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5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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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라시아사, 유목제국사 관련 책들을 몇 권쯤 읽었다. 그러나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리 역사와 연관이 있는 나라는 그나마 덜한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아무래도 친숙하지가 않은 탓이 큰 것 같다. 얼마 전 이동하면서 종종 가는 유튜브 구독 채널의 컨텐츠에서 몽골사 이야기가 주제로 다뤄졌는데 그때 이 책이 언급되었다. 지도, 그림 등이 많아 나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설명을 갖추고 있는 책이라고 했다. 그동안 아틀라스 시리즈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호기심이 갔다. 이미 도서관에 갖춰져 있을 것 같아 역시나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구역 도서관에는 없었으나 다른 구역에는 있어 상호대차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이 도착했을 때쯤 마침 읽던 책을 딱 마무리했을 시점이었다. 


중앙유라시아에는 유목민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목민과 정주민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사막 사이 존재하는 곳곳의 오아시스를 바탕으로 정주민들이 존재했고 목축 등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도 존재했다. 오아시스는 건조한 사막지대에 비가 내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하수나 하천으로 형성된 촌락이나 도시다. 또 스텝의 초원 지대가 있는가 하면 도시나 촌락 주변에는 사막이 초원과 함께 있는 반사막이 있기도 했다.


고대 유목국가는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5세기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기원전 4세기 인도유럽어족이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기원전 2세기가 되면 이들이 유라시아 곳곳에 정착하게 된다(책에서는 인도유럽어족을 인구어족이라고 하는데 입에 잘 붙지는 않았다^^;). 유목민은 말을 길들이고 재갈을 발명하고 이륜마차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동 생활이 자유롭게 되었다. 

고대 유목국가하면 역시 스키타이와 흉노를 빼놓을 수가 없다. 스키타이는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였는데 우리에게는 스키타이 원정으로 익숙할 것이다.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 남부에서 형성되어 마구, 무기 등을 전파하며 서방으로 이동했고 서아시아의 흑해 북쪽 문화와 더해져 중앙유라시아를 넘어 중국, 한반도까지 유입되었다. 

흉노는 유라시아 동부 초원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유목 국가다. 중국의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무렵 흉노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흉노가 북방 유목민을 통합하면서 중국의 한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는데 한 고조와의 싸움에서 승리 후 화친 조약을 맺으며 재정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흉노 제국의 영역은 중앙과 좌방, 우방으로 크게 구분된다. 선우가 중앙을 직접 통치하고 좌방에는 좌방왕장들이, 우방에는 우방왕장들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삼분 체제는 후일 다른 유목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 P38~39

흉노는 이후 서부로 진출하여 제국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계승 분쟁이 일어나며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리되었다. 남흉노는 한에 복속했지만 북흉노는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였으나 결국 한나라에 패배하기에 이른다. 


6세기가 되면 돌궐이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유목 제국을 건설한다. 돌궐은 중국의 당, 유럽의 비잔티움, 페르시아의 사산왕조와 교류할 정도로 광범위한 교류를 했다. 이때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 인근에 있던 소그드인들은 유목민과 교류하며 유라시아 전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펼쳤다. 

소그드인들의 활동 시기는 중국에서 수당 시대에 해당되는데 당시의 기록에서는 이들을 ‘호胡’라고 총칭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소그드인들은 출신 도시마다 독자적인 성을 채택하여 ‘구성호’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는데, 사마르칸드 출신은 ‘강‘康’, 부하라는 ‘안‘安’, 타쉬켄트는 ‘석‘石’ 등의 성을 붙였다. 안녹산의 본명은 강녹산, 즉 사마르칸드 출신의 록샨(‘광휘’)이었으나, 모친이 부하라인에게 재가하여 안씨로 바뀐 것이다. - P88

