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의 기본 구상은 유가증권의 과거 수익률 요인 및 지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고려한 수많은 기본적, 기술적 척도 가운데에는 이익수익 earnings yield로 불리는 주가수익비율 PER(이익수익률의 역수), 주가순자산비율 PBS(장부‘ 가치) 회사의 시가총액(규모) 등이 있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폭넓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1979년 당시에는 모든 정보가 완전히 반영되어 조정된 것‘이 바로 시장가격이라고 믿는 수많은 학자들이 똘똘 뭉쳐 맹렬히 비난하던 지표들이다. 그러나 현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는 양질의 데이터베이스와 이를 탐색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형 컴퓨터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때여서 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최적의 시기였다.

운 좋게도 우리 연구원 한 사람이 통계적 차익거래를 위한 기 본 구상을 거의 즉시 실행해냈다. 그는 과거 2주 동안의 손익을 기 준으로 종목의 순위를 매겼다. 크게 상승한 종목들은 다음 2주 동안 대개 시장수익률을 하회했고 크게 하락한 종목들은 반대로 시장을 상회했다. 하락률 상위 10퍼센트 종목을 매수하고 상승률 상위 10퍼센트 종목을 공매도한 과거 연간 수익률은 20퍼센트에 달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머드MUD라고 불렀다. 최대 상승 mostup, 최대 하락mostdown’한 종목들로 구성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UC어바인 수학과 교수 윌리엄 도노휴Wiliam F. Donoghue가 농담처럼 한 조언대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전략이었다. 롱포지션을 취한 포트폴리오는 시장과 연동해 움직이고 쇼트포지션 포트폴리오는 반대로움직여 시장의 변동을 거의 상쇄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선호하는시장 중립적인 포트폴리오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투자와비교하면 여전히 가격 변동폭이 큰 포트폴리오라서 우리는 통계적차익거래를 당분간 배제하고 있다.

우리는 몰랐지만 2년 뒤 모건스탠리에서 어느 기발한 연구원이 우리의 것과 비슷하면서 변동성은 훨씬 적은 전략을 고안했다.
이 전략으로 매매를 시작한 것은 1983년이었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며 자신감이 커진 그는 투자 규모를 늘렸다. 통계적 차익거래는1985년까지 모건스탠리의 중요한 이익 창출원이 되었지만 공로에대한 인정과 보상이 주어진 대상은 전략을 고안한 게리 뱀버거 GerryBamberger가 아니었다. 직속상관인 눈지오 타타글리아가 계속해서 전략을 확대해 운영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뱀버거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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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에 박힌 언론 보도 역시 투자자를 기만한다. "실적 우려로 주가 폭락." 〈뉴욕 타임스 비즈니스 데이는 머리기사로 이렇게 외쳤다. 기사는 "3분기 실적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지속되면서 주가가 하락"했다고 전했다.

폭락이라고? 좀 더 살펴보자.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DJIA)는 2.96포인트 하락한 10,628.36을 기록했다." 백분율로 표시하면 하락폭은 0.03퍼센트이다. 다우존스 지수의 일일하락폭은 보통 약 1퍼센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다우존스 지수가 0.03퍼센트보다 더 크게 변동할 확률은 무려 97퍼센트이다. 이날처럼 지수의 변동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날은 1년에 8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즉, 0.03퍼센트 하락폭은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현재 해당 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종목의 가격을 더한 값에 배당금 및 주식분할의 영향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재조정하는 수치를 곱하여 산정한다. 현재 승수는 5배를 약 간 넘는데 이는 30개 종목 가운데 단 1종목의 종가가 1.25포인트 이상 상승해도 지수는 6포인트 이상 상승 마감한다는 뜻이다.

반면이날의 변동폭은 3포인트, 즉 0.03퍼센트에 불과했다.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의 주가는 폭락하지 않고 크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S&P500 지수는 불과 0.04퍼센트 하락해 다우존스 지수만큼이나 거의 변동이 없었다. 실제로 유의미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32.8포인트, 즉 0.9퍼센트 하락한 나스닥 종합지수가 유일했다. 그러나 변동폭이 크다는 나스닥 지수조차도 이날보다 더욱 큰 일일 변동폭을기록한 날이 과거 거래일 전체의 3분의 2에 이른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기사는 예상치에 미달하는 실적을 발표한 기업들이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지수에 미치는영향은 무의미하다고 할 만큼 미미했다.

기자는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 통계적 잡음 statistical noise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둘째, 절반의 이야기를 놓쳤다. 바로 주가가 하락한 종목으로 인해 지수에 미친 영향이 상쇄되었을 상승세로 마감한 종목들과 그 이유에관한 이야기이다.

