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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ㅣ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황석영 작가의 초기 작품집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최근의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무기의 그늘, 손님, 모맷말 아이들, 오래된 정원, 아들을 위하여 등 비교적 최근 작만 읽었다. 작가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작품이 수두룩했다.
객지는 작가의 초창기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입석부근]은 작가가 고교시절에 쓴 소설이다. 1962년도 작품이다. 오래된 글인데도 문장이며 구성이 좋다. 이걸 고교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가는 역시 다르다. 탑, 객지, 줄자 등도 대체로 1970년도 부근의 소설이니 4~50여년이 지난 작품들이다. 그러나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문체가 매끄럽고, 힘이 있다. 작가의 연보에 나와있는 연도와 작가가 발표한 연도를 비교하며 읽었다. 아, 이건 작가가 세상을 방황하다가, 아 이건 작가가 베트남 참전과 돌아온 후의 작품이구나...하며 말이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읽는 맛이 좋다.
중,단편이라 각 작품마다 감상을 적기는 그렇고, 책에서 좋았던 부분을 추려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을 그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것은 피와 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산이며, 그림엽서나 사진 같은 창조가 없는 산이었다. 모든 사랑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직접 그것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11페이지...입석부근>
그러므로 우리가 작업이 끝난 뒤 피곤한 몸을 끌고 산에서 내려올 때에, 위대한 사상이 적힌 책을 모조리 읽어치우고 도서관을 나올 때의 소박한 자부심과, 여행이 끝나고 인파가 밀리는 도회지의 정거장을 나서면서 - 나는 이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느끼듯이 자기가 새사람이나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28페이지...입석부근>
나는 그때 두 손에 열 가락의 형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나는 불면의 밤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전장에다 내가 두고 온 것은 몇개의 타락한 증오였는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거기서 싸웠던 전우라면 열대성 말라리아라든가 우리를 저격하는 게릴라, 또는 비협조적인 주민들을 인류의 적으로 미워해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내가 적들을 사살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전장의 엄격한 율()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용기와 전쟁의 허무를 가늠하면서 적을 쏘았다. <116페이지..돌아온 사람>
"정말 내 한몸 살기두 어려운 세상이오." <페이지 259...객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어요. 난 어째야 좋을지를 모르겠소. 하루도 못 가서 믿을 만한 사람들까지 어리석은 말을 하구 있어요."<262...객지>
그는 자기의 결의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으며, 거의 텅 비어버린 듯한 마음에 대하여 스스로 놀랐다. 알 수 없는 강렬한 희망이 어디선가 솟아올라 그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동혁은 다시 남포를 집어 입안으로 질러넣었다.......심지끝에 불이 붙었다. 작은 불똥을 올리며 선이 타들어오기 시작했다. <275페이지...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