741년 돌궐 제2제국이 무너지고 카를륵 카간이 막북 초원을 통합하며 탄생한 위구르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서진하는 당에 팽팽히 맞서며 위구르는 국가 체제를 잘 유지했다. 그러나 아랍에 아바스 왕조가 들어선 뒤 아랍 세계와 당군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751년 여름 당과 아랍의 군대가 탈라스 강가에서 만나 전투를 벌였다. … 닷새간 대치하던 중 당군의 일부를 구성하던 카를룩 유목민들이 배반하여 아랍 측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 당군은 좌우로 협공을 당하여 참패하고 말았다. … 탈라스 전투(751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이슬람권의 정치문화적 영향력이 증대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 P94~95

이후 당에 안사의 난이 벌어지자 위구르는 당군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9세기 중반 위구르 제국이 붕괴되고 당 제국도 붕괴되었으며 아바스 왕조도 쇠퇴한다. 이후 투르크 민족이 패권을 쥐던 시대는 끝나고 대규모의 민족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0세기부터 14세기는 그야말로 유목 민족이 흥성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0~11세기 거란, 12세기 여진, 13~14세기 몽골 제국이 연이어 등장한다. 거란은 스스로를 키탄이라고 불렀고 키타이라고 불러지기도 했다. 

거란족은 세력을 확장하며 중국의 후당 왕조를 무너뜨리고 전연의 맹을 맺으며 후진이 들어서게 했다. 여진은 스스로를 주르첸이라고 불렀고 금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금’은 쑹화강 지류인 아르추카를 여진어로 부른 말). 이들은 거란족을 제압한데 이어 북송을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병농일치 제도를 시작하고 북중국에서 거주하며 농경 정착 생활을 하면서 급격한 한화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서부에도 여러 왕조가 들어섰다. 가즈나, 셀주크, 호레즘 왕조, 델리 술탄국이 그렇다. 이들은 집단 이주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개별적으로, 그것도 노예 신분에서 힘을 키워 권력을 얻어 국가를 세우기도 했단다. 개별 이주가 집단이주의 형태보다 자연스럽겠지만 이것이 국가의 기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놀라웠다. 


13세기 칭기스칸이 부족을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세운다. 몽골의 울루스들의 연합체라는 구성적 원리인 ‘울루스 체제’는 14세기 중후반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들 울루스 상호 간의 역관계가 변화하면서 몇몇 대형 울루스들이 사실상 제국을 분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대형 울루스의 지배자들이나 거기 속한 몽골인들은 여전히 자기가 몽골 제국이라는 더 큰 정치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몽골 제국의 4개의 독립적인 국가로 분열되었다고 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 P142

몽골은 천호제와 케식 군을 이용해서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역참 네트워크와 은 본위 제도의 통일로 제국 안에서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무렵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세계사도 쓰여졌다. 

몽골은 칭기스칸 사후 계승 분쟁이 계속되었다. 이후 각자의 세력권에 따라 서아시아에는 주치울루스, 차가타이 울루스, 훌레구 울루스가 들어섰고 동북아시아에는 카안 울루스가 남게 되었다. 쿠빌라이는 사실상 카안 울루스의 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몽골 이후 유목 민족이 제국을 건설한 경우가 있나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서부에 오이라트가 있었다면 티무르 제국이 있었다.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는 우즈벡이 남하하고 부하라, 코칸드 칸국이 있었다.

다만 서아시아에 들어선 왕조의 지배층이 정주화 경향이 강해지고 이슬람화되면서 유목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 청과 러시아가 중앙유라시아 지역으로 들어오며 원래 그곳에 살던 거주민과 유입된 이주민들을 복속해간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시작으로 코칸드, 부하라, 히바 등 세 칸국을 병합한다. 시베리아라는 말은 시비르 강과 그곳에 있던 시비르 칸국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러시아는 이때부터 오호츠크 해에 도달할 때까지 동진을 계속하여 현재 러시아 영토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시베리아를 차지했다. - P196

청은 남아 있던 몽골 세력을 복속하고 준가르를 무너뜨린 후 티베트와 신장을 연이어 흡수했다. 


