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에 걸쳐 강철을 만들어온 그녀는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적어도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이스의 연공서열이 용융아연도금 라인의 에스오티가 될 만큼 높아졌을 때, 책임자들은 그녀를 외면했다.
마땅히 그녀의 몫이 되어야 할 자리에 경험이 적은 남자 노동자를보내 훈련시킨 것이다. 조이스는 재빨리 노조에 연락을 취했고 노조는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노조 간부들은 회사에 항의했고 회사는 마침내 동의했다. 조이스는 에스오티로 훈련을 받았지만 그녀가 견뎌야 했던 싸움은 자명했다.
용융아연도금 라인에서 일을 시작하고 첫 며칠 동안 그 이야기가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회사의 조치가 과연 우연이었을까 의구심이 들면서 그녀를 제외한 유일한 여자로서 내 자리를 새삼 의식했다. - P210

의사는 메스를 들고 엄마의 배에 손을 올렸다.
"지금도 감각이 있어요." 엄마가 말했다.
"아니요." 의사가 대꾸했다. "머릿속 생각이라니까요."
의사는 메스를 배에 대고 단칼에 곧게 그었고 엄마는 단말마의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팔에 힘을 주고 뻗대는 바람에 팔걸이가와작 부러졌다. 아빠는 기절했다. 간호사들은 약을 가지러 황급히뛰어갔다. 누군가가 엄마 몸을 눌렀고 의사는 배의 칼자국을 치료했다. 그 혼란의 와중에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환자의 말을 무시한 의사를 고소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건만 엄마는 이 과실이 성차별과 관련이 있다는 걸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성차별은 페미니스트들의 용어였으며, 페미니즘은 우리 집에서 금기어였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이 여성에게 할 수 있는 제일 심한 모욕이었는데, 엄마가 그런 입장을 견지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외가 쪽 여자들은 모두 지혜와 굳은의지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강인한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P216

공장 노동은 지금껏 겪지 못했던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밤교대 근무로 부족한 잠을 거의 보충하지 못한 탓에 내내 진창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떤 일에도 온전히 집중할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닭고기 사는 것을 깜박했다. 빨래가 산더미여도 그대로 방치했다. 욕조를 빡빡 문질러 닦다가 문득 욕조를 내려다보면서 그날 아침에 닦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릿속이 멍하고 뿌옜다. 식단은 집밥에서 에너지드링크와 테이크아웃 음식으로빠르게 변해갔다. 늘 간신히 숨을 쉬는 것 같았다. - P230

아연공장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남자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껏 나는 남자들에 견줘 나 자신을 평가해왔고 남자 못지않게 잘하려고, 남자아이처럼 되려고 애를 써왔다. 남자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에 과도하게 신경을 썼다. 사시의 그늙수그레한 크레인 기사가 내 어깨를 팔로 껴안으면서 나더러 제철소에서 일하기엔 너무 예쁘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팔에서 몸을 빼내지 않았다. 예쁘다는 말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지게차가 철둑에끼여 고참들이 나를 비난할 때도 항의하지 않았다. 성차별을 따끔하게 일러주는 그런 여자들 가운데 하나로 보이는 게 싫었다. - P233

이제껏 살면서 본래의 나의 모습과 내가 원하는 모습, 남자들이내게 원하는 모습, 그리고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사이에 끼여 수없이 갈등을 해왔던 것 같다. 이 혼돈의 와중에 정작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쉽게 간과했다. 때로 성차별의 영향은 괴롭힘이나 학대만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충족할수 없이 상충되는 기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 P234

우리는 강한 용기와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진실함과 성실함을 소중히 여겼고 워싱턴의 변호사들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었다. 그들은아버지가 대준 돈으로 대학교를 다녔을 한심한 출세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저희들 세계에 갇힌 채 너무 많은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었다. 현실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엘리트 쪼다들에 지나지 않았고, 노력한다 한들 철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자들이었다. - P239

"우리더러 끼라는 저 토시 말이야. 저거랑 관련된 뒷이야기를 대부가 들려줬어." 슬리피 베어가 말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따끈따끈한 소식을 듣고 싶은 마음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내가 뭐라고 말했건 나 역시 별것도 아닌 일에수선을 떨었다.
"조질압연공장에서 누가 코일 모서리에 팔이 베였다나 봐." 슬리피 베어는 말을 이었다. "회사가 어떤지 알지. 일단 누군가 다치면제철소에 변화가 생기잖아. 모든 사람이 이 토시로 값을 치르는 거야."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아니 코일로 다치는 게 가능해요?"
그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대개의 경우 코일의 날카로운 모서리는서로 겹쳐 놓는 터라 위험할 수가 없었다. 코일 모서리에 몸을 갖다대고 비비면 모를까 코일에 베이기는 힘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슬리피 베어가 말했다. "여기선 온갖 일이 일어나니까." - P245

