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가 온다 - 냉전과 반공, 대량학살이 만들어 낸 세계
빈센트 베빈스 지음, 박소현 옮김 / 두번째테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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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상 야카르타, 야카르타 비에네. 플란 야카르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이 표현들에서 ‘자카르타‘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또한 이것은 트루먼 행정부가 ‘자카르타 공식‘을 따랐던 1948년에 자카르타가 의미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 그때의 ‘자카르타‘는 워싱턴이 위협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제3세계의 발전을 뜻했다. 이제 ‘자카르타‘는 아주 다른 것이 되어 반공 대량학살의 동의어가 되었다. 자카르타는 미국에 충성하는 자본주의 권위주의 정권의 건설에 반대하는 민간인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절멸시키는것을 뜻하게 되었다. - P334


1954년 과테말라, 1964년 브라질,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다. 사건(?) 이후 해당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 질서에 편입되었다. '냉전반공'이란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어느 순간 이 단어와 제발 좀 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질서와 무관하지 못하다. 여전히 분단된 한반도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그렇다. 오랫동안 진실을 은폐해온 미국과 소련의 문서들이 하나 둘씩 해제되면서 과거에 벌어졌던 충격적인 진실이 수면 위에 올라오고 있다. 가족이 흩어지거나 다치거나 죽고 국적을 상실해 떠돌아야 했고 수용소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갇혀 악질적 고문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공산주의를 척결한다는 구실로 수없이 자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공산당이 부상하자 이를 경계한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하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물론 미국 내에서도 반공주의적 입장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인 프랭크 위즈너와 하워드 팔프리 존스의 입장만 봐도 서로 달랐으니까). 식민지 국가는 종전 후에도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와 싸워야 했다. 게다가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들은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한 쪽에 서야했다. 미국은 CIA의 주도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석유 확보를 위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고 필리핀의 좌익 지도자인 훅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또 과테말라 정부의 집권자인 아르벤스도 몰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버마, 실론, 파키스탄, 인도는 반둥회의를 열어 절충주의를 표방했지만 이후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대신 내각인 정당과 시민집단인 국가위원회를 둔 교도민주주의로 인도네시아만의 정치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앞서 수카르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군부와 손잡고 반공전선을 결성한다. 당시 미국은 근대화론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소위 근대화를 위해서는 군사 독재는 거쳐 가는 단계의 하나다라는 인식이다. 미국에 체류하던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은 이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을 것이다. 은연중에 스며드는 것이 무서운 법 아니겠는가. 미국에 의해 콩고 총리인 파트리스가 처형되고 콩고에는 군부에 의한 친미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경제 협력 프로그램으로 미국식 경제 체제가 시작되었다. CIA는 만델라를 체포하고 이라크 공산당에 대항하고자 사담 후세인의 반공바트당 정권을 세우기도 했다. 


1959년 인도네시아 군부가 외국 국적자의 경제 제한법을 실시하면서 이민자들의 탈러시가 시작된다. 도착지는 브라질이었다는데 정작 브라질은 불평등에 의한 위계도, 인종차별도 심한 곳이었다. 1960년 브라질에 주앙 굴라르라는 사람이 등장해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미국은 CIA에 자금을 투입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브라질 내 파시즘과 반공주의에 반대하던 민족해방동맹의 군인들이 해고된 동료들에 분개해 반란을 일으키자 정부는 학살로 대응했다. 대응차원에서 던진 수류탄이 폭발하자 정부는 이를 공산주의 봉기로 몰아가면서 좌파 인사를 모조리 잡아들이게 된다. 주앙 굴라르는 결국 미국이 참여한 쿠데타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영국이 영국령 말라야를 말레이시아로 세우려 하자 수카르노는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케네디 후 들어선 린든 존슨 정부는 베트남에서 영국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영국의 말레이시아 연방안을 지지하기로 결정한다(거기에 인도네시아 원조를 완전 중단했다). 이에 복수하듯 인도네시아는 통킹만 사건이 벌어진 뒤 북베트남과 수교했고 말레이시아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이사국이 되자 유엔에서 탈퇴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이런 복잡한 사정이 엮인 줄은 미처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에 정규 군인들로 구성된 조직원들을 인도네시아 군 장교 집에 투입시켜 체포한다. 다음 날 미국이 내세운 지도자인 수하르토에 의한 반공 반격 계획이 실행되면서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수카르노는 악마화되었다 .