얇은데 알찬 책이다. 매 페이지마다 정제되고 압축된 글과 함께 지도와 사진이 빠짐 없이 등장한다. 특히 지도가 놀라웠다. 저자의 후기를 보니 책을 위해 지도들을 다 새로 그렸다고 하는데 한땀 한땀 들어갔을 정성이 느껴졌다. 읽으면서 이 책은 다른 책들과 함께 보면서 참고할 때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단시간 내 이 책을 소화하기란 생각보다 정보의 양이 많아서 놀랄 수 있을 것 같다(나만 그런가?). 개인적으로는 서아시아 유목 왕조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복기하며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주중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매 페이지마다 다른 내용이라 끊어서 읽어도 부담이 덜했다. 갑작스럽게 읽게 된 책이었지만 예상 외로 수확이 좋았던 책이다. 왠지 조만간 구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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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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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시리즈의 전사를 담았다고 하는 이 책을 펀딩 거의 막바지에 알게 되었다. 사실 굿즈는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여서 나중에 주문해도 되었을텐데 본 김에 그냥 펀딩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주문해 받았다. 삼체 시리즈를 참 재밌게 읽었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문명의 역사와 과학 기술을 절묘하게 엮어냈기 때문이었다. 삼체 시리즈가 문명과 과학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과 미래를 좀 더 어둡게 그렸다면 구상섬전은 조금은 낙관적인 방향으로 이를 그려냈을 뿐 주제 의식은 비슷하다. 삼체에 나오는 ‘딩이’가 이 책에도 등장하는 등 연결 지점을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역자는 삼체 2, 3부를 번역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드라마인 ‘연화루’와 ‘마천대루’의 원작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참 매끄럽게 번역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만족스러웠다. 


번개 치는 밤 붉은 섬광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이는 주인공의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바꾼다. 구형 번개(ball lightning)를 뜻하는 구상섬전(전자기파가 구형 안에 갇혀 있는 형태이며 선택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을 만나며 주인공은 물리과학에 미치게 되고 전공을 대기과학으로 선택하기에 이른다. 류츠신은 실제로 1980년대 구상섬전 현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 책을 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위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수년 간 매몰되었으나 계속 실패한다. 


[60] 이때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안개가 걷혔다. 여름밤 하늘에는 찬란한 별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멀리 산 밑에는 타이안의 야경이 또 하나의 작은 별바다를 이루어 밤하늘이 마치 호수에 비친 그림자처럼 보였다.

린윈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멀리 가로등 불이 밝아오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듯이. 하늘에 별들이 떠오르네. 무수히 많은 가로등 불을 켜놓은 듯이.”

나도 그녀를 따라 읊었다.

“저 아득한 하늘에 분명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 것이니, 그 거리에 진열된 물건들은 필시 이 세상에 없는 진기한 보물이리라.” (궈모뤄의 ‘하늘의 거리’(1921) 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이 아름다운 밤 세상이 눈물 속에서 어룽지다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나는 내가 꿈을 좇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그런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깨달았다. 저 안개 속에 갇힌 난톈먼이 영영 나타나지 않더라도, 나는 영원히 산을 오를 것이다.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 자신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여 실패했음을 깨닫고 방향을 전환했는데 이후로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때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배울 부분이다. 늘 문제 앞에 서면 왜 머리가 빙빙 돌며 복잡해지는지.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고 하나씩 해나가면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책에는 기술을 증오하면서도 기술을 이용해 테러를 일으키는 조직이 등장한다. 아이들을 납치하여 위협하고 발전소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을 감행하는 일 말이다. 