미미한 주가 변동의 의미를 굳이 해석하려 드는 것은 금융 관련보도에서 늘 있는 일이다. 기자들은 주가의 변동이 통계적으로 흔한 것인지 드문 일인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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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평가의 핵심은 기저율과 개별 사례에 대한 비중 할당이다. 예측의 정확도가 낮은 사건이라면 기저율에 비중을 거의 모두 할당해야 한다. 반면 예측의 정확도가 높은 사건이라면 개별 사례의 비중을높일 수 있다. 위 사례에서 의사는 이 치료법의 치료율이 높다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예측의 정확도가 낮다고 보아야한다. 따라서 확률을 평가할 때 기저율에 비중을 거의 모두 할당해야한다.

이번에는 운과 실력에 대해 기저율과 개별 사례의 비중을 어떻게할당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주로 실력이 성과를 좌우하는 사건이라면 개별 사례에 큰 비중을 둘 수 있다. 내가 틴슬리와 체커 게임을 한다면 누가 승리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반면 주로 운이 성과를 좌우하는 사건이라면 기저율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친구가 복권에 당첨되더라도 내가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바뀌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친구가 룰렛 번호를 맞히더라도 내가 맞힐 확률은 바뀌지 않는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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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닐과 네프
- PER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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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투자공식 - 12인의 투자자에게 배우는 투자원칙
고이즈미 히데키 지음, 김하경 옮김 / 이레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과도한 증시유도는경제파탄을 초래한다.

소로스의 최대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투자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대량매도이다. 당시 유럽은 본격적인 통화통합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참여국들이 독일통화인 마르크에 대해 자국통화의 비율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협약을 맺은 것이다. 영국으로서는 1파운드를 2.95마르크, 최저 2.77마르크까지는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때 영국경제는 하향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런 환율수준은 경제실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실질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환율수준‘이 영국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악순환에 빠졌다.

1992년 7월이 되자 파운드는 ‘상대적으로 비싸다‘라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한 가운데 매도압력에 밀려 2.85마르크 부근까지 떨어졌다. 소로스는 이런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생애최대 승부를 위한 시점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영국정부가 하락하는 파운드를 방어할 수 있는 최대 수단은 금리인상‘이었다. 금리를 높여서 전 세계의 돈을 파운드로 전환하여 소로스같은 투기적인 매도방식을 격퇴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자동차, 주택, 설비투자 등 은행대출로 소비하는 움직임을 둔화시켜 채무로 힘들어하는 기업을궁지에 내몬다. 그렇지 않아도 내리막을 걷고 있는 영국더욱 악화시키고 만다. 이 상황에 영국 내에서는 "통화통합에서 탈퇴하여 통화와 금리 모두 인하하는 정책으로 먼저 경기회복부터 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통화통합은 유럽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되기위해 1970년대부터 추진해온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영국정부서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결의를 여러번 표명했다. 그런 까닭에 필사적으로 외환개입을 시도했지고,
파운드 절하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영국은 유럽 통합의 중심국인 독일이 금리인하를 단행하여, 자금의 흐름이 독일에서 영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물론 소로스도 독일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겪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금리나 통화를 인하하는 정책은 되도록 피하려고 했다. 마르크 약세로 외화가치가 높아지면서 수입품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을 더욱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독일의 이런 상태를 소로스는 이미 충분히 분석해 알고 있었지만, 더욱 신중하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같은 해 8월 말이 되자 독일정부는 "영국이 통화통합에서 탈퇴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명확하게 표명하게 되었다.

드디어 소로스가 파운드 매도에 나설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것이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 경제실태
② 수급상태
③ 정치요인

최대 요인인 경제실태는 이미 완벽하게 파운드 절하로 기울어 있었으며, 시장 수급상태도 파운드 절하로 접어들었다. 외환개입에도 불구하고 파운드 절하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거기다 정치적인 조건도 갖춰졌다. 마지막까지 파운드를유지하려는 영국의 정치적 의지가 강했지만, 이미 영국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유일한 희망이던 독일은 국내 사정으로 정신없었고, 통화통합을 추구하던 유럽 각국의 연합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 사실들을 확인한 소로스는 9월에 접어들면서 파운드 하락으로 100억 달러(10조 원 이상)를벌어들였다.

운명의 9월 15일이 왔다. 파운드는 이미 제한선인 2.77마르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영국 중앙은행은 마지막 수단으로 글리를 10%에서 12%로, 다시 15%로 하루 사이에 두 번이나 이바했다. 그럼에도 파운드는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파운드 시장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무너져 내렸다. 10월까지 달러 대비 20% 가까이 폭락했다.

소로스의 완전한 승리였다. 소로스의 펀드는 이 투기로 20억 달러(2조 원 이상)를 벌어들였고, 소로스 자신은 금액의 3분의 1을 보수로 가져갔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 영국 경기가 회복으로 돌아서 영국경제가 극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국을 위해 싸운쪽이 영국정부인지, 투기세력 소로스인지 의문이 생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앙은행이든 투기세력이든 상관없이 경제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자가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실패한다는것이다. 소로스를 알면 알수록 ‘경제의 본질을 간파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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