그후 아체, 발리 등에서는 소리 소문 없는 체포 이후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무슬림 조직이 가담했다. 1945년 이후 한국 전쟁 시기 이후까지 한반도의 상황이 떠올랐다. 서로 간 이웃이었으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발리에서는 전 인구의 5%인 8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결국 수카르노는 수하르토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베트남, 과테말라, 중국, 캄보디아, 가나 등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책의 제목 중 '자카르타'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시기 반공 대량학살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반하는 민간인과 지식인들이 절멸의 대상이 되었다. 칠레에서는 미국의 등을 업은 군부가 독재 정권을 세우고 반공 작전 하에 3천명 가까이 되는 인명이 죽었다. '자카르타 방식'의 대량 학살과 반공 작전은 중앙 아메리카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이므로 무신론자이며, 악마이므로 죽여도 된다." 정말이지 그 시절엔 붉은색 콤플렉스 또는 노이로제 망령이 단체로 걸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이 광기가 아니고 무엇인지...


이렇듯 미국이 주도한 경제 협력 프로그램과 반공 군사 동맹은 각국 군대와 결합하여 미국식 체제에 길들여진 권위주의 정권을 공고히 했다. 결과적으로 냉전기 동안 공산주의는 '악마'로 규정되었으며, 이를 척결한다는 명목하에 전 세계적으로 폭력과 광기가 정당화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분명 이렇듯 많은 국가적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음에도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의 미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책은 여러 역사 문헌을 참고하고 관련 피해자의 직접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사건 속에 인물들의 경험담을 실어 그 역사가 실제적으로 느끼게 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게 책의 내용을 편집한 기법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미소 냉전기 아시아에서 펼쳐진 열전에 대한 내용은 앞서 출간된 여러 책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 범위가 아시아만으로 국한되지는 않고 미국을 제외한 아메리카까지 포함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건 냉전의 영향을 받아 온 나머지 세계에서 어떤 것은 변했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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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브라질에서 이룬 빛나는 성과는 군대와 동맹을 맺은 케 - P190

네디가 추진한 새로운 전술 덕분만은 아니었다. 미국도 운이 좋았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브라질에 지난 500년 동안 흑인, 빈민, 폭력적이고 주변화된 이들에 대한 공포로 쌓아올린 아주 뿌리 깊은 자체적인 반공주의 전통,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럴듯한 반공 신화와 연례 의례가 있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장구는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번도 브라질 역사에서 벌어진 다른 쿠데타들처럼 체제의 재설정 같은 것이어서, 금방 지지자들을 재조직해서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그후 25년 동안 민주적 선거가이 사열리지 않았다. 워싱턴의 군 주도 근대화에 대한 약속과 지지는 존슨행정부 아래서 확고했으며, 브라질은 이제 냉전 시기 가장 중요한 친미 동맹 중 하나가 되었다. - P191

말레이어 그리고 이제는 인도네시아어 개념인 아목은 영어화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일반을 뜻하게 되었지만, 본래는 의례적 자살의 전통적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1965~1966년의 대규모 폭력이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이런 종류의 대규모 폭력이 벌어졌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있다 해도 외국인이 연관됐을 때뿐이었다. - P258

이 불가해하고 막연히 부족적인 (미국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버전의) 폭력 이야기는 완전히 틀렸다. 그것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조직된 국가폭력이었다. 군의 완전한 권력 장악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의도적인 절멸 프로그램, 곧 무고한 민간인 대량 살인을 통해 제거되었다. 장군들은 이 국가폭력을 통해, 대중의 지지 말고는 아무 무기도없는 정치적 반대파를 충분히 약화시킨 후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희생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에 자신들을 쓸어 버릴 절멸에 저항하지도 않았다. - P259

