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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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는 소설보다는 먼저 영화로 그 명성을 전해 들었던 듯 합니다. 그레고리 펙이 주연하여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로서 '앵무새 죽이기'의 이름은 들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93년도 번역판이 집에 있었지만,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퍼 리'란 이름은 너무 낯설었습니다. 

이번에 '파수꾼'이 출간되면서 미국에서 나오는 반응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 조차... 몇 마디 할 정도라니. 2000년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을 미친 책을 서베이한 결과 이 책이 1위였다고 하니,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는 궁금함에 이번에 알라딘에서 행사할 때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을 세트로 구매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은 1930년대의 미국. 정확히는 1933년부터라고 합니다. 대공황으로 인해 많은 백인 가정과 모든 흑인 가정이 고통을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이 여전한 남부의 가난한 앨라배마 주가 지역적 배경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지리적 시간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 우리는 대략 미국의 흑백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해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왔고, 고교 때 공부했던 성문종합영어의 장문 독해란에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이라는 명연설이 쉬운 영어로 편집되어 실려 있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큰 저항감 없이 소설에 몰입되게 됩니다. 워낙 평이하고 쉽게 글을 써서요. 등장인물들이 정말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대화와 생각이 낯설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스카웃, 젬, 딜 등의 어린아이들과 아버지인 애티커스, 모디, 캘퍼니아 등등 어느 캐릭터 하나 쉽게 내버려 두지 않고 개성있게 그려 냅니다.

매우 인상적인 상황 들도 있습니다

네가 할머니에 대해 뭔가 배우기를 원했거든.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1부를 마무리하는 이 문장은, 이 문장이 얘기되는 그 상황의 구성 때문에 아주 감명깊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바람에 책을 덮고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던 부분이 윗부분을 포함해서 총 3군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한군데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 대문호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한 군데, 실러의 '도적 떼'에서 한 군데 정도 였을까요. 이런 감동이라니. 이렇게 평이하게 서술된 소설에서 이런 감동을 느껴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넘 어려운 소설들만 읽은 듯. '웃는 남자', '도적 떼', '12월 10일' 등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한 복판에 출간된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더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50년대의 매카시즘의 광풍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작된 미국 민권운동의 와중에서 이 소설의 애티커스 핀치는 가장 이상적인 미국인 상으로 미국인들에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사실 '파수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이 아니라, 작가가 '앵무새 죽이기' 전에 제일 처음 만들었던 초안이었으니까요. 이 초안을 검토했던 출판사 편집장의 의견에 따라서 3년에 걸쳐서 수정해서 낸 작품이 '앵무새 죽이기'니까요. 작가가 뭔가 부족해서 내지 않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니, '앵무새 죽이기'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출판사의 장삿속으로 하퍼 리가 지병으로 반대 의사 표명이 어려운 때에 억지로 출판한 거 아니냐 고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어쨌건 그 덕분에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서 관심들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번역도 나오고 저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들 읽으시겠지요.

이 책이 미국인들에게 오늘 날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책이 그들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 때문이겠습니다. 

이 책이 미국인들이 아닌 전세계 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미국의 흑백 이슈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각 나라의 상황 가운데에서 이 책이 가지는 보편적인 의미가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제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러한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상이 절실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보면 어느 시절 어느 지역에서 이러한 애티커스 핀치를 갈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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