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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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습니다.  적당한 나이에 근사한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집안 좋은 남자였으면 좋겠고, 잘 생기고 로맨틱하며 앞날이 창창했으면 좋겠습니다. 참, 유머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자가 속물이라구요? 1920년대는 다 그랬다는군요. 그저 그 시대엔 대체로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 그럴싸한 남자가 나타나질 않아요. 자꾸만 조바심이 생깁니다. 나이 어린 여동생은 벌써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데, 어머니는 이제 그녀를 몰아세웁니다. 이렇게 세월만 보내는 딸이 못마땅합니다.  그러던 차에, 다가온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남자답지도 못합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네요. 그가 결혼을 하잡니다.  지금의 자기 처지를 생각해보니 썩 나쁜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꽤 똑똑한 과학도이며, 못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는 너무 어리지도 너무 늙지도 않아요.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은 보기 싫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게 뭐 어때서요?

이런 여자입니다. 
"난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아요. 그저 너무나 평범한 젊은 여자일 뿐이죠. 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내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요. 난 춤추고 테니스치고 극장에 가는 게 좋고 게임을 즐기는 남자들이 좋아요. 당신과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늘 나를 지겹게 만들었다는 건 분명 사실이에요. 그것들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않아요....<98p>

그때 한 남자가 다가옵니다. 그를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이 설레입니다. 행복합니다. 그는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로맨틱하며 여자가 원하는 말을 적재적소에서 할 줄도 압니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그도 여자처럼 배우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때요. 서로 사랑하는데...
남편이 알았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남편과 이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어쩌면 여자는 이다지도 철이 없을까요? 사랑하는 남자는 절대로 부인과 헤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적당히 즐기기만을 원했지요. 그토록 사랑한 남자가 그녀를 배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사랑한 남자는 이런 사람이네요. 
"이거 정말 골치 아프게 됐군. 하지만 우리가 이성을 잃어서는 좋을 게 없어요..."
"...그냥 빌어먹게도 재수가 없었을뿐이야.."
그럼 이 세상에 오직 나 말고는 원하는게 없다는 말은 왜 했죠? 라는 여자의 말에
"오, 이런,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법이야."<p110>
내가 당신에게 꼬리를 쳤군요. 나의 애원에 당신이 항복할 때까지 내가 당신을 몰아쳤어요.라고 말하는 여자의 대답에
"그런 말은 안 했어. 하지만 당신이 나와 잠자리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가 명백하지 않았다면 나도 당신과 잘 생각은 분명 하지 않았겠지."<p103>

남편은 그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은 여자를 사랑했으니까요. 남편은 그녀에게 벌을 내립니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벽지로 들어가는 것이 남편의 복수지요. 이젠 남편도 배신한 남자도 모두 싫습니다.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사지에 갇힌 자신이 불쌍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섭기만 합니다. 

남편은 여자를 사랑했기에 배신감도 큽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p 96>


그런데 생사의 기로에서 죽어나가는 주검을 목격하면서,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희생봉사하는 수녀들을 만나니 어쩐지 자기의 사랑타령이 시시하고 보잘것 없게 느껴집니다. 그런 숭고한 희생앞에서 죽음을 막기위한 사투앞에서 남편을 배신하고 저지른 자신의 부정과 자신을 배신해버린 그 남자...이런 감정들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있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수녀님 앞에서 그녀의 근심은 보잘 것 없게 느껴집니다.< p190  >

아, 여자는 이제 인생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런 것들을 희미하게 알 것 같습니다. 여기에 와서 보니 남편은 충분히 존경할 만한 훌륭한 사람이더군요. 왜 그것을 몰랐을까요?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는, 알고보니 바람둥이에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더군요. 아, 여자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이제야 후회를 합니다. 남편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준다면 좋을텐데...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책 속에서 그녀는 성숙해갑니다.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에서 사물의 무상함과 애수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흘러갔지만 그것들이 지나간 흔적은 어디에 남아 있단 말인가? 키티는 모든 인류가 저 강물의 물방울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나 가까우면도 여전히 머나먼 타인처럼, 이름 없는 강줄기를 이루어, 그렇게 흘러흘러, 바다로 가는구나.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이 너무나 딱했다.<p205> 

