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짙푸른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말없이 떠나간 밤을
이제는 이해한다 시간의 굽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건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가슴을 두드려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행성에 노크를 하듯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하늘로 손을 뻗어 빗나간 별자리를 되짚어볼 때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알고도 밤은 갔다

그렇게 가고도
아침은 왜 끝끝내 소식이 없었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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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짙푸른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말없이 떠나간 밤을
이제는 이해한다 시간의 굽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건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가슴을 두드려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행성에 노크를 하듯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하늘로 손을 뻗어 빗나간 별자리를 되짚어볼 때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알고도 밤은 갔다

그렇게 가고도
아침은 왜 끝끝내 소식이 없었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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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짙푸른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말없이 떠나간 밤을
이제는 이해한다 시간의 굽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건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가슴을 두드려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행성에 노크를 하듯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하늘로 손을 뻗어 빗나간 별자리를 되짚어볼 때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알고도 밤은 갔다

그렇게 가고도
아침은 왜 끝끝내 소식이 없었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오랜만에 박. 소. 란 시인.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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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창의적인 작업을 이어나가는 셀축은 때때로 인간 몸의 부위들을 삽화 소재로 삼되, 냉정하면서도 터키인 특유의 시각- 프로테스탄트 문화의 영향에서도, 지중해 문화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운 시각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해 나아가고있다. 마치 인간에게 조건지어진 삶의 희극이 벌어지는 장소가 바로 그의 몸이고, 그의 몸에 대한 우울한 해부에서그 희극이 확인되기라도 하듯.˝
-- 존 버거

백내장을 뜻하는 ‘캐터랙cataract‘은 그리스어
‘카타락테스kataraktes‘에서 나온 말로, 폭포를 뜻하기도하고 내리닫이 창살이 드리워진 문을 뜻하기도 한다.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차단막 같은 것, 그것이백내장이다. 왼쪽 눈의 내리닫이 창살은 걷혔다. 하지만오른쪽 눈의 폭포는 여전히 남아 있다. - P6

나는 유희하는 마음으로 눈앞의 사물을 바라본다.
우선 왼쪽 눈을 감았다 뜨고, 이어서 오른쪽 눈을 감았다뜬다. 두 눈에 비치는 사물의 모습이 또렷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 P8

오른쪽 눈으로만 바라보면 사물 전체가 낡아 보인다.
왼쪽 눈으로만 바라보면 사물 전체가 새로워 보인다.
이는 바라보는 사물이 낡은 것이 되었다 새 것이 되기도하고, 새 것이 되었다 낡은 것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아니다. 낡은 것은 낡은 것대로 새 것은 새 것대로,
자신의 낡음이나 새로움을 보여 주는 사물의 징후에는변함이 없다. 변하는 것은 사물에 비치는 빛과 사물이반사하는 빛, 그것뿐이다. 다름 아닌 빛이 사물을 새로워보이게도 하고 낡아 보이게도 한다. 빛의 양이 줄어들면사물은 낡아 보이게 마련이다. - P10

생명을 창조하고 그 생명을 가시화하는 빛.
아마도 이 자리에서 우리는 빛의 형이상학에 관해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는것은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무엇을 비추는 빛은 만물을 시원의 광채에 휩싸이게하고 또 순수한 것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 P12

실제로는 빛이 수백만 년의 세월을 견딘 산이나 바다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정녕코 빛은 끊임없이 이어지는영원한 ‘시작‘으로 존재한다. 반면 어둠은 종종 사람들이주장하듯 최후가 아니라 시작에 앞선 전주곡前奏曲이다.
이것이 여전히 윤곽조차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내 왼쪽눈이 나에게 말해 주는 바다. - P14

예상했던 것보다 한결 더 풍요롭게 나를 다시 찾아온색깔은 파란색이다. (파란색과 보라색은 파장이 짧기때문에 백내장의 불투명한 장막에 부딪혀 흩어지게마련이다.) 순수한 파란색뿐만 아니라 다른 색깔의 형성에참여한 파란색까지 모두 흩어진다.
초록색, 보라색, 자홍색, 그리고 회색에 섞인파란색까지도 모두 마치 하늘이 지상의 다른 색깔들과처음 만나던 때를 기억 속에 되살리듯, 나는 온갖 파란색조의 황홀한 향연에 다시 눈뜬다. - P16

이 모든 파란 색조가 빛과 유희하여 은빛 찬란함또는 주석빛 찬란함을 만들어낸다. 온화한 느낌의금빛이나 구릿빛 광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찬란한빛들. 은빛은 빠르다. 수은빛은 또 얼마나 빠른가?
물고기의 은빛 찬란함, 흐르는 물의 은빛 찬란함, 나뭇잎위 햇살의 은빛 찬란함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이여!
나의 왼쪽 눈이 바라보는 밤은 이제 전보다 더어둡다. 낮의 빛과 밤의 어둠이 더 날카롭게 대조를이루기에, 파란색은 또한 깊이와 거리距離의 색깔이기도 하다. - P18

두 눈의 시야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차이는거리 감각과 관련된 것이다. 오른쪽 눈에는 창살이드리워져 있지만, 나는 왼쪽 눈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밖으로 나온 나에게 거리 감각은 두측면에서 증가한다. 우선 눈길을 먼 곳으로 향하면 그와동시에 사물과 나 사이의 거리가 스스로 늘어난다.
센티미터의 폭이 늘어나듯 킬로미터의 폭도 늘어난다.
또한 나는 두 사물 사이의 공기를, 공간을 더욱 예민하게의식하게 된다. 마치 잔에 물이 가득하듯 공간이 빛으로가득하기 때문이다. 백내장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어디를 가든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실내에 갇혀 있는셈이 된다. - P20

공간 감각이 증가함에 따라 그 결과 측면에 대한감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대한 감각, 무엇이 수/지평선과 평행을 이루는가에 대한감각도 증가했다. 무엇이 내 앞을 지나가는가에 대해나는 좀 더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무엇이 나에게다가오는가에 대한 의식과는 또렷이 다른 것이다.
거리 감각이 증가함에 따라 큰 것은 더욱 커 보인다. - P22

한 쌍의 눈은 나름의 고유한 수/지평선을필연적으로 지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크기에 대한감각과 측면에 대한 감각이 확장하자, 이에 자극되어나는 (어린 시절에 그랬듯) 원래의 수/지평선을 대신할수/지평선을 수도 없이 머릿속에 그린다. 내리닫이창살이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수/지평선들이 온갖 방향으로 확장을거듭한다. - P24

내 오른쪽 눈 뒤에는 올이 굵은 삼베 휘장이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내 왼쪽 눈 뒤에는 거울이 세워져있다. 물론 나는 삼베 휘장을 볼 수도 없고 거울을 볼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눈길을 주는 사물들은 그 차이를너무도 강렬하게 반영한다. 삼베 휘장 앞에서 사물들은무심한 표정을 바꾸지 않지만, 거울 앞에서는 유희를시작한다. - P26

