새다. 그녀는 단지 ‘아름답다‘
는 이유로 수집의 표적이 된 아라비아오릭스의 뿔처럼 사라질 운명을 타고났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든 축에 속하는 어떤 영감은어린 시절 언어학자들을 따라다니며 등짐을 져 나르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학자들이 바다 건너에서 가져온 커다란 ‘녹음기‘를 어깨에 진채 강을 건너고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지나 높은 산에 올랐다. 소년은 자기가 등에 지고 다니는 그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따금 그 안에서 소년이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학자들은 몇몇 부족의 서사시를 녹음하기 위해 무려 쌀 한 가마니 무게에 달하는 알루미늄 디스크를사용했다. 소년은 그걸 허허벌판 첩첩산중 어디든 들고 다녔다. - P138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
‘해‘로 만들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를 그 낱말을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내 몸은 점점 붇고 이름 또한 길어져, 긴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무엇이 됐다. 그렇지만 이제나는 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 쓸모 있는 죽음, 단지 그뿐인채로 사라진다. 저기 거대한 금속관 속으로 향하며 소수언어박물관의 자랑, 중앙분수대를 떠올린다. 유리구 안에 갖은 형태의 활자가 분방하게 떠다니는 지구본 모양의 특별한 조형물을. - P145

활자는 밝은 조명을 받으며 오전 내내 춤추듯 투명하게 떠다녔다. 그러다정오가 되면 잠시 정지했다. 꽃잎 모양으로 갈라지는 지구본 아래로 경쾌하게 쏟아졌다. 나는 그 광경이 늘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악몽 같은 아름다움이었을까. 앞으로도 지구가 꾸는 이예쁜 꿈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죽은 뒤 한번 더 죽으면서도나는, 그 눈부신 장면으로부터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 P146

1970년대 때깔 혹은 낙관적 파랑을 등에 인 채. 코닥산 명도, 후지식채도에 안겨 있다. 어느 때는 너무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누군가를 향해, 그 누군가가 원한 미래를 향해 해상도 낮은 미소를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오래전, 어머니가 손에 묵직한 사진기를 든 채 나를 부른 소리, 삶에 대한 기대와 긍지를 담아 외친 "정우야"라는 말은, 그 이상하고 찌르르한 느낌, 언젠가 만나게 될 당장은 뭐라 일러야 할지 모르는 상실의 이름을 미리 불러 세우는 소리였는지 몰랐다.

---- 풍경의 쓸모 - P151

그뒤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다. 오년전, 결혼식장에서 한 번봤지만 그건 ‘만났다기보다 ‘스쳤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잠깐 있었다. 어머니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랐던 시간만큼 있었다. 어머니는 사돈댁에 흉잡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프로게이머, 프로골퍼 할 때 ‘프로‘ 부모처럼 식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잃지 않았다. - P154

‘다른 집‘ 사람이 된 뒤에도 ‘우리집‘ 행사를 챙기는 건 아버지가 자주 해온 일 중 하나였다. 두 눈을 가린 사람이 손끝 감각에의지해 사물의 이름을 알아맞히듯, 아버지는 ‘선물‘의 형식을 빌려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더듬고 기념하려 애썼다. 내가 알기론 형편이 정말 어려울 때조차 그랬다. 어머니와 헤어진 뒤 아버지는 매달 규칙적으로 우리에게 생활비를 보내왔다. 처음 몇 년은백만원씩, 어느 날부터 팔십만원씩, 나중에는 오십, 삼십으로 내려간걸로 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보내왔다는 것도. 그러다 마지막으로 보낸 액수가 이만 몇천원이었던가. 입금이 늦어질 경우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반드시 연락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겨울, 방 한쪽에 잘 개어놓은 이불 같은 사람. 반듯하고 무겁고 답답한 사람.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불미스런 일로 학교 일을 관두고 강남 어디 테니스장에서 코치 겸 심판을 맡고 있단 얘기를 들었을 때 아버지와 그 자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식 때 전자사전, 대학원 입학식 땐 넥타이를, 군 입대 즈음엔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모두가하는 만년필, 모두가 주는 꽃다발, 그런 그중 홍삼진액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 P155

한국은 겨울인데 태국은 여름이었다. 일 년에 세 마디, 결이 다른 삼계가 있다지만 나 같은 한국 사람에겐 그저 ‘보통 여름‘과
‘후텁지근한 여름‘ ‘몹시 더운 여름‘으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관광버스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한국 날씨와 뉴스, 주가와 환율을 확인했다. 1월, 연이은 한파와 폭설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반면 차창 너머 여름은 느긋했다. 푸르고 풍요롭고 축축해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아내는 여기까지 와서 인터넷을 하냐며 핀잔을 줬다. 무릎 위에는 벌써 몇 개째 까먹은 멍키바나나껍질이 쌓여 있었다. - P156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 P158

해가 지면 벌판 위로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방 소도시는 서울보다 저녁이 빨리 찾아왔다. 강의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면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더불어 이상한 흥분과 각성도 약기운마냥맴돌았는데, 어느 땐 누가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대답해줄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길에서 맞는 어둠은 매번 낯설었다. 밖은 깜깜해 지금 내가 지나는 데가 어딘지,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럴 땐 내가 어딘가 무척 먼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도시가 아니면서 도시가 아닌것도 아닌‘ 공간을 한참 가로질렀다. 미분양 아파트와 아웃렛, 비닐하우스와 공장, 공원묘지와 화원, 진흙오리구이며 장어구이 따위를 파는 보양식당과 프로방스풍 모텔을 비껴갔다.  - P158

팔년 전 강의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나는 신입 사원처럼 좀 들떠 있었다. 갑갑한 도서관을 벗어나 나도 이제 사회적인 활동‘이란 걸 좀 해보나 싶고,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 면이 서는 것 같아서였다. 동시대 대중가요나 애니메이션 자료를 이용해 신선한 커리큘럼을 짜는 것도 재미있었고, 미혼의 ‘젊은 강사‘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학생들의 태도와 지적 긴장도 싫지 않았다. 강의 자체가 지닌 연극성이랄까, 많은 사람 앞에서 ‘떠들어야 하는직업이 주는 흥분과 수치조차 마음에 들던 때였다. 대학은 대학인지라 봄에는 연두가 가을에는 주황이 어여뻤다. 애들은 애들인지라 순수한 동시에 예민했고 가끔은 탄식이 나올 정도로 교만하나 무지했다. 캠퍼스 안에는 성적 괴팍함과 도덕적 우월감이 섞인채 부유했다. 더불어 알 수 없는 패배감과 무력감도 무거운 공기처럼 맴돌았는데, 휴학과 편입이 잦은 곳일수록 심했다. 그렇다고이름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라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 P159

곽교수는 ‘단계‘ 없이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고 나쁘게 보면 제멋대로인.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소해 보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왔거나 반대로 그렇게 잃은 것들을향해 복수하듯 떠들어대는 성격인 듯했다. 그런데 그게 마냥 수다스럽지만은 않아 힘을 빼고 높은 패를 던질 땐 ‘선수‘ 같았다. 곽교수는 자신이 이공계열 교수들과 친하다며 그 판 사람들은 꼬인게 덜해 좋다고 했다. 책은 우리랑 비슷하게 읽는 것 같은데 원한이 없어 편안하다고. 나는 그것도 일종의 착시 아닐까 생각했지만토 달지 않았다. 화제는 자연스레 문화관 쪽 이야기로 흘러갔다.
곽교수는 나도 아는 몇몇에 대한 가십과 인상비평을 늘어놓다 한학자의 이름이 나오자 흥분했다. "내가 그 자식 질을 아는데" 하고 운을 떼며 그 사람이 얼마나 졸렬하고 권력 지향적인 사람인지설명했다. 그러니까 이선생도 앞으로 ‘눈 흘기는 척 침 흘리는‘ 인간들을 조심하라고.
- 공정한 척 우아하게 비판하지만 실은...
곽교수가 비정하게 혼잣말하듯 중얼댔다.
-몸살이 날 정도로 부러운 거지. - P163

