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들의 기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세계를 이루고 있는 실재는 영원하고 자기동일적이고 순수한 존재‘들‘이다.
2. 이 존재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무/부정 및 타자성을 매개해 운동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현상세계가 성립한다. - P148

엠페도클레스는 다원론을 시도한다. 영원한 것이 단지 하나(일자)가 아니라 넷이 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넷으로부터 나오고 넷으로 돌아가지만, 이 넷은 영원한 동일성이다.

네뿌리들은 결국 물, 불, 공기, 흙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바로 이 네뿌리가 태어나지 않는 것들‘(영원한 것들)로서의 4원소(stoicheia)-라틴어로 ‘elementa‘가 된다.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요소들‘로, 화학적 맥락에서는 ‘원소들‘로 번역된다. ‘stoicheion‘이라는 희랍어는 오늘날까지 화학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네 원소 각각은 영원한 동일성들이고 만물은 이 네 원소들의 조합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가 질적으로 서로 환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네 가지로 환원되지만 이 네 가지는 서로 환원되지않는다. - P150

사랑은 네 원소들을 결합하고, 미움은 이것들을 분리한다. 공기, 불,
물, 흙의 순서로 분리된다고 한다. 현대 화학에서도 원소들끼리의 결합•분리는 중요한 문제이거니와, 지금 엠페도클레스의 사유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 한다. 원소들 자체가 사랑/미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이들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는 근본적인 두 힘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 P156

엠페도클레스의 인식론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원리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알아본다(hé de gnösis tou homoiou to homoio)"는 것이다. 사물들은그 표면에서 여러 가지 방출물(aporrhoē)을 내고 그것들이 인식 주체의표면으로 이전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시각적 방출물들, 청각적 방출물들 등의 크기가 다 다르고 시각, 청각 등의 미세한 구멍 크기들이 또 다 달라서 결국 시각적 방출물들(예컨대 색)은 눈에만 들어간다고 한다. 물론 다른 감각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P161

아낙사고라스에게서 아페이론은 아무런 규정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차라리 무한한 규정성들이 얽혀 있는 상태이다. 아페이론은 모든 종자들이 함께 존 - P168

재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함께 있었고, 수적으로도또 작음에서도 무한했다." 여기에서 ‘모든 사물들‘은 모든 종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무한히 작은 무한한 종자들이 공존하는 상태, 그것이 아페이론 상태인 것이다. 무질서의 상태가 아니라 무한한 질서의 상태이다. - P169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되고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정신을 신으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 십상이고, 실제 후대에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을그런 식으로 이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라는말로 신을 가리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훗날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에서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을 보게 된다.
아낙사고라스가 말한 ‘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이렇게 분명하지가않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이 생각을 반겼다.
이들은 누스를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원리로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 P173

데모크리토스는 아르케로서 원자들(atomata)을 제시한다. 각각의 원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같지만, 원자들‘은 다자를 형성하며 또 운동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사유 또한 포스트-파르메니데스적 사유라는 점 - P176

을 확인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을 "어떤 것(to den)", "꽉 찬것(to naston)", "있는 것(toon)"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일자와 마찬가지로 이 원자들도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는 존재들이다. - P177

플리키우스는 이런 말을 전해준다.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의 원자들)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고 말할 때(그러나어떻게, 그리고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발생(t‘automation)과 우연(tyché)으로부터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 P179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전해준 다음 구절이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앎의 능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적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출(庶)적인 것이다. 서출적인 것에는 다음의 모든 것들,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속한다. 반면에 적법한것은 이것(서출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 서출적인 것은 더 작은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접촉에의해 감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미세한 것에 대해서 <탐구해야 할 때는, <적법한 것에 따라야 한다. 적법한 것은 더욱 미세한것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론에서의 이런구분은 특히 근대 초(고전 시대)의 철학자들에게서 다시 분명하게 나타난다. - P18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삶의 목적을euthymia‘로 보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autarkeia‘, ‘psychagogia‘, ‘a kataplexia‘ 등을 들고 있다. ‘euthymia‘는 ‘thymos‘를 잘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thymos‘는 맥락에 따라서 기개, 의지, 격정 등을 뜻한다. - P187

"thymos와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것은 사려 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구절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데모크리토스에게 ‘thymos‘는 훗날의 ‘passion‘ 즉 ‘정념(情念)‘과 같은 것을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념을 극복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했던 것이고 이 점에서 그가 고중세의 철학자들 대부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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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이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발랑탱 경찰청장과 다양한 얼굴을 하고 나오는 플랑보, 극을 이끌어 가는 브라운 신부가 흥미로웠다. 셜록 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흥미로운 추리 단편이었다.


