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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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메뉴는 닭볶음탕인가보다. 냄비 뚜껑을 열자마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더니 금세 코로 스며든다. 반지르르한 닭고기를 보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뜻뜻한 밥 한 공기에 당근, 감자, 닭고기 한 점 올려 한 숟갈 뜨는 상상을 하니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 국자 한가득 접시에 떠 담아본다. 흐음, 이 정도면 내 위장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구나 하고 양을 가늠해보곤 식탁에 올린다.



모두들 똑같은 검은 옷 위에 번호표를 달고 있어서 똑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만저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서열이 이만저만 다른 것이 아니다. (22p)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좋게 보면 자유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겐 그저 사소하기만 한 저녁을 먹기 전 잠깐의 과정도 책 속 슈호프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장소가 수용소라는 것과 신분이 죄수라는 이유로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자유조차 수많은 부조리 속에서 흔적을 감춘다.억압된 생활 속에서 그들은 '인권'이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들에게 부조리는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일상이 돼버렸고 환경은 그들에게 부당한 대우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대신 스스로 작아지는 법을 가르쳤다. 통제는 사람을 작아지게 한다. 그 결과 어쩌다 주어지는 작은 자유에도 만족감을 느끼는 나약해진,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이 이야기는 허구지만 허구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저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수용소 생활을 하며 느끼고 보았던 현실을 가감 없이 서술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당시 소련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어이없는 이유로 많은 사람을 잡아갔다고 한다. 저자의 죄명은 반소였다. 노동형 8년을 선고받은 그는 탄광 지대에 있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복역하게 되는데 아마 이 책을 쓸 때 필요했던 모든 제재를 당시에 습득하지 않았나 싶다. 수용소 안에도 서열은 있으며 가진 것(받는 소포의 양)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까지 정해지는 현실. 어떻게 보면 부조리한 사회 모습을 축약한 듯한 수용소 생활을 견디며 저자는 많은 생각을 한 듯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고발한 격이 됐다. 저자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인물이 겪은 수용소의 하루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그 속에 사회가 가진 수많은 부조리와 다양한 종류의 인간상을 고발하고자 한 게 아닐까. 수용소라는 축소된 사회는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셈이다.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야말로 그 중 가장 현명하고 확실한 표현법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이없이 빨리 지나가고는 한다.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닌 슈호프지만, 형기는 왜 그리 더디게 지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다.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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