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역사적 변화는 특수한 시간구조, 특수한 속도, 특수한 전환점, 특수한 공간 차이와 일정 정도의 지역적 특색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이다. - P197
19세기는 파편화된 세기, 무명의 세기,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있는 긴 과도기라고 부를수 있다. 어쩌면 난감한 세기일지도 모른다. - P201
연대의 상대성은 역사 시기를 묘사할 때 채용된 각양각색의 명칭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역사 시기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는 3단론 유럽에서는 1680년대 이후 점차적으로 채택되었다은 풍부한 사료를 통해 그 연속성이 증명되는 다른 문명권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는 이론이다. 다른 문명권에도 이른바 혁신이나 부흥이란 논법은 있었다. 그러나 유럽과 접촉하기 전에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보다 우월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 P208
여러 가지 증거가 보여주듯이, 앞으로 확장된 ‘긴‘ 18세기와 뒤로 확장된 ‘긴‘ 19세기 사이의 시간적 중첩기에 시대적 특징을 부여하고 이를 ‘안장형 시기‘란 이름을 붙여 개념화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안장형 시기‘ (Sattelzeit, 鞍裝形 時期)는시대구분과는 관련이 많지 않은 맥락에서 독일의 역사학자 코젤렉(Reinhard Kosellek)이 제시한 개념이다.41)이 시기는 대략 1750년에서 1850년 사이(때로는1770-1830년)를가리키는데, 이 시기 이후에 중간기로 진입한다. 오늘날 되돌아보면 이 중간기에 응축되어 나타난 여러 가지의 문화현상은 최소한 유럽의 범주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19세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이 물결‘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래서) 우리는 이 10년 동안을 한 역사시기의 특수한 분파라고 하지 않을 수없다. 우리는 당시에 통용되던 한 개념을 빌려서 이 시기를 세기말‘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세기의 분기점이 아니라 세기의 유일무이한 마지막이었다. - P221
모든 것을 종합할 때 ‘진정한 19세기 또는 ‘빅토리아시대의 19세기를 ‘몸통시기‘ (Rumpfperiode) — 독일사를 논할 때 쓰는 표현인데, "1830년대와 1890년대 사이의 상대적으로 짧고 역동적인 과도기" 이다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 P230
모든 역사 발전과정은 상이한 시간의 틀 안에서 발생하므로 간단하게 단기·중기 · 장기로 구분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궤적이 연속적인지 비연속적인지, 가역적인지 불가역적인지, 가속적인지 감속적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과정은 반복적으로 나 - P238
타나고(코젤렉이 말한 ‘중복적 구조‘)76) 어떤 과정은 독특한 가변성보인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변화의과정을 근거로 하여) 역사학자들이 나누어 놓은 학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환경요인이 사회구조에 미치는향, 환경요인이 경제행위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 등이 그런 것이다.7)만약 변화의 과정들이 병렬로 일어난다면 그들 사이의 관계는 흔히 ‘비동시적‘이다. 우리는 통일된 자연의 시간질서 속에서 시간질서이외의 시대구분 방식을 기준으로 하여 역사 발전과정의 위치와 의미를 판정하려 한다.78) 미세한 시간구조를 밝혀내야 하는 과제에 비한다면 역사를 세기‘로 나누는 일은 필요악에 불과하다. - P239
역사는 선형적 누진적 궤적을 따라가는 발전이 아니라 끊임없이 - P241
반복되는 ‘원주형(圓周形) 운동이란 사상을 전근대적 사고방식의표현이라 매도할 수는 없다. 또한 전혀 가치 없는 분석도 아니다. 기제사학자들이 연구한 다양한 시간 폭을 가진 생산과 경기순환 모델은 19세기 경제학의 중요한 성과이다. 제국주의의 지배와 패권의긴 물결(long waves) 이론‘은 세계의 군사력 대비에 관한 연구에서계몽적 방식이었다.80) 역사운동의 선형 모델과 주기형 모델은 둘 다서방에 알려져 있었지만 18세기 이후 서방은 점차 미래개방적 역사발전관을 받아들였다( ‘진보‘ 도중에 정체하거나 우연한 후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81)유럽에서 시작된 진보사관은 그 후 점차 다른 문명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어떤 문명(예컨대 이슬람문명)에서는 이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비연속적 선형 역사관 — 역사를 연속적발전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단절된 순간의 연속적 배열로 본다을버리지 않았다. 82) 현대 역사과학 영역에서 이처럼 본토화 된 역사관과 시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역사적 실체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되는지 최소한 고려해볼 가치는 있다. - P242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기울여야 할 문제는, 사회적 시간을 한 시대의 주기로 보았을 때 사회의 집단인식과 부합하는지, 어떤 조건 아래서 그렇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복잡한 외피를 뚫고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일은 역사주의 인류학과 사회학의 중대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 P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