이젠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할지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배신한 남자를 다시 만나니, 이성은 아닌데 감성은, 내 몸은 아직도 남자의 품을 그리워하고 원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싫습니다.  그토록 증오했고, 이젠 그가 비열해보이기 까지 하는데도  남자에게 안겨서 희열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혐오스럽습니다. 여자는 비통한 마음으로 남자를 떠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여자는 이제 알지요.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여자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범한 실수를 그 애가 저지르지 않도록 잘 키우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 모습을 돌이켜 보면 제 자신이 싫어요. 하지만 제겐 기회란 게 전혀 없었어요. 내 딸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 거예요. 난 그 아이를 세상에 던져 놓고는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우기 위해 평생토록 입히고 먹일 생각은 없어요."< p.328 >
 

인생의 베일은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한 여자가 결혼과 불륜, 배신, 남편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성숙한 여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앞으로의 그녀의 삶은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의 모습에서 그녀가 아래에 말한 것처럼, 자기 발로 당당히 세상에 설 수 있는 독립되 인격체로서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지독한 아픔을 겪으면서 그녀는 성장한다. 여자의 인생이 꼭 남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 이거  한 가지만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저는 바보였고 사악했고 가증스러웠어요. 그리고 끔찍한 형벌을 당했죠. 결단코 저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제 딸을 보호하겠어요. 나는 그 애가 거침없고 솔직하기를 바라요. 그 애가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자유로운 남자처럼 인생을 살면서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요."< p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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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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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안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연쇄살인사건. 피살자는 집현전 학사들. 단순살인사건이 아니다.

계속되는 살인사건은 나라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금서 '고군통서'의 행방을 둘러싼 목숨을 건 사투이다. 대중화를 비판하고, 자주적인 조선이 될 것을 강조하는 고군통서는 조선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금서. 고군통서를 지키려는 작약시계의 집현전 학사들과 그것을 찾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학파의 치열한 전투이다.

 

이 대단한 사건을 말단 검사복 강채윤이 맡는다. 어린 짐승처럼 부서질 듯 여리지만, 어린 사자 새끼처럼 길들여지지 않아서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채윤.

책의 띠지에 적혀 있듯이 다빈치 코드와 장미의 이름에 필적할 만한 소설이라는 자신감 어린 소개가 붙은 이 책. 다빈치 코드에선,랭던 교수와 박물관 관장의 손녀이자 경찰인 소피가 함께  사건을 풀어가고, 장미의 이름에선 해박한 윌리엄수도사와 어린 수사 아드소가 있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에선, 학문에 조예가 깊지도 않으며 한자도 다 깨우치지 못한 햇병아리 검사복 채윤만 있을뿐이다. 그래서, 더 무모해보였던 이 소설은 어린 사자같은 채윤이 홀로 -거대한 몸통과- 시대를 통째로 갈아엎을 수도 있는 무모한 싸움을 감당해 낸다. 때론, 냉철하게, 때론 무모하게...

 

이정명 작가가 만들어낸 창작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일까?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는 사실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그러지 않았을까?

이제 막 개국한 조선이, 자신만의 언어를 갖는다? 명의 입장엔선 얼마나 괘씸한가. 명뿐만 아니라, 중국을 대중화로 조선을 소중화로 생각하는 경학파들에겐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사건이다. 한글창제를 둘러싼 목숨을 건 싸움은 소설이 비록 허구이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수긍하게 된다. 지금  내가 말하고 쓰고 있는  한글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정말 목숨이라도 걸었을 것 같았다. 비록 소설이 허구이더라도, 지금 쓰고 있는 서평을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쓸 수 있음을 우선 세종대왕에게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해야겠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했다.