승무원이 세관신고서와 출입국 카드를 돌렸다. 의자 앞에 붙은접이식 탁자를 내린 뒤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오래전 책상에 처박아뒀다 ‘프로‘ 성인이 된 뒤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로 쓰기 시작한 거였다. 강의에 나가고부터 서류에 사인할 일이많아졌다. 나는 내게 괜찮은 필기구가 있다는 걸 기억해낸 뒤 서람을 뒤져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곤 자기만의 필기구를 가진 많은사람들이 그렇듯 종이 위에 제일 먼저 내 이름을 써봤다. 그뒤 통장을 새로 만들고,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전세 계약을 할 때마다 그 만년필을 썼다. 그래서 곽교수와 함께 ‘그 일‘을 겪고 며칠뒤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도 습관적으로 품안에서 그 펜을꺼냈다. 그러곤 조서에 서명하기 전, 만년필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책상 위에 있던 모나미 볼펜으로 내 이름을 적었다. - P181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본다. 해수면이 어제보다 조금솟아 있다. 오전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십자가도 물에 젖는다.
낮에 시장에서 사온 우럭 두 마리를 도마로 옮긴다. 칼 쥔 손에 힘을 주자 생선뼈와 근육, 살 으스러지는 감촉이 몸 전체로 번진다.
손아귀 속 떨림이 흐린 원을 그리며 내 몸 가장 먼 데까지 퍼진다.
반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면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기이되 아주 오랫동안 어겨온 금기를 깨는 죽은 것을 죽이는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가 인다.

----- 가리는 손 - P187

재이는 잘 자랐다. 통통해졌다 홀쭉해지길 반복하면서. 가끔은키워주는 사람 좋으라고 선심 쓰듯 웃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어쩌다 감기라도 한 번 앓으면 아이답지 않은 턱선이 생겨 사뭇청초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제 화농성 여드름에 귓바퀴에도 기름 끼는 나이가 됐다. 재이가 학교에 간 사이, 방 청소를 할 때마다 베개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속눈썹을 보며 재이가 여전히 ‘자라고 있음‘을 실감했다. 어느 유명한 탈옥 영화 속 주인공이 감벽을 조금씩 파낸 뒤 그 흙을 주머니에 담아 몰래 버렸듯, 재이도자기 일부를 끊임없이 버리며 크고 있구나 하고, 재이에게 고마웠다. 나야 삶을 스스로 택했고 별로 후회한적 없지만 재이가 된 공기는 달랐을 테니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줄곧 어른이고 재이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문득 재이가 어린이집 앞에서 장화를 벗다 한숨 쉰 일이 기억난다. "쪼그만게 웬 한숨이냐" 나무랐더니
"어린이는 원래 힘든 거예요"라 대꾸한 게 ‘어린이‘가 무슨 직업인 양, 막일인 양 말해 어이없었지. 이제와 생각하니 재이 말이맞는 것 같다. 각 시기마다 무지 또는 앎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큰 걸 보면. - P194

병원 식당은 환자별 식단을 달리해야 해 신경쓸 게 많다. 밥이독이 될 경우 환자가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요양병원에는 몸이불편한 어르신이 많다. 전쟁을 겪은, 전쟁을 아는 여전히 전쟁중인 분들이 여느 무리가 그렇듯 그중에는 좋은 분도, 그렇지 않은분도 있다. 고집스러운 얼굴로 이상한 식탐을 부리고, 비위를 맞추면 반말하고, 사무적으로 대하면 훈계하고, 식사 후 아무 할 일도 없으면서 새치기하고, ‘찬밥도 위아래가 있다‘는 장유유서 정신을 강조하는 분들이 정말로 많다.
- 너무 스트레스받지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 - P199

오래전 당신과 팔짱을 끼고 걸을 때,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자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 병원 어르신들을 보면 가끔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합리성처럼 보여서. 이 답답하고 지루한 소도시에서 나부터가 그합리성에 꽤 목말라 있으면서 그랬다. - P200

직업 안정성은 학교보다 요양병원이 나았다. 학교는 계속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병원은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가니까. 다만 요양병원은 내게 끊임없이 ‘노화‘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노후를 생각하면 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연봉으로 몇 살까지 버틸 수있을까. 아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데…… 우아하고 호사스런 말년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청결과 위생에 대한 불안은 자주 일었다. 한겨울, 욕실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덥힐 때마다 ‘십년 뒤에도 이렇게 매일 샤워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변기와 이불과 창틀을 지금 수준으로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깨끗하게살려면 돈이 있어야겠구나. 수납하기 위해선 수납함 먼저 사야 하듯. 청결도 청결의 관성이 있어 자주 치우는 곳만 살피게 되던데.
얼룩도 계속 놔두다보면 괜찮아질까? 늙어 요양원에라도 들어갈 - P200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거겠지. 돈으로도 감출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이 있을 테고. 당장 내 엄마만 봐도 그랬다. 언젠가부터 그 말끔하던 고향집이 어수선해지고 엄마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에서 좀 심하다 싶게 자주 머리카락이 나왔다. 처음엔 엄마가 기력이 달려집안일을 안 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내 눈엔 잘 띄는 얼룩이 엄마 눈엔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시력이 약해진 엄마 입장에선 먼지를 안 치우는 게 아니라 먼지가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게다가 엄마 오줌 냄새가 갈수록 좀 약해졌다.  - P201

청결에는 청결의 관성이, 얼룩에는 얼룩의 관성이 있음을 실감한건 재이 초등학생 때 일이다. 내가 재이에게 경외감을 느낀 그크리스마스 행사를 며칠 앞두고 재이는 성가대 대표 선출 선거에서 세 표 차로 졌다. 한창 클 때 이기고 지는 거야 별일 아니지만.
한 투표용지에 좀 모욕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나보다. 사회를 보던 아이가 경솔하게 그걸 또 읽었고 분위기가 싸해진 가운데 몇몇이 작게 웃었다고. 재이는 그때 누가 웃나 너무 궁금했지만 몸이굳어 돌아보지 못했단다. 실은 선거에서 진 것보다 그 웃음소리가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반년 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듣는데 가슴이 죄어왔다. 그동안 재이 마음을 전혀 몰랐다는 데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지해준 절반이 있어도무리에서 부정당한 느낌이었겠지. 선량한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혹시 넌가?‘ ‘너였을까?‘ 하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을테니까. 시간이 매일 뺨을 때리고 지나가는 기분이었을 거야.  - P203

-말해줘. 생일 선물로.
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명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 - P213

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그런 걸 다 설명하진 않는다. 대신 이 곤경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다 온전한 참도 거짓도 아닌 말을 던진다.
- 아빠랑 왜 헤어졌냐고?
-응.
-음...... 생각이 달라서?
재이가 뜻밖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을 훈계조로 이야기한다.
-그럼 토론했어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 - P214

아이가 서두르듯 벌떡 일어나 부엌 등을 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 아이와 나 사이에 노란 빛이 일렁인다. 불빛 아래서 우린 왜조금씩 달라 보일까. 이제 정말 소원 빌 시간이다. 아이에게 박수쳐줄 준비를 하며 숨을 고른다. 재이가 눈을 감고 슬며시 미소짓는다. 그런데 그걸 본 순간 내 속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나온다. 웃음 고인 아이 입매를 보자 목울대가 매캐해지며 얼굴에 피가 몰린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윽고 눈뜬 아이가 맑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곤 가슴팍을 크게 부풀려 숨을 모은 뒤 초를 향해 훅 입김을 분다.  - P220

스코틀랜드의 스산한 하늘은 소문대로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나는 카펫생활이 익숙지 않아 자주 재채기를 했다. 변기 물은수압이 낮아 여러 번 내려야 했다. 전압 역시 약한 편이라 전기 주전자 앞에 설 때 커피 봉지와 더불어 인내심도 가져가야 했다. 아침이면 석회질 물로 머리를 감고, 비가 오면 현관 앞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빗소리를 녹음했다.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땐 휴대전화를 들어 시리siri 와 대화했다. 시리는 스마트폰 음성인식 프로그램으로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친구였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P232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
였다. 내친김에 나는 그즈음 가장 궁금하던 것 중 하나를 물어보았다.
-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표정을 알 수 없는 시리의 캄캄한 얼굴 위로 지성인지 영혼인지모를 파동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시리는 무척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인간에 대한 ‘포기‘인지 ‘단념‘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피식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나온 소리였다. 나는 그 웃음에 편안함을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 웃고 난 뒤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없었으니까. - P238