5월 30일. 그 무엇에 비할 바 없이, 예사롭지 않게파리의 하늘이 파랗다. 전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는전나무의 솔잎 뭉치들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자그마한하늘의 파편들이 나무에 핀 파란 꽃이라는 인상을받는다. 참제비고깔의 꽃만큼이나 파란 빛깔의 꽃으로환한 전나무들! - P28

수은水銀과도 같은 재빠른 빛이 이제는 윤기 감도는젖빛으로, 영롱한 진주의 빛으로 바뀌었다. 바뀌었다해서 결코 빛이 사물에게 부여한 ‘최초의 존재‘라는느낌이 그만큼 줄어든 것은 아니다. 마치 빛과 빛이 비춰주는 사물이 동일한 순간 나의 시각에 도달한 듯.
(이것이 바로 시각의 비밀 아닌가.) - P30

내일이면 수술을 하고 나서 삼 주일이 된다.
그동안의 변화된 시각적 체험을 요약하자면,
페르메이르가 그린 그림의 정경 한가운데에 어쩌다갑자기 들어와 있게 된 것 같다 말할 수 있겠다. 예컨대,
마치 <하녀>라는 그의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것같이느껴진다. 당신의 눈에는 지금 사물들과 식탁 위의 빵이,
소녀가 단지에 담긴 우유를 식탁 위에 있는 항아리에따르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바라보고 있는 그 모든 것의 표면은 이슬 같은 빛의방울로 덮여 있을 것이다…. - P32

이른 아침, 이슬 같은 빛의 방울들. - P34

더욱 끈질기게 백내장이 드리워져 있고, 더욱 뿌연 내 오른쪽 눈에대한 수술 (2010년 3월 26일)이 있고 난 다음의 추가 기록들. - P36

이번에는 빛의 돌진이 한 조각 한 조각 나뉘어짚이기보다는 좀 더 총체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사물들이빛에 명확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기보다는 만물이빛에 휩싸여 있음을 예민하게 의식한다. 공기의 입자들이빛의 입자가 되어 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며 헤엄을치듯, 우리는 빛 속에 살며 그 안에서 움직인다. - P38

새롭게 발견된,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고요하고말이 없다. 시끄러운 것들은 그늘과 어둠이다.

빛이 당신의 등에 손을 얹는다. 아주, 아주오래전부터 빛의 어루만짐을 의식하고 있기에, 당신은빛의 손길에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는 당신이 처음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그 무엇이다. - P40

백내장을 제거함은 특별한 형태의 기억상실증을제거하는 것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이제 당신의 눈은최초의 것들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의미에서 백내장 제거 수술이 있은 다음 두 눈이체험하는 것은 시각의 르네상스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 P42

수술을 하고 이틀이 지난 오늘, 나는 하얀 종이 위에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하얀 종이는 내가그동안 익숙하게 보아 왔던 그 어떤 종이보다 더 하얗다.
불현듯 나는 내 어린 시절 엄마의 부엌으로 돌아간다.
부엌의 식탁에, 설거지통에, 선반 위에, 이만큼이나 하얀것들이 있었다. 종이의, 도자기의, 에나멜의 하얀색에는이 종이가 오늘 떠올리게 하는 미래의 희망이 담겨있었다. - P44

내 말이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밝혀보자. 명백히 어린 시절 이후 수십 년 동안 나는 이만큼하얀 종이를 수도 없이 보아 왔다. 하지만 내가 의식하지못하는 사이에 하얀 종이의 하얀색은 조금씩 그 빛을잃어 갔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얀 종이라 부르던 것은조금씩 더 침침해졌고, 그리하여 하얀 종이가 아닌것으로 바뀌었다. 이를 논리적으로 깨닫는 일, 그것이오늘 오후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종이의하얀색이 내 눈으로 몰려왔을 뿐이고, 내 두 눈은잃어버린 옛 친구를 맞이하듯 그 하얀색을 끌어안았을뿐이다. - P46

나는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글을 쓰고 있다. (짙은파란색이나 짙은 초록색, 짙은 갈색은 물론이고, 짙은회색과도 선명하게 구분되는 색깔인) 검은색은 어느색깔보다 더 무게를 얻어, 더욱 무겁다. 다른 색깔들은타오르거나 움츠러들거나 파고들지만, 검은색은어딘가에 쌓여 있는 침전물 같아 보인다. 그것도무언가의 맨 위에 놓여 있는 침전물. 이것이 검은색의무게와 연결된다. 흑단이든 흑요석黑曜石이든 크롬철광이든, 자연의 물질이 지닌 검은색들은 결코 순수한검은색이 아니다. 다른 색깔들이 그 안에 숨어 있게마련이다. 침전물 같아 보이는 검은색들은 예외 없이인공적인 것이다. - P48

수술 전에 나는 색채를 담아 한 송이 꽃을 그린 적이있었다. 그때 내가 그린 꽃은 파란색의 팬지였다. 수술후에 나는 똑같은 꽃을 다시 한번 그릴 생각으로 동일한 작업을 시도했다.


어느 쪽 그림도 남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둘다내눈에 비친 꽃의 모습에 대한 내나름의 해석을 담은 것이다. 그것들이 내 눈의 망막에서 직접 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둘 사이의 차이가 백내장을 제거하기 전에 내가 감지한 것과 제거한 후에 내가 감지한 것 사이의 차이와 유사해 보인다. - P50

이제 그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자. 이에 앞서실제로 울리고 있는 소리의 떨림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일련의 음악적 선율을 충실하게 기록하려는 사람의 손길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첫번째 그림에서나는 그와 같은 나 자신의 손길을 감지한다. 두번째 그림에서는 음악적 선율의 떨림에 상응하는 빛과 색채의 떨림이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감지한다.


꽃의 색깔에 대한 식물학적 이치가 변하지 않듯, 꽃의 조직과 형태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색깔의 친밀도다. 꽃의 색깔이 내 눈앞에서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P52

먼젓번 수술을 받았을 때와는 달리, 이번 수술을 받고 난 다음에는 한두 시간 후부터 수술받은 눈이 아프기 시작했고 통증이 하루 정도 계속되었다. 약한 진통제를 복용하자 통증은 상당히 견딜 만해졌다. 이작은 통증을 뚫고 지나가는 길은 새로운 시각의 세계를향한 나의 여정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각을 얻는 문턱에 이르는 순간 나는 고통에서 벗어났다. - P54

백내장을 제거하기 위한 외과적 치료는 눈이 잃어버렸던 타고난 능력의 상당부분을 눈에게 되돌려준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은 은총과 혜택임은 분명하지만 이와 동시에 예외 없이 일정한 정도의 노력과 인내를요구한다. 그리하여 나에게 새로운 시각 능력은 단순히 타고난 능력에 해당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취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론적으로 말해, 치료를 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그 공이 돌아갈 성취다. 하지만 이는 또한 어느 정도 내 몸에게 그 공이 돌아갈 성취이기도하다.