1960년대 말이면 제3세계 운동은 몰락까지는 아니어도 혼란에빠졌다고 할 수 있다. "반둥 정신"은 유령이 되었다. 탈식민운동의 진보적 지도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네루는 1964년 세상을 떠났고, 수카르노는 자신의 동맹이 학살되는 것을 보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으며, 가나의 은크루마와 버마의 우 누는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라크좌파 상당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살아남은 소수마저미국을 등에 업은 사담 후세인에게 곧 쏠려 나갈 예정이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다마스쿠스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시리아가 탈퇴하게되면서 아랍연합공화국이 해체되자 크게 흔들렸으며, 시리아의 쿠데타 지도부는 시리아공산당을 숙청했다. - P286

오페라상 야카르타, 야카르타 비에네. 플란 야카르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이 표현들에서 ‘자카르타‘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또한 이것은 트루먼 행정부가 ‘자카르타 공식‘을 따랐던 1948년에 자카르타가 의미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 그때의 ‘자카르타‘
는 워싱턴이 위협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제3세계의 발전을 뜻했다. 이제 ‘자카르타‘는 아주 다른 것이 되어 반공 대량학살의동의어가 되었다. 자카르타는 미국에 충성하는 자본주의 권위주의정권의 건설에 반대하는 민간인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절멸시키는것을 뜻하게 되었다. - P334

어떤 식으로건 냉전의 영향을받아 온 나머지 세계에서 어떤 것은 변했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 P380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정말이지 많은 이들이 미국에 갔어요."
안토니오 카바 카바가 내게 일롬 마을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는 그가 아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공산주의자라 의심받으며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던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좀 웃기지요. ‘웃긴다‘라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을 파괴한 폭력이 누구 때문인지를 알거든요. 그 뒤에 미국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 자식들을 거기로 보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거기말고는 갈 데가 없기 때문이에요." - P386

제3세계가 진정 자유롭게 여러 체제를 실험해 보고 다른 무언가를건설할 수 있었다면 세계가 어떻게 재편되었을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발전도상국들이 힘을 합쳐 세계 자본주의의 규칙들을 바꾸자고주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제3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아예 자본주의 국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이 폭력이 없었다면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20세기에 승리했을 수도 있다고 (누가 피해자인지 그리고 미국의 국력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낮지만) 생각한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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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인이 유럽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일은 언제나 제3세계에서 혁명적 운동이 조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의 초기 연원은 네덜란드에 있으며, 베트남의호찌민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교육받은 곳은 파리였다. 식민지 출신들은 제국의 수도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면서 절대 식민지에는 도달할 수 없는 사상을 가진 이들과 마주치곤 했다. 식민주의의 상당부분은 "내가 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라는 식의 논리에 의존해 왔다. 혹은 현실에서는 "백인이 하는 대로가 아니라 백인이 시키는 대로 해라"였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교육을 국민전체로 확대하며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장점에대해 논쟁하곤 했지만, 이 두 사상은 상당 부분 식민지에서는 금지되었다. 원주민들이 그 사상을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 P67

1953년 초 미국에서 새 대통령의 취임은 이란의 정권 교체를바라는 이들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새로 당선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존 포스터 덜레스를 국방부 장관으로, 동생 앨런 덜레스를 CIA 국장으로 임명했다. 역사학자 제임스 A. 빌에 따르면 포스터에게는 평생 두 가지 집착이 있었는데 하나는 공산주의와 싸우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다국적기업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딱 이란의 상황에 걸려 있었다. 빌은 이렇게 썼다. "공산주의에 대한 염려와 석유 확보는 뒤얽혀 있었다. 두 가지가 동시에 미국을 직접 개입으로 몰아갔다."
rezes이는 덜레스 형제와 CIA에게는 청신호였다. - P75

그들은 과테말라군의 보수적인 장교들마저 하찮게 보는 카를로스카스티요 아르마스 장군을 중심으로 작은 세력을 조직했다. 이들은 미국이 통제하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반군이 승전보를 울리며행진 중이며 과테말라시티가 공중폭격을 당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방송했다. 진짜 공격이 아니라 심리전이었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국경의 오합지졸들은 진짜 군대를 물리치고 국경을 넘을 수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미 공군이 수도에 떨어뜨린 폭탄은 술파토sulfatos, 곧 황산염 설사제 sulfate laxative라고 불렸는데, 그 목적이 파괴가 아니라 아르벤스와 측근들을 겁줘서 바지를 적시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P83

