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사기 전 종종 인터넷 서점을 들르곤 한다. 미리 보기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차례부터 머리말, 도입부까지 읽다 보면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어 좋다. 그중 내 지갑을 열게 하는 책은 대부분 도입부만 훑어도 느낌이 온다. 바로 이 책이 그랬다. 주인공 셜보 우르셔리의 마지막 외줄 타기를 다룬 도입부는 표현력이 생생해 작가가 마치 머릿속에 들어와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한마디로 활자로 그려진 그림 한 폭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렇게 잘 쓰인 도입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를 자연스레 안내했다.


 집시의 인생은 태생 자체가 비극인 걸까. 셜보는 집시의 자식이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몸 한번 편안히 누일 곳 없는 집시들의 삶.  "나를 선 채로 묻어라. 평생을 무릎 꿇고 살아왔으니." (25p), "우린 도망치는 게 아니란다. 때가 되어 더 나은 곳으로 떠나는 거지." (56p) 등 집시 언어에는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남을 도와주고도 집시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부모의 삶을 되풀이하는 것보단 줄 위에서 사는 인생이 그에게는 편안했던 걸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외줄 타기라는 것이 우리가 사는, 정확히 말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88만 원 세대와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셜보가 타는 외줄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건 현재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선택한 진로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는 날 우리는 사회라는 외줄에서 떨어지고 만다. 서커스 단장과 가족들이 안전망 설치를 제안해도 안전 그물 때문에 줄을 타는 순간의 집중력이 오히려 흐트러질 수 있다며 제안을 거부했던 셜보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어리석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함께 외줄을 타던 가족을 잃게 된 것이다. 사실 그들은 살기 위해 외줄을 선택했지만 누군가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두를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셜보의 잘못은 아니었다. 문제는 실수를 저질러도 다시 튕겨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망이 없었을 뿐이다. 안전망이 없는 건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독자로서 셜보에게 부러웠던 한 가지는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그랬던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셜보는 진심으로 외줄 타기를 즐겼던 것 같다. 비극적인 일조차 줄타기를 잠시 그에게서 떨어뜨려 놓을 수는 있었을망정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것이 죽음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셜보의 모습은 오히려 행운아처럼 느껴졌다. 


 셜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하는 그 일이 진정 당신을 즐겁게 하는가. 혹시 안전망 없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안전망 따위는 필요가 없다. 떨어지더라도 그 순간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셜보는 아버지가 고난의 시기에 웅얼거리곤 했던 집시 속담을 떠올린다. "나를 선 채로 묻어라. 평생을 무릎 꿇고 살아왔으니." 하지만 셜보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거의 평생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온 그 생각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각이 될 것이다.


나를 아무렇게나 묻어도 좋다. 나는 서서 죽을 것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