고통이 나에게 이를 감지케 했다. - P56

사전을 펼쳐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다 보면, 당신은 특정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재확인하거나 처음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의 정확한 의미뿐만 아니라 언어의 다양성 한가운데 그 단어가 차지하는 정확한 위치까지도.


양쪽 눈에서 백내장을 제거한 다음 내가 내 눈으로 보는 세계는 이제 사물의 엄밀성에 대해 내가 참조할 수있는 사전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사물 그 자체뿐만아니라 다른 사물들 사이에서 그 사물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까지 참조할 수 있는 사전과도 같은 그 무엇이된 것이다. - P58

나는 사물의 상대적 크기와 규모를 한결 더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작은 것은 더욱 작아지고 큰 것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무한한 것은 더욱 무한해졌다.
사물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해서도 이는 사실이다. 좁은 공간은 더욱 좁아졌고, 넓은 공간은 더욱 넓어졌다. 이는 시각의 섬세함 때문이다. 하늘 어느 한 방향으로 번지는 잿빛의 정확한 강도, 손에 힘을 뺐을 때 손 마디마디에 주름이 잡히는 모습, 집에서 저 먼 곳으로 보이는 푸른언덕의 굴곡, 이 모든 섬세한 시각의 영상들이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게 되었다. - P60

경이롭게도, 존재하는 것들의 너무도 당연한다양성이 나에게 되돌아왔다. 드리워진 내리닫이 창살이 제거된 다음 두 눈은 되풀이하여 계속 놀라움에 전율한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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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해안선? 정말로, 정말로 아름다운 해안이긴 하지만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천연 항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들은? 강 또한놀랍도록 멋지지만 실제로 대다수는 무언가를 운송하는 데는 하등의쓸모가 없다. 이 점을 감안한다 해도 거의 10킬로미터마다 나타나는폭포는 또 어떤가. 그런데 문제는 아프리카가 정치적, 기술적으로 서유럽이나 북미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긴 목록에서 이제 겨우 두 개만 꼽았다는 것이다.
사실 아프리카 말고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지역은 많다. 하지만 이곳만큼 성공에서 뒤처진 경우도 흔치 않다. 거의 5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한 땅. 그렇게 일찍 출발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통찰력 있는 저자 중 한 명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200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예리한 분석에서 "이는 부 - P221

랴부랴 출발한 제1주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그 첫 주자들은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 대서양에 의해 분리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전 지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고립된 채 발전했다. 인류의 사상과 기술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발전했지만 정작 북쪽에서남쪽으로는 전달되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거대한 대륙이니만큼 여러 다양한 지역적 특성과 기후, 문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공통된 것은 그들 서로는물론 바깥 세계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정도는 덜하지만 과거의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 P222

이 거대한 대륙의 지리는 여러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기본이 되는 것은 아프리카를 3분의 1의 상부와, 나머지 3분의 2의하부로 나눠보는 것이다.
우선 3분의 1을 점하는 상부는 북아프리카의 아랍어 사용 국가들이 차지하는 지중해 연안부터 시작된다. 해안평야 지역은 미국에 버금가는 크기인데 이내 세계 최대의 건조 사막인 사하라 사막으로 바뀐다. 사하라사막 바로 아래로 사헬Sabel 지역이 펼쳐진다. 반건조지대인 사헬은 바위가 산재하는 모래가 많은 지역이다. 최대 폭이 4천8백 킬로미터가 넘으며 대서양 연안의 감비아에서 시작해 니제르, 차드를 거쳐 홍해의 에리트레아까지 뻗어 있다. 사헬이라는 명칭은 아랍어에서 해안을 뜻하는 사힐sahil에서 유래했다. 이를 사하라라는 광 - P223

활한 모래바다의 해안이라는 의미로 치환해 보면 이 지역 사람들의삶의 방식을 유추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이슬람의 영향이 줄어드는 또 다른 종류의 해안이 된다. 지중해에서 사헬에 이르는 지역에거주하는 주민들의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그 남쪽에는 보다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사헬의 남쪽, 즉 아프리카의 나머지 3분의 2를 차지하는 하부 지역은 거의 전 영역에서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토양도 한결온화해진 덕분에 녹색 식물지대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콩고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면 정글이 된다. 동쪽 해안인 우간다와 탄자니아에는 대규모 호수들이 있는 반면, 서쪽의 앙골라와 나미비아에는 사막이 훨씬 넓게 펼쳐져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끝자락에 이르면 기후는 다시 지중해성으로 바뀐다. 상부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튀니지의 최북단에서 거의 8천 킬로미터나 내려왔는데도 말이다. - P224

아프리카 대륙의 강들 또한 문제다. 대개 고지대에서 발원한 강들이 가파르게 꺾여 내려오기 때문에 배를 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일례로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장대한 잠베지 강을 보자. 길이만도장장 2,735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강을 마주한 관광객들은 하얗게 부서지는 급류와 빅토리아 폭포에 매료될 게 분명하지만 정작 이 강은교역로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잠베지 강은 여섯 개 나라를지나는데 모잠비크에서 인도양과 합쳐질 때는 무려 해발 1천4백여미터의 높이에서 흘러내린다. 이 강의 일부에서는 얕은 배를 띄울 수는 있지만 이 부분마저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물자 수송은 제한돼 있다. - P225

런던, 파리, 브뤼셀, 리스본 같은 대제국의 수도로 돌아온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대략적인 등고선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놓고 그 위에제멋대로 선(국경선)들을 그려 넣었다. 아니, 그곳에 대한 보다 공격적인 접근을 위해 선들을 그곳에 놓아두었다고 해야겠다. 그들은 이 선들 사이에 중앙콩고라든지 오트볼타 같은 지명을 적어 넣고 이곳을나라들이라 불렀다. 이 선들에는 정작 그 선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느끼는 것, 또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고자 했던 것들보다는 강대국의 탐험가들, 군대, 사업가들이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갔는지가 담겼을 뿐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들이만들어 놓은 지정학과 자연이 남겨준 발전을 가로막는 천연 장벽에 - P228

얼마간은 발목이 잡혀 있는 형편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출발하여 그들은 현대적 가정을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활발하게 경제와연결시키기도 했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56개 국가들이 있다. 20세기 중반에 불어닥친독립운동의 열기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이래로 지도의 선들사이에 적혀 있던 몇몇 나라 이름들도 고쳐졌다. 이제 로디지아는 짐바브웨로 불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경선들 대부분은 그대로다. 요컨대 유럽인들이 인위적으로 그 지역을 분할하며 그려놓은 선들이지금도 그대로 남아 국경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러한 분할은 유럽의 식민주의가 아프리카 대륙에 남긴 다수의 식민 유산 잔재중 하나다. - P229

