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안병수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먹을 게 없다는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는 기막힌 공포

최근 들어 충격적인 책들을 많이 읽은 탓인지 머리가 흔들흔들 가슴이 오돌토돌해진다. ‘1984’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내 눈이 먼 것처럼 허공에 손을 내젓게 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곳곳에 뾰족한 송곳을 숨겨놓아 긴장이 풀어질라치면 툭툭 나를 찔러댔고 ‘한국의 연쇄살인’은 살인범의 사진까지 실어놓아 내 머릿속에 그 끔찍한 人들이 즐거이(?) 놀게 했다. ‘모래의 여자’는 현실에 갇혀 버둥대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왠지 모래가 미웠다. 퍽퍽퍽퍽. 그리고 그 외 유익한 여러 책들.


그 중에서 나를 순식간에 변화시킨 책은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다. 얇아라. 내 귀. 아니 내 눈. 일주일째 과자, 음료, 커피, 설탕을 무시한 채 밥만 먹고 있다. 아... 심심해라. 금단현상에 눈 앞이 흐려지며 시력이 마비된건 아닌가 골똘히 생각해 볼 정도이다.


이 책은 강렬한 책이다.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왜냐. 나는 최소 10년을 스스로 ‘과자킬러’라 칭하며 살아 왔다. 그것이 꽤나 유아틱하고 귀엽고 깜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랍스터를 좋아해요’보다는 ‘떡볶이를 좋아해요’가 더 쌍큼발랄하게 느껴지듯. 내게 왠만한 영화는 다 재미있고 왠만한 책은 다 즐겁듯. 나 왠만한 모든 과자를 ‘신의 아름다운 창조물’이라며 사랑했다. 아작아작우적우적꺌꺌꺌꺌. 한끼 밥을 대신하여 과자 한 봉, 두끼 밥을 대신하여 커피 열 모금... 그러다보니 아싸 살도 빠지더라. 2~3키로 빠졌던 내게 여위었다던 친구들에게 찜질방에서 강의(?)도 했다. “녹차물을 마셔라.” “밥을 멀리하고 과자와 커피를 애인 삼아라.” 침이 튈 즈음 그들은 이미 다른 방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홀로 그렇게 신이 났었다. 으항항항 까까(과자) 까까. 까까 줘. 그런 내게 ‘꿈의 궁전’인듯한 과자회사에서 16년간 근무했다는 저자가 살이 바들바들 떨리는 공포를 선물했다. 연두리본으로 치장한 채. 옛다. 정신 차려..하며. 제과회사를 경영했던 (저자의) 일본인 친구. 그의 갑작스런 의문의 행동. 그 이야기로 시작되는 살짝 괴기스런 한국최초 공포수필.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배스킨 라빈스’를 이상한 아이스크림 회사라 칭한다. 그 이유는 차마 말 못하겠다. 슬퍼서. ㅋㅋㅋ. 그리고 국가적으로 전세계적으로 국민들이 조롱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한 번 걸러 쳐다보게 된다. ‘사실이야? 진실이야? 거짓이지? 거짓말이잖아!’ 거대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어쩔수 없어.’라며 국민의 몸과 마음을 죽일지 모를 해괴한 것들을 제품에 슬쩍 넣고 판다. 그리고 광고한다. ‘천상의 맛이옵니다. 드시면 행복이 찾아갈겝니다.’ 책 중간 즈음 내가 모르는 어려운 용어들이 나온다. 어려운 건 모르겠다. 몰라몰라. 하지만 그..그것들이 우리의 몸만 망치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하여 갑자기 뚝 과자와 커피와 설탕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딱 한잔의 설탕프림범벅커피를 마셔보았다. 사약을 들이키듯 근엄하고 단아하게 그러나 꿀꺽꿀꺽. 거 기분이 묘하다. 무섭고도 맛있다. 아 어쩌랴. 그래도 대견하다. 일주일이었잖은가. 조금 더 노력하자.


X

과자. 아이스크림. 라면. 초코파이. 캔디. 껌. 설탕. 물엿. 패스트푸드. 가공치즈. 가공버터. 햄. 소시지. 바나나우유. 청량음료(콜라. 사이다. 드링크. 피로회복제) 마가린. 쇼트닝. 팝콘. 정제당. 화학물질. 트랜스지방산. 튀김(감자튀김. 포테이토칩. 돈까스. 탕수육. 치킨. 유부) 식품첨가물. 흰밀가루. 백미. 식용유. 비타민제. 철분제. 인산염(어묵)...


