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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웃는 남자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6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2015.05.04>
빅토르 위고가 그야말로 '대문호'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새삼 느끼겠더군요.
'웃는 남자'의 플롯은 그야말로 단순합니다. 허무하기 까지 할 정도지요.
그런 단순한 플롯으로 가능한 것은 그윈플레인과 데아가 매우 순수한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윈플레인은 '조시언'과의 마주침 이후 많은 갈등과 고민을 겪게 되지만, 그 갈등과 고민은 또한 그가 얼마나 순수한가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을 둘러싼 세상도 역시 단순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이기성, 그에 기초한 잔혹함.
세상의 어둠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해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때가 확실히 더 심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저런 분위기의 서유럽 사회에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기 까지 대체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신기하기조차 했습니다.
그런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 그윈플레인과 데아는 그 순수함으로 인해 도리어 너무 밝게 빛나 보입니다.
"찬연한 빛 발산하는 다정한 눈먼 소녀가, 그곳에 나타난 것 이외의 다른 노력 없이, 그의 내면에 있던 어둠을 씻어 버렸다."
그들의 밝게 빛나는 순수함과 세상의 어두움이 맞닥뜨리는 장면은 결국 비극으로 끝납니다.
빅토르 위고의 묘사는 정말로 풍성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풍성합니다.모든 장면, 모든 상황, 필요한 모든 사람에 대해서 풍성하게 묘사합니다. 데이비드, 조시언, 바킬페드로, 여왕 등 조연들에게도 그는 무척이나 풍성한 묘사로 지면을 채웁니다.
조금 지루하지만, 그러한 묘사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대략 그 사회 분위기가 이해가 되고, 그 사람의 내면도 이해가 됩니다. 조시언의 그 이해하기 힘든 방종스런 모습이나, 바킬페드로의 그 이상한 집념, 메리와 조시언의 묘한 관계, 기타 등등,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 풍성한 묘사들을 읽기가 힘들게 만드는 요인 중 한가지는 풍성함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왜 이 풍성함이 필요한지 납득이 안가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대체 왜 이리 자세히 설명하는 걸까 싶은 것도 있었지요. 이야기가 온갖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도대체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모르겠는 거죠.
그런데, 그런 풍성한 묘사로 갈라져만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서 절정을 이루는 듯한 부분이 하권에 몇 번 나타납니다. 제겐 그 장면이 3번 정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지나친 스포가 될 듯하네요.
그런 부분에서 정말 머리가 띵했습니다. 풍성한 묘사는 복선을 효과적으로 감추는 역할도 하면서, 그 복선이 드러날 때, 그 효과를 배경에 대한 풍성함을 통해 더 증폭하는 듯 합니다.
당장 일어난 사건에 놀랄 뿐 아니라, '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다소 흥분된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 상황이 다가옵니다.
마지막 장면은 참...
말도 안되는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왜 이렇게 끝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고라는 대문호께서 그렇게 끝내셨다니, 그냥 받아들여야겠지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심장이 쥐어짜는 듯한 그런 슬픔을 느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그들의 패배는 결국 순수함이 어두움에 패배한 모습인걸까요.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의 현실적인 모습인걸까요?
이 소설은 불행한 두 연인의 가슴아픈 사랑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위고 자신이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위고는 1802년에 태어나서 1885년에 작고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서 왕정은 종식되었지만, 혼란이 계속되고 있떤 19세기 초에 태어난 셈입니다. 풍운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황제에서 물러난게 1815년이네요.
영국에서의 저런 비인간적인 귀족 체제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있었겠지요. 레미제라블은 그러한 프랑스에 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19세기는 서유럽에서 그러한 제체가 서서히 무너지며 자유민주주의 적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의지와 행동이 부딪히면서 그 흐름이 매번 이리 꺾이고 저리 꺾이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오늘의 모습입니다. 이게 최선이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의문만이 남지만, 17세기에 비해서는 인간의 자유, 존엄, 평등의 가치에 대해서는 많은 진보가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빅토르 위고 자신 1851년에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항거하다 영국으로 망명하기까지 하는 등, 그 시절을 몸으로 겪어 내며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대를 살던 빅토르 위고가, 그윈플레인과 데아를 통해 1차적으로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혼란의 시대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위대한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인물상이 그윈플레인과 데아....
그윈플레인과 데아... 이글을 쓰면서도 이 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니, 마음이 많이 쓰립니다.
19세기말의 프랑스를 생각하며, 17세기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위고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책을 덮고서 계속 머릿 속에 남았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그들이 살던 때인 17세기보다, 인간의 자유, 존엄성, 평등의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들의 순수함은 결코 패배한 것은 아니겠지 싶습니다.
책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작품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더군요.
독후감 쓰기도 참 쉽지 않은 작품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