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시집 57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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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누군가 열심히 씻어놓은 이가 있어,

우리 가끔은 저렇게

기분좋은 하늘도 이고 사는 것이다.

가벼운 눈인사라도 건네야지,

목욕탕 다녀오는 청산옥 여자

하아얀 무르팍을 본 것같이


누군가 온몸으로 언 땅을 뎁혀놓는 이가 있어,

우리 봄이면 저렇게

따스한 꽃들도 보고 사는 것이다.

손이라도 흔들어줘야지.

덕수궁을 나오는 유치원 아이들

노오란 꽃망울들을 본 것같이.


                             

                                       윤제림 <시집, 사랑을 놓치다 중에서>

 

      

      

      

       

      

       

      

       

      

       

 

 

김영갑 사진전

 

' 내가 본 이어도 2 '

 

-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환상곡

 

2005년 3월 23일 (수) ~ 4월 5일 (화) 10:00~20:00
2005년 4월 5일 (화)의 경우, 13:00까지 전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신관 제1,2 전시실

 

 

 

 

 

그 바람 속에 서있는 동안 내내 시가 읽혔습니다.

사진 한편 한편이 시 한편의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인지...

바람과 시들이 가만가만 저를 흔들어대었답니다.

저녁이 내리는 구름의 풍경 사진에서는 '가만가만' 이

도라지꽃 앞에서는 '사랑을 놓치다' 가

그렇게

윤제림님의 시로

김영갑님의 시로

손세실리아님의 시로

읽히던 바람...

그 바람의 느낌이 찰랑찰랑 저를 채웠지요.

살아있음에 감사를...

 

 

이 봄을 꽃 피게 할...

4월.

자~ 다시 시작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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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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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를 땅에 묻을 수는 없었다. 그녀 몸을 짓눌렀을 흙더미와 돌덩이로도 충분했다. 엄마는 인부에게 웃돈을 얹어주며 곱게 빻아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의 유골 상자를 받아든 엄마는 폭우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곱게 빻아진 그녀의 뼈는 꼭 흰 명랑 가루 같았다. 납골당에 넣기 전, 나는 그녀의 뼛가루를 조금 덜어내 작은 상자 안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이 생각날 때마다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묻힌 다음 혓바닥으로 맛을 보곤 했다.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 그녀는 내 속에서 숨쉬고 내 속에서 잠을 잔다. 그녀는 가끔 내 속에서 버선발을 내밀기도 한다. 나는 내 속에 있는 그녀를 위해 명랑을 먹는다. 설탕처럼 하얗고 반짝이는 명랑 가루에서는 그녀의 냄새가 난다.


                                                             천운영 소설집 -명랑 중에서... 명랑의 부분 발췌 (문학과 지성사)

 

 

  

 

  첫 번째 소설집'바늘'을 읽었을 때 이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이 젊은 작가에게는 뭔가가 있다. 딱 꼬집을 수 없는 끌림으로 나를 이끈다. 촘촘한 바늘로, 표정 없는 몸뚱이에 영혼을 실리게 하는 문신의 힘이 있다. 

  잔혹하다고 비명 지르며 도망쳐버릴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도 '바늘' 처럼 사로잡을 것인가? 첫 번째 수록 작품'명랑'에서 엄마가 후식처럼 드시던 '뇌신'과 '소다'를 떠올린다. 푸른빛을 띠는 파리한 형광등 불빛을 닮은 흰색, 입 안에 탁 털어 넣고 혀에 닿았을 때는 진저리치게 쓰다. 다시는,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다가도 어느 새 또 진저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공통의 조건을 가진 '뇌신' '명랑' '소다'.......

  이 소설'명랑'도 그것들과 같기를 기대한다. 아니,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유골을 먹는 그녀, 벌써 속이 거북한 듯 느껴진다. '소다'를 먹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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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90
신용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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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저 지도를 읽을 수 없다


세월은 잠들면 九天에 가 닿는다

그 잠을 깨우러 가는 길은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더 많이 향하고

길 너머를 아는 자 남아 지도를 만든다


끌린 듯 멈춰 설 때가 있다

햇살 사방으로 번져 그 끝이 멀고, 걸음이 엉켜 뿌리가 마르듯 내 몸을 공중에 달아놓을 때

바람이 그곳에서 통째로 쓰러져도 나는

그 많은 길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무지 저 지도를 읽을 수 없다

작은 것들 날아와 길 잃고 퍼덕일 때, 발이 긴 짐승

성큼 마지막 길을 가르쳐주는


나는 너무 큰 짐승으로 태어났다



신용목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사진출처; 네이버 포토 이미지)