O

비타민. 미네랄. 자연음식. 섬유질(과일. 야채)


이쯤에서 멋지게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모르겠다. 내가 먹은 수백 수천 봉 과자와 식품첨가물로 인해 내 정신은 저 곳 어딘가로 소풍간겐가... 그런겐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도통 먹을 게 없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추를 찍어 먹자니 판매된장고추장에 뭐가 들어갔는지 알수가 없고 찌개를 먹자니 호박은 싱싱해 보이나 판매간장에 무엇이 들었나 알수가 없고 굶자니 배고파 헤롱대느니. 그런데 어찌 내가 과자를 멀리 하고 푸른 고추에까지 손을 대고 있느뇨.. 이런 것이 바로! 책!의 힘이다. 어허.. 무엇을 먹고 살란 말이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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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8-2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리 재밌는 리뷰를 제가 못봤었군요..!!^^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해콩 2005-08-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가 블루스]까지 읽고 나면 죽음이라더군요.. 저도 아직 안 읽어본 책이지만..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식품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죽음에 이르는 먹거리'가 아닐까 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일 뿐이니까.. 그런데 설탕은 더 무시무시하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이들 학교 급식도 아울러 걱정입니다. 먹거리문화, 입맛의 획일화에 앞서 급식업체 역시 이윤창출이 목적인 기업일 뿐이니 아무리 검사를 열심히 해도 싸고 이문이 많이 남는 식재료 사용에 상할 염려 없는 조리법-기름을 이용한 튀기기나 뽁기 등-이니까.. 학부모님들.. 조금 귀찮더라도 아이들 도시락 싸주세요~ 소박하고 단촐한 반찬이라면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실텐데..
(참고로.. 제 '도시락 싸다니기'주장은 저희 가족들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ㅠㅠ)

거친아이 2005-08-2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해짐님~리뷰 잘 봤어요...당선되셔서 좋으시것다! 옛날엔 이런 거 잘 안 따지고, 없어서 몬 먹었잖아요. 이제 살만 해진 겁니다. 좋은 현상이죠..그래도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참는다는 건 어렵도다~~

진진 2005-08-2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항상 감사합니다. ^^

해콩님: 닉넴이 깜찍하네요. 슈가 블루스라... 이 책의 약효가 떨어질 즈음 한 번 시도해봐야겠네요. 정말 다 따지고 보면 먹을 게 없어요. 그래도 설탕은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세상에 안 좋은 음식이 저리 많아 소식가들이 오래 사나 봐요.. 아으..

거친아이님: 네 좀아욤. ㅋㅋ. 완전히 참기보단 조금씩 줄여보기로 했답니다. 느슨해질 즈음 다시 이 책을 보죠 뭐. ^^*

플레져 2005-08-2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해짐님~ 축하해요~ ^^ 리뷰가 넘 재밌는걸요~ ^^ 리뷰의 힘! 을 팍팍 느끼고 추천합니다!

진진 2005-08-2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하옵니다. 칭찬의 힘!을 느끼고 있습니다. ㅋㅋ

비연 2005-08-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근데...그림이 '바람의 그림자'네요..이 책 멋지죠?^^

울보 2005-08-2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책입니다,,

진진 2005-08-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네 멋진 책이죠. 다시 한 번 읽고 싶은데 밀린 책이 어찌나 많은지.. ^^

울보님: 넵. 감사합니다. 두 번이나 축하해 주셔서 하나는 지웠습니다. ^^ 아이를 키우는 어머님들은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비로그인 2005-09-0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밌는 리뷰를 보다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꼭 읽고 싶어지네요

진진 2005-09-0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71. (건강/한국수필)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
⊙ 건강'술'을 먹기 위한 푸짐한 모듬세트 '안주' 같은.
⊙ 이제껏 읽은 서민님의 책 중 단연 최고.
⊙ 퀴즈 100점이닷. 야하하.

72. (심리/미국수필)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로렌 슬레이터 ★★★★☆

73. (파멸/일본소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 자기파멸. 자살. 허무. 고독.

74. (실종/일본소설)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
⊙ [실존주의] [일본의 카프카]
⊙ [놓친 물고기는 언제나 크게 보이는 법이지.] -> 현재에 만족하고 살아라?
⊙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아 휴가 떠난 -> 모래에 갇힌 남자 -> 끊임 없이 탈출을 꿈꾸지만 결국 스스로 갇히다.
⊙ 우리는 항상 현재를 끔찍해 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재'와 '미래'는 같은 세상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바로 이 곳에 있다. 현.재.

75. (사랑/헝가리소설) ♣결혼의 변화 - 하♣ 산도르 마라이 ★★★★☆
⊙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자. 하인. 사랑.
⊙ 매력적인 소설.

 

 

 

 

76. (건강/한국수필)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안병수 ★★★★★
⊙ 리뷰 쓰다.
⊙ 충격적인 사실들. 강한 설득력.