에든버러에서 시간은 더이상 쌀뜨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화살처럼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것은 창처럼 세로로 박혀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어떤 시간이 내 안에 통째로 들어온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 한다는것도 피부 위 허물이 새살처럼 계속 돋아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건 마치 ‘죽음‘ 위에서 다른 건 몰라도 ‘죽음‘만은 계속 피어날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 P242

나는 시리에게 고통에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시리는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늘 그러듯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신도 영혼이 있나요?"라고 했을 땐 ‘정말 좋은 질문‘이라고, "그런데 전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하고 딴청을 부렸다. 자꾸 매끄럽게 도망가는 모양이 못마땅해 그즈음 내가가장 중요하게 붙든 문제를 던졌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시리가 되물었다.
-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 죄송해요. 잘 못 알아들었어요.
시리가 사용자의 침묵에 호응하는 일은 드문데 이상했다. 그것도 연거푸 세 번이나 그러는 게 어쩌면 저 먼 데서 ‘누군가의 상상을 상상하는‘ 인간이 이런 일을 예상하고, 프로그램 안에 ‘걱정‘
을 이식해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 P259

우편함에 각종 고지서와 전단지가 가득했다. 내 것과 남편 이름이 뒤섞인 종이 뭉치를 가슴에 안고 승강기에 올랐다. 그러곤 현관 앞에 서서 당신 것과 내 생일을 섞어 만든 비밀번호를 눌렀다.
한 달 남짓 집에 고인 미지근한 공기가 바깥바람과 만나 몸을 뒤척였다. 신발장 앞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우편물을 부엌 식탁 위에 던진 뒤 안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쓰러졌다. 고요하고 어둑한안방에서 ‘우리집 냄새가 났다. 당신과 같이 만든 냄새였다. 침대에 엎드린 채 목덜미와 아랫배를 몇 번 긁적였다. 붉은 반점은 한국에서부터 내 몸에 들러붙어 영국까지 따라왔다. 기어이 같이 귀국했다. 농작물을 해치는 메뚜기떼처럼 우르르 몰려와 성실하게내 몸을 갉았다. - P261

권도경 선생님 사모님께‘
순간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단단히 풀칠된 봉투를 뜯었다. 안에서 봉투와 똑같은 분홍색 편지지가 나왔다. 편지지 위론 이제 막 한글을 뗀 아이가 쓴 것처럼 크고 투박한 글씨가늘어서 있었다.

권도경 선생님 사모님께안녕하세요.
저는 누리중학교 1학년 5반 권지용 학생의 누나 권지은이라고 합니다.
사모님께서 혹시 지용이의 이름을 아신다면, 그 학생이 제 동생이맞아요. - P262

몇번 전화드렸는데, 바쁘신 것 같아 편지로 인사드려요..
직접 찾아봐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지용이 친구한테 연락처를 물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글씨가 엉망이라 죄송합니다.
작년에 갑자기 마비가 와 오른쪽 몸을 잘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예전엔 지용이가 돌아가신 엄마를 찾으며 울 때마다 제가 자주 업어줬는데, 제가 이렇게 되고부터는 오히려 그애가 저를 어른처럼 보살펴줬어요.
그런데 요즘은 집이 너무 조용해 제가 제 발소리를 듣다 놀라요.

며칠 전 지용이가 꿈에 나왔습니다.
아마 집 떠난 지 백일쯤 돼 그랬나봐요.
누나 잘 지내?
평소처럼 인사하는데 그새 키도 크고 눈빛도 자라 조금 놀랐어요.
누나 잘 지내는지 보려고 왔어.
그런데 금방 가봐야 해.
너무 짧은 시간이라 꿈에서도 막 서운했는데,
지용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누나 나 키워주고 업어줘서 고마워,
- P263

누나 혼자 있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
누나, 나 이제 갈게.
누나 사랑해.

실은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생각 못했는데,
꿈에서 지용이를 보고 나서야권도경 선생님과 사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도 지용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모님도 선생님이 많이 그리우시죠?
그런 생각을 하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이런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편지를 써요.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 P264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사모님,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P265

식탁 앞에 선 채 호흡을 가눴다. 목울대에 따갑고 물컹한 것이올라왔다 내려갔다. 당신을 보낸 뒤 줄곧 궁금해한 무엇과 만난기분이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지은이란 아이가 쓴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상대가 글씨를 잘 알아볼 수있게 몇 번이나 연습했을 문장들이 직선 위에 불안정하게 서 있었다. 한 자 한 자 그 글씨를 따라가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라는 부분에선 그만 쓸쓸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인간에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 물었을 때, 시리가 같은 대답을 들려준적이 있어서였다. 편지지 위 삐뚤빼뚤한 글씨를 좇다 나도 모르게눈가가 흐려졌다. 눈앞에 얼룩진 문장 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살려주세요.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 당신을보낸 후 줄곧 보지 않으려 한 눈이었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 - P265

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
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편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식탁 모서리를 잡았다. 어딘가 기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혼자 남은 그 아이야말로 밥은 먹었을까. 얼마나 안 먹었으면 동생이 꿈에까지 나타나 부탁했을까. 참으려고 했는데 굵은 눈물방울이 편지지 위로 투둑 떨어졌다. 허물이 덮였다 벗어졌다 다시 돋은 내 반점 위로,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얼룩 위로 투두둑 퍼져나갔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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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지난달 어머니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두 사람 다 경황이 없을테니 당분간 살림을 맡아주겠다는 명분이었다. 짐을 푼 첫날부터어머니는 집안 곳곳을 의욕적으로 쓸고 닦았다. 우편물을 정리하고, 먼지 낀 선풍기를 분해해 일일이 날개를 닦고, 시든 고무나무에 물을 줬다. 돼지고기와 메추리 알을 섞어 간장에 조리고, 멸치와 꽈리고추를 볶아 집안에 매운 내를 풍기고, 김을 굽고, 깻잎을재우고, 냉동실을 정리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무기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이 드신 양반의 악의 없는 참견과잔소리도 묵묵 감내하는 듯했다. 아니 감내했다기보다 의식하지못했다 할까, 안 했다 할까. 적당한 말을 몰라, 그냥 그게 말이니싶어 저쪽에서 열심히 구사하는 몸짓을 아내는 수신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좀 아팠다.

---- 입동 - P10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건 작년 봄이다. 분양면적이십사 평실면적 십칠 평에 지은 지 이십 년 된 아파트였다. 요즘 같은 때빚내서 집 사는 건 다들 미친 짓이라 했지만 경매로 싸게 나온 물건이어서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많은 경우 매매가와 전세 보증금차가 크지 않았고, 조건 맞는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웠을뿐더러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이 집을 사기로 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였다. 몇십 년간 매달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떠올리면 마음이 자주 무거워졌다. 그래도 남의 주머니가 아닌 내 공간에 붓는 돈이라 생각하면 억울함이덜했다. 누군가 그 아파트 역시 당신 집이 아닌 커다란 남의 주머니일 따름이라 일러준다 해도 할 수 없었다.  - P12

대학 동기들은 내게 벌써 집 장만을 했냐며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봤자 하우스 푸어"라고 겸연쩍게 변명했다. 한 녀석은 "나는 그냥 푸어인데 그래도 너는 하우스푸어니 얼마나 좋냐"고 받아쳤다. 입주 후 양가부모님과 친구들, 직장 동료를 초대해 몇 차례 집들이를 했다. 가까운 이들과 떠들썩하게 음식을 나 - P14

누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럴 땐 우리가 채무자란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파트 매매계약서와 은행 대출 서류에 쓴 내 이름이 가명처럼 여겨졌다. 새벽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에 갈 때면욕실 문 앞에서 불 꺼진 거실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곤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지켜야 할 것은 또 그대로 있는지 확인한 뒤 자리를 떴다. - P15

