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는 열매를 따고 짐승을 잡으며 살아야 하듯이, 물가에서는 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으며 살아야 하듯이, 예 그렇지요. 물이란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난 모양이 되며 둥근 그릇에담으면 둥근 모양이 되고 그러나 물은 물이 아닌 때가 없었지99
"물만 그렇건데? 만가지가 다 그렇지."
"안 그렇지. 억지로 넣으려면 상채기를 내야 하고 느슨하면 구멍투성이고 흐르는 것과 구르는 것이 어찌 같을꼬?"
6699
"물은 역행을 안 하면서도 물방울이 되고 홍수도 되고."
"가만히, 좀 기다리보소. 알 듯 모릴 듯한 말인데, 그릇 따라 - P56

서 물의 모양이 변한다. 그라믄 내 한 가지 묻겄는데요, 지금우리 조선사람들은 왜놈의 그릇에 담겨 있는 판국 아니겠소?
한다면 우리 조선 백성이 왜놈의 그릇 모양으로 있는 것도 순리다, 그렇기 얘기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 백성을 담은 왜놈의 그릇은 어떤 그릇일꼬?"
"그거를 내가 우찌 알겠소. 도사나 알 일이지."
"허허허헛헛………… 허헛헛, 사람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 과연있을 수 있을까? 산천이 그릇이지. 하기야 뭐 사람 담는 그릇을 전혀 사람의 손으로 못 만든다 할 수는 없을 것이요만 굳이말한다면 감옥이라는 것이 그렇고, 그러나 그것은 그곳에서 물같이 되라는 것하고는 다르지. 쌍방이 다 순리가 아닌 결과의것이거든.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가두었다믄 그것은 감옥소 쪽의 역리요 도둑질한 자를 가두었다믄 그것은 도둑놈 쪽이 순리를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되지요. 한데 우리 백성을 모두 물이라 비유한다면은 왜놈의 그릇이란 접시바닥이지. 조선 백성이홍수를 이룰 만큼 많은데 그 얇삭한 접시바닥에 담겨질 수 있겠소? 담았다 담겼다 생각을 한다면 그것도 망상이요, 담으려하고 담기려 한다면 그것은 역리요." - P57

가난한 자여, 핍박받고 버림받은 자여, 희망은 그대들의 것이며 신도 그대들을 위해 있나니, 희망의 무지개는 저하늘과 하늘 사이에 걸리는 것, 그것은 미래인 것이다. 아무튼마을에서 김영호는 영웅이 되었다. 한복은 영웅의 부친이 된것이다. 음지같이 빛 잃은 무반의 후예로서 그나마 영락하여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었던 김의관, 중인출신의 조모와 살인죄인의 조부, 동네 머슴이던 부친과 거렁뱅이였던 모친, 그런가계의 김영호가 지금 희망의 대상으로 부상된 것이다.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아니래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덜 흉한 건 아니죠. 아름다운 것만 가질 수 없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적어도 우스꽝스러운 것은 갖지 말아야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 P258

전 잘 모르겠는걸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 판단해본다면, 제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벌써 이렇듯 싫증이나는데, 만일 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면 비록그들이 ‘영웅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는 미칠 것 같은데요.
더욱이 우리가 아는 장군님 같은 옛 친구들은 문제가 다르지만, 영웅의 위대함이란 것이 사교계에서 누구나 가지고 다닐수 있는 포켓북처럼 작아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만찬을 여는 것도 벌써 싫증이 나는데, 만일 식탁으로 안내하기위해 스파르타쿠스* 같은 이에게 팔을 내밀어야 한다면..
아니, 정말이지, 비록 열네 번째 손님을 맞아야 한다 해도 저는 베르생제토릭스** 같은 분에게는 오라고 손짓하지 않겠어... - P260

요. 그런 분은 대연회를 위해 따로 남겨 둘 거예요. 그런데 저는 대연회는 열지 않거든요."
"아! 대공 부인, 부인께서는 그저 게르망트인 게 아니시군요. 부인께는 게르마트의 재치가 넘치는군요!" - P261