식민주의도 현대적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한 국가 안의 소수 외국인 집단에 의한 경제적 통제, 지적 통제, 실질적인 물리적 통제라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그 식민주의는 기민하고 강력한 적이며 다양한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전리품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언제나 어떤 식으로건 식민주의는 악하며, 지구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 P102

워싱턴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그들의 반응은 인종주의적 무시와 거들먹거림 쪽이었다. 한 국무부 관리는 반둥 회의를 "껌껌한 동네 사람들의 으스대는 파티"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위즈너, 덜레스 형제에게 수카르노의 언행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에게 중립주의는 그 자체로 미국에대한 공격이었다. 적극적으로 소련에 반대를 표하지 않는다면, 수카르노가 제아무리 목소리 높여 폴 리비어를 칭송했다 해도 미국에반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상원의원이 된 존 F. 케네디는 반둥 회의 이후 몇 년간 연 - P109

설을 통해 미국 정부의 이런 접근법에 대해 아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무력으로 알제리를 차지하려는 프랑스의 시도를 맹렬하게비판한 연설에서 그는 "오늘날 미국의 외교 정책이 처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시험대는 우리가 제국주의의 도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지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입니다. 무엇보다 이 시험에서 미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아직 누구와도 동맹하지 않은 수백만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에게 날카로운 판단을 받을 것이며, 철의 장막 뒤에서 여전히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은 미국을 불안하게 지켜볼 것입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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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비미활동위원회(이하 HUAC로 표기함)의 활동은 1938년에 시작되어 1975년에야 중단되었다. 유명한 공개 재판들이 있지도 않은 실체를 쫓은 ‘마녀사냥‘만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실제로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동조합, 헐리우드, 정부 여기저기서 활동했고, 많은 아프리카계 및 유대계미국인이 미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930년대에도 공산주의자가아주 인기였던 적은 없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이제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매카시즘은 특히 대통령과 미국 연방수사국(이하 FBI로 표기함) - P43

이 주도한 하향식 과정이었다. 반공주의 합의를 도출하고 전파하는 데 앞장섰던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HUAC에 출석해 매카시즘이 바탕을 두었던 몇몇 가정들을 널리 알렸다." 후버는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에서 무장 반란을 일으키려고 계획 중이며, 그러한 반란이 일어나면 경찰력이 마비되고 모든 통신수단이 장악될 것이라고 했다. - P44

위즈너는 1944년 9월, 루마니아로 가서전쟁 중 미국이 임시로 세운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이하 OSS로 표기함) 지국장을 맡았다. 그곳에서 그는 소련이 루마니아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믿었으나, 본국의 상관들은 동맹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는 분위기였다. 1945년 1월, 스탈린은 루마니아에서 독일계 남녀 수천 명을 소련으로 데려가 "노동동원"하라고 명령했다. 대상자 중 몇은 위즈너와 아는 사이였다.
강제 이주가 시작되자 그는 미친 사람처럼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구출하려 했다. 하지만 위즈너는 실패했고, 수천 명이 유개화차에 실려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그의 가족들은 그 장면들이 뇌리에 박혀 파란만장한 삶 내내 그를 괴롭혔다고 말했다. - P52

