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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몇 자 적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의 번역이다. 나는 이 책에 별점 4.5개를 줬지만 어디까지나 번역에 관련된 문제는 제외한 점수다. 굳이 번역까지 평가하자면 나는 이 책에 별점 자체를 주고 싶지 않다. 번역의 질만 따지자면 정말 최악의 책이다. 읽던 당시 너무 황당해서 출판사 웹 사이트를 찾아갔는데 나와 비슷한 불만을 느낀 독자들이 꽤 많이 보였다. 역시나 개정판 출간 예정은 없다는 소리만 듣고 나왔는데, 행동 경제학 창시자의 기념비적인 저서를 쓰레기로 만든 출판사는 반성을 좀 했으면 싶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 기록들이 이 책에 총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책을 정의할 때 흔히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 내가 모르던 사실을 알려주는 책. 둘째, 다 아는 사실을 새롭게 보여주는 책. 이 책은 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분야에 무지한 나로서는 그의 연구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여기다 적기에는 이미 출판사 서평이나 언론사 서평으로도 읽을 수 있으니 필요 없을 듯하고(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명명된 연구는 『넛지』라는 책에 쉽게 소개되어 있다.) 그보다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논의를 한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이른바 ‘경험하는 자아 vs 기억하는 자아’.
요컨대 경험하는 자아는 ‘지금 기분 어때?’에 대답하는 자아이고 기억하는 자아는 ‘아까 어땠어’에 대답하는 자아이다. 카너먼 교수는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말할 때 후자, 즉 기억하는 자아에만 의지하는 성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정말 즐겁게 감상했지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러닝타임 내내 즐거웠던 경험을 모두 잊고 결말에 대한 불쾌한 감정만으로 영화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카너먼 교수는 이것이 우리 인간들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문득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 여행을 가서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에 목숨을 거는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이렇듯 단순히 ‘경제’에만 한정된 딱딱한 연구 자료를 제시하고 끝내지 않고 인간 행동 일반을 쉽게 풀어쓴 저작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작이 현재까지는 너무 적은 듯해서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