"당신하고이야기하는 게 정말 좋아요. 저 바보 같은 프로베르빌은 캉브르메르가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지도 알아듣지 못하더라니까요.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당신도 인정할 거예요. 제가 따분하게 느끼지 않는 건 당신을 만날 때뿐이에요." - P2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켄터키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노예제도는 가장 부드러운 형태의 노예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부의 다른 지역들처럼 주기적으로급하게 일을 해내야 하는 압박이 없는 데다가 농사일도 조용하면서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켄터키 주 흑인들의 일은 한결 덜 힘들고 또 그리 건강을 해치지도 않는다. 주인들도 천천히 점진적으로입을 올리는 데 만족하기 때문에 노예들을 거세게 몰아붙이려는 유혹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힘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수익을 많이 올려야겠다는 욕망이 더 앞서게 되면 자연히 가혹하고 모진 마음이 온유하고 부드러운인간성을 제압해버린다.
켄터키의 농장을 방문하여 주인 부부의 자상함과 관대함을 목격하고 또 일부 노예들의 감사에 넘치는 충성심을 보고 나면, 누구나 저유명한 가부장적 제도의 서정적인 전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장에도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법‘이라는 그림자이다. 법이 펄떡거리는 심장과 따뜻한 애정을 갖고 있는 흑인들을 주인에게 소속된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한, 아무리 잘 관리되는 노예제도라 해도 아름답고 바람직한 제도가 될 수 없다. - P27

아주 인도적인 한 법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을 최악으로학대하는 방법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나쁘게 인간을 학대하는 방식이 있다. 그것은 노예제도이다. - P37

"나도 상황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노예상인이 말했다. "하지만 톰에게 좋은 곳을 알선해주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그를 학대할 염려는 전혀 없으니 걱정 붙들어매십시오. 하느님 앞에 자랑할 게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결코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예상인이 오전에 말했던 소위 인정 있는 처리 방법이라는 걸 이미 들었던 터라 셸비 씨는 헤일리의 그런 대꾸에도 별로 안심이 되지않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런 언질이라도 받아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으므로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노예상인을 떠나보냈고,
그런 다음 혼자 거실에 앉아 시가를 피웠다. -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훌륭한 개명파 지식인들, 일본물 마시고 서양서 온 기독교에 목욕한 사람들, 미신타파를 외치고 민족개조를 외치고 조선인을 계몽하려고 목이 터지는 사람들, 미신타파하면 땅을 찾고수천 년 내려온 조선의 문화를 길바닥에 내다 버려야 땅을 찾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만하면 대장부 살림살이, 대신 사탕빨고 우동 사 먹어야 땅을 찾을 것이던가, 사실은 긴구치‘나 하마키*를 피우는 족속, 금종이 은종이에 싼 과자 먹는 족속, 우리 것을 길바닥에 내다 버리는 족속 때문에, 그들 때문에 조선민족은 말살될지 모른다. 남부여대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 바가지 들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지게 지고 그리운 님 기다리듯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신세는 마을 큰 나무에 돌 얹고 절한 때문인가 성황당에 제물 바친 때문인가 용왕을 모시고 터줏대감을 모신 때문인가, 그것을 총독부, 동척 아닌 어느 곳에 가서 물어볼꼬. - P16

강쇠의 개진(陳) 따위는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조선말을 아는 바로 그 조선인 순사였다. 일본 순사보다 강쇠를 많이 때린 것도 조선인 순사였다.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아서는 안 되겠기에 더욱더 때렸을 것이다. 자식 데리고 개가한 계집같이, 남편 자식을 두둔해야 하며 데려간 자식의 말은 무조건 들으려 하지 않고 남편보다 앞장서서 제 자식을 때려야 하는 개가한 계집같이. 피의 배반, 제 피를 부정하고 배반한 자에 대한 분노는 핏줄을 부르는 감정보다 더욱 격렬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혈흔같이 지워지지 않는 원한이 되는 것이다. - P22

……… 마음으로 육신으로 고통받는 자만이 누더기를 벗고 깨끗해질 것이며 뱃가죽에 비계낀저 눈물 없는 무리들이 언제그 누더기를 벗을꼬. 고달픈 육신을 탓하지 마라, 고통의 무거운 짐을 벗으려 하지 마라, 우리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만나게된다면 우리 몸이 유리알같이 맑아졌을 때일까・・・・…… 그 만남의일순이 영원일까, 강쇠야 그것은 나도 모르겠네……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漢 紀


太祖高皇帝上 在位十二年 壽五十三

【乙未】冬十月 沛公至霸上 秦王子嬰 素車白馬 係頸以組 封皇帝璽符節 降軹道旁 諸將 或言誅秦王 沛公曰始懷王遣我 固以能寬容 且人已服降 殺之不祥 乃以屬吏〈出本紀〉

○ 沛公西入咸陽 諸將皆爭走金帛財物之府分之 蕭何獨先入收秦丞相府圖籍藏之 以此沛公 得具知天下阨塞戶口多少彊弱之處〈出蕭相國世家〉

한고조는 재위 12년, 53세에 생을 마감했다.

패공 유방은 일부 신하가 죽여야 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항복한 진왕 자영을 죽이지 않았다.

진나라 수도 함양성으로 들어간 한나라 장수들은 금과 비단을 앞다투어 차지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소하만은 승상부에 들어가 지도와 호적을 챙겨서 보관하였다. 이 때문에 패공이 진의 사정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