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순수의 시대 열린책들 세계문학 77
이디스 워튼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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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는 오래 전에 영화로 그 이름을 먼저 들었던 원작이었습니다.
감독이 무려 마틴 스콜세지 (참 오랫만에 기억해본 이름이네요). 배우들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미셀 파이퍼, 위노나 라이더 등. 배우들의 이름이 참 추억 돋습니다. 미셀 파이퍼가 마담 올렌스카, 위노나 라이더가 메이. 1993년 작이니 22년전 영화군요. 

근데, 전 이영화를 안 봤더랬습니다. 원작을 몰랐던 탓이기도 하지만, 그 무렵 영화를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엄청 바쁘게 뭔가 하던 때였네요.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뉘었있던데, 1부는 무척이나 지루했습니다. '웃는 남자' 때와 같이 절반을 설정에 할애하는 소설이더군요.

복잡하기만한 가문과 가문의 연계, 그들 사이에서의 복잡하기만한 관습, 전통...

1부 막바지부터 스피드가 나더니 2부는 앞부분에 비해서는 상당히 빠르게 지나가네요.

결론 부분의 세팅은 상당히 뜻밖이었습니다. 


아래 부터는 스포 입니다.
***********************************



뉴랜드 아처라는 인물은, 나름 지적이고, 도전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도 무척이나 대책없어 보이는 면모를 보이는데, 갑작스러운 사랑에 휩쓸려서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폭주하는 모습은 좀 아니다 싶긴 했지만, 어찌 보면 누구라도 다 그런 면이 조금씩 있기도 할 것 같습니다. 뉴랜드도 참 순수한 사람이지요. 래퍼츠나 보퍼트 등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메이 웰랜드의 순수함은 전통에 대한 순종적인 충성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뉴랜드 아처를 자신의 남편으로서 유지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합니다. 사랑을 방해하려 한다라기 보다, 꽉 짜여진 전통과 인습의 세계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투쟁이었다고나 할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 메이의 마음은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엘렌 올렌스카도 자신의 감정과 이성에 충실한 모습이어서 당시의 전통과 관습 체계 내에서는 삐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엘렌 올렌스카도 어찌보면 또다른 순수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사심'이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었습니다.

세사람 다 서로 다른 면모의 순수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순수의 시대인가요.

마지막 결론 부분이 인상적이더군요. 30년 뒤의 모습이라니...

이디스 워튼이 50대에 지은 작품이라 그런지, 자기 또래의 얘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와 자기 주변 사람들이 겪었던 20대 때의 일들이 50대가 되어서는 어떻게 생각되고, 어떻게 돌아보게 되는지.

마지막 문단은 다소 놀라왔습니다. 30년뒤의 모든게 다 잘 풀린 듯한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마지막의 그 서늘함이라니.

두 사람 사이의 30년 전의 격렬했던 감정의 폭풍은 극단적인 방향으로의 행동을 이끌뻔 했을 정도로 강렬했지만, 도리어 30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기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는 걸까요?

마지막 문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많은 가능한 설명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지만, (30년의 공백으로 이미 낯선 사람이 되었다 등등) 뭔가 부족합니다. 만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결국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30년전의 감정의 폭풍이지요. 지금 잘 굴러가고 있는 각자의 삶에 30년전의 그 폭풍은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의 '사랑'이란 감정은 즐거움 보다는 '고통'으로 더 많이 더 자주 느꼈음을 새삼 다시 기억하게 될테니까요. 

그때는 그렇게도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려 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의 기억들로 인해 안 만나는게 서로 편한 사이라는 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지 모르겠습니다.

줄거리 상으로는 뻔할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은 3명의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그들을 둘러싼 가족, 사회 구조 안에서 상호 연관되게 그려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명의 주인공 중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속한 가문과 사교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엘렌 올렌스카도 자유로운 듯 했지만,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빚진 마음까지 놓아 버릴 수는 없었지요. 그런 구조를 깨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 깨고 나간 뒤의 생존 조차 힘든 상황에서 결국 주저 앉게 되어 버리는 그럴 정도로 강력하게 사회적 구조가 지배를 하고 있었던 거겠습니다.

이렇게 각 사람을 둘러싼 환경, 각 사람의 개성과 취향, 또는 인격,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의 인간적 관계 등이 참으로 예리하고 섬세하게 빚어져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 환경 하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읽으며 느끼는 것. 그게 남는 여운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문학 작품들은 읽을 땐 힘드는데, 읽고 나서는 여운이 참 길어서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20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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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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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는 소설보다는 먼저 영화로 그 명성을 전해 들었던 듯 합니다. 그레고리 펙이 주연하여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로서 '앵무새 죽이기'의 이름은 들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93년도 번역판이 집에 있었지만,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퍼 리'란 이름은 너무 낯설었습니다. 