수단, 소말리아, 케냐,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말리말고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민족 갈등은 유럽인의 지리에대한 생각이 아프리카의 인구학적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점을 반증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늘 분쟁이 있어 왔다. 예컨대 줄루족과 호사족은 유럽인들을 처음 구경하기 훨씬 이전부터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주의는 이 차이를 인위적인 틀 안에서 해결하도록 강요했다. 다시 말해 민족 국가라는 유럽인의 개념으로 그들을 무조건 한 국가의 국민으로 몰아놓으려 한 것이다. 오늘날 목격되는 내전의 양상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민족들을 한 국가 안에서억지로 단일 민족으로 묶으려던 식민주의자들과 그들이 쫓겨난 뒤에새로 부상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한 신진 지배 세력, 그리고 그에수반된 폭력의 결과물이다. - P229

이 전쟁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줄잡아 1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고질병과 굶주림으로 6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결과를 낳았다. 특히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희생자들의 거의 절반이 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최악의 전투는 잦아들었지만 이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래 최악의 분쟁의 본산이면서 언제 또 발발할지 모를 전면전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의 전면적인 평화유지 임무가 여전히 요구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평화롭게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까지는 단지 분열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은닭도 없이 달걀을 만들어 냈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논리적 부조리가 반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 P234

아프리카에서 자원은 저주이면서 축복이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것은 축복이지만 그로 인해 오랜 세월 외부인들의 약탈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는 저주다. 하지만 보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 자원의 공유를 주장할 수 있게 되자 이제 다른 나라들도 훔치기보다는 투자를 하는 편을 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는 그 혜택이 별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천연 광물자원에 더해 아프리카는 풍부한 수자원이라는 축복 받았다. 비록 많은 하천들이 교역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수력 발전용으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점 또한 잠재적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 P235

있다.
장장 6,671 킬로미터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나일 강은 그 유역에 근접한 것으로 여겨지는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케냐, 르완다, 수단, 탄자니아, 우간다 그리고 이집트를 포함한 10개 나라들에 영향을 미친다.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5세기에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는 나일 강이고, 나일 강은 이집트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런데 나일강에서 온전히 배로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이집트의 경우 장장 1,126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이는 이집트에게는 부담이 된다. 즉 유사시를 대비할 때 보급로가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 이집트 정부에게는 걱정거리인 것이다. - P235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지구상에서 중국인들이 안 가는 곳은 없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들은 이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대륙 구석구석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은 원유의약 3분의 1을(여기서 발견되는 귀금속도) 아프리카에서 들여오는데 이는곧 중국인들이 일단 아프리카에 들어와서 터를 잡은 이상 쉽게 나가지 않을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은 유럽과 미국의 석유 회사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훨씬 많이 개입하고 있지만 중국이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라이베리아에서는 철광석을 찾아 나서고,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에서는 구리를 캐고, 역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코발트도 캐가고 있다. 또한 중국은 케냐의 몸바사 항만 개발 사업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케냐의 석유 자산을 겨냥한 보다 원대한 계획에도 손을 댔는데 이 사업은 상업적으로 가시화돼 가고 있다. - P243

두 나라 모두 소말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아프리카연합 African Union의 중추 세력인데다 유엔 또한이슬람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 두 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라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비즈니스 측면에서 자신들이 중국에 뒤처지는 입장임을 왜 모르겠는가.
중국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석유, 광물, 귀금속, 그리고 시장이다.
이는 정부 대 정부 관계로는 공평하지만, 대형 공사에 투입되는 지역주민들과 중국인 인력 간에 긴장이 증가하는 현상 또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베이징 정부로 하여금 그 지역 정세에 그만큼더 많이 관여하게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소규모나마 여러 나라에서군사력이 요구될 수도 있다. - P247

남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에게 바깥 세계와 사업을 한다는 것은 프리토리아나 블룸폰테인, 케이프타운과의 거래를 의미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국의 천연자원과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서 인접국들을수송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이는 곧 이 나라에 양방향 철도가 있으며이스트런던, 케이프타운, 포트엘리자베스, 더반의 항만들로부터 쭉쭉 뻗어나가는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도로망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수송망은 짐바브웨 보츠와나, 잠비아, 말라위 그리고 탄자니아를 통해 북쪽으로 뻗어 올라가서 콩고민주공화국의 카탕가 지역과동쪽으로는 모잠비크까지 뻗어나간다. 중국이 건설한 카탕가에서 앙골라 해안에 이르는 새 철도가 콩고민주공화국의 교통량을 흡수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기존 수송 시스템에 어느 정도 도전이 되겠지만 그래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갖고 있는 이점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P248

제국주의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 남아프리카를 지배한다는것은 희망봉을 지배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의해상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현대 해군은 맘만 먹으면아프리카 남단을 훨씬 넘어 항해할 수 있지만 여전히 희망봉은 세계지도상에서 핵심적인 부동산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아프리카대륙의 하부에서 핵심적인 존재다.
금세기 아프리카에서는 새로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싸움은 두 개의 장에서 펼쳐진다. 먼저 자원 쟁탈전의 경우 익히알려진 대로 바깥 세계의 관심과 참견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내부패권 쟁탈전이 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할 수 있는 한 신속하게 한 자리라도 차지하려고 한다. - P249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는 부룬디, 케냐, 르완다, 우간다, 탄자니아가 속해 있는 동아프리카공동체와는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기구다. 탄자니아는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의 회원국이기도 한데 나머지 동아프리카공동체 회원국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미소를 보내는 탄자니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호수 지역과 그 너머까지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탄자니아를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방군은 유엔의 지휘를 받는 1개 여단을 콩고민주공화국에 공식적으로 주둔시키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광물 부국에서 얻어지는 전리품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정치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행동은 결국 누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주도권을 행사할지를 두고 저마다 생각이 다른 우간다, 부룬디, 르완다와의 경쟁을 촉발시켰다. - P250

과거 아프리카에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 지역의 지리적 조건이 그렇게 만들었고 이후 들어온 유럽인들은 그들 멋대로 오늘날의 국경선 대부분을 설계했다. 그리고 이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대도시들은 확장돼 가고 있는 아프리카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란긴밀하게 연결된 현대화된 세계를 끌어안는 길뿐이다. 물론 갖가지문제점들이 목격되기는 하지만 아프리카는 이를 딛고 성큼성큼 나아 - P250

가고 있다.
교역을 가로막았던 강들은 이제는 수력 발전소로 거듭나고 있다.
대규모 식량 생산을 유지하려 고군분투하던 땅에서는 광물과 석유가생산되면서 일부 국가들이 부유해지고 있다. 비록 그 부가 전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는 아닐지라도 대체로 보건과 교육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빈곤율또한 떨어지고 있다. 영어사용권이 지배하는 세계 경제 체제에서 아프리카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많은 것 또한 유리하게 작용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은 괄목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 P251

