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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문장 ㅣ 문학사상 신작시집 4
고재종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길의 길
어둠 속의 길은 흩어져버린 세월과 같다
길들은 내 핏속에서 질풍노도로 일었지만
내가 지나온 길 뒷자리는 늘 폐허였다
나는 길 위에서 또 길을 찾으러 다녔으니
나는 나 자신을 찾으러 다닌 셈인가
아침놀까지 더러워질 만큼의 하늘을 보았으나
악성의 하품 때문에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난장 난 계절의 억새밭을 지날 때
나는 거기 가장 황량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바다는 목쉰 파도로 끊임없이 부서져도
바다의 모든 고통을 아는 자만이 귀 기울였다
누구나 길에 나서나 다 같은 길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되, 우리가 아니어서 배회했다
웃자란 형극 속에서 길을 헤치곤 했으나
나의 어려움은 되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잃어버릴 수도 없는 길을 향해 내가 저지른 죄.
그건 길섶에 핀 산자고를 짓이겨버리는 일이었다
근사한 말만 만나면 빛나는 잠언을 쏟아내며
길을 노래하곤 하는 무수한 시인들이여
조주도 물었다,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그것이다, 남전이 답했으나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어서
나는 다시 피에 젖은 흙빛의 길 위에 섰다
길은 항상 저 만큼의 풍광 속에서 일렁거렸다
고재종 시집 <쪽빛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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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로 길이다.
다른 이들이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 걸을 수 있게 하는 길.
모두에게는 그들 자신이 걷는 길이 있고,
그 길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우리들 바로 자신인 이 길,
이 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즉 우리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모두에게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우리가 바로 길이다.
하기에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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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중에서-
이상하기도 하지.
얼마 전에도 인용한 적이 있는 이 문장들이 종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시집을 뒤적거리는 순간에도.
길은 항상 저 만큼의 풍광 속에서 일렁거렸다
고 소리 내어 읽기를 마치자
우리가 바로 길이다 가 콕 박혀온다
길.......
문제는 길이다.
쪽빛 문장으로 흔들리는 길이 보인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야한다.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
우리가 바로 길이다.
지금,
문을 열고 시작이다.
길 위의 길이다.
길.......
문을 연다.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가 함께 하는 길
혼자 걸어도
우리가 바로 길이다.
흙빛의 길로 나선다.
넘어져 깨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갈
길.......
나란히 가지 않아도Ⅱ
손병휘 작사, 손병휘 곡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앞 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도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마음의 마음의 총을 내려요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 보아요
손 내밀어 어깨를 보듬어 봐요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살지요
얼굴 빛 다르고 하는 말 달라도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