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기덕
93년 처음 영화에 관심을 두었을 때 시나리오부터 쓰기 시작했기에 나는 그전에 거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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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희망차고 행복하게 끝나면 관객들은 흐뭇하겠지만, 그건 얄팍한 위로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은 가래침을 뱉는다.
2. 김대우 - 반칙왕, 정사, 스캔들 시나리오 작가
1966년 욕망
어느 사진작가가 우연히 공원에서 데이트하는 남녀를 찍었는데, 그 사진들을 자꾸만 확대하다 보니 사진 속에서 어떤 살인의 기미를 발견하게 되고, 부분들을 확대하자 시체까지 발견된 것이다. 그는 한밤중에 공원으로 달려가 '정말로' 시체를 발견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 현상해 둔 사진들은 모두 없어지고 되돌아가 보면 공원의 시체도 사라진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 역시 자신이 본 것과 그것을 본 자신,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의 실체에 의혹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3. 김지운 - 반칙왕,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 감독
1980년 글로리아
몇 해 전 나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무려 5개월 동안 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수많은 날들을 바게트와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면서 파리의 극장을 이곳저곳, 구석구석 이잡듯이 뒤지고 다니던 때였다. 뱃속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를 내며 아우성이었지만,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오면 그것마저도 마냥 행복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4. 노희경
1988년 바그다드 카페
남아도는 게 시간뿐인지라 책 보는 게 일인데,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돈 쏟아 붓는 소리 같았다.
5. 박찬욱
아마도 성정이 건방져서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만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도 그렇고 음악을 들어도 그런 것이, 남들 다 좋다는 이른바 세계 명작은 젖혀 놓고 꼭 뭐 저런 괴물이 다 있나싶게 이상하고 덜 알려진 물건들만 탐해온 터이다. 물론 사정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괴물은 자연 귀물이어서 썩 마음에 드는 영화를 구해 보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6. 유시민
1995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결혼은 사랑의 느낌을 습관화된 일상으로 전환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그런데도 사랑의 이름으로 하루라도 빨리 거기에 들어가려 안달하는, 그런 단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의 제안을 눈물로 거절한 프란체스카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면서 내 모든 걸 다 바치고 싶어. 하지만 난 알아. 내가 당신을 따라나서면 우리의 사랑도 지금과는 달라질 거라는 걸."
7. 육상효 - 아인언 팜, 달마야 서울가자 감독
1959년 뜨거운 것이 좋아
이 영화 속에는 그때 내가 코미디에 대해 고민하던 모든 해답이 있었다. 코미디 영화의 구조, 코믹 캐릭터가 어떻게 리얼리티와 관계 맺는가, 한 장면 안에서의 코미디적 긴장, 코믹 효과의 극대치를 위해 영화적 정보를 조정하는 방법, 유기적 연출과 코미디와의 관계, 익살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아할 수 있는 대사, 그리고 그것과 긴장하는 시각적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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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코미디는 인간은 어차피 비루하고 결점투성이일수밖에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8. 함정임
1974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나는 어쩌면 천국의 한 조각, 그러니까 내 감각을 자극해서 이전의 나로, 영화를 볼 수 있던, 음악을 들을 수 있던, 무엇보다 맛을 느낄 수 있던 본래의 '사람'으로 돌이켜 줄 무엇을 찾아 끊임없이 떠돌았는지도 모른다.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그러한 나의 욕망의 단절기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