수업 도중에 강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총을 쏴서상대를 죽여야 합니다. 숙취보다 그 생각에 더 토할 것 같았다. 나는총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치명적인 걸 손에 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삶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어떤 위험이 그 수료증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그 수업을 너무도 쉽게 통과했다는 것이다. 나는 무기를 소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경험도 지식도 기술도 없는데 무기를 구입해 허리춤에 숨길 권리가 생긴 것이다. 두려움이 그 수업을 듣도록 떠밀었지만, 이제 불현듯 그두려움이 내포하는 바가 보였다. 내가 총을 쏴서 누군가를 죽일 수있는 사람이 된다면 나의 일부는 늘 세상을 목표물로 바라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라서 벽장 속 서류 캐비닛에 수료증을 넣었다. - P257

나도 그들의 세계를 모른다. 그들의 싸움과 목표, 그들이 대항하는 악에 대해 모른다. 그들이 나를 정형화했다는 생각이들어서 나도 그들에게 똑같이 대했다. 일종의 앙갚음이었다. 눈에는눈, 이에는 이 나의 적대감이 이 나라를 갈라놓은 금이라는 생각은하지 못했다. 그 균열은 정당과 경제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국회와백악관을 넘어섰으며 우리의 주급과 직책을 넘어섰다. 그 균열은 인간의 약점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경계를 풀었다. 우리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장막과환상을 짜는 이들이 나타나 우리 자신이 초래한 암흑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우리를 사리 판단에 어두운 장님으로 믿고 우리의 두 눈을 신중하게 가렸다. 우리 중 누구도-철강 노동자들도 변호사들도-다시는 세상을 환히 볼 수 없기를 바라면서.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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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얘기하는 동안 그는 열기에 들뜬 채로, 때로는 내게 때로는 친구들에게 황홀한 눈길을 쏟아부었다. 모든이들의 웃음 속에 얘기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얘기가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내 재치를 높이 평가하게 해 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이유로 그가 그 얘기를 알지 못한 척했다는걸 깨달았다. 바로 이런 게 우정이다. - P165

"우리가 환경 탓으로 돌리는 영향력은 특히 지적 환경에 대해서는 사실이죠. 인간은 자기가 가진 사상에 의해 규정되니까요.
그런데 사상은 인간 수보다 적어요. 따라서 동일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은 모두가 비슷할 수밖에 없죠. 사상에는 물질적인면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의 사상을 가진 인간을 단지 물질적으로만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상을 조금도 바꾸지못하는 법이죠." - P168

"그리고 사상이란."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인간의 이해관계에 개입할 수 없고 그 이점도 누릴 수 없으므로, 사상을 가진인간들은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죠."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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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18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글만 골라 뽑으신 것 같습니다. 여러 번 읽어 보게 됩니다.
사상은 인간 수보다 적다는 것을 생각해 내다니...
사상이란 완전히 독립적인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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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18 14: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거 보면 열공하고 싶어져요.ㅋㅋ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대선 당시 트럼프를 지지했던 배경.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직접적 체험과 수기로 읽으니 훨씬 와 닿는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유를 알 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결국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그는 자신의 권력을 손에 넣고 유지하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수표를 던진 측면이 있다.



아빠 차를 타고 제철소를 지나던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역겨움만을 보았다. 화통과 불길한 주황빛 불꽃을 보았다. 제철소는 쇠락하고 망해가는 산업의 잔해에 지나지 않았고, 수많은 공장 건물을 뒤덮은 녹은 그에 걸맞은 그늘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제철소가 신성한 땅이란 걸 몰랐다. 그곳은 기념비고 기념물이었다. 어떤 이에게그곳은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많은 이에게 그곳은 정체성이었다. 그들은 클리블랜드의 산업 단지에서 생을 보냈다. 오두막의 전기냄비로 아침을 짓고, 스티로폼 용기로 추수감사절 저녁을 먹고,
하루 일이 끝나면 길가의 허름한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꽤 많은 고참들이 정년 이후에도 일을 계속했다. 말로는 돈 때문에 일한다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철강 노동자는그들의 정체성이고 제철은 그들이 누구보다 잘하는 것이다. 제철소는 남들이 보는 녹 이상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을 뒤로하는 건 종 - P166