이번에 '파수꾼'이 출간되면서 미국에서 나오는 반응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 조차... 몇 마디 할 정도라니. 2000년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을 미친 책을 서베이한 결과 이 책이 1위였다고 하니,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는 궁금함에 이번에 알라딘에서 행사할 때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을 세트로 구매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은 1930년대의 미국. 정확히는 1933년부터라고 합니다. 대공황으로 인해 많은 백인 가정과 모든 흑인 가정이 고통을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이 여전한 남부의 가난한 앨라배마 주가 지역적 배경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지리적 시간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 우리는 대략 미국의 흑백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해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왔고, 고교 때 공부했던 성문종합영어의 장문 독해란에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이라는 명연설이 쉬운 영어로 편집되어 실려 있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큰 저항감 없이 소설에 몰입되게 됩니다. 워낙 평이하고 쉽게 글을 써서요. 등장인물들이 정말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대화와 생각이 낯설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스카웃, 젬, 딜 등의 어린아이들과 아버지인 애티커스, 모디, 캘퍼니아 등등 어느 캐릭터 하나 쉽게 내버려 두지 않고 개성있게 그려 냅니다.

매우 인상적인 상황 들도 있습니다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뭔가 배우기를 원했거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1부를 마무리하는 이 문장은, 이 문장이 얘기되는 그 상황의 구성 때문에 아주 감명깊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바람에 책을 덮고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던 부분이 윗부분을 포함해서 총 3군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한군데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 대문호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한 군데, 실러의 '도적 떼'에서 한 군데 정도 였을까요. 이런 감동이라니. 이렇게 평이하게 서술된 소설에서 이런 감동을 느껴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넘 어려운 소설들만 읽은 듯. '웃는 남자', '도적 떼', '12월 10일' 등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한 복판에 출간된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더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50년대의 매카시즘의 광풍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작된 미국 민권운동의 와중에서 이 소설의 애티커스 핀치는 가장 이상적인 미국인 상으로 미국인들에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사실 '파수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이 아니라, 작가가 '앵무새 죽이기' 전에 제일 처음 만들었던 초안이었으니까요. 이 초안을 검토했던 출판사 편집장의 의견에 따라서 3년에 걸쳐서 수정해서 낸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니까요. 작가가 뭔가 부족해서 내지 않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니, '앵무새 죽이기'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출판사의 장삿속으로 하퍼 리가 지병으로 반대 의사 표명이 어려운 때에 억지로 출판한 거 아니냐 고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어쨌건 그 덕분에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서 관심들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번역도 나오고 저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들 읽으시겠지요.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오늘 날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책이 그들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 때문이겠습니다. 

이 책이 미국인들이 아닌 전세계 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미국의 흑백 이슈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 나라의 상황 가운데에서 이 책이 가지는 보편적인 의미가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제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러한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상이 절실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보면 어느 시절 어느 지역에서 이러한 애티커스 핀치를 갈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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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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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4>


얼마 전에 차일드 44를 읽었습니다. 50년대 러시아가 배경이지요.

약 2년 전에는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었기도 하구요.


뭔가 이 소설이 배경으로 하던 시대와 그리 멀어보이지 않습니다. 

1920년대의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 뒤의 러시아 사회의 혼란을 작가가 상상력을 풍성히 발휘하여 그려낸 작품이지요.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보이는 환상과 현실이 경계없이 막 섞여 있는 모습이 이 두 작품들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런 환상들을 통해서 작가는 이면에 흐르는 뭔가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개의 심장에서는 특별한 개를 통해 인간의 추악함을 볼셰비키 혁명 직후의 사회상에 얹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사회상 가운데서 드러나는 개개인의 욕망이 적나라합니다. 혁명의 원래 목적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너무나 큰 대의는 이제는 개개인을 옥죄는 모습이 되는 그 모습이 이 소설에도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악마의 서사시에서 힘없는 개인은 희생자가 되고, 눈먼 시스템은 그런 희생자를 양산합니다.


불가꼬프는 어떻게 그 당시의 소련에서 이런 체제비판적인 소설을 써낼 수 있었을까요. 그 용기와 굽히지 않는 신념이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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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열린책들 세계문학 132
마크 트웨인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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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허클베리 핀을 정말로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예전에 분명히 읽었는데, 전혀 생각이 안나네요. 

그땐 그닥 재미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래 이하는 스포가 있습니다. 가끔 오래된 책에 대한 소개에서도 스포에 민감한 분들이 계시더군요.)


중반 이후 어떤 순간에 허클베리 핀이 어떤 결정의 시점에서 고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이 책의 최대 하이라이트이자 핵심이라는 느낌입니다.

이 결단을 얘기하기 위해 이 소설이 여기까지 왔고, 이 결단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 다음으로 소설이 진행되는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나는 종이를 집어 들고는 손으로 꼭 잡았다.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하며 숨을 고른 뒤, 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리고는 편지를 북 찢어 버렸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이 대목은 지난 번의 '도적 떼'에서 카를이 긴 독백 가운데 권총을 내던지던 장면,

'웃는 남자'에서 그윈 플레인이 밤 동안의 심각한 고뇌를 데아의 존재를 상기하며 씻어내던 장면 등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린 엘리자베스 이야기를 하는 짐의 대사도 그에 못지 않은 인상적인 대목이었구요.