무엇의 중간Middle인가? 어디로부터의 동쪽East인가? 이 명칭은 유럽인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말하자면 유럽인들자신이 결정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지역을 바라보는 그들 자신의 시각인 것이다. 그들은 잉크로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선들은 유례없이 인위적인 국경선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그으려는 시도가 피를 불러오고 있다.
2014년, 폭발과 참수 장면을 담은 중동발 동영상이 전 세계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겉만 번지르르한 IS의 선전용 비디오에는 불도저로 이라크·시리아 국경의 모래를 쓸어버리거나 밀어붙여서 없애버리려는 장면도 있다. 사실 이 국경은 높은 모래둔덕에 불과하다. 아닌 게 아니라 모래를 밀어버리면 국경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게된다. 지금의 것도 이론상의 국경일 따름이다.  - P255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중동은 지금보다 넓었고 국경선들은 훨씬 적었다. 그 국경이라는 것들도 대개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었다. 공간은 느슨하게 나눠진 상태였고 지리와 부족, 종교가 통치하고 있었다.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시도 또한 없었다.
보다 넓은 중동The Greater Middle East은 서쪽 지중해부터 동쪽의 이란 산악지대에 이르는 1천6백 킬로미터 지역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오만의 아라비아 해 연안부터 시작해서 저 멀리 흑해에서 끝나는 남북의 길이는 3천2백 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지역에는 광활한 사막과오아시스, 눈 덮인 산들, 긴 강, 대규모 도시들 그리고 해안평야가 있다. 게다가 공업이 발전했거나 현재 발전 중인 나라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막대한 천연자원도 매장돼 있다. 바로 원유와 천연가스 말이다. - P256

어떤 지역 출신의 사람이 같은 부족의 친척을 만나려고 한 지역을 건너가려 하는데 서류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먼 마울의 제3자에게 보증을 받으라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는 이치에 맞지않는 일이었다. 서류를 발급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제 이곳은 두 지역으로 나눠졌고 주민들을 위해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외국인들의말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는 수세기 동안 그 지역에서 이루어져 온 삶의 방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1299-1922년)은 이스탄불의 통치를 받았다. 제국의 전성기 때는 영토가 비엔나의 초입에서 아나톨리아를 건너 아라비아로내려가 인도양에까지 이르렀다. 제국의 권력은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동안 오늘날의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그리고 이란 일부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에까지 뻗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지역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이름을 붙이려는 수고를 딱히 하지도 않았다.  - P257

유럽 식민주의는 아랍인들을 민족 국가의 형태로 묶어서 그들의 통치자들이 자신의 출신 부족과 자신이 속한 이슬람 종파에게만 호의를 베풀게 하는 유산을 남겼다. 이들 독재자들은 유럽인들이 그어둔인위적인 선들 사이의 영토 전체를 자신들이 통치할 수 있는 위임장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라는 구조를 이용했다. 그 선들이 역사적으로올바른지 혹은 어느 날 느닷없이 함께 묶여져 버린 서로 다른 부족들과 종교들에게 공정한지 등은 아예 무시한 채 말이다.
그 결과가 야기한 분쟁과 혼란을 이라크만큼 적절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시아파 가운데서도 신심이 더 깊은 이들은 수니파가이끄는 정부가 시아파의 성지인 나자프와 그들의 순교자인 알리와후세인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카르발라를 지배 통치하는 것을 결코용납하지 않았다. 이러한 집단 정서의 근원은 수세기도 넘는 옛 시절로 올라간다. 이라크 국민으로 불린 고작 수십 년의 세월이 그 기나긴감정을 희석시킬 순 없었다. - P261

많은 분석가들은 오직 강력한 인물만이 이 세 지역을 하나로 묶을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라크에는 강력한 인물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국민들이 전혀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두려워서 얼어붙은 것이었다. 독재자들의 시야가 미치지않는 곳에서는 국가의 선전도 사람들의 마음을 거의 끌지 못했다. 철두철미하게 박해를 받아온 쿠르드족들,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에서 온 수니파 파벌의 지배, 그로 인해 1991년에 일어난 반란의실패에 이어 벌어진 시아파에 대한 대량 학살.
맨 먼저 떠나야 했던 측은 쿠르드족이었다. 독재자 아래에서 힘없는 소수 민족들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들은 때로 자신들의 권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선전을 믿는 시늉이라도하려 한다. 그 예가 이라크의 소수파 기독교도들과 극소수의 유대인들이었다.  - P262

이라크 내에 거주하는 5백만 명의 쿠르드족은 대개 북부와 북동부인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그리고 다후크 외곽지대에 몰려 있다. 이곳의 지형은 주로 언덕과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거대한 초승달 모양을띄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형제 덕분에 독가스를 분사한 1988년의 알안팔 작전으로 대표되는 부단한 문화적, 군사적 공격에도 불구하고쿠르드족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었다. 당시 8단계 작전동안 후세인의 군대는 포로를 잡아들이지 않았다. 이 말은 곧 정부군이 지나가는 지역에서 15세부터 50세까지의 남자들은 눈에 띄는 대로 죽였다는 뜻이다. 줄잡아 10여만 명의 쿠르드족이 살해당했고 그들이 거주하던 마을의 90퍼센트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 P263

이곳은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는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로 진입하기 위해 식량을 얻는 정기 기착지로 이용한다. 다른 도시들은 주로 수니파 무슬림의 영향 아래 있다. 일례로 북쪽의 트리폴리는 주민의 80퍼센트가 수니파로 추산되는 한편 적잖은 알라위파 소수 민족도 거주하고 있다. 바로 옆 동네인 시리아에서 수니파와 알라위파가 야기하는 긴장 때문인지 이곳 역시 산발적인 마찰이 벌어지곤 한다.
레바논은 얼핏 통일된 국가로 보이지만 실은 지도상에서나 그렇게보일 뿐이다. 지도상의 묘사가 얼마나 허상인지는 베이루트 공항에도착해서 단 몇 분만 지나면 알게 된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시내 중심부로 가다 보면 시아파가 득세하고 있는 시의 남쪽 외곽 지역을 지나는데 아마도 이 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헤즈볼라 민병대가 여기저기 정찰을 서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레바논군대는 종이 위에서나 존재한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벌어진 또다른 내전의 와중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지역 민병대에 가입하는 바람에 레바논 군대는 실질적으로 와해된 상태다. - P268

시리아는 또 다른 다신앙, 다종파, 다종족 국가다. 그것들을 묻는 순간부터 파가 나눠지는 전형적인 분열 국가인 이 나라 주민의 다수는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니파 무슬림들이지만 다른 신앙을 섬기는 소수파들도 꽤 있다. 2011년까지는 다양한 공동체가 마을과 도시, 시골등지에서 어울려 살았지만 특정 집단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독자적인지역들도 있었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지방에서는 늘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하나이며 우리 사이에 분열은 없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이름, 출생지, 또는 거주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배경이 되고 따로 분리된 하나를 다수 속으로 밀어 넣는 일 또한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진다.
프랑스인들은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영국이 실행한 분할과 통치의선례를 따랐다. 당시에는 알라위파를 누사이리파라고도 했는데 다수의 수니파는 이들을 무슬림으로 여기지 않았다.  - P269