교를 잃는 일과 다름없다. 그곳은 살아 있는 역사의 일부고, 그 경계선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보다 더 큰 무엇과 연결되어 있다. - P167

나는 어느새 쇼핑센터를 철강 노동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철소 가장자리를 따라 세워진 기업형 매장들은 이렇게 비웃는 듯했다. 너희들은 잊힌 존재야. 한물간 존재들이라고. 그사이 차갑고 말끔한 워싱턴의 정치인 무리는 지속적으로 변화를 약속했지만그 변화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월마트와 홈디포가 들어선 상자 같은 건물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들은 우리가 힘없는 자들이라는,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뿐이었다. 말로는 우리의 이익이 최우선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제철소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 P180

노조 계약서에 따르면 클리블랜드 철강 노동자들은 회사의 순익에 기초해 분기별로 상여금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는 분기마다 복잡한 회계를 내보였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이윤을 안기고 우리를 돌아보면서는 나눠줄 배당금이 없다고 했다. 철강 노동자들은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불평하면 회사 사람들은 눈을 부라렸다. 월급을 충분히 받고 있잖아,
하고 그들은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월급을 충분히 받았지만 그것은 목숨을 걸고 버는 돈이었다. 회사가 잘나가면 우리도잘나가야 한다. - P181

우리를 쓰러뜨리는 진정한 적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 트럼프는 비난할 몇 개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고민주당 지지자들이며 이슬람교도들이다. 그것은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는 시위다.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것은 이름과 얼굴을 가진 적이다.
사람들은 트럼프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트럼프가 체제를 전복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말했다. "트럼프가모든 걸 무너뜨리길 원한다. 벽을 세워라! ‘부패한 힐러리‘를 감옥으로 보내라!"
아빠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아빠는 오바마가 - P182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었다. 정치에 몸담은 많은 사람들,
특히 민주당원들은 미국을 파괴하려는 큰 음모의 일부이고, 기자들은 그 음모의 공범으로 여겼다. - P183

청년 시절의 아빠는 성공을 거두리라는 희망을 품은, 재능 있는드러머였다. 하지만 재주 좋은 사람들이 수백만 달러를 버는 동안아빠는 전당포에서 일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재산의 작은 변화에도 휘청이는 중하위 계층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치기 직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의 옛 화 - P185

폐에 정통한 터라 온라인으로 주화를 사고팔아 돈을 벌 심산이었다. 진취적 기상이 승할 것으로 믿었지만 사업은 경기 침체와 더불어 망하고 말았다. 사업 실패로 인한 빛이 퇴직연금을 갉아먹을마다 아빠의 미래는 그만큼 암울해져갔다.
사업이 실패한 뒤 아빠는 총과 탄약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4리터들이 물병과 1년치 동결건조식품을 쟁였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재임할 시절이었고 아빠는 종말이 곧 닥칠 것이라고 믿었다. 식구 중누구도 아빠의 급작스러운 비이성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경기가 안 좋긴 했어도 세상의 종말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근간을 이루는 원인은 명백해 보인다. 아빠는 이미 너무 많은것을 잃었기 때문에 더 잃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평생 취약하기만했던 당신의 삶을 분노에 찬 극우적 정치 성향으로 가렸던 것이고총을 소유함으로써 통제의 환상을 품었던 것이다. 아빠는 당신의두려움에 신빙성을 제공하는 트럼프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 P186

그는계속 만들었다. 또 계속베풀었다. 또 계속 모형 차를 만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더 중요하게 그는 공갈꾼 몇이 열정을 앗아가도록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를 클리블랜드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러스트벨트에서의 삶과 노동이 의미하는 바였고 트럼프가우리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바였다. 트럼프는 우리의 회복력을 보는대신 우리를 찌부러뜨려 최악의 면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는 산업노동자를 몰락한 자로 여겼고 몰락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이라고우리 스스로 믿게 했다. 그는 우리의 불안을 감출 수 있는 희생양과 - P190

분노의 대상을 제공했고, 그로써 그가 더 큰 권력을 탐하는 또 한명의 부유한 권력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못 보게 했다. 그는 우리에게 복수심을 불어넣었고 우리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는우리 마음속의 선을 훼손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그 모든 것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뜻이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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