뒷편의 역자 해설에서도 이 두 대목이 인용되어 있더군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톰 소여는 그야말로 4차원이더군요.


하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랬네요.


마크 트웨인도 참 대단한 작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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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웃는 남자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6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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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4>


빅토르 위고가 그야말로 '대문호'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새삼 느끼겠더군요.


'웃는 남자'의 플롯은 그야말로 단순합니다. 허무하기 까지 할 정도지요.


그런 단순한 플롯으로 가능한 것은 그윈플레인과 데아가 매우 순수한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윈플레인은 '조시언'과의 마주침 이후 많은 갈등과 고민을 겪게 되지만, 그 갈등과 고민은 또한 그가 얼마나 순수한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을 둘러싼 세상도 역시 단순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이기성, 그에 기초한 잔혹함.


세상의 어둠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해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때가 확실히 더 심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저런 분위기의 서유럽 사회에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기 까지 대체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신기하기조차 했습니다.


그런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 그윈플레인과 데아는 그 순수함으로 인해 도리어 너무 밝게 빛나 보입니다.


"찬연한 빛 발산하는 다정한 눈먼 소녀가, 그곳에 나타난 것 이외의 다른 노력 없이, 그의 내면에 있던 어둠을 씻어 버렸다." 


그들의 밝게 빛나는 순수함과 세상의 어두움이 맞닥뜨리는 장면은 결국 비극으로 끝납니다. 


빅토르 위고의 묘사는 정말로 풍성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풍성합니다.모든 장면, 모든 상황, 필요한 모든 사람에 대해서 풍성하게 묘사합니다. 데이비드, 조시언, 바킬페드로, 여왕 등 조연들에게도 그는 무척이나 풍성한 묘사로 지면을 채웁니다. 


조금 지루하지만, 그러한 묘사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대략 그 사회 분위기가 이해가 되고, 그 사람의 내면도 이해가 됩니다. 조시언의 그 이해하기 힘든 방종스런 모습이나, 바킬페드로의 그 이상한 집념, 메리와 조시언의 묘한 관계, 기타 등등,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 풍성한 묘사들을 읽기가 힘들게 만드는 요인 중 한가지는 풍성함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왜 이 풍성함이 필요한지 납득이 안가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대체 왜 이리 자세히 설명하는 걸까 싶은 것도 있었지요. 이야기가 온갖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도대체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모르겠는 거죠.


그런데, 그런 풍성한 묘사로 갈라져만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서 절정을 이루는 듯한 부분이 하권에 몇 번 나타납니다. 제겐 그 장면이 3번 정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지나친 스포가 될 듯하네요.


그런 부분에서 정말 머리가 띵했습니다. 풍성한 묘사는 복선을 효과적으로 감추는 역할도 하면서, 그 복선이 드러날 때, 그 효과를 배경에 대한 풍성함을 통해 더 증폭하는 듯 합니다.


당장 일어난 사건에 놀랄 뿐 아니라, '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다소 흥분된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 상황이 다가옵니다. 


마지막 장면은 참...


말도 안되는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왜 이렇게 끝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고라는 대문호께서 그렇게 끝내셨다니, 그냥 받아들여야겠지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심장이 쥐어짜는 듯한 그런 슬픔을 느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그들의 패배는 결국 순수함이 어두움에 패배한 모습인걸까요.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의 현실적인 모습인걸까요?


이 소설은 불행한 두 연인의 가슴아픈 사랑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위고 자신이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위고는 1802년에 태어나서 1885년에 작고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서 왕정은 종식되었지만, 혼란이 계속되고 있떤 19세기 초에 태어난 셈입니다. 풍운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황제에서 물러난게 1815년이네요.


영국에서의 저런 비인간적인 귀족 체제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있었겠지요. 레미제라블은 그러한 프랑스에 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19세기는 서유럽에서 그러한 제체가 서서히 무너지며 자유민주주의 적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의지와 행동이 부딪히면서 그 흐름이 매번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오늘의 모습입니다. 이게 최선이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의문만이 남지만, 17세기에 비해서는 인간의 자유, 존엄, 평등의 가치에 대해서는 많은 진보가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빅토르 위고 자신 1851년에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항거하다 영국으로 망명하기까지 하는 등, 그 시절을 몸으로 겪어 내며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대를 살던 빅토르 위고가, 그윈플레인과 데아를 통해 1차적으로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혼란의 시대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위대한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물상이 그윈플레인과 데아....


그윈플레인과 데아... 이글을 쓰면서도 이 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니, 마음이 많이 쓰립니다.


19세기말의 프랑스를 생각하며, 17세기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위고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책을 덮고서 계속 머릿 속에 남았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그들이 살던 때인 17세기보다, 인간의 자유, 존엄성, 평등의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들의 순수함은 결코 패배한 것은 아니겠지 싶습니다.


책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작품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더군요. 

독후감 쓰기도 참 쉽지 않은 작품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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