77. (모음/한국수필) ♣내 인생의 영화♣ 공지영 외 ★★★★☆
⊙ 너무 깜찍한 책 모양.
⊙ 글 참 잘 쓰는 박찬욱.
⊙ Dr '빨간머리앤' '소공녀'

78. (창작/미국수필)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
⊙ 밑줄 많은. 버릴 것 없어 반복해서 읽을 것.
⊙ 수필임에도 소설 같은.
⊙ 마약, 알코올 중독자였던.
⊙ 하루 소설 10장씩. 하루 5개 씬씩.
⊙ 뮤즈.

79. (세계/한국수필) ♣세계를 모르면 도전하지 마라!♣ 박영진 ★★★☆☆
⊙ 저자의 용기. 실행. 좀 더 세련된 형태로 책을 꾸몄으면 하는 아쉬움.
⊙ p70 포카라
⊙ 원월드티켓 540만원.
⊙ 446일 2580만원으로 70개국 여행 -> 15개월 하루 평균 58,000원 사용

80. (인생/중국수필)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엮음 ★★★★☆
⊙ 가벼운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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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5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진 2005-08-1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펜을 들고서 100점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단순단순 ^^V

진진 2005-08-1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첫인사이신가여? 가물가물한게 ㅋㅋ 워낙 님의 닉네임을 많이 봐서여. 헷.. 반가워요 100점.
 

 

 

 

 

1. 28
시는 무겁고, 시는 짙고, 시는 너무 독했다.

2. 74
작년 일이다. 샐러리맨 시절의 친구와 육 년 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지금도 간혹 며칠동안 펜을 잡지 못하고 울적한 기분으로 지내곤 한다.
친구는 헤어질 무렵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변했군." 그 말에서 얼마간 실망의 뉘앙스가 느껴져 나는 짬을 주지 않고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변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 나의 눈매는 지금보다 한층 매서웠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섬뜩하도록 노려보았다고 한다.

3. 89
새로운 소설이 실험적이라든가 모험적이라는 평가밖에 받지 못하고 대부분 실패하는 주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어떤 문체가 적합한가란 문제부터 차근차근 출발하지 않고, 대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미지에 휘둘려 서둘러 펜을 잡기 때문이다.

4. 104
영화나 소설이나 '절제'가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대사와 다변적인 대화에만 의존하여 스토리를 이해시키려 한다면 리얼리티 따위는 애초부터 무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더욱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관객이나 독자들이 그런 안이한 줄거리 전개에 길들여진 나머지, 격에 맞지 않는 대화도 순순히 받아들여, 어느 틈엔가 소설이나 영화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착각하는 점이다.

5. 112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끊임없이 쓰는 일이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지름길이었다. 다른 길은 없는 듯했다. 그러니 일단 쓴 작품은 좋건 나쁘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6. 123
소설은 우선적으로 문장을 통하여 독자를 압도하지 않으면 안 되고, 영화는 화면으로 관객을 압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7. 145
내 가슴속에 구멍이 뻥 뚫린 때가 어쩌면 자유로운 삶의 입구로 가는 문이 열린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가늠할 길 없는 허망함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면 반짝이는 인생을 영위할 수 없지 않았을까.

8. 172
사사의 통신과에서 텔렉스 오퍼레이터로 일하던 시절의 나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떤 회사 조직이든 그 안에 속해 있는 사람은, 삶의 보람이 어쩌니저쩌니 해보아야 결국은 허망한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점에서 서로가 아무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존재들이다.

9. 203
그때 나는 좀 이상했다. 소설가인 주제에 사람을 싫어했다. 가능하면 타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고, 말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구태여 생생한 삶의 현장이나 인간들의 모습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은 늘 존재했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좀더 좋은 소설을 쓰겠다는 결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내 각오를 확인했다.

10. 207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11. 243
어떤 사나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 책을 사는 게 아니야. 꿈과 감동을 찾아 돈을 서점에 갖다 바치는 거라구."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하, 그런 거였어. 현실은 구질구질하고 넌덜머리가 나는 일뿐이니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밋빛 세계로 도피하겠다는 말이지'라고 생각했다.

12. 326
쓰잘데 없는 소설 다섯 편을 쓰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한 편의 소설에 바쳐 보다 나은 작품 한 편을 완성해야 한다. 현재 쓰고 있는 소설이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소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지를 늘 자각하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자세와 각오를 유지해야 한다.
...
창작이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은 소설을 지향하며 정신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위이다.
...
'고의 자세'는 젊은 작가를 스스로 단련시키면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마음의 깊이를 그윽하게 해줄 것이다. 바늘처럼 가늘었던 감성을 창처럼 굳건하게 길러줄 것이다. 그리고 차츰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줄 것이다.

13. 341
샐러리맨으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은 필력이 저하할 염려는 없다. 다만 안정된 수입과 소설이 잘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샐러리맨 생활에 충실하면 된다는 생각이 점차 필력을 느슨하게 만든다. 돈은 사탄과 같다. 돈이 너무 많으면 소설을 쓰지 않게 되고, 돈이 너무 없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 큰 돈이 들어오면 보여야 할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빚에 쪼들이면 보여야 할 빛이 보이지 않는다.