개발을 하다 보면 기술적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술적 난관보다는 정신적 난관이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 군사 등 국방 쪽에 종사하다 보면 기술적 난관보다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내가 만든 기술이 긍정적인 곳에 쓰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악의로 접근하여 흉악한 무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테러 조직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러조직의 이름은 ‘에덴동산’이었다. 핵(융합)도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겠지만 현재는 자국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용 물질로 쓰이는 것처럼.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긍정적인 기술로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때론 후퇴했다가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과연 그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주인공이 구상섬전을 발견하기 위해 쫓는 과정, 결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낯선 용어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많지만 문장을 읽고 그림을 머릿 속에서 그리며 읽다 보면 어느새 푹 빠지게 되는 매력이 있다. 역시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읽지 않고 단 번에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더 언급하는 것은 줄거리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스포가 되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하겠다.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찡함과 울림이 있었다. 진정으로 소중한 건 무엇인지, 앞에서도 언급했듯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440]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고

나는 사람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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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득한 하늘에 분명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 것이니, 그 거리에 진열된 물건들은 필시 이 세상에 없는 진기한 보물이리라˝
이 대목에서 거리의 화가님 닉네임이 막 떠오르는데요. ㅎㅎ
삼체 참 재밌게 읽었는데 리뷰는 못쓰겟더라구요. 일단 못알아들은 부분이 너무 많고요. 너무 책이 두꺼워서 스포를 하지 않고 내가 쓸 수 있는게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니 없던데요. ㅎㅎ
삼체의 전사라고 하는 이 책도 일단 담아뒀다가 올 겨울 쯤 읽어볼려구요.

거리의화가 2025-09-16 13:00   좋아요 0 | URL
앗! 저 문장을 저와 연결해주시다니^^; 인용한 문장이 그림으로 그려도 참 아름답죠.
저도 리뷰 쓸 때 고민 많이 했는데요. 저는 스포가 있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타입이라 최대한 큰 그림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학 리뷰는 역시 어려워요...ㅎㅎㅎ
 
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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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코 무기로 사용되지 않으면서도 생명을 구하고 이롭게 하는 연구주제를 찾아내고 말겁니다.˝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발견하고 그 기술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쫓으며 때론 후퇴했다가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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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법 가을 느낌이 난다. 오전에 운동을 하러 다녀왔는데 공기가 서늘해졌음을 느꼈다. 불과 2주 전 습하고 찌는 듯한 더위를 생각하면 놀랍다. 


이것은 오늘 아침 사진 나가다 찍은 사진인데 어느덧 하늘이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구름이 마치 새의 모양처럼 보인다. 



지난 주말에는 책들을 한아름 주문했다. 적립금만 털어버리면 되었는데 그보다 더 책을 사버린… 뒤돌아서면 후회하는데 참 어쩔 수가 없다. 손가락을 원망해야 하나?


일단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룬 책부터 언급하기로 한다. 



최근에 <모두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보았다. 민주주의 한국사 시리즈 3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란다. 민주주의에 한국사가 키워드라니 일단 호기심이 갔다. 게다가 3부라면 1, 2부가 있다는 말? 어떤 책인지 알아는 봐야 하니까 정보를 보았다. 책을 쓴 저자와 목차를 보아하니 구입할 만한 책이라 여겼다. 여전히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이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나 의문이 들지만 그럼에도 앞선 시기 민주주의를 위해 수없이 분투한 행위들이 없었다면  그나마도 현재가 있을까. 앞선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3권의 책을 통해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한 권은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이다. 사실 구입하려던 목적은 이 책이었다. 지난 달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을 읽으니 자연스레 다음 시리즈인 이 책에 호기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에서 정치, 경제 전문가의 정책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구상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면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은 경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여진다.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이 누구이고 이들은 과연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어떤 경제 정책을 구상했고 설계해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도 샀다. 아마도 이 책은 몇 달전 칼럼을 읽다가 담아둔 책일 것이다. 2017년에 나온 책으로 조금 된 책이지만 한국학 관련하여 많은 시선을 던져주는 다카하시 데쓰야가 해설에 참여했다. 이 책은 중일전쟁이 시작하는 해인 1937년 일본의 문부성이 ‘국체의 본의’라는 책을 펴낸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일본 정신과 그들이 말하는 ‘국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뜬금 없을 수도 있는데 <악부시선>을 샀다. ‘악부시선’은 한나라부터 시작하여 위진남북조 이후까지 민가에 불리던 시가들을 송나라 때 곽무천이 100권의 책으로 펴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얼마 전 <사조영웅전>의 인물 중 동사(황약사)와 서독(구양봉)을 각색한 드라마인 <사조영웅전: 동사서독>을 보았다. <사조영웅전>은 곽정과 황용을 주인공으로 송나라 말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드라마는 동사와 서독의 앞선 역사를 프리퀄 형식으로 다루었다. 8부작인데 재밌어서 뒷 내용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황약사의 사랑과 구양봉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악부’가 사조영웅전에서는 ‘매초풍’ 같은 악한 여인을 뜻하기 때문에 나쁜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악부’라는 글자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의미다). 




