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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타임슬립 ㅣ 필립 K. 딕 걸작선 1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5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필립 K. 딕(이하 PKD)에 대해 확신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그는 우리 인간들이 비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영원히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실사화된 그의 작품들과는 달리 원작들은 대개 비관적인 관점을 줄곧 유지하는데 그 갈등은 결말에서도 풀리지 않은 채 끝이 나버리곤 한다. 많은 SF소설이 미래의 첨단 기술과 그로 말미암은 인간들의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그리는 반면 PKD가 그려내는 미래란 절망적이며 언뜻 보면 암울했던 중세 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화성의 타임슬립』 또한 예외가 아니다. 지구를 떠난 일부 인간들은 화성을 식민화, 개척하지만 그들은 대개 궁핍하며 여러 정신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富)란 일부 치들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은 지구나 화성이나 매일반이며 화성의 자본가들 또한 역시 탐욕에 눈이 멀어 오로지 재화만이 최고의 가치라 여기며 살아간다. 돈과 기술이 우선인 그러한 비자연적 삶에 놓여진 등장인물들은 영원한 고통 속에서 남은 생을 연명한다. PKD는 우리 인간의 가치관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유토피아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PKD는 우리가 흔히 슈퍼 히어로라고 부르는 초능력자와 정신병자들을 딱히 구분해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거진 평생을 온갖 정신병에 시달리며 살다간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 뒷골목에서 구한 불법 약물 복용 후 일어나는 각성 상태에서 쓰여진 것인데 이때 쓰여진 몇 작품이 당시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한다. 가난과 정신병, 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이 두 가지 악연은 약물로 인한 각성 효과로 이어졌고 이는 일종의 ‘초능력’ 이라는 상징으로서 그의 작품에 녹아든 셈이다. 때문에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나 안드로이드들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불행 그 자체다.
『화성의 타임슬립』 에 등장하는 만프레드라는 꼬마를 보자. 이 아이는 시공간을 제어할 수 있는 초능력자다.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니! 마블과 디시 코믹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의 화려한 모습이 벌써부터 아른거리지 않는가? 그런데 PKD는 다르게 보았다. 만프레드가 가진 이 초능력은 그가 자폐아이기 때문에 지니게 ‘된’ 일종의 퇴행성 질병과 같은 것이다.
…잭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신경증이 왜 인위적인 발명품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신경증이란 병에 시달리는 개인이나 위기에 직면한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요가 빚은 발명품인 것이다. 따라서 신경증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라는 실비아의 말은 타당했다. 신경증이란 의식적인 멈춤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점에서 삶을 동결시켜 더 이상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는 행위라고나 할까.
p.122
어쩌면 만프레드의 시공간 제어 능력은 자본이 만들어낼 지옥같은 삶에 대항하는 의식적 멈춤이자 삶의 동결이며 이것이 자폐증으로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PKD에게 정신병 환자란 이렇듯 누가 보더라도 파멸로 향하고 있는 것이 자명한 인간군상에서 보여지는 위기감을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감각하는 인물들이었던 게 아닐까? 그런 예민한 통각을 가진 그들의 모습이 슈퍼 히어로처럼 화려할 리 만무하다. 사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성 상태의 PKD가 그려냈던 미래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암울하고 절망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