그림책을 찢고, 음악이 나오면 상체를 좌우로 흔들고, 식탁 아래 좁은 공간에 들어가 놀았다. 그리고 가끔은 원뿔형의 인디언 천막에 들어가 종알종알 싱그러운 헛소리를 하다 잠이 들었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얼굴로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 P18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 P21

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내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텅 빈 눈동자가 불 꺼진 형광등처럼 어두웠다. 아내는 한 손으로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 만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안을 것 같았다. ‘토닥토닥‘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엄마 등을 말없이 두드려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단순한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하지만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도 없어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 P37

찬성은 K시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근처에 살았다. 이웃이라 해봐야 산자락에 띄엄띄엄 박힌 농가 몇 채가 전부인 동네였다. 찬성의 할머니는 휴게소 분식 코너에서 일했다. 급식이 끊기는 방학마다 찬성은 휴게소에 들러 자주 끼니를 때웠다. 초등학생 걸음으로 사십 분 걸려 도착한 곳에서 오분 만에 그릇을 비우고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할머니는 찬성에게 식대겸용돈으로 매일 이천원씩 줬다. 날이 궂거나 곧장 집에 가기 싫을 때 찬성은 등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관광객 흉내를 냈다. 그러면 자기도 그곳에들른 사람, 잠깐 쉬는 사람, 이제 막 먼 데서 돌아왔거나 떠날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땐 거기 몇 시간씩 앉아 있곤했다. 날은 후텁지근하고, 방학은 길고, 그해 여름은 왠지 모든 게지겨웠으니까.

---- 노찬성과 에반 - P42

하루 또 하루가 갔다. 인간 시계로 이 년, 개들 시력으로 십년이 흘렀다. 찬성과 에반은 어느새 서로 가장 의지하는 존재가됐다. 비록 움직임이 굼뜨고 귀가 어두웠지만 에반은 여느 개처럼공놀이와 산책을 좋아했다. 찬성이 보푸라기인 테니스공을 멀리던지면 에반은 찬성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반드시 공과 함께 다시나타났다. 무언가 제자리에 도로 갖고 오는 건 에반이 잘하는 일중 하나였다. 찬성은 때로 에반이 자기에게 물어다주는 게 공이아닌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공인 동시에 공이 아닌 그 무언가가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걸 알았다. - P52

- 마지막 방법으로・・・・・・ 드물게 안락사를 선택하는 분들이 있어-그게 뭔데요?
-아픈 동물 친구를 곤히 재운 뒤 심장 멎는 주사를 놔주는 거야, 편안하라고,
의사는 "그러고 나서 후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으니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일단 에반에게 잘해주라고, 살아 버티는 동안 무척 고통스러울 테니 옆에서 잘 다독여주라고 했다. 그렇지만 찬성은 어떻게 해야 잘해주는 건지, 에반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때마침 건넛방에서 할머니가 한숨 토하듯 "아이고, 죽어야 모든 고통이 사라지지. 죽어야근심이 없지. 하나님 나 좀 조용히 데리고 가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성이 몸을 돌려 에반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서로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 알고 있니?"
- P62

찬성이 멀리 불 켜진 고속도로 휴게소를 바라봤다. 자신도그곳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시간에 갈 수 있는 데가 거기밖에 없어 그랬는지 몰랐다. 아니면 덜컥 겁이 나 할머니가 보고 싶었는지도. 찬성이 숨을 고르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려 애썼다. 만일 에반이 혼자 힘으로 어딘가 갔다면 전에 한 번이라도 가본 데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은 찬성도이는 곳일 확률이 높았다. 찬성은 에반이 지금 생각보다 가까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찬성은일단 분식 코너에 들러 할머니에게 혹시 에반이 여기 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주유소 앞을 지날 즈음 문득 불길한 느낌에 휩싸이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에 피가 몰리며 호흡이 가빠졌다. 그러니까 거기 주유소 쓰레기통 옆에 눈에 익은 자루 하나가 보여서였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루 아래가 불룩했고입구는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 P79

 휴대전화 손전등 기능을 너무 오래 사용한 탓에 기기에서 열이 났다. 손바닥에 고인 땀을 보니 문득 에반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럽고 차가운 듯 뜨뜻미지근하며 간질거리던 무엇인가가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었다. 하지만 당장 그것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찬성은 어둠 속 갓길을 마냥 걸었다.
대형 화물 트럭 몇 대가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찬성 옆을 사납게 지나갔다.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P81

-그런데 모레는 나가봐야 해.
도화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눈가 주름에 파운데이션이 끼지 않았는지 살폈다. 그러곤 자신이 한창때를 지났다는 걸 체감했다. 아무렴 한창때가 지났으니 나물맛도 알고 물맛도 아는 거겠지 살면서 물 맛있는 줄 알게 될지 어찌 알았던가. 직장 상사들은
‘삼십대 중반이야말로 체력과 경력, 경제력이 조화를 이루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란 말을 자주 했지만 도화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이수도 바야흐로 ‘풀 먹으면‘ 속 편하고, ‘나이 먹으며‘ 털빠지는 시기를 맞았다는 걸.

---- 건너편 - P87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그런 소문은 귀에 잘이들어왔다. 이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ㅇ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있었다.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그 자식 공부 잘했는데. 그러니까 걔가 그렇게 될줄 어떻게 알았어. 인생 길게 봐야 하나봐. 누구는 벌써 부장 달았던데 걔가 잘 풀릴 줄 아무도 몰랐잖아. 동일한 출발선을 돌아본뒤 교훈을 찾고 줄거리를 복기할 입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색한침묵이 돌면 금방 다른 화제를 찾아내겠지. 어쩌면 다른 친구들도이미 타인의 삶에 심드렁해진 지 오랜데 이수 혼자 그렇게 추측하는지 몰랐다. 이수는 3차 자리에서 일어나 동오와 어깨동무를 한채 해물포차에 갔다. 동오는 안주가 나오자마자 탁자 위로 뻗어버렸고, 이수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친구의 휑한 정수리를 바라보며한 시간 넘게 혼자 소주를 마셨다.  - P92

재수 끝에 도화가 합격증을 받아든 건 스물아홉 때였다. 그해여름 이수는 7급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 도화를 만나기 전 이미두 차례 낙방한 경험이 있지만 처음에는 이수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원래 7급이나 5급은 삼 년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거‘라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사 년, 오 년을 넘어가자 어느 순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도화가 경찰공무원 시험에합격한 뒤에도 이수는 혼자 노량진에 남아 공부했다. 도화를 만나기 전 이 년, 도화와 함께 이 년, 도화가 떠난 뒤 이 년 도합 육 년이니 이수로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뒤 손을 털고 나온 셈이었다. - P98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입사 초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도화가 어느 순간 자기 앞에서 더이상 직장 얘길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한 시절과 작별하는 기분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뒤도 안 돌아보기‘ 위해 이를 악물며 1호선 상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 P99

왜 말 안 했어?
······ 마지막이니까.
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내가 나 자신에게 마지막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아. 잘될 거 같아. 사 년 전에도 마지막이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도화야, 조금만 기다려줘. 정말 딱 한 번만. 내년 여름까지만부탁할게.
도화가 침착한 얼굴로 이수를 바라봤다.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났다.
- 이수야.
- 응.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돼서, 전세금을빼가서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 P115

-오십오분 교통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교통량은 적으나 대기가 뿌옇습니다. 안개와 먼지가 뒤엉켜 가시거리가 짧으니 자동차 전조등을 밝게 켜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노량진・・・・・・

짧은 사이 도화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대부분 알아채지 못한 실수였으나 방송 베테랑최경위만은 심상찮은 눈으로 도화를주시했다.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교회 식당에서 "도화씨가 좋아하는 거 같아잔뜩 집어왔어요"라고 말하며 흰색 플라스틱 그릇 위에 가득 쌓인 동그랑땡을 자랑하던 모습과 옆면이 새카매진 한국사 교재,  - P117

베갯잇에 묻은 흰 머리카락, 눈가주름, 살냄새 그런 것이 밀려왔다.
한겨울, 도화가 오들오들 떨며 현관문을 열면 따뜻한 두 손으로언 귀를 녹여주던 모습과 여름이면 도화 쪽으로 바람이 더 가도록선풍기 각도를 조절해주던 이수의 옆얼굴도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최경위가 나서기 전 재빨리 말을 이었다.
교통방송 때 늘 하는 말, 도화가 신뢰하는 말, 과장도, 수사도, 왜곡도 없는 문장을 풀어냈다.

