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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뜬금없지만 평화학자 정희진의 저서 『정희진처럼 읽기』 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시작한다.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책은 피사체(被/寫體)를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하늘 위에서가 아니라 건물 옆에서, 지하에서, 건물 뒤에서, 아주 멀리서. 혹은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에 있는 사람이 찍은 것이다. 건물 안에서는 건물을 볼 수 없다. 즉 피사체, 문제 대상(사회)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그 안에 있으면 자신을 알 수 없다. 교회의 문제점은 교회 안에서는 볼 수 없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만 보인다. 사회 밖, 틀 밖, 궤도 밖에 서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p.23
‘건물 안에서는 건물을 볼 수 없다’는 그녀의 지적처럼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관찰하는 연습이 필요할 터.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일본의 한 작가는 이러한 사상을 하나의 소설로서 승화시켰다. 책의 제목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며 저자는 다름 아닌 나쓰메 소세키.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한 고양이는 정희진이 말한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나를 관찰하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바로 그 대상이다. 이 요망한 고양이는 ‘하늘 위에서가 아니라 건물 옆에서, 지하에서, 건물 뒤에서, 아주 멀리서’ 우리네 삶에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단순히 네 발 달린 길짐승의 푸념이라고 하기에 그 잔소리에는 우리의 낯을 붉게 만드는 어떤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하늘과 대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 인류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가.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았지 않은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자신의 소유로 정하는 법은 없으리라. 자기 소유로 정하는 것이야 별 지장이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 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세제곱미터로 나누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공기는 나누어 팔 수 없고 하늘에 새끼줄을 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토지의 사유 역시 불합리하지 않은가.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이러한 법칙을 믿고 있는 나는, 그렇기에 어디에든 들어간다.
p.186
사실 고양이만큼 가까운 곳과 동시에 주변부에 머무르며 노상 우리 인간을 관찰하는 존재가 있을까 싶다. 개들은 어떤가? 활동 반경이 고양이보다 제한적이다. 집 밖으로 나가보자. 담벼락을 가뿐히 넘어다니고 지붕을 자유자재로 타고 다닐 수 있는 짐승은 고양이뿐이다. 동시에 이들은 소세키의 표현처럼 ‘어디에든’ 존재하며 ‘어디를 걸어도 서툴게 소리를 내는 일이 없다. 하늘을 밟는 듯, 구름 속을 가는 듯, 물속에서 경(磬)을 치는 듯, 동굴 속에서 슬(瑟)을 타는 듯’(p.167)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존재. 나쓰메 소세키의 눈에는 우리 인간의 너절함을 직시할 이보다 좋은 ‘관찰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짐승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이 책이 21세기 오늘날까지 훌륭한 풍자극으로서 유효한 이유는 이처럼 시간의 무게마저 짓밟지 못할 ‘소재’를 골라내는 저자 나쓰메 소세키의 작가적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고양이가 말하는 ‘주인’은 누구인가? 바로 소세키 자신이다. 그는 지식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집 안에 처박혀 잠만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양이의 입을 빌려 그야말로 신랄하게 비꼬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쓰메 소세키는 희희덕대며 읽을 만한 재밌는 소설을 쓸 줄 아는 타고난 글쟁이이기도 했다. 이 책이 단순한 풍자극이기만 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했을 성싶은 게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은 무려 ‘재미’ 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꿀잼 허니잼’ 인 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의 두께에 겁부터 집어먹지 말고 일단 펼쳐 들고 볼 일이다. 10페이지 정도만 읽어 봐라. 어쩌면 앉은 그 자리에서 모조리 읽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