***
몸으로 부딪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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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
마음이나 감정의 순수성을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그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조건을 모두 없애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랑, 그 우정이 유지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돈이 없고 외모가 초라해도 상대방이 날 사랑할 것인지, 내가 가난하고 성격이 고약해도 친구가 나와의 우정을 유지하는지 같은 식으로 말이다.

2. 30
웃음이란 뭔가에 크게 놀라긴 했는데 동시에 그게 위험하지는 않다고 느낄 때 나오는 표정이다. 이는 코미디의 기본 요소가 바로 놀라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사람들을 웃기려면 일단 놀라게 해야 한다.

3. 45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애초에 살던 방식대로 계속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철들고 나서 알게 된 세상의 모습이 죽을 때까지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변화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탈출구도 없는 궁지에 몰려야 간신히 아주 조금 변화한다.

4. 67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환상을 건드려야 한다.

5. 75
발달심리학자 쥬디스 리치 해리스
"나는 '사회화'란 일종의 모래시계 같은 모양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처음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으로 시작해서 집단의 압력에 의해 한데 묶여서 보다 비슷해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집단의 압력은 점차 약해지고 개인차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독특해지는데, 왜냐하면 자신들의 특이함을 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과 달라져도 별로 심한 벌을 받지 않는다."
...
어디서나 초보는 제멋대로이고, 중수는 획일화되어 있고, 고수는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제멋대로가 된다. 초보의 제멋대로는 미숙하기 때문이지만, 고수의 제멋대로는 기술을 통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6. 103
부모가 아이를 놓아 주어야 아이는 자란다. 부모가 아이를 붙잡으면 아이는 자라기 위해서 부모를 버려야 한다.

7. 112
만화나 영화나 이런 식으로 부수어 대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가 도시의 꽉 짜인 일상과 제도를 늘 편안하게만 느끼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들을 부숴 버리거나 무시해 버리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 한 켠에 숨어 있음을 의미한다.

8. 123
착하다는 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규칙에 대해서 섣부른 지식만이 있는 상태이거나 현실적으로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한 행동규범을 따르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대안이나 규범을 내놓고 그걸 따르려는 것이다.

9. 234
내 내면의 문제와 바깥의 문제를 최소한 일부분이라도 깨끗이 해결해 주는 성배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 당신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결국 어떻게 하든 문제는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떤 문제들을 데리고 살 것이냐(다시 말해서 어떻게 살 것이냐)이지, 지금 사는 방식에서 좋은 것만 남기고 나쁜 것은 없애는 그런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10. 300
두려움이 있어야 안도감이 있고, 고통이 있어야 쾌감이 있다는 뜻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만약 우리가 불행을 느끼지 못한다면 동시에 행복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즉 불행을 없애면 '행복 vs 불행'이란느 감정 쌍 자체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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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8-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가 극찬했던 책이라 책임감을 갖고 있는 책이랍니다^^

진진 2005-08-0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에 쏙쏙. 마음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욤. 역시 마태님...
 

 

 

 

 

1. 한국어판 서문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풍부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그 속에는 이야기와 인물들, 일상 생활의 세세한 부분들이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글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던 '간결하고 분명하게 세상을 보는' 베르메르의 방식이었다. 베르메르는 '적을수록 더 낫다'는 것을 내게 가르쳤다. 그 이후 나는 이 미학의 원리를 연습해오고 있다.
...
작가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목표는 독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 책장을 넘기도록 늦게까지 잡아두는 그런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2. 271
나는 뛰기 시작했다. 아우더랑언데이크 가를 달려 내려가 다리를 건너 시장 광장으로 들어섰다.
오직 도둑과 아이들만 뛰는 법이다.
광장 중앙에 이르러, 나는 팔각형 별자리가 있는 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별이 가리키는 각각의 방향, 어느 쪽으로던 나는 갈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피터를 찾아가서 결혼에 동의한다고 할 수도 있다.
반 라위번의 저택으로 갈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아마 미소로 나를 맞이할 것이다.
반 레이원후크를 찾아가서 동정을 구할 수도 있다.
로테르담으로 가서 동생을 찾아볼 수도 있다.
멀리 어딘가로 그저 떠날 수도 있다.
파펜후크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교회로 가서 하느님께 길을 알려달라고 기도를 드릴 수도 있다.
빙글빙글 원 안을 돌면서 나는 생각했다.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알았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별의 한 꼭지점에 주의 깊게 발을 딛고, 그 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는 어김없이 걸어갔다.

3. 284
"그래, 인생이란 한바탕 연극과 같은 거야. 자네도 오래 살다보면 놀랄 일 따위는 없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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