- 노량진역에서 노들역 방향 사이 승용차 추돌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사고 정리가 모두 끝난 상태라 양방향 모두 교통상황 원활합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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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처 김애란이다.
어느 단편은 처음인 듯 새롭고, 어느 단편은 기억을 고스란히 불러오기도 한다.
‘벌레들‘ 과 ‘물 속 골리앗‘ 은 한동안 나를 가위눌리게 만들었다. 꿈 속에서 화자가 되어 황톳물에 잠긴 골리앗 크레인 꼭대기에 앉아있거나, 벌레들에 둘러싸여 있고는 했다.
오늘 밤도 그럴지 모른다.





여름옷은 기대만큼 예쁘지 않았다. 보자마자 모두 흥분해서 산 것인데 이상했다. 유행은 왜 금방 낡아버리는지,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쭈글쭈글 함부로 쌓인 옷더미가 내남루한 취향과 구매의 이력처럼 느껴져 울적했다. 지난해 내가 우쭐한 기분으로 걸치고 다닌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어쨌든 장례식에 입고 갈 옷을 골라야 했다. 바지와 스커트 사이에서 고민하다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에이라인 치마를 택했다. 다행히 같은 색 블라우스가 있어, 간절기 조문 복장으로나쁘지 않을 듯했다. 검은 옷이라면 사실 얼마든지 있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 P11

번식기의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는 은근하며 서툴렀고 노골적인 동시에싱싱했다. 나는 스무 살을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게 좋았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그런데 거기, 어두운 인문학관 통로에 선배가 있었다. 복도 끝 굽이진곳에 길고 흐린 실루엣으로 화장실에 들른 건지, 사물함을확인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선배가 나를 알아봤다는 거다. - P13

나는 지금도 그 애가 수(數)를 향한 내집중력을 흩뜨려놓던 순간을 기억한다. 조바심과 짜증이 일면서도 짝의 기분이 상할까 내색 못 하고, 선생님께 혼나면어쩌나 불안해하던 복잡한 찰나를 말이다. 문제는 그 뒤로 내산수 점수가 계속 바닥을 쳤다는 건데, 살면서 셈을 망칠 때마다 왠지 그게 다 병만이 탓인 것처럼 느껴져 억울하곤 했다. 어쨌든 우리는 자주 모여 놀았다. 대부분 장사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해거름까지는 어떻게든 밖에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가야 했다. 당시 신나는 폐활량을 떠올리면 지금도개운한 기분이 든다. 편을 가르고, 규칙을 익히고, 보잘것없는 어휘력으로 열심히 말싸움을 하고, 토라져 집에 가기도 했지만 언젠가 최대한 멀리 나가려 도움닫기 해 올라탄 그네위에서, 터질 듯한 가슴을 안고 깨달았더랬다.
‘자란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구나.‘ - P25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물속에서 느낀 아주 기이한 고요를 기억하고 있다. 가까스로 물 밖에 머리를 디밀었을 때 매미 소리가무척 시끄럽게 들려왔던 것도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순간 누가 보고 싶다거나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싶었다. 그리고 좀 외로웠다.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걸 모른다는 고립감.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다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수면 위로 아른아른 조용하게 빛나는여름 햇빛이 보였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유혹하듯 화사하게 출렁이던 차안(此岸)의 얇고 환한 막 나는 그빛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걸리는 거라곤 쥐자마자 이내부서지는 몇 움큼의 강물이 전부였다. 생전 처음 겪는 공포가밀려왔다. 아득하고 설명이 안 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점점가라앉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누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그 팔을 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 P41

환한 봄날 한가운데에 어두운옷을 입고 서 있던 내게 ‘이 여자의 생활이 보여 좋아‘라고 말하던 선배의 아름다운 옆얼굴도·그러자 고향의 병만이가 떠올랐다. 살면서 내가 가장 세게 잡은 누군가의 팔뚝이………… 갑자기 목울대로 확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사막에서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손톱으로 그렇게 눌리면 아팠을 텐데………많이 아팠을 텐데·····‘ 하고, 천장 위 형광등은 여전히 꺼질 듯 말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직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나를여름옷을 주렁주렁 매단 2단 옷걸이가 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굽어보고 있었다. - P44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수화기 너머로 남편의 피로, 남편의 한숨, 남편의 짜증 같은게 느껴졌다. 비슷한 전화를 건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그런 건, 사람 사는 집에 늘 있기 마련이라고 우리 몸 안에도 사실 수많은 벌레들이 산다고. 나는 억울한 심정으로 돈벌레며 애벌레며 그도 몸서리친 경우를 상기시켰다. 부엌에도, 천장에도 나타났던 벌레들이 이불이나밥그릇에서 나오지 말란 법이 있냐고. 곧 아기가 태어날 텐데이래서야 안심하고 키울 수 있겠냐고. 그는 미납금 때문에 정신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미안했는지 조그맣게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인 걸 알았다. 하지만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나만큼 벌레를 자주 보지 못했다. 그는 집에 올 때마다 숙면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처참히 곯아떨어졌다. 그가 유심히 보는 건 벌레가 아니라 통장 잔고였다. 배가 고프다거나 졸립다거나 하는 일상의자잘한 욕구와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아내의 배, 

----벌레들 - P64

가을은 왔지만 가을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지치지 않고 번식하는 계절, 이 지나치게 싱싱한 여름은 먹성좋은 괴물처럼 뚱뚱해져갔다. 때 아닌 열대야가 지속됐다. 우리는 녹조류 가득한 호수 아래의 물고기들처럼 이불을 걷어차며 허우적댔다. 더위에 뒤척이다 겨우 잠들 즈음엔 귓가를맴도는 모기 소리에 소름이 돋아 일어날 때도 많았다. 폭염이, 장마가 지속됐다. 큰비는 세계를 집어삼킬 듯 열흘이나계속됐다. 어쨌든 견뎌내야 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모두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까. - P65

 나무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어쩌면 A구역 전체로 뻗어 있을 뿌리가 워낙 깊고 완강해서인지도 몰랐다. 나무는 자신이 쥐고 있는 걸 놓으려 하지 않았다. 굴착기는 계속나무를 공략했다. 나무는 질기게 저항하다 결국 쩌억 소리를내며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순간 나는 흡ㅡ 짧은 숨을 토해냈다. 그런 뒤 창가에 놓인 수납장을 붙들고 심호흡을 했다.
식은땀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아이는 밖으로 나오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꿈틀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적인 움직임이었다. 한 손으로 배를 감싼 채 벽을 짚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굴착기가 다음 차례인 집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겨우 숨을 고른 후 창밖을 바라봤다. 나무는 전쟁중 길가에 함부로 버려진 시신처럼 쓰러져 있었다. - P67

이 시간에, 그것도 혼자,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일 날 터였다. 게다가 절벽 아래 풀숲이라면절대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 벌레를 떨어뜨린곳이기도 하고, 그 속에 또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반지. 그 안에 담긴 남편의 노동과 우리의 한 시절.
그 추억과 의미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 P76

