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적당한 나이에 근사한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집안 좋은 남자였으면 좋겠고, 잘 생기고 로맨틱하며 앞날이 창창했으면 좋겠습니다. 참, 유머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자가 속물이라구요? 1920년대는 다 그랬다는군요. 그저 그 시대엔 대체로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 그럴싸한 남자가 나타나질 않아요. 자꾸만 조바심이 생깁니다. 나이 어린 여동생은 벌써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데, 어머니는 이제 그녀를 몰아세웁니다. 이렇게 세월만 보내는 딸이 못마땅합니다.  그러던 차에, 다가온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남자답지도 못합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네요. 그가 결혼을 하잡니다.  지금의 자기 처지를 생각해보니 썩 나쁜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꽤 똑똑한 과학도이며, 못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는 너무 어리지도 너무 늙지도 않아요.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은 보기 싫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게 뭐 어때서요?

이런 여자입니다. 
"난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아요. 그저 너무나 평범한 젊은 여자일 뿐이죠. 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내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요. 난 춤추고 테니스치고 극장에 가는 게 좋고 게임을 즐기는 남자들이 좋아요. 당신과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늘 나를 지겹게 만들었다는 건 분명 사실이에요. 그것들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않아요....<98p>

그때 한 남자가 다가옵니다. 그를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이 설레입니다. 행복합니다. 그는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로맨틱하며 여자가 원하는 말을 적재적소에서 할 줄도 압니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그도 여자처럼 배우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때요. 서로 사랑하는데...
남편이 알았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남편과 이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어쩌면 여자는 이다지도 철이 없을까요? 사랑하는 남자는 절대로 부인과 헤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적당히 즐기기만을 원했지요. 그토록 사랑한 남자가 그녀를 배신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사랑한 남자는 이런 사람이네요. 
"이거 정말 골치 아프게 됐군. 하지만 우리가 이성을 잃어서는 좋을 게 없어요..."
"...그냥 빌어먹게도 재수가 없었을뿐이야.."
그럼 이 세상에 오직 나 말고는 원하는게 없다는 말은 왜 했죠? 라는 여자의 말에
"오, 이런,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법이야."<p110>
내가 당신에게 꼬리를 쳤군요. 나의 애원에 당신이 항복할 때까지 내가 당신을 몰아쳤어요.라고 말하는 여자의 대답에
"그런 말은 안 했어. 하지만 당신이 나와 잠자리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가 명백하지 않았다면 나도 당신과 잘 생각은 분명 하지 않았겠지."<p103>

남편은 그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은 여자를 사랑했으니까요. 남편은 그녀에게 벌을 내립니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벽지로 들어가는 것이 남편의 복수지요. 이젠 남편도 배신한 남자도 모두 싫습니다.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사지에 갇힌 자신이 불쌍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섭기만 합니다. 

남편은 여자를 사랑했기에 배신감도 큽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p 96>


그런데 생사의 기로에서 죽어나가는 주검을 목격하면서,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희생봉사하는 수녀들을 만나니 어쩐지 자기의 사랑타령이 시시하고 보잘것 없게 느껴집니다. 그런 숭고한 희생앞에서 죽음을 막기위한 사투앞에서 남편을 배신하고 저지른 자신의 부정과 자신을 배신해버린 그 남자...이런 감정들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있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수녀님 앞에서 그녀의 근심은 보잘 것 없게 느껴집니다.< p190  >

아, 여자는 이제 인생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런 것들을 희미하게 알 것 같습니다. 여기에 와서 보니 남편은 충분히 존경할 만한 훌륭한 사람이더군요. 왜 그것을 몰랐을까요?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는, 알고보니 바람둥이에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더군요. 아, 여자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이제야 후회를 합니다. 남편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준다면 좋을텐데...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니까요.  

책 속에서 그녀는 성숙해갑니다.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에서 사물의 무상함과 애수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흘러갔지만 그것들이 지나간 흔적은 어디에 남아 있단 말인가? 키티는 모든 인류가 저 강물의 물방울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나 가까우면도 여전히 머나먼 타인처럼, 이름 없는 강줄기를 이루어, 그렇게 흘러흘러, 바다로 가는구나.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이 너무나 딱했다.<p205> 

이젠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할지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배신한 남자를 다시 만나니, 이성은 아닌데 감성은, 내 몸은 아직도 남자의 품을 그리워하고 원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싫습니다.  그토록 증오했고, 이젠 그가 비열해보이기 까지 하는데도  남자에게 안겨서 희열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혐오스럽습니다. 여자는 비통한 마음으로 남자를 떠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여자는 이제 알지요.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여자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범한 실수를 그 애가 저지르지 않도록 잘 키우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 모습을 돌이켜 보면 제 자신이 싫어요. 하지만 제겐 기회란 게 전혀 없었어요. 내 딸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 거예요. 난 그 아이를 세상에 던져 놓고는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우기 위해 평생토록 입히고 먹일 생각은 없어요."< p.328 >
 

인생의 베일은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한 여자가 결혼과 불륜, 배신, 남편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성숙한 여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앞으로의 그녀의 삶은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의 모습에서 그녀가 아래에 말한 것처럼, 자기 발로 당당히 세상에 설 수 있는 독립되 인격체로서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지독한 아픔을 겪으면서 그녀는 성장한다. 여자의 인생이 꼭 남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 이거  한 가지만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저는 바보였고 사악했고 가증스러웠어요. 그리고 끔찍한 형벌을 당했죠. 결단코 저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제 딸을 보호하겠어요. 나는 그 애가 거침없고 솔직하기를 바라요. 그 애가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자유로운 남자처럼 인생을 살면서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요."< p328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