 


작년에도 계속 바빴는데 올해도 그렇다. 여름 쯤에는 좀 일이 줄어드나 했는데 하나의 일이 정리될 만하면 두 개의 일이 들어오고 있다. 사람을 더 뽑아주면 낫겠으나 작은 회사다보니 인원은 고정되어 있다.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했더니 말만 알았다고 해놓고 계속 그 상태라 요즘은 일이 들어오면 일정이 더 걸린다고 못박고 있다. 


그래도 지금의 회사를 다니며 좋은 것은 몇 년째 점심을 먹고 나가서 산책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비가 비친 듯 퍼붓지 않는다면 나가서 걷는 것이 습관화가 되었다. 가을 초입이라 여전히 나무의 푸릇함이 남아 있다. 



이렇게 흐린 것도 운치 있지만 역시 볕을 쪼여서 반짝반짝 빛나는 푸른 잎을 보는 것이 정말 좋다. 내 눈마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한 달쯤 지나면 울긋불긋한 잎들을 볼 수 있으려나?


더워서 한동안 필라테스 센터에서만 운동을 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에는 날이 그리 덥진 않길래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와서 동네 공원을 걸었다. 역시 센터에서 런닝머신을 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쾌함이 있었다. 동네도 구경하고 사람들도 관찰하고 나무며 꽃들을 보고 하늘도 볼 수 있으니까. 



이제 제법 해가 짧아져서 퇴근길 무렵에는 이런 노을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날은 구름이 거의 없었나보다. 




이번 달은 아직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스스로 불만인데 그나마 읽은 책들이 만족스러워서 다행이다. 남은 2주 정도는 독서 모임 용인 시마즈 히마미쓰’에 관한 책과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를 읽을 예정이다. 시간이 더 있다면 한 권 정도 더 읽을 수 있으려나? 아무튼 읽을 시간도 부족하고 쓸 시간은 더 없고 그런 요즘이다. 모쪼록 남은 9월을 알차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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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9-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할 곳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복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게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실내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바깥에 나가서 운동하는 걸 저도 더 좋아하긴 합니다. 저는 일단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지금도 나와 있습니다. 하핫.
한국 이제 가을 날씨로군요. 저는 오늘도 너무 더웠답니다? 하핫.

거리의화가 2025-09-14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회사 다니며 가장 좋은 것이 그 점인 것 같아요^^ 걷다보면 스트레스가 좀 완화되더라구요. 그리고 운동은 바깥 공기 마시며 하는 것이 훨씬 좋고요. 땀은 좀 나지만 실내 공기보다는 실외 공기가 더 좋잖아요ㅋㅋ
ㅎㅎ 역시 나와 계시는군요. 낮에는 이곳도 아직 덥습니다. 일교차가 클뿐!ㅋㅋ 다락방 님 어느덧 그곳 생활도 잘 적응해가고 계신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남은 하루 행복하게 보내시고 그곳 생활도 계속 화이팅입니다!

자목련 2025-09-1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이 올려주신 사진 덕분에 가을의 기분을 느낍니다.
남은 9월 더 높고 맑은 하늘을 마주하는 산책과 독서로 채우시길 바라요!