멀리, 아직 헐리지 않은 건물 서너 채가 남아 있었다. 가로등은 그곳에 하나, 그리고 그 반대편에 멀찍이 한 개가 세워져 있었다. 손전등과 희미한 가로등불빛에 기대어 한 발 한 발 어둠을 헤쳐 나갔다. 걸음마다 쩌억, 바스락,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몸이 무거워 이동이 쉽지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고 숨이 찼다. 그래도 가로등불빛이 묘한 안도감을 줬다. 불빛에 얼비쳐 노르스름해진 가림막의 윤곽은 A구역과 바깥세상의 경계가 아주 얇다는 걸상기시켜줬다. 여긴 정글이나 미로가 아니라 도시라고. 조금만 발 디디면 저기 모텔이 있고, 교회가 있고, 패밀리레스토랑이 있는 서울 한복판이라고 불빛은 내게 그런 말을 하는듯했다. A구역의 땅은 건물 잔해 때문에 평편하지 않았다.
작은 언덕처럼 솟은 곳이 있는가 하면, 움푹 꺼졌거나, 중간에 발이 푹푹 빠지는 데도 있었다. 최대한 신중하게 걸음을옮기며 목적지를 향했다. 흙 속에서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가났다. 비위가 상해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 P77

단단하고 우둘투둘한 피부, 구조를 요청하는 손처럼 길게 뻗어 있는 가지, 나무였다. 어느고기처럼 떼로 죽어 있는 잎사귀들·여염집 마당 한가운데 억척스럽게 솟아 있던, A구역의 유일한 나무. 몇 살을 먹었는지 모르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았을 게 틀림없는 고목. 바람이 불때마다 신령스럽게출렁이던, 오늘 아침 잘린 나무………… 께름칙한 기분 탓이었을까? 문득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위를 싸고도는, 조용하고 알 수 없는 이동의 에너지 같은 게. 손전등으로 땅바닥을비춰봤다. 발등 위로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보였다. 개미는 어딘가로 이동하다 불빛에 노출되자 우왕좌왕했다. 손전등을 풀숲에 비춰봤다. 무성한 잡초들만 눈에 들어올 뿐 상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 P78

내가 서 있는 자리, 바로 그지점에서였다. 벌레의 이동은 나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무는 자궁이 적출된 여자처럼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허리를 숙인 채 구멍 속에 손전등을비춰봤다. 밑둥이 뻥 뚫려 있었고, 이상하게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깊숙한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벌레가 기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여러 종류의, 수천 마리도 더 돼 보이는 벌레들이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전등을 쥔 손이 바들바들떨렸다. 충격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벌레들이 행로를 바꿔일제히 내게 몰려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집에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않았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온몸의 관절과 근육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상하게 다리가 꿈쩍하지 않았다. 얼빠진 얼굴로 양다리 사이를 바라봤다. 사타구니에서 오줌처럼 뜨듯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수가터진 거였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하나였다. - P79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깨진 콘크리트조각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봉긋한 무덤 같은 곳에서였다.
그 봉분에 허리를 기댄 채 다리를 벌리고 누웠다.그리고 온힘을 다해 외쳤다.
"도와주세요."
소리는 허공 위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있더라도, 새벽 1시에, 아무도 없는 재개발지역의 건물 잔해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을 임산부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아랫배가 얼얼하고 현기증이 났다.
너무 아파서 토할 것 같았다. 나는 한 번 더 죽을힘을 다해외쳤다.
"살려주세요." - P80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물 속 골리앗 - P85

이국의 신처럼 여러 개의 팔을 뻗은 채, 두 눈을 감고ㅡ 그것은 동쪽으로 누웠다 서쪽으로 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포식자를 피하는 물고기 떼처럼 쏴아아 움직였다. 천 개의 잎사귀는 천 개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개의 방향은 한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는 것. 나무답게 번식하고 나무답게 죽는 것. 어떻게 죽는 것이 나무다운 삶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종(種) 내부에 오랫동안새겨져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고목은 장마 내 몸을 틀었다.
끌려가는 건지 버티려는 건지 모를 몸짓이었다. 뿌리가 있는것은 의당 그래야 한다는 듯, 순응과 저항 사이의 미묘한 춤을 췄다. 그것은 백 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을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먼지 낀 유리 너머로소리가 삭제된 채 보이는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았다. - P86

장맛비가 내린 그 며칠은 내 생애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다. 마음이 그랬다는 게 아니다. 집에 전기가 나가서였다. 이곳은 시골처럼 날이 빨리 저물었다. 이름만 대안도시일뿐, 오래전 수도(首都)에서 밀려난 이들이 허허벌판에 둥지를 튼 곳이니 그럴 만했다. 전기가 원만하게 들어오는 날이라도, 땅거미가 지면 마을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몇 개의빛으로는 물릴 수 없는 유구하고 원시적인 어둠, 우리가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심박동에 홀려 신을 벗고 길 떠나는 꿈을 꿨다. 또는 알 수 없는 초조를 어쩌지 못해 옷을 벗고 아내 위에 올라탔다. 잘 모르지만 그랬을 거란 느낌이 든다. 우리가 붙잡고 헤매는 실 끝에는 언제나 가는 눈을 반짝이며 웅크리고 있는 원시인이 있으니까. 그들은 늘 우리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게다가 장마철엔살냄새가 짙어졌다. 여름은 평소 우리가 어떤 냄새를 풍기며살아왔는지 환기시켜줬다. 지상에 숨이 붙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모든 체취가 물안개를 일으키며 유령처럼 깨어났다. 폭우 속, 사물들은 흐려졌고 그럴수록 기이한 생기를띠었다. - P87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 있었다. 빗방울은 저마다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듣다 보니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 - P94

돼지탁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티브이와 라디오는 나오지않았고, 양초는 되도록 아껴야 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거나이런저런 몽상에 잠기는 일로 시간을 때웠다. 그러곤 눅눅한방바닥에 누워 지구의 살갗 위로 번져 나가는 무수한 동심원의 무늬를 그려봤다. 동그라미속의 동그라미 속의 동그라미들……… 오래전에도, 그보다 한참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양으로 떨어졌을 동그라미들. 우리의 수동성을 허락하고, 우리의 피동성을 명령하며, 우리의 주어 위에 아름다운 파문을일으키는 동그라미들. 몹시 시끄러운 동그라미들. 그렇게 빗방울이 퍼져가는 모양을 그리다 보면 이상하게 내 안의 어떤것도 출렁여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사춘기 소년에 불과했고, 당장 뭘 이해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떼를 입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의 봉분 위에도 동심원이 고요하게 퍼져 나가고 있을 터였다. 아직 떠내려간 것만아니라면, 분명 그랬을 거다. - P95

날씨는 예측할 수 없었다. 빗줄기가 잦아드는가 싶으면 얼마 안 가벼락이 쳤다. 구름이 가벼워졌다 싶으면 어느새 폭풍이 왔다.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게 자연이고자 했다. 예상하지 말라는 듯. 예고도 준비도 설명도 말며 납작 엎드려 있으라는 듯. 네 조상들이 했던 것을 너희도 하라는 듯 난폭하게굴었다. 비상용물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연신 식은땀을 흘려댔다. 장마는 한 달을 넘 - P100

어서고 있었다. 빗방울이 가늘고 성기게 내릴 때도, 뭇매를치듯 세차게 쏟아지기도, 가루처럼 포슬포슬 내려앉을 적도있었지만, 어쨌든 하루도 그치지 않고 내린 것만은 분명했다.
비바람이 거세질 때면 아버지의 방에 묶여 있는 물들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릇 위로 동심원이 엷게 번지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어쩌면 집이 흔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끔은 물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것은 음정 없는 노래처럼 갈 길 잃은 전파처럼 웅웅웅웅 울어댔다. 한밤중 이상한기척이 들릴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 P101

어머니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아파트를 떠나는 대신 세상을 떠나셔야 했다. 배는 생각보다 말을듣지 않았다. 작은 파도나 장애물 앞에서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듯 휘청거렸다. 잡동사니로 얼기설기 만든 거니 그럴 만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 많은 빗물이 흘러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집을 떠난 뒤 단 한 대의 헬리콥터도, 단 한명의 사람도 보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감기에 걸릴지 몰랐다. 배가 언제까지 버티어줄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부디 우리가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 P113