같은 시기, 미국 외교 정책 기구의 정반대 부분에서 일하는워드 팔프리 존스라는 아주 다른 류의 인물이 위즈너의 OSS 전 상사였던 앨런 덜레스와 함께 베를린에 도착했다. 그는 외교관이자참전용사로 일찌기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참상을 목격했다. 그는1934년 독일에 여행을 갔다가 나치 깃발에 제대로 경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치 군인에서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성인이었던 존스는 참전해서 독일에 있었다.
종전 직후 그는 국무부에 들어갔다. 존스는 단호한 전사인 위즈너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접근했다. 모든 상황을 전 지구적인 흑백 대결로 보지 않고 각 상황의 복잡성을 깊이 파고들어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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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드 보다 중국사 - 봉신연의에서 삼국지까지, 드라마로 즐기며 읽는 중국사
이효민 지음, 공일영 감수 / 포르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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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재밌다. 이 책은 여러 모로 내 기호를 충족시킨다. 일단 중드를 좋아하고 그 중 역사를 담은 고장극을 뽑아 내용을 전개했다. 개인적으로 중드를 본 지 올해로 10년 차가 되었는데 본 드라마는 몇 없지만 압도적으로 고장극을 많이 보았다. 중드는 고장극의 장점이 현대극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의 생각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반가웠다. 다만 고장극은 중국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기에는 좋으나 현대 중국어 습득력은 포기해야 한다. “삐샤~!” “황샹!” “니먼 트위샤바!” 이런 단어와 문장들만 주로 나오니 회화에는 써 먹을 수가 없다.
책은 진작 사두었고 4월에 베이징 여행을 하면서 가져가서 읽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여행 가면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원… 놀 땐 놀아야지 주의라.

책은 신화의 시대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해당 역사적 배경을 담은 대표 드라마를 소개하면서 당시 역사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여 독자에게 일거양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등장 인물을 소개하면서 허구와 진실을 가리는 시도를 하는데 그 부분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늘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 인물은 역사적 실존 인물일까, 사건은 진짜 벌어진 일인가 궁금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인물이고 드라마 상으로도 이름이 같다면 알아보기 쉬우나 때때로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어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드라마와 역사가 따로 노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역사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기록의 신빙성도 100%는 아니다. 또 내가 원하는 것이 드러나 있는 경우보다는 숨은 경우도 많아서 원하는 정보를 건져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은 감안하고 드라마만 재밌게 본다면 관계없지만 더 정확한 배경의 정보를 얻고 싶다면 관련 정보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작가도 그런 부분 때문에 관련하여 더 세세한 정보는 역사학자 등의 전문가의 영역에 맡긴다고 서술하고 있다.

신화의 시대로 작가는 <봉신연의>라는 드라마를 꼽았다. 과거 20년 전만 해도 중드 고장극의 주류 장르가 무협 등의 정극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선협극이라는 장르가 꽤나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선협극은 판타지 무협물을 가리키며 화려한 CG를 써서 화면의 색감이 화사한 것이 특징이다. <봉신연의>도 선협물 중 하나인데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아직 선협물은 여전히 좀 취약해서… 드라마 <봉신연의>는 중국 고대인 하상주 시기 중 상나라의 멸망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고 한다.
내가 본 선협물은 <삼생삼세 십리도화>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2017년 작품인데 CG가 솔직히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중도하차할 뻔 했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와 흥미 있는 스토리 덕분에 완주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재밌어서 2, 3번은 다시 봤었다.
이 드라마를 위해서는 중국 신화에 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육계는 인간계, 요계, 마계, 귀계, 선계, 천계로 구성된다. 천계는 신들의 세계, 선계는 신선의 세계, 요계는 요괴와 요정 어딘가쯤으로 보면 된다. 이 중 드라마는 천계와 인간계 사이를 다루고 있다.
주나라의 강자아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강자아는 우리가 흔히 강태공으로 알고 있는 그 인물이다(강태공은 낚시를 잘해서가 아니고 간택 당할때 그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주나라 건국에 힘을 보탠 공신으로 책사이자 전술가였다.