거리의화가 2025-09-16 13:01   좋아요 0 | URL
어제, 오늘은 습기가 많아서 낯에는 특히나 실제 기온보다 더 덥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렇지만 하늘은 분명 가을이라는 느낌을 주죠? 이 달에는 좀 더 하늘을 많이 보고 잠깐이라도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5-09-15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이 책을 얼마 못읽었다고 하면 슬퍼지는 사람 많아요. 김규식과 그의 시대도 읽으셧잖아요. 벽돌책 3권!!!
바람이 달라진다 싶더니 오늘은 습도가 너무 높아서 땀이 너무 많이 흘렀어요. 다시 여름인가? 했다죠. 여전히 낮기온은 30도입니다.

거리의화가 2025-09-16 13: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김규식과 그의 시대는 지난 달에 읽은 거라서요^^; 예전에 비하면 책 읽는 속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저녁에 가면 책을 오래 볼 수가 없더라구요. 집중력도 그렇고~ㅎㅎ
어제, 오늘 습도가 높네요. 일교차가 커졌을 뿐 낮은 여전히 좀 덥지만 그래도 뭐 이 달 지나면 낮에도 시원해지지 않을까요?
 
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총서 모노그래프시리즈 11
도미엔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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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시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베트남의 역사일텐데 이는 우리와도 깊은 관계를 가진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인 도미엔은 베트남 전쟁기 한반도와 베트남 관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이 책은 그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결과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기에 관한 책은 있지만 주로 미국 등 서방의 사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박태균의 베트남사가 있을 것이다. 또 10여년 정도 전에 나온 유인선의 베트남사는 현대사에 집중된 책은 아니지만 이웃인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베트남의 전체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도 두 저자의 책은 자주 언급되곤 하지만 아무래도 읽다 보면 한계가 느껴진다. 이 책은 미국, 소련, 중국 뿐 아니라 베트남 등 다국적 사료를 바탕으로 교차 분석하여 다양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아무래도 베트남과 남한, 미국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분석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미 남한과 남베트남의 관계는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으나 상대적으로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는 알려져 있는 지식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있다.


시대적으로는 1950년대부터 1975년 베트남 종전의 해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는 1950년 양국 간 수교를 맺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중국은 베트남과 북한에 적극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양국 간 다리를 놓았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베트남은 군대를 파병했는데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이는 북베트남의 권유로 한국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던데다 중국을 통해 베트남군이 북한으로 이동했고 북한과 북베트남도 이 일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군은 전쟁 중 중공군에게서 땅굴 전술을 익혔는데 이는 향후 베트남 전쟁에 쓰이게 된다. 1951년에는 베트남 인민 대표단이 북한에 입국한 일이 있었다. 호찌민 주석의 지시로 이루어진 이 방문은 북베트남-중국, 북한-북베트남 관계를 강화하는데 역할을 했다. 이들은 귀국 후 1952년 보고회를 열고 출판물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과 북베트남은 1950년대 사회주의 연대에서 출발하여 반미, 반제국주의 의식에 대한 교감을 바탕으로 문화, 경제, 과학 교류를 열었다.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바탕으로 놀라운 경제 성과를 이룬다. 베트남은 북한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 친선 운동을 벌였다. 