알카에다와 보다 최근에 탄생한 IS 같은 집단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식민주의에 대한 굴욕감, 이어 등장한 범아랍 민족주의의 실패가 이러한 아랍 민족 국가의 확장세로이어진 것이다. 아랍 지도자들은 번영도, 자유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대신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슬람주의가 울리는 경고음은 경건함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압제가 뒤범벅된 이 지역에서 많은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외침은 이슬람이제국을 통치하던 황금시대, 곧 당시로선 최첨단의 기술, 예술, 의학,
통치 체계를 자랑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이것들은 중동 전역에널리 잠재해 있는 타인에 대한 해묵은 의심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 P272

그런데 보다 심각한 위협은 레바논보다는 더 큰 인접국인 시리아로부터 온다. 역사적으로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늘 해안에 바로진출하기를 원해 왔고 실제로 그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전부터 레바논을 시리아의 일부로 여겨왔고(실제로도 그랬지만) 2005년에가자 지구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여전히 아쉬워하고 있다. 만약 바다에 이르는 길이 봉쇄될 경우 시리아 입장에선 골란고원을 지나 지중해 방향인 갈릴리 호수 주변의 구릉지를 따라 내려가는방법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골란 고원은 1973년 전쟁당시 시리아의 공격을 받은 뒤부터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고, 또한이스라엘 주민들의 주요 거주지로 이어지는 연안 평야지대를 돌파하다가는 대규모 반격에 부딪힐 것이다. 그런데 이를 미래 어느 날의 일로만 여길 수만은 없다. 물론 중단기적으로는 지극히 가능성이 낮아보이고 아예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시리아 내전이 지속되는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 P286

아직 또 다른 문제가 중동에 남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란이다. 특히핵무기라는 사안에 이르면 보다 심각해진다.
일단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다. 인구 다수가 파르시어를 쓰는 거대 국가다. 이란의 영토는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을 합친 것보다크다. 물론 이 세 나라 인구를 합치면 2억 명에 이르지만 이란의 인구는 7천8백만 명에 불과하다. 주거 가능 지역이 한정된 탓에 인구 대다수는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대규모 사막들과 소금 평원으로 이루어진 내륙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차를 몰고 이 지역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가라앉을 정도인데 하물며 이 안에서살려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 P287

이란의 북서부에는 유럽이면서 아시아이기도 한 나라가 있다. 바로아랍 땅의 경계를 차지하고 있는 터키다. 그런데 이 나라 국토 대부분이 중동 지역에 속해 있다고 해서 꼭 아랍 국가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터키는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터키는 자신들의 북쪽과 북서쪽에 있는 이웃들에게 진정한 유럽으로 받아들여져 본 적이 이제껏 없었다. 만약 터키를 유럽으로 본다면유럽의 경계는 광활한 아나톨리아 평원을 훨씬 넘어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이르러서야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터키가 유럽의 일부가 아니라면 대관절 터키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은 2010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됐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리고 터키는 1970년대부터 이제는 유럽연합이 된 유럽 기구의 회원국이 되기 위해 부단히 도전해 오고 있다.  - P292

책임질 만한 제도가 전무하다시피 한 빈곤한 사회에서 권력은 민병대와 정당의 형태로 위장한 불한당들에게 맡겨진다. 권력을 놓고 싸우는 그들에게 서구의 순진한 동조자들이 때로 환호를 보내는 동안에도 죄 없는 사람들은 숱하게 죽어갔다. 머지않아 리비아, 시리아,
예맨, 이라크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그런 식의 일이 벌어질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자국의 에너지 수입 요구가 감소함에 따라 이 지역에서 정치적, 군사적 투자의 규모 또한 줄여가려 한다. 미국이 손을 뗀다면중국이, 보다 적게는 인도가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할지 모른다.
중국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등지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 세계 차원에서의 시나리오는 강대국들 수도에 있는통치자들의 관저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사람들의상상력과 요구, 희망, 필요 그리고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 게임이 펼쳐질 것이다.
사이크스-피코 라인은 무너졌다. 비록 모양은 다를지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피를 수반하는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다. - P301

인도와 파키스탄은 적어도 한가지 사안에서는 의견을 같이할 수 있다. 누구도 상대방이 근처에 있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것. 3,057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는 늘 껄끄러운상대다. 두 나라는 저마다 적대감과 핵무기를 한 보따리씩 안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원치 않는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10억이넘는 인구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인도 인구가 거의 10억 3천만 명에 달한다면 파키스탄은 1억 8천2백만 명에 달한다. 가난하며, 불안정하고, 분열된 파키스탄은 스스로를 인도와 반대 지점에 놓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인도 또한 파키스탄에 강박관념이 없지는 않지만 보다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정의하는편이다. 이 가운데는 성장하는 경제와 중산층의 확대라는 신흥 강국의 모습도 있다. 이처럼 인도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파키스탄을 바 - P306

라보면서 경제면 경제, 민주주의면 민주주의 등 모든 지표에서 파키스탄을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국은 네 번의 큰 전쟁을 포함해 수차례 자잘한 접전을 벌였다. 오늘날에도 양측의 감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14년 말 <인디언디펜스 리뷰Indian Defence Review》에 한 파키스탄 장교의 발언이 실렸다.
그가 한 파키스탄이 인도를 천여 개의 조각으로 찢어서 피를 보게 할거라는 말은 이후에도 자주 인용되는데 인도의 군사 전문가 아마르지트 싱 박사는 이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다른 이들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나 내 의견은 이렇다. 인도는 대가가 큰 파키스탄의 핵 공격에 맞서야 한다. 천 개로 찢어져서 허구한 날 굴욕과 수치와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 현실화되지않을 가능성에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차라리 수천만 명이 희생되라도 당당히 맞서서 저들을 제압하는 편이 낫다." - P307

다양한 문명들이 갠지스, 브라마푸트라, 인더스와 같은 강을 따라발전했다. 오늘날에도 인구 집중 지역은 이들 강 유역을 따라 점점이분포돼 있다. 시크교도의 본거지인 펀자브 주나 타밀 나두어를 쓰는타밀 주처럼 특성이 다른 지역들도 이와 같은 지리적 구분에 근거하고 있다.
인도 아대륙에는 수세기에 걸쳐 숱한 세력들이 침입해 왔지만 이곳을 진정으로 정복한 세력은 없었다. 현재도 수도인 뉴델리가 진정으로 인도를 통치한다고 할 수 없으며 앞으로 보겠지만 뉴델리보다도훨씬 규모가 큰 이슬라마바드도 파키스탄을 온전히 통치한다고 볼수 없다. 인도 아대륙을 단일한 지배력 밑에서 하나로 묶는 데 가장성공을 거둔 세력은 무슬림이겠지만 결국 이슬람조차 언어, 종교,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 P309

