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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 교양과 상식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의 역사
유홍준 지음 / 눌와 / 2025년 9월
평점 :
한 번쯤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려고 시도했거나 읽어본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책장 한 켠에 여전히 그 책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행을 하기 전 관련 지식을 훓어볼 때 도움을 받곤 했다.
이 책이 나온지는 꽤 되었으나 그동안 구입을 망설였다. 분명 도서관에 많이 들어올 것 같아 도서관을 통해서 볼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책의 소개글 취지에 마음이 움직여 구입을 하게 되었다. 저자의 한국미술사 강의 내용을 한 권에 담았다고 하여 부담이 덜할 것 같아서다.
한국사를 공부하고 관련 책을 읽지만 늘 문화와 미술에 대한 부분은 막히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외울 것도 많고 볼 때마다 왜 매번 헷갈리는지… 아무래도 용어가 한자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아서 한글만 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인 것 같다.
책은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한국 미술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각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면서 관련 용어,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여 이해를 돕고 유산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여 이해를 더욱 높였다.
또 무엇보다 업데이트된 소식을 다룬다는 점이 좋았다. 여전히 한반도에서 과거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음에도 평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기가 쉽지 않은데 아주 최근인 2023년까지의 소식도 다루고 있다(그야말로 따끈따끈하다). 또 한반도 이남의 유물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지역을 근거로 삼아서 좋다. 북한의 유물, 유적은 직접 가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관련 설명과 사진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600 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이지만 관련 내용을 외운다는 강박을 갖지 않는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진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올컬러로 내지를 선택했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더 생생하게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간단히 언급해보려고 한다.
석굴암의 조형미는 완벽하다. “실제로 신라인들은 기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석굴암을 지었으며 1밀리미터의 오차가 없는 정확한 시공이었다”(P176)고 수학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는 성덕대왕 신종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를 녹음하여 공학 박사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종의 높이와 너비, 종 높이와 천판에서 당좌까지의 길이가 서로 같다고 한다. 어떻게 그시절 이런 정확한 측량을 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랍다. 둘 다 종교에 과학적 측량을 바탕으로 정확성을 더하여 예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야와 발해의 역사 기록이 전하지 않는 것, 고려 시대 궁궐과 사찰 중 보존된 것이 없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가야의 역사를 신라인이 기록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발해의 역사를 고려가 챙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되는 것 같다. 고려 시대 궁궐과 사찰이 보존되지 못한 것은 몽골의 침입 때 피해가 컸던 것도 있겠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이유도 있을 것 같다.
고려시대 불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함에도 남아 있는 수가 극히 적으며 그마저도 일본에 가 있다. 다행히 승탑과 불상이 여럿 남아 있어 아쉬움을 덜게 한다. 승탑은 통일신라 시대 선종이 유행하면서 퍼져나간 것으로 고승의 사리를 모신 것이다. 팔각당의 몸체를 가졌던 승탑이 고려 시대에 오면 석등 모양(경주 불국사 사리탑), 사리호 모양(충주 정토사 홍법국사탑), 석종 모양(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등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불상은 현실적인 부처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로 지방적 특색을 담아 파격적인 양상을 보였다.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는 구부린 편안한 자세를 취한 윤왕좌 금동보살좌상이라던지 추상화 그림을 그린 듯한 이미지의 순금제보살좌상은 보고 있으면 재밌어서 한참을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원래 고려청자는 처음 중국에서 수입했었으나 5대10국 시대 때부터 수입길이 막히면서 자체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17세기 송과의 교역이 재개되면서 송인으로부터 노하우를 얻은 뒤 완벽한 비색 청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남아 있는 유물이 많아 조선 시대의 분량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조선 자기와 회화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자기는 항아리나 병 등보다는 문방구에 눈길이 많이 갔다. 필통은 백자에 그림을 그린 것도 있지만 몸통 자체를 투각하여 무늬를 만든 것도 있는데 갖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갔다. 연적도 마찬가지, 모양도 다양하고 기법도 다양해서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백자는 금사리 사마 때 전성기인 달항아리가 만들어졌고 분원리 가마 시절 상업이 발달하고 공인의 수도 많아지면서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 사옹원에서 생산되던 백자가 근대 말 분원자기공소가 되면서 민영화가 시작되었고 번자회사, 분원자기주식회사로 바뀌었다가 1916년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추기 산수화는 소살팔경도로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 산수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시절 대표 화가는 안견과 안평대군이 있는데 안견의 작품은 의외로 몽유도원도만이 확실히 그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하도 그의 작품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많아서인 것 같다). 16세기가 되면 화원이 아닌 사람들의 그림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인간이 중심이 된 산수인물화가 그려지고 화원의 세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탄은 이정은 세종의 현손으로 대나무 그림에 특출났다. 조선 시대 3대 묵죽 화가라고 평가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묵죽은 필법이 굳셀 뿐만 아니라 한 화폭에서 농담을 달리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가 되면 진경 산수화, 문인화가 그려지고 속화가 유행한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압구정은 역시 압도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선과 친분이 있었던 인물로 관아재 조영석이 있었다. 정선이 산수에 일가견이 있었다면 그는 인물에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새참과 우유 짜기 그림은 너무나 사실적인 장면과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표암 강세황은 서양 화법을 도입한 선구자이자 남종화를 시작하게 한 장본인이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사이에 또 한 사람 고송 이인문이 있다. 이인문은 김홍도와 동갑내기로 절친한 사이로 궁중기록화에도 참여했으며 산수, 인물 모두 뛰어난 화가였다. 김홍도가 대상을 부각시키는 기법을 쓴다면 이인문은 풍경의 시야를 넓혀서 보는 기법을 썼다고 한다.
조선 말 추사 김정희 이후 완당 바람이 일었다. 근대 묵죽 화가하면 석파 이하응만 떠올렸는데 자하 신위(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 중 한 명)가 있었다. 그도 김정희처럼 시서화에 모두 능해해서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대나무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묵죽화를 보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북산 김수철의 그림은 너무나 현대적인 그림으로 충격을 주었다. 지금 그렸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화가의 인품을 알수는 없지만 결코 범상치는 않은 분이었을 것 같다.
문자도, 책가도는 여러 번의 전시회를 통해 봐서인지 익숙했다. 문자도는 서체도 다르고 글자 안에 그림을 넣는 등 참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각 지방별로 특색이 있어 보는 맛이 있다. 책가도는 서가에 책을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한 자리에 그린 그림이다. 궁궐과 양반사회에서 유행하였다.
저자는 이 책을 밑줄을 치며 공부하지 않고 소파에서 편안히 기대어 독서하기를 희망하며 썼다. 강박감을 갖지 않고 이 책을 거듭 읽다 보면 한국 미술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보면서 빠른 시일 내에 문화 유산을 만나러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