 

좀, 딴지를 걸자면, 그 어마어마한 연쇄살인사건을 어리디 어리고, 학식도 뛰어나지 않은 애송이 채윤이 해결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하는 것이다. 말 못하던 소이가 한글을 배워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하고 싶은 것은 대체로 무겁고, 사상적인 것에서 좀체로 벗어나기 어려웠던 한국소설에 새로운 방향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가독성도 뛰어나 재미도 있고...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애국심 비슷한 감정도 불끈 솟아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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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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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가장 큰 벌은 무엇일까?  나에게 묻는다면 무릎꿇고 앉아서 금과옥조같은 말씀만 몇시간씩 듣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는 나에겐 조금 그런 느낌이었다.  벌 받는듯한 느낌. -- 솔직히 지루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그 유쾌한 시공간이란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 연암 박지원 선생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상화가 나온다. 근엄해 보이지만  입가와 눈가에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하고 계시는 풍채좋은 뚱뚱한 박지원선생과 빼빼마른 모습에 독수리처럼 매서운 눈매와 앙다문 입가에서 풍기는 고고한 학자의 모습을 한 정약용선생의 모습은 정반대이다.  요즘의 장르로 치면, 우스운 개그도 섞어가며 강의할 줄 아는 인기좋은 교수님과 인기없고 어려운 과목을 강의하시는, 다 맞는 말이지만 한없이 지루한 노교수님..쯤이라면 맞을까? 

꿇어앉았던 무릎이 아프고, 온 몸이 베베꼬이게 할만큼 지루했지만, 책을 덮고 나니 좋았던 페이지를 적어놓은 포스트잍이 빽빽하다. 그만큼 귀담아 들어야 할 글이 많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이, 선생의 글을 읽고나니 웬지 무언가를 해낸듯한 성취감이 든다. 

책에는, 
두아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주로 쉬지않고 공부하고 겸손하여 페족으로서 살아가기 힘들때 일수록 수신제가 해야한다는 엄부로서의 지엄한 당부가 대부분이다. 

둘째형님 현산 정약전선생과 주고받았던 학문적 교류 .... 형님을 선생이라 부르면서 오갔던 학술적인 토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형제지간에 이런 심오한 대화를 나누시다니 나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산의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글...오랜 유배생활에서도 쉬지않고 학문에 정진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노학자의 기개가 새삼 존경스럽다.

다산선생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학문으로부터 인간관계, 군자의 도리같은 것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예를 들자면 농사를 지을 때는 과실과 채소를 같이 재배하며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길러서 가계에 도움이 되게 하며, 개고기를 잡아먹는 법에, 염색을 하는 방법, 물고기, 천문학, 제사....등등  선생이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있기는 한걸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들들에게 당부하는 편지에서는 선생이 아들들을 돌볼 수 없는 몸이기에  추상같은 목소리로  다그칠 수 밖에 없는 아비의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게 부성이고 사랑이리라.  

책 속에는 아비로서,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세상에 당부하고 싶은 글들이 많다.  한번쯤 적어보는 것도 후세의 도리이리라....

<책 속에서>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156p>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157p>

 무릇 하나의 하고픈 일이 있다면 그 목표되는 사람을 한 사람 정해놓고 그 사람의 수준에 오르도록 노력하면 그런 수준에 이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은 모두 용기라는 덕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일찍이 티끌만큼도 남의 잘못을 ㅇㅇ서해주지 않았는데 출렁거리는 넓은 강물처럼 포용할 수야 있겠느냐? 국량은 근본은 용서해주는 데 있다. 용서할 수만 있다면 좀도둑 같은 좁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참을 수 있는데 하물며 보통사람에 있어서랴? <170p>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 것이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이 두 마디 말을 늘 외우고서 실천하다면 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한 가정을 보존할  수 있을 거다. <174p>

편지 한 장 쓸 때마다 두번 세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뜨렸을 때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더라도 조롱을 받지 않을 편지인가를 생각해본 뒤에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174p> 

남자는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사나운 짐승처럼 사납고 전투적인 기상이 있고 나서 그것을 부드럽게 교정하여 법도에 맞게 해야만 유용한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200p>