당시양측은 핵무기로 무장을 한 상태였고 미국이 외교적으로 개입해서양쪽의 대화가 개시되기 전까지 몇 주 동안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않았지만 일촉즉발의 핵전쟁의 암운이 일었었다. 두 나라는 2001년또 다시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적이 있다. 이렇듯 인도와 파키스탄이 마주보는 국경에서는 여전히 산발적으로 총성이 울린다.
군사적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를 겨누고 있는 적수인 건 분명하다. 양측은 방어를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상대를 믿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국경지대로 부대를 집결시키는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갈 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관계가 앞으로도 좋아질 일은 별로 없겠지만결정적으로 카슈미르라는 가시만 없다면 화해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내분을 겪는 파키스탄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는 인도로서는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파키스탄대로 2008년 뭄바이 학살처럼 인도 내의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해서라도 인도 내부를 잠식해 들어갈 궁리를 할 것이다. - P318

파키스탄과 아프간 탈레반과의 협력 관계는 어느 면에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탈레반 구성원 대다수가 파키스탄 북서 국경의 다수 민족인 파슈툰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탈레반과 파슈툰족은 결코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둘 사이에 그어진 경계 또한 서구인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여긴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경계는 듀랜드 라인Durand Line으로 알려져있는 선이다. 1893년 당시 영국령 인도 정부의 외교장관이었던 모티머 듀랜드가 이 선을 긋자 아프가니스탄의 국왕이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1949년 아프간 정부는 이 경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식민시대의 잔재라며 이 조약의 무효를 선언했다. 그날 이후 파키스탄은 아프간 정부가 마음을 바꾸도록 줄곧 설득해 오고 있지만 아프간은 꿈쩍도 않고 있다. 그리고 양쪽 산악지대에 사는 파슈툰족은 그 경계를무시하면서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관계를 여전히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P322

파키스탄 정부는 결과적으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가 희생된 이중 게임을 했다는 것을 줄곧 부인해 왔다. 아보타바드(빈라덴이 최후를 맞았던 도시 이름) 작전 이후에도 파키스탄 정부는 이중 게임을 한 것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지만 현재 그 말을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비록 당시 효용가치가 제한적이었다 해도 미국이 최우선으로 찾던 빈 라덴을 도울 생각을 가진 특정 일파가 파키스탄 고위층에 있었다면 그들이 향후 아프가니스탄의 정국을 장악할 야심을 지닌 집단들을 지원하리라는 것 또한 자명했다. 문제는 그 집단들의 파트너들이 파키스탄에 있었으며 이들이 파키스탄의 정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혹을 떼기는커녕 혹을 붙이는 셈이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아프간 탈레반의 자연스러운 번식물이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탈레반 모두 주로 파슈툰족 출신인데다 비파슈툰 세력의 지배를 용인하지 않는다.  - P328

양측이 마찰을 일으킬 만한 사안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 으뜸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티베트다. 주지하다시피중국은 티베트를 원한다. 인도가 티베트를 손에 넣는 것을 막고 또한티베트가 독립하게 됐을 때 인도가 그곳에 군사 기지를 설치하고 고지대를 호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도 있다.
중국의 티베트 합병에 대한 인도의 대답은 달라이 라마에게 거처를마련해 주고 히마찰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에 티베트 독립운동의본거지를 허용한 것이었다. 인도 입장에서 이는 장기 보험을 들어둔거나 다름없다. 다만 현금화할 기약 없이 돈만 꼬박꼬박 불입하는 형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현 상태로는 티베트의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비록 수십 년 후가 되더라도 그 불가능한 일이 실현된다면 인도는 티베트 정부의 타향살이 시절에 누가 그들의 친구였는지 티베트에게 일깨울 만한 위치에 있게 된다. - P332

인도는 마오쩌둥주의가 지배하는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조종을 받는 네팔을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돈과 무역이 이 지역에서영향력을 사들이고 있다. 사실 요즘 같은 시절에 중국에게 마오쩌둥주의가 무슨 대수냐 싶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티베트에 장기적인보험성 정책에 지불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인도에게 신호를 보낼 양으로 네팔에 신경을 쓴다. 티베트에 인도가 개입하면 중국 또한네팔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넌지시 알리면서 말이다. 결국 인도가 인접한 소국들에 신경을 더 써야 하면 할수록 그만큼 중국에 덜 집중할수밖에 없다. - P333

세계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런데중국의 약진에 너무 놀란 나머지 우리는 인접 국가인 인도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도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은 국토와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한 나라다. 또 6개국(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면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영토 안에는 14,484킬로미터에 이르는 항행가능한 수로를 보유하고 있으며 물 공급도 나쁘지 않고 경작지도 넓은 편이다. 또한 주요 석탄 생산국이며 원유와 가스도 웬만큼은 매장돼 있다. 비록 앞으로도 이 세 가지 모두를 계속 수입해야 하고 실제로 연료와 난방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이 나라 재정을 소모시키는요인이 되고는 있지만 말이다. - P335

더불어 인도는 미얀마, 필리핀, 태국과의 관계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데 보다 주목할 점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패권이 강화되는것을 감시하기 위해 인도와 베트남, 일본이 협력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상황에서 인도는 이제껏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던 한 국가를 새로운 동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미국이다. 수십 년간인도는 영어 악센트만 다르고 돈만 많을 뿐이지 새로운 영국이나 마찬가지라며 미국을 마뜩찮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한층 자신감을 얻은 인도는 점점 다극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미국과도 협력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이런 가운데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은 인도공화국 선포일에 거행된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인도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미국산 C-130 허큘리스 수송기들과C-17 글로브마스터 공군 수송기를 러시아에서 도입한 탱크들과 함께주도면밀하게 선보였다. 두 거대 민주 국가들은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중이다. - P336

아이스맨이 힘차게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힘은 누구 것인가? 러시아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만큼 강력한 존재는 없으며 그 혹독한 조건들의 방해를 러시아만큼 잘 대비하고 있는 나라도 없다. 다른 나라들은 뒤에 처져 있다. 심지어 미국조차 러시아를 따라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날 점점 뜨겁게 달구어지는 북극 지역에서 미국은 <북극 전략이 없는 북극 국가>다.
현재 북극에는 그 어느 때보다 온난화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얼음이 녹아서 접근이 훨씬 쉬워졌고 막대한 에너지원의 발견과 이를 손에 넣기 위한 기술의 발전 또한 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얻어질 잠재적 이득과 손실에 북극권국가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 P342