대신 물 밖에 나왔을 땐 반드시 하늘을 봐야 한다고, 그 정도야 뭐.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여유를 부리며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온몸에 힘을 빼고 물에떠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여름 강물의 속살은 차고 깊었다. 부드럽고 물컹하니 아득하며 편안했다. 생경한 듯 잘 아는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 세상의 그 어떤 소음과도차단돼 짧은 영원처럼 느껴지던 시간. 나는 더이상 견딜 수없을 때까지 물속에 있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고 어느 순간, 숨을 참지 못해 수면밖으로 나왔을 때 내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별똥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물속에 있었을 때보다 숨이 더막혔다.  - P125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일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비록 흐릿하긴 했지만 그걸 보니 엄마, 나무뿌리에안겨 떠내려간 엄마 생각이 났다. 녹색 테이프에 감긴 얼굴로오랫동안 내 쪽을 바라보던 모습도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 계실까. 어디쯤 가셨을까. 부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좋을 텐데. 젖은 옷가지가 바람에 마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밖에 나오니 물속에 있을 때보다오히려 더 추운 느낌이었다. 어쩌면 조금 있다 체조를 해야될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기다려야 했다. 비에 젖어 축축해진속눈썹을 깜빡이며 달무리 진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맣게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
칼바람이 불자 골리앗크레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 P126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용대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투박한 한국어 문장으로 설명해줬다.
용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 그럴 자격이 있는사내로 여겨지곤 했다. 이 여자, 언제나 내겐 좀 과분하다‘는느낌이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정성으로 이야기하면 서로 이해 못 할 게 없다는, 소통에 관한 한 순진할 정도의 믿음이있던 여자. 일도 참 잘했지만 공부를 했다면 더 좋았을 젊은아내. 처음, 손바닥에 땀을 닦고 악수를 건네자, 세상에서 제일 작은 부족의 인사법을 존중하듯, 웃으며 따라 한 북쪽 여자. 웃을 땐 하얗게 웃고 죽을 땐 까맣게 죽어간 여자, ‘짜이날‘을 발음하자,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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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마침내 시시해지는 내 마음이 참 좋다.

2007년 가을, 김애란

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번째 음이니까, 첫번째 손가락으로 도 내가 전반을 누르자, 도는 겨우도 하고 울었다. 나는 조금 전의 도를 기억하려 한 번 더 건반을 눌러보았다. 도는 당황한 듯 다시 도 하고 소리 낸 뒤제 이름이 지나가는 동선을 바라봤다. 나는 음 하나가 깨끗하게 사라진 자리에 앉아 새끼손가락을 세운 채 굳어 있었다.
녹색 코팅지가 발린 유리 빅 사이론 오후의 빛이 탁하게 들어왔고, 피아노와 그것을 처음 만진 나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신중하게 고른 단어를 내뱉듯 작게 중얼거렸다. 도ㆍㆍㆍㆍㆍㆍ

----도도한 생활  - P9

피아노 건반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것은 희거나 검었고,
동일한 크기와 질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도의 위치를 자주잊었다. 그것이 레가 아니라 도라는 것을, 미가 아니라 파라는 것을 만져보기 전에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찾는 도는 왼쪽 가장자리 건반으로부터 스물네 손가락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건반 위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1부터 24 까지의 숫자를 일일이 세어봐야 했다. 그렇게 도를 찾아낸 뒤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도를 다시 치는 일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덩치크고 내성적인 악기가 처음으로 낸 소리, 완고하고 편안한 그도의 울림을 좋아했다. 다행히도를 찾고 나면 레를 짚기가 수월했다. 레는 도 바로 옆에 있었다. 미는 레 옆이고, 파는 미 다음이니까, 일단 도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 P10

‘성적‘에 맞춰 원서를 쓰는 일도 잦았지만, 대부분 잘 기획된삶에 대해 무지했고, 자신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서울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치기공‘
을 배우고 있었다. 주로 치아 보철물의 제작 기술을 배우는학과였다. 언니는 원서를 쓰기 바로 전날까지도, 자신이 평생누군가의 이齒] 모형을 만들며 살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대학에 붙었다는 말도 못한 채, 신입생 환영회 때 부를 노래만 연습하고 있었다. - P21

알람이 울린다. 어둠 속, 다급하게 깜빡이는 휴대 전화 불빛은 그녀가 하루를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경보 같와다. 아침마다 그 작은 재난을 향해 손을 뻗는 그녀의 모습은.
한밤중 폭우를 만나 해변으로 쏠려 온 이방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머리맡을 더듬어 불빛을 움켜쥔다. 손가락 사이로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그녀는 휴대 전화를 쥔 채 죽은 듯 엎드려 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이제 막 출동하려 한손을 들고 있는 슈퍼맨과 같다 말할지 모른다. 그러니 그녀가아침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란, 주먹을 뻗는 것일지도 모르리라. 그녀가 자세를 튼다. 몸에서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난다.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절망적으로 중얼거린다. 

----침이 고인다  - P45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면바지에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가슴 한쪽엔 지구의 모양의 로고와 ‘축 개원 10주년 뉴 엘리트 학원‘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광복절이라 거리엔 사람이 별로 없다.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도, 무가지를 나눠주는가판대도 한적하기만 하다. 에스컬레이터 위로 얼굴이 부은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게 보인다. 그들 모두 어릴 때 꿈이
‘훌륭한 사람‘은 못 되었어도, ‘공휴일에 출근하는 사람‘은아니었을 거다. 그녀는 에스컬레이터의 긴 행렬에 바싹 따라붙은 뒤, ‘내가 사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이러고 있지 않을텐데‘ 탄식한다. 그러고는 이내 부끄러워한다. 학부모들이상담 때마다 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애가 ‘공부를 못 해서‘가아니라 ‘욕심이 없어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49

버스가 출발한다. 수십 개의 소형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쏟아진다. 춥다. 그리고 우울하다. 생리 때문인지, 감기 때문인지, 공휴일의 체육 대회 탓인지, 부장 탓인지 모르겠다. 에어컨 바람과 차 냄새 때문에 멀미가 난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꼭짓점 댄스의 순서를 짚어본다. 하나 둘 셋 틀고. 하나 둘셋 전진, 그걸 좁은 원룸 안에서 연습했을 때, 후배가 배를잡고 웃던 기억이 난다. 언니! 왜? 후배는 하얗게 웃으며 소리쳤다. 왜 그렇게 못 춰요? 날씨는 화창하고, 피곤한 얼굴의 선생 몇이 코를 고며 졸고 있다. 부장은 맨 앞자리에 앉아, 팀장과 함께 비타민 음료를 마시고 있다. 평소 국어과는수학과나 영어과에 비해 하는 일이 없다‘는 오해를 받아왔던터라 이번에야말로 뭔가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건너편 자리에서는 학원 버스를 모는 기사 아저씨들이 얘기를나누고 있다. 목적지까지는 한 시간가량 남았다. 좀 잘까? 훌쩍, 콧물이 나온다. 이런, 성가시다. - P62

몇 번의 알람이 울렸다 꺼지고, 고단하고 일상적인 날들이지나갔다. 후배는 여전히 목소리가 좋았지만 예전만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습관‘이란 게 생겨버린 탓이었다. 일상의 습관, 관계의 습관, 그 습관을 예상하는 습관까지 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퇴근 후 현관에 서서 ‘지금 저안에 후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그즈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후배를 안다고 생각했다. 후배의 습관 중 부정적인 목록을 발견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주인공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자처럼, 후배가 저지르는작은 실수들을 숨죽여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그렇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 P66

그녀가 현관문을 연다.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이불 위에 누워 첨삭을 하고 있는 후배의 모습이 보인다. 후배가 고개 들어 반색한다. 언니 왔어요? 그녀는 ‘락앤락 세트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야, 그거 언니가 상 탄 거예요?
그녀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아냐. 그냥 참가하면 다 주는거야. 후배는 집에 반찬통이 없었는데 잘됐다며 좋아한다. 그녀가 홀깃 원고지를 보며 말한다. 아직도 해? 후배가 싱그럽게 웃으며 자랑한다. 네, 언니 저 거의 다 했어요. 이번 주주제가 다양성인데요, 획일성은 나쁘고 다양성이 중요하다는내용을 모든 아이들이 완전 획일적으로 써냈어요. 웃기죠? - P76