그중에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해서 가르쳐주시고 의당 절차탁마하여 정밀한 데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더러 갑이다 을이다 서로 우기며 분쟁이 오감으로써 어린시절 집안에서 다투던 버릇을 잇는 것도 절로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231p>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무릇 봉록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자는 하루도 수령의 지위에 앉아 있으면 안된다. <270p>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는 것이 성인의 법이다. <274p>

무릇 사람은 경건한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무릎이 저절로 꿇어지며, 꿇어앉은 자세를 풀면 속마음의 경건함도 역시 해이해지는 것이다. 얼굴빛을 바르게 하고 머리를 공손히 갖는 것은 꿇어않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278p>

원컨대 그대는 이뒤부터는 문장학에 대한 뜻을 끊고 빨리 돌아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게. 그리하여 안으로는 효우의 행실을 돈독히하고 밖으로는 공부를 부지런히 함으로써 성현의 격언이 항상 몸에 배어어기지 않도록 하게. 곁들여 과거공부도 닦아 발신을 꾀하여 임금을 섬길 수 있도로 노력하게. 이렇게 하여 소대의 상서로운 인물이 되고 후세의 위인이 되도록 힘쓸 것이요, 경망스런 취미 때문에 천금같은 몸을 경솔히 버리지 말게.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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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아서 다 적지 못했다.

다산 선생은 상업을 그다지 좋게 보시지 않으셔서 오일장도 최소한만 두고 없애야 한다고 하신다. 맨 마지막 인용글을 보면  소설류같은 글을 좋아하시지 않았다.  재미는 없으신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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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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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초기 작품집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최근의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무기의 그늘, 손님, 모맷말 아이들, 오래된 정원, 아들을 위하여 등 비교적 최근 작만 읽었다.  작가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작품이 수두룩했다.

객지는 작가의 초창기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입석부근]은 작가가 고교시절에 쓴 소설이다.  1962년도 작품이다. 오래된 글인데도 문장이며 구성이 좋다. 이걸 고교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가는 역시 다르다. 탑, 객지, 줄자 등도 대체로 1970년도 부근의 소설이니 4~50여년이 지난 작품들이다. 그러나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문체가 매끄럽고, 힘이 있다.  작가의 연보에 나와있는 연도와 작가가 발표한 연도를 비교하며 읽었다. 아, 이건 작가가 세상을 방황하다가, 아 이건 작가가 베트남 참전과 돌아온 후의 작품이구나...하며 말이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읽는 맛이 좋다. 

중,단편이라 각 작품마다 감상을 적기는 그렇고, 책에서 좋았던 부분을 추려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을 그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것은 피와 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산이며, 그림엽서나 사진 같은 창조가 없는 산이었다. 모든 사랑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직접 그것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11페이지...입석부근>

그러므로 우리가 작업이 끝난 뒤 피곤한 몸을 끌고 산에서 내려올 때에, 위대한 사상이 적힌 책을 모조리 읽어치우고 도서관을 나올 때의 소박한 자부심과, 여행이 끝나고 인파가 밀리는 도회지의 정거장을 나서면서 - 나는 이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느끼듯이 자기가 새사람이나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28페이지...입석부근>

나는 그때 두 손에 열 가락의 형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나는 불면의 밤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전장에다 내가 두고 온 것은 몇개의 타락한 증오였는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거기서 싸웠던 전우라면 열대성 말라리아라든가 우리를 저격하는 게릴라, 또는 비협조적인 주민들을 인류의 적으로 미워해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내가 적들을 사살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전장의 엄격한 율()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용기와 전쟁의 허무를 가늠하면서 적을 쏘았다. <116페이지..돌아온 사람> 

"정말 내 한몸 살기두 어려운 세상이오." <페이지 259...객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어요. 난 어째야 좋을지를 모르겠소. 하루도 못 가서 믿을 만한 사람들까지 어리석은 말을 하구 있어요."<262...객지>