북극, 즉 arct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아르티코스arktikos에는 그리스어로 <곰 근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곧 마지막 별 두 개가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는 큰곰자리를 말한다.
북극해의 넓이는 1,409만 제곱킬로미터다. 이 정도면 아주 작은 대양 정도의 넓이지만 그래도 러시아만큼 넓으며 미국보다는 1.5배가크다. 하지만 해저에 잠겨 있는 대륙붕은 그 어떤 대양에 비교해도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주권이 미치는 지역에 대한 일관된 의견 일치가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북극 지역은 캐나다 일부와 핀란드,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그리고 미국의 알래스카 일부까지를 포함한다.
이곳은 한마디로 극한의 지역이다. 짧은 여름에는 섭씨 26도까지 기온이 오르는 지역도 있긴 하지만 긴긴 겨울에는 영하 45도 아래로 떨어지기 일쑤다. 또한 매서운 칼바람에 쓸려서 만들어진 널따란 암반지역, 웅장한 피오르 극지 사막, 그리고 하천들도 있다. 엄청난 적대감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 P343

20년 뒤 아문센은 이번에는 북극점 상공을 비행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걸어서 가는 것보다야 쉽겠지만 이 또한 대단한 업적이 될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탐험가이자 항공공학자인 움베르토 노빌레와 14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반경식 비행선을 타고 가다 빙산 위 약 90미터 상공에서 노르웨이, 이탈리아, 미국 국기를 투하했다. 영웅적인 노력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21세기인 지금 이 지역에서 그 세 나라의 영유권에 대한 법적 근거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 카자마 신지 또한 인상적인 모험으로 영웅적 행렬에 가세했다. 1987년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북극점에 도달한 최초의 인간으로기록되었다. 카자마는 극빙에도 위축되지 않는 대담무쌍한 인물로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기 위해 엄청난 눈보라도 견뎌냈다. 물론오늘날에는 건너야 할 얼음이 훨씬 적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 P346

빙원이 녹다 보니 캐나다 다도해의 북서항로를 통한 운항이 여름몇 주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중국으로 갈 때 걸리는 시간도 적어도 일주일은 단축할 수 있게 됐다. 2014년에는 쇄빙선의 호위를 받지 않은 화물선이 처음으로 단독 운항에 성공했다. 누나빅 호는 2만3천 톤의 니켈을 싣고 캐나다에서 중국으로 갔다. 북극 루트는 40퍼센트나 단축되었으며 파나마 운하보다 더 깊은 수심을 이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화물선은 더 많은 화물을 적재할 수 있으며 수만 달러의 연료비를 절약하고 1천3백 미터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줄일 수 있다. 2040년경에 이르면 이 뱃길이 연간 2개월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북극을 통한 무역 연결고리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통해 적잖은 수입을 올리는 이집트나 파나마 같은 머나먼 나라들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한편 북동항로 또는 러시아식으로 북해항로는 시베리아 해안을 품고 있는데 이 항로 또한 현재 일년에 수개월 동안 열리면서 <해양 고속도로로서 그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 P349

북극 접경 국가인 이른바 북극연안 5개국Arctic Five은 캐나다, 러시아,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그린란드를 책임지고 있으므로)를 말한다. 여기에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이 합세해 북극이사회가 탄생했다.
그리고 북극권 국가들의 자주권, 주권, 재판권을 인정하는 정식 옵서버(의결권을 가지지 않는 참가 자격) 12개국이 더해진다. 일례로 2013년에 북극이사회는 북극에 대한 과학적 탐사를 지원하는 일본과 인도,
현대식 쇄빙선을 보유하고 노르웨이 섬에 과학기지를 설치한 중국을옵서버로 받아들였다. (한국도 2013년 5월에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그러나 북극이사회에 끼지 못하는 나라 중에서도 이 지역에 대한합법적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나라들이 있다. 인류공동의 유산이라는 개념에서 북극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 P351

세계의 맨 꼭대기에 이르러 이 책을 마친다. 그리고 길은 여기에 있다. 이 최후의 경계는 늘 우리의 상상력에 말을 걸어왔다. 우리 시대에 인류는 미래로 가는 길 위에서 꿈을 키웠고,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보기도 했고, 밀리미터를 무한대로 바꾸기도 했다. 인간의 쉼 없는 정진은 칼 세이건이 불렀던 저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에 우리의 경계가 한정될 수 없음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지구로 내려와야 한다. 때로는 덜커덩거릴 수도 있다. 우리가 이 땅의 지리도 아직 정복하지 못했고 그것과 겨루려는 인간의 본성 또한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리는 언제나 운명들을 가두었다. 그 운명은 한 국가를 규정하거나 한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운명일 수도 있다.  - P362

그렇다 해도 이 상황은 누가 멕시코 만을 지배하느냐라는 역학관계를 바꾸는 것뿐이지 그 위치의 중요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물론 지리가 모든 사건의 방향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지도자들도 역사의 밀고 당김의 일부다. 하지만 그들 또한지리라는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방글라데시의 지도자들치고 벵골만에서 넘쳐흐르는 물을 막아낼 꿈을 꾸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하지만 국토의 80퍼센트가 범람원인데도 땅덩이를 옮길 수는없는 노릇이란 걸 그들도 안다. 주목할 만한 사례는 있다. 11세기에스칸디나비아와 영국을 통치했던 크누트왕은 아첨하는 신하들에게파도를 물러가게 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자연은 혹은 신은 그 어떤인간보다 거대하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자연이 가하는 힘에 인간이할 수 있는 것이라곤 더 많은 홍수 방지턱을 쌓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물이 불어날 거라는 컴퓨터 모델링이 과장됐기를 기대하는 것밖에없다. - P364

현재 우주 공간에는 작동하고 있는 위성이 대략 1천1백 개가 있으며 작동하지 않고 있는 위성들 또한 적어도 2천 개는 된다. 러시아와미국이 쏘아올린 수만도 거의 2천4백 개에 육박한다. 일본과 중국이100여 개씩, 이 외에도 더 작은 수를 쏘아올린 여러 나라들이 있다.
이 위성들 아래 우주정거장이 있다. 이곳은 처음으로 인간이 지구 바깥의 무중력 상태에서 반영구적으로 거주하면서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또 더 저쪽 달 표면에는 적어도 다섯 개의 미국 국기들이 아직까지 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이 만든 기계는 그보다 훨씬 더 먼곳, 즉 화성과 목성을 지나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상을 향해 전진 중이다.
우주 공간에서 집단적 및 협력적 미래와 인간을 연계하려는 노력은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지구 바깥에서도 패권을노리는 경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P366

그 많은 위성들이 텔레비전 방송이나 일기 예보만을 위해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다른 나라를 감시하고 누가 무엇을 가지고 어디로 움직이는지 지켜본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도 레이저 기술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이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해서 두 나라는 우주 공간에서 경쟁국들의 무기를 무력화하는 미사일 시스템을 확보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두 나라 말고도 우주에서 싸워야 할 때를 대비하는 기술 선진국들이 많다.
우리가 별에 도착했을 때 우리보다 한발 앞서 온 도전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서로 힘을모아야 한다. 러시아나 미국, 중국인의 자격으로가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우주를 방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중력이라는 족쇙만을 겨우 풀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갇혀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자원을 탐하는 원초적 경쟁이 형성한 틀속에 말이다.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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