한나라의 왕소군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왕소군은 당시 한나라 한원제 시절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화번공주라는 타이틀로 간 여인으로 역사책에서는 주로 비련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물론 한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왕소군>에서는 주도적인 성격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꼭 봐보려고 한다). 화번공주에서 번은 이민족. 화는 화친한다를 의미하여 화번공주는 주변 이민족들과 화친을 목적으로 혼약을 맺어 간 공주를 말한다. 한나라 시기에는 흉노와 오손국 등으로 화번공주를 보냈다. 공식적으로는 한나라에서 진짜 공주를 보내야 하지만 대체로 궁녀나 황족 중 한 사람이 대신 갔다고 한다. 한번 가면 평생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을텐데 그래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정세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화번공주들의 역할이 당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후한 말 전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와 진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초한지는 중국 역사 상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아닌 가 싶다. 정작 많이 언급은 되지만 두 작품을 완독하기란 쉽지가 않다. 계속 보다 말다 했던 <삼국지>와 <초한전기>를 올해야말로 꼭 다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역사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시기는 당송 시기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작가는 <장안십이시진>을 언급했다. 당나라 수도 장안 황실이 아닌 바깥에서 상원절(원소절) 때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시 장안은 국제무역도시로 로마 인구가 10만이었는데 100만의 인구를 지녔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지녔다. 장안은 궁성과 백성의 거주 지역을 구분하여 만든 계획도시로 중국의 4대 수도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서경이라고도 불린다. 드라마 배경이 흔한 황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더 흥미롭다. 당시 장안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다녔을까 궁금하다. 정작 장안은 당나라 말 황소의 난으로 장안성이 함락되고 주원장이 장안을 파괴시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는 시안에서 그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라고.
송나라는 역시 <포청천>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실존 인물은 포청천과 송나라 현종 황제 뿐 나머지는 가상의 인물이다. 어릴 적 포청천을 보겠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못 보게 하셔서 화가 나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내게 포청천은 공명정의의 대명사였다. 관리라면 이런 청렴함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더불어 <칠협오의>도 잊을 수 없는. 전조와 백옥당은 그 시절 우리 집에서는 아이돌 버금 가는 인기였다. 나는 전조파, 여동생은 백옥당파로 매번 날을 세우고 설전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드라마 <포청천>에 실존 인물들이 많이 없다보니 작가는 <청평악>이라는 드라마를 알려준다. <청평악>의 등장 인물은 대체로 실존했다고. 송나라 인종 때를 배경으로 하는데 실제로 그 시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싶을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범중엄, 구양수, 사마광, 왕안석, 악비, 주희 등등… 당송팔대가의 문학, 사상, 당시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공부할 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큼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청나라 시기는 성세였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때의 역사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나는 <연희공략>이란 드라마로 당시 황실의 모습을 접했다. 드라마에서 변발이 적응이 안되었는데 알고 보니 변발도 고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시기별로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청나라 초기에는 뒤에 꽁지머리만 남기고 다 미는 형태로 가장 파격적인 형태였고 청나라 말기로 갈수록 순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만주족 여인은 굽이 높은 신발, 현대 치파오의 원형인 당시 후궁들이 입었다는 창파오, 부유함과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한 손가락 장식인 호갑투, 머리장식까지 더해져 복잡성을 더한다. 특히 굽이 높은 신발과 머리장식은 굉장히 불편했을텐데 그걸 감수했을 황실 여인들의 고충이 참 컸을 것 같은. 경극과 원명원, 이화원, 열하행궁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베이징을 다녀와서인지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경험한 것은 이해를 더 높일 수밖에 없으니까.

참! 작가가 참고한 책들의 목록이 적지 않은데 대체로 좋은 책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 고장극의 편수가 워낙 긴 편이라 다 보려면 꽤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저 재미로 봐도 되고 더 깊게 보고 싶다면 이런 저런 배경을 찾아보면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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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6-06-0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악! 너무 공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태평년이라는 드라마도 공부하기 좋은 드라마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6-06-05 15:00   좋아요 0 | URL
태평년은 국내 ott에 들어오긴 했는데 제가 이용하지 않는 ott라 아직 보질 못하고 있어요. 기존에 잘 다뤄지지 않던 시기라 중국 내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튼 나중에라도 볼텐데 기대가 되요!

희선 2026-06-09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 봤을 때 거리의화가 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사고 보셨군요 드라마를 보다가 중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드라마를 보는 일도... 중국 드라마는 꽤 길군요 역사 드라마여도 그게 그대로 들어가지 않기도 하겠네요 그건 어느 나라 드라마든 다르지 않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06-09 11:34   좋아요 0 | URL
산지는 몇달 되었는데 이제야 읽었어요^^; 기대를 충족할 만큼 재밌어요. 드라마 보고 해당 부분 다시 읽어봐도 좋겠더라구요. 중드 고장극은 60부 이상으로 긴 편이었는데 요즘은 40부 미만 정도로 예전보다 많이 짧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