그는 자기의 결의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으며, 거의 텅 비어버린 듯한 마음에 대하여 스스로 놀랐다. 알 수 없는 강렬한 희망이 어디선가 솟아올라 그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동혁은 다시 남포를 집어 입안으로 질러넣었다.......심지끝에 불이 붙었다. 작은 불똥을 올리며 선이 타들어오기 시작했다. <275페이지...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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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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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이야기는 내 어린시절의 그 때와 일치한다.  이런느낌이구나. 드라마에서 부모님의 어린시절과 같은 시대배경이 나올때마다 느끼시던 그 동질감이. 아, 맞아 그때는 그랬었지..하는 그 느낌을 떠올렸다.

 

국민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우리 할머니에겐 초등학교가 소학교였던 것처럼) 6학년으로 돌아간 느낌.  우리반 남자아이들은 OB베어즈에 미쳐있었다.  박철순, 김유동, 이만수, 김봉연, 김시진, 이선희, 백인천,김성한 등등이 기억났으며  봉황대기, 청룡대기 고교선수권대회를 시청하며 열광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여자아이들은 두 부류였다. 야구에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나는 야구를 좋아했던 몇 안되는 여자아이였다.) 정말 날리던 조계현도 기억하는 걸 보면  그 당시의 야구인기는 가히 절정이라고 부를만하다.

 

그때의 야구사랑은 쭉 이어져서 죽이 맞는 고교동창과 잠실 야구장을 여러번 기웃거렸고,  남편과도 컵라면을 먹어가며 열심히 응원했으니, 책 속의 주인공에 쉽게 공감하고 동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공감가는 이야기가 남자아이의 야구사랑과 그에 얽힌 인생철학이니.. 운동하기 싫어하는, 그러나 야구와 축구관람은 좋아하는 내가...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책 속의 소년과 내가 다른 점은 그는 꼴찌팀 삼미를 좋아한 것이고, 나는 1등팀 OB베어즈..( 그들이 충청도 연고를 버리고, 서울로 옮긴이후로는 심한 배신감에 빙그레와 해태로 좋아하는 팀을 옮겼지만 말이다.) 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우리팀이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을 했을 때는 내가 일등을 한 것인양  우쭐했으니, 삼미의 자켓과 모자를 쓰고 느꼈을 좌절감과 괜한 열등감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의 글을 읽고 보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망가지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을 때 그것을 보아야하는 느낌과 비슷할테니 말이다.

 

책속의 소년이 좋아한  삼미는 아마츄어로서는 썩 잘하는 훌륭한 팀지만, '프로'자가 붙은 야구에서는 그들은 아마츄어였던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마추어는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니 잘하는 것이고- 잘 하지 못해도 상관없고- 프로는 정말 잘해서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니 못하면 생계에 지장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못하면 그 분야에선 도태되고 마는 비정한 곳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세계이다. 삼미가 간판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선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다. 3s정책으로 국민을 우민화시키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는 프로야구는 책에서처럼 우리에게 '프로'의 이미지를 제대로 전파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기억나는 CF.  채시라가 광고했던 베스띠벨리의 카피는 '프로는 아름답다'였다.  그 광고가 어찌나 세련되고 멋져보이던지 꽤 오래된 광고인데도 아직까지 기억을 한다.  우리는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프로가 아닌 아마츄어로 남는걸 두려워했다. 지금은 이전보다 더 살벌하고... 작가의 말처럼 그때부터 우리는 프로로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즐거워서,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서 꼭 일등을 해야한다는 조바심, 경쟁심.  아,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채시라의 멋져 보이던 그 활기차고 당당함은 그저 30초 남짓도 안 되는 화면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이다. 등수메겨지는 직장에서 살아남기위해 고군부투하는 남편의 모습에서의 프로는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다. 

작가는 그런 세상이 싫었다. 그래서, 엉뚱하고 삐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느리게, 즐겁게, 아마추어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딘지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나는 아직 없다.

 

우리반의 OB팬들은 지금쯤 뭘할까? 종남이, 형태, 상태, 재은이...그녀석들은 아직도 야구를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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