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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평점 :
이 책을 읽을 때 들었던 감정은 알 수 없는 기묘함, 혹은 이상함이었다. 미국 조지아 주의 황량한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사료가게와 그곳을 운영하는 거구의 주인 어밀리어 에번스 그리고 그녀의 친척임을 주장하며 난데없이 나타난 꼽추 라이먼.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낸 ‘카페’ 라는 안식처.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어떤 기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던 나는 문득 소설가 김영하가 어딘가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그가 쓴 책 『말하다』에서 그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소설이라는 이 이상한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실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와 달의 관계와도 비슷합니다. 달은 무슨 인테리어 소품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떠서 광합성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희미한 태양광만 지구로 반사시키지만, 그럼에도 지구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조수간만의 차를 만들어내고 여성들의 생리주기도 조절합니다. 많은 생물들이 달의 주기에 따라 이동하고 짝을 짓고 산란합니다. 소설도 그와 비슷하게 인간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소설이 그저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은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작용합니다. 그 작용을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하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것, 그것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 아닐까요?
_김영하, 『말하다』, p.159
그렇다고 해서 김영하의 이러한 소설론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어떤 불가해함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었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나는 카슨 매컬러스가 창조한 이 이상한 세계에서 느낀 감정의 궁금증, 이 이상하리만치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재밌는 일도 있지, 공교롭게도 이 책에는 그와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p.5
어? 하는 순간 탁 소리가 났다. 내 무릎에서 난 소리였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한다는 것의 관계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답답함이 그제야 조금씩 가시길 시작했다. 사랑을 모르고 살던 어밀리어가 왜 하필 라이먼 같은 간사한 꼽추 녀석에게 빠졌는지, 라이먼은 왜 그토록 마빈 메이시 같은 불한당에게 매달리는 것인지 그리고 왜 나는 이들이 부르는 ‘슬픈 노래’ 를 공연히 듣고만 있는 것인지……. 어쩌면 카슨 매컬러스가 만든 이 이상한 이야기가 내 마음에 불을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밀리어가 라이먼에 빠진 것처럼, 라이먼이 마빈에게 홀린 것처럼 나 또한 이 책, 『슬픈 사랑의 노래』에 빠져든 게 아닐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남들은 이상하기 그지없다고 할 이 이야기가 그토록 내 마음에서 떠나가지 않던 이유는 결국 카슨 매컬러스 특유의 사랑스러운 문체와 훌륭한 역자 장영희의 번역이 한데 어우러져 내 영혼 속에 숨겨진 순수한 목가를 깨웠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녀가 말한 ‘누군가’ 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김영하가 얘기했던 ‘의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삶에 작용하는 소설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굳이 이것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것’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