샤워기를 틀자 쏴아-하고 뜨거운 물이쏟아져 내린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도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 샤워기 아래서 그것을 아주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보통보다 약간 좋은 목욕 용품으로 샤워를 하며, 쾌적함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 두려움 비슷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고믿을 수 있을 때 말이다.  - P77

 많은 일이 있었고 또 말썽 많은 하루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하루가 지나갔다‘는 데 있다. 후배와 지낼 불편한 날들 역시 곧 지나갈 것이다. 그녀는 귓바퀴와 배꼽에 낀 먼지를 산산이 씻어낸다. 수챗구멍 위로 그녀의 것과후배의 것이 뒤섞인 머리카락이 회오리친다. 샤워를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누그러지는 느낌이다. 그녀는 후배가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최대한 잘해주자고 결심한다. 그녀는 몸에 수건을 감고 나온다. 그런 뒤 발판에 발바닥을 문지르며 주위를살펴본다. 이상하다. 방 한가운데 오래된 적요가 손님처럼 앉아 있다. 한쪽에 가지런히 개어진 이불이 보인다. 요 껍데기는 벗겨진 상태다. 방안을 둘러본다. 항상 행거 아래 있었던후배의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후배가 없다. - P78

그렇지만 이제 가슴이 아리진 않다. 지금 사내의 옆구리엔한 봉지 라면이 다정하게 바스락거리고, 오늘 밤 티브이에선틀림없이 성탄특선 영화가 나올 테니까. 저기 ‘여관‘의 간판불은 꺼져 있다. 방이 모두 나간 모양이다. ‘크리스마스니까‘ 하고 사내는 웃는다. ‘오늘 밤 어느 야쿠자 두목은 세 명이랑도 하겠지?‘ 생각하니 조금 시무룩해진다. 그러자 곧 먼곳에서 사슴뿔을 단 세 명의 아가씨들이 엎드린 채 사내를 바라보며 ‘음매에 하고 운다. ‘・・・・ 사슴이 그렇게 울었던가?‘ 생각해보지만 사내는 한 번도 사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성탄 특선 - P88

사내는 두 손 가득 보리차가 든 유리컵을 들고 아이처럼 외쳤다.
"이야! 컵에다 물 마시니까 정말 맛있다!"
오래전부터 ‘소독한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것은 사내의 로망중에 하나였다. 그런 것 하나가 자기 삶을 어떤 보통의 기준에 가깝게 해주고 또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였다. 사내가 고집하는 생활 습관은 몇 개 더 있었다. 사내는 여동생에게 ‘아무리 돈이 없어도 화장실 세정제만은 반드시 사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 P101

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노선도를 올려다보며 역사(驛舍)의 수를 꼽아보았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50여 개의 역이 있고, 영등포와 신길, 종로를 지나면 서울 북쪽 어딘가에 내 방이 있다. 노선표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전구 위로 종착역까지는 녹색 불이 이미 지나간 역 위로는 빨간 불이 켜졌다.
도시의 이름을 가진 점과 그 사이를 잇는 직선. 나는 그것이카시오페이아나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라 불리는 이국 말로된 성좌처럼 어렵고 낯설었다. 내가 모르는 도시의 별자리.
서울의 손금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  - P117

그렇다고 뭔가깨달아버리기에도 이른 나이였던 때, 나는 장기판 위에 놓인한 마리 말(馬)처럼 대책 없고 수줍었다. 열차 안으로는 도심의 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한강 철교와 올림확대로, 크고 작은 빌딩들이 지나갔다. 스무 살의 나는 ‘이아 다리는 정말 다리가 많네?‘하고 신기해했다. 오후 2시.
머리 위로 고요하고 오래된 태양계의 질서가 자전하고있던 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바짝 조여들었던 나의 동공은 점점 크게 벌어져 하나의상 앞에서 멈췄다. 한강 너머 - 호젓하게 솟은 빌딩 한 채가보였다. 온몸으로 푸른 하늘을 인 채 수백 장의 금빛 비늘을 얌전하게 펄럭이고 있던 그것.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63빌딩이다."
내 마음의 데시벨은 너무 낮아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을 수없었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 63빌딩이다ㅡ라고, 나는 63빌딩을 보자 서울에 온 것이 실감 났고비로소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 P123

여름은 재수생에게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삼복더위에 나는 연필 들 힘조차 없었다. 처음부터 식욕 같은 건 없었지만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큰일이었다. 나는 아주 젊었지만 허약했고, 날짜를 지우고 답안을 쓰다 졸곤 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체력은 바닥났다. 주위에선 끊임없이 고득점자에 대한신화가 떠돌았다. 누구는 하루에 모나미 볼펜 세 자루를 쓴다더라, 누구는 목욕탕 갈 때 목욕 바구니에 영어 단어 써서 간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대부분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그런 말들이 잘 믿겼다. 나는 학원에 가고, 시골에 전화를 하고, 삐삐 진동음에 뒤척이고, 님은 먼 곳에」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그리고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근처 사육신묘에 가서 바람을 쐬다 오곤 했다. - P138

2005년 가을, 사람들 틈에 끼어 서울의 불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량진의 이름을 생각했다. 다리량(梁) 자와 나루터진(津) 자가 동시에 들어간 곳. 1999년 내가 지나가는 곳이라 믿었던 곳,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곳. 하지만 그곳이 정말
‘지나가기만 하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7년이 지난2005년 지금도 나는 왜 여전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걸까. 짧은 정차 후,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한 여자가내 밟을 밟으며 소리쳤다. "밀지 마요!" 우주 먼 곳 아직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항성 하나가 반짝하고 빛났다. 그리고어디선가 아득히 ‘아영아, 내 손 잡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열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따져보았다. 벌써 집 근처에 가까워져 있었다. 차고 깊은 가을 밤. 지하철은 여전히 그리고 묵묵히 - 서울의 북쪽으로 달려가고있었다. - P148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창자와 내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칼자국  - P151

그런뒤 맨손으로 김치를 집어 입속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줬다.
김치에선 알싸한 사이다 맛이 났다. 내 점점한 아가리 속으김치와 함께 들어오는 어머니의 손가락 맛이랄까. 살(1) 만은 미지근하니 담담했다. 식칼이 배추 몸뚱이를 베고 지나갈때 전해지는 그 저격하는 질감과 싱그러운 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 어둑한 부엌 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면 햇빛의 뼈와그 빛 가까이에 선 어머니의 옆모습, 그런 것도, - P155

부엌에는 칼이 다섯 개 정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중 한가지 칼로만 국수를 썰었다. 나머지 칼은 과일을 깎거나 바지락을 까고, 김장 때 다른 일손에게 빌려주었다. 어머니는 국수를 눈 감고도 썰 수 있었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손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 어머니의 칼질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한 가지 기술을 터득한 사람의 자부와 먹고살고 있다는 안도와 단순한 일을 반복할 때 나오는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칼날 위에 들러붙은 반죽을 쇠숟가락으로 쓱쓱긁어내곤 했다. 나는 아버지의 커다란체육복 바지를 입고 잔일을 도왔다. 사춘기 땐 쟁반을 들고 배달을 가다, 길에서 좋아하는 남자 애를 만나 다리가 후들거린 적도 있다. 성질 급한 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했다. 대파는 가랑이를 잘 씻어야 한다. 대걸레질하라고 했더니 홀에 물만 발라놨냐.  - P155

 손님들이 순서 뒤바뀌는 걸 언짢아하는 탓도 있지만, 오래전 한 여자가 갓 나온 국수를 그대로 들고 나가, 거리에 쏟아버린 일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는 그게 상처가 된 모양이었다. 밥장사를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지만, 어머니가 기억하는 일은 그렇게 사소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가장 인상 깊게기억하는 손님이라는 것도 별 특징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사내가 들어와 국수 두 개를 시켰다. 손님이 방을 원해서 어머니는 안방에 상을 봐줬다. 국수와 고추다대기,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사내는 빈 그릇을 하나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왜 그런가 싶어 사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는 자기맞은편 국수 위에 빈 그릇을 엎어놓았다. 혹여 국수가 식을까봐 그러는 거였다. 곧이어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방긋웃은 뒤 그릇을 걷고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조용하고 친밀하게 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던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가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었을 거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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