 

 

 

이틀

여기에 갇혔다

싸아~ 하다

바람소리

황홀하다


이제

그 바람을 다 걸어 세상으로 나간다

 

길은

지도 속에는 없다


  

                  2005. 2. 22.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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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문장 문학사상 신작시집 4
고재종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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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길

 

 

어둠 속의 길은 흩어져버린 세월과 같다

길들은 내 핏속에서 질풍노도로 일었지만

내가 지나온 길 뒷자리는 늘 폐허였다

나는 길 위에서 또 길을 찾으러 다녔으니

나는 나 자신을 찾으러 다닌 셈인가

아침놀까지 더러워질 만큼의 하늘을 보았으나

악성의 하품 때문에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난장 난 계절의 억새밭을 지날 때

나는 거기 가장 황량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바다는 목쉰 파도로 끊임없이 부서져도

바다의 모든 고통을 아는 자만이 귀 기울였다

누구나 길에 나서나 다 같은 길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되, 우리가 아니어서 배회했다

웃자란 형극 속에서 길을 헤치곤 했으나

나의 어려움은 되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잃어버릴 수도 없는 길을 향해 내가 저지른 죄.

그건 길섶에 핀 산자고를 짓이겨버리는 일이었다

근사한 말만 만나면 빛나는 잠언을 쏟아내며

길을 노래하곤 하는 무수한 시인들이여

조주도 물었다,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그것이다, 남전이 답했으나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어서

나는 다시 피에 젖은 흙빛의 길 위에 섰다

길은 항상 저 만큼의 풍광 속에서 일렁거렸다

 

                                      고재종 시집 <쪽빛 문장>

 

 

          

우리가 바로 길이다.

다른 이들이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 걸을 수 있게 하는 길.

모두에게는 그들 자신이 걷는 길이 있고,

그 길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우리들 바로 자신인 이 길,

이 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즉 우리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모두에게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우리가 바로 길이다.

하기에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

 

.

.

.

 

-마르코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중에서-

이상하기도 하지.  

얼마 전에도 인용한 적이 있는 이 문장들이 종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시집을 뒤적거리는 순간에도.

길은 항상 저 만큼의 풍광 속에서 일렁거렸다

고 소리 내어 읽기를 마치자

우리가 바로 길이다 가 콕 박혀온다

길.......

문제는 길이다.  

쪽빛 문장으로 흔들리는 길이 보인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야한다.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

우리가 바로 길이다.

지금,

문을 열고 시작이다.

길 위의 길이다.

길.......

문을 연다.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가 함께 하는 길

혼자 걸어도

우리가 바로 길이다.

흙빛의 길로 나선다.

넘어져 깨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갈

길.......

 

 

 

나란히 가지 않아도Ⅱ

                     손병휘 작사, 손병휘 곡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앞 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도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마음의 마음의 총을 내려요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 보아요

손 내밀어 어깨를 보듬어 봐요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살지요

얼굴 빛 다르고 하는 말 달라도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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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8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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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

 

 

        

 

봄이 오는 날

오랜만에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자전거보다 다리가 먼저 끼익~ 끽

무겁다 무겁다 비명이다

찬 바람 기름 칠

수줍어 숨어든 모퉁이 나무에

흐린 저녁이 오고 있다

흐르지 못하는 물빛이 출렁

겨울이 깊다

강가에 서고 싶다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갈

내 서늘한 강가

드들

 

흘러가서 흘러가서

말하지 않는 것들의 교감

시린 계절이 마른 잎 적시고 흘러간다

뚝 길을 걸어 봄 오겠지

소년처럼 맑은 웃음 씨익~

삐이걱~ 삐이걱~

기우뚱

생명 하나 겨울 들판에 두고 간다

 

 

그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글쎄,

그러지 뭐

오래 강물이나 들여다보자

바람에 몸 뒤척이는 소리

가만 가만 내려놓는 강물

흘러서 흘러서 따라가보자

드들

드들

자전거로 간다

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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