1950년대 후반 시작된 소련의 평화공존 정책은 196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소련의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중소 갈등이 벌어졌을 때 초기에 북한과 북베트남은 이념적으로 소련보다 중국의 노선을 지지했다. 중국도 북한과 북베트남의 협력이 필요했던 상황이었기에 양국에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남베트남 내전으로 폭동과 내전이 벌어지자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남민전)이 만들어졌다. 1960년대 베트남에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시작되자 이들 세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북베트남은 남민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무기 등을 지원했다. 미국이 지원한 응오딘지엠 정권은 무능했고 부패했으며 인민들의 인권을 여러 모로 탄압했다. 남민전 혁명 세력은 조국을 미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베트남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남베트남에서 혁명투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보았다. 비슷한 시기 남한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으니 북한 정부로서는 남민전의 활동에 주목할 이유가 충분했다. 1963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은 북베트남을 방문하면서 남베트남 투쟁에 대한 북한 지지가 이루어졌다. 북한은 대남정책을 전환하여 예전의 평화공세는 접어두고 남한에서 혁명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침으로 ‘남조선혁명론’을 선언했다. ‘남조선혁명론’은 말 그대로 남한에서 우선 혁명을 승리한 후 한반도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남민전이 만들어지고 게릴라전이 늘자 이를 경계하였다. 결국 통킹만 사건을 시작으로 베트남에 전쟁이 본격화한다.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에 따라 1964년 김일성은 비밀리에 북베트남에 방문 후 회담을 했고 1965년에는 북베트남의 당 총비서인 레주언이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회담을 하는 등 끈끈한 유대 관계를 과시했다. 

그러나 소련의 코시긴이 1965년 하노이를 방문하면서 소련, 중국, 북한, 북베트남의 관계는 변화한다. 소련은 베트남을 지원하면서 베트남과의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무렵 남민전이 미 공군 막사를 공격해 미군을 사살하고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미국은 보복 차 북베트남 폭격을 감행했다. 소련은 이 행위가 평화공존에 반하는 행위라며 미국에 대한 비난 공세를 벌였다. 소련은 중국 정부에 비밀서한을 보내 베트남 원조 회담을 제안한다. 소련은 소련군이 중국을 통과하고 소련 공군기가 중국 남서부에 비행장을 사용하며 소련 공군기가 중국 영공을 통과할 수 있기를 중국에 요구했다. 중국은 당연히 소련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미국은 중국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염려했던데다 소련과 북베트남의 관계가 개선되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남한이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군대를 파병하고 북베트남에 대한 중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에 따른 갈등이 일자 북한은 베트남전에 물자를 무상 지원하고 공군 및 선전 심리 전문가를 파견했다. 이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패배할 경우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았고 반대로 미국이 베트남에서 고전할수록 남한 내 미국의 기반이 약화되는 동시에 조선 혁명의 가능성이 커지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처럼 조선 혁명과 베트남 혁명을 연결시켜 인민들의 애국심과 국제적 연대성을 바탕으로 김일성 유일 체제를 공고화하고자 했다.


북베트남은 구정 공세를 통해 반전 기회를 만들어 베트남의 통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자국군에 피해만 가중되는 등 역효과만 불러왔다. 이때 김일성은 성명서를 통해 “세계 도처에서 미제침략자들의 각을 뜨자”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체게바라 기일에는 자신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대혁명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북베트남의 심기를 거스른다(북베트남 정치가들은 김일성의 발언을 ‘민족주의 경연’이라고 비판했다고). 북한은 국제적 의무로 북베트남에 공군을 파견하였음을 강조하였으나 실제로는 조종사 20명 정도의 소규모 병력만을 파견했을 뿐이었다. 1969년 이후 북한은 북베트남에 대한 경제 지원을 줄였고 북한과 북베트남의 통일 방식에도 이견이 생기며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중국은 베트남과 한반도 통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립적 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렇게 북한과 중국은 북베트남과 관계가 악화된 반면 북한은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북한은 한반도에서도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하며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함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표방하였다. 1975년 베트남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은 겉으로는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실제로는 소극적으로 호응했다. 양면 전략이었다. 

북한은 1970년대 초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편으로는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단독 평화협정을 체결하고자 했다. 베트남의 평화협상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의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협상을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이 내 생각 이상으로 더 시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북한이 군사적이든 외교적이든 습득한 것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겠다. 북한은 김정일로의 승계 구도를 본격화하면서 사회를 단결하고 인민을 동원하며 주체 사회를 강화하는 흐름을 이어나간다. 


과거 베트남의 투쟁은 북한에 롤모델이 되었고 이후 베트남의 개혁, 개방이 북한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양국은 붉은 혈맹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베트남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한 북한과 북베트남의 관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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