<푸른 십자가>는 추리 과정이 재밌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쯤 될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막판으로 갈수록 소름이. 119페이지 인용구는 정말이지 무릎을 쳤다. 사람이 현실을 보는 것에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장 멀고 외로운 별이라 해도, 이성과 정의를 피해 갈수는 없습니다. 저 별을 보십시오.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같지 않은가요? 식물학이나 지질학으로 비유해 볼까요. 이파리가 모두 보석인 숲을 생각해 보십시오.
달은 코끼리만큼 큰 사파이어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광기의 천문학이라고 해도, 이성과 정의에는 털끝만 한차이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진주로 만든 절벽 아래 오팔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해도, <도둑질하지 말지어다>라는 표지판은 똑같이 서 있을겁니다.」 - P31

브라운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졌다. 「참으로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부유하고 안락하면서도 신이나 인간을 위해 아무런 결실도 내지 않고 하찮게 사는사람이 이토록 많은데, 도둑놈과 부랑자는 회개를 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감히 부탁드리건대, 제 영역을 침범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실제로 회개했는지 의심스럽다면 여기 있는 나이프와 포크를 보십시오. <참된 어부 열두 명> 클럽의 은제물고기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사람 낚는어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 P62

모리스 블룸은 빈민들의아버지가 되겠다는 원칙을 지닌 무정부주의자로 출발했지만, 양측 모두에게 이용당하고 경멸받는 스파이로 끝났네. 해리 버크는 돈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겠다는 신념을지녔지만, 지금은 굶어 죽을 판인 여동생한테 술값이나 뜯어내는 신세가 되었지. 앰버 경은 기사도 정신으로 범죄의세계에 뛰어들었지만, 런던에서 제일 저급한 무뢰한들에게 협박이나 당하고 돈을 뺏기고 있지 않나. 또 자네 앞선세대의 위대한 신사 강도였던 바리용 대위는 배신당하고버려진 끝에 정신병원에서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생을 마감했어. - P93

사람들은 상대의 말이 의미하는 것, 혹은자신이 보기에 상대의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답하는 법이지요. 시골집에 사는 부인에게 <같이 사는 분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네, 집사랑 마부 세명, 하녀 한 명이 같이 삽니다>라고는 절대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하녀가 같은 방에 있거나 집사가 의자 뒤에 서 있다 해도 <같이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죠. 여기서 사람이 없다는것은 묻는 사람이 의미한 바로 그런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전염병 조사를 나온 의사가 <같이 사는 분이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그 부인은 곧바로 집사랑 마부 하녀들을 떠올릴 겁니다. 언어는 늘 그렇게 사용됩니다. 문자 그대로의 질문에 답이 나오는 일은 없다는 거죠.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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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는 완전히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은폐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훗날의 ‘parousia‘ 개념을 예기하고 있다) 지금 식으로 말해, 실재는 어떤 기호(sign)로서, 징후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언어가 바로 이런 기호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언어는 담론사의 새로운 문턱을 넘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언어/글쓰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 P99

어떤 사물의 생성의 매 순간은 그것이 그 존재이자그 존재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다. 때문에 매 순간은 모순을 함축한다. 존재이자 비존재라는 모순을 존재와 무는 결코 섞일 수 없다. 서로 절대 모순을 형성한다. 생성은 존재이자 비존재=무이고, 거기에서 존재와 무는 이어지고 있다. 이로부터 생성이란 그 자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도래한다. 여기에서 존재와 비존재 그리고 생성, 시간, 모순관계, 동일성과 차이, 재인(再=recognition) 같은 개념들이 복잡하게얽히면서 하나의 개념군, 문제군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사유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존재론적 난제(難題)=‘ontological aporia‘에 봉착한 것이다. - P105

조화라는 것은 모든 투쟁이 끝난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가 아니다.
우주의 영원한 진리는 투쟁, 갈등, 전쟁이며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근원적하나의 계기들이라는 것, 그런 계기들의 균형을 통해 우주는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 이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이다. - P112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철학자들이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식론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학적인 것이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종교가 말하는 내용이 학문적으로증명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고, 윤리학적으로 볼 때 종교의 담당자들이어리석은 대중을 속여 부와 권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비판은대체로 정당하다. 그러나 윤리적 맥락에서는 간단히 일반화하기가 곤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헐벗은 민중과 함께하는 종교로부터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종교까지 무수한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 P113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는 동북아의 사유와 몇 가지 친연성(親緣性)을가진다. 이미 언급했듯이, 만물이 흐른다는 생성존재론은 易의 기본 원리인 "生生不息"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이 흐름이 사실상 로고스에 의해 지배된다는 생각 역시 역의 생성이 태극에 의해 지배된다는각과 상통한다. "가장 아름다운 질서는 아무렇게나 쌓인 쓰레기 더미이다" 같은 식의 역설적 사유는 『노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투쟁이 만물의 아버지라는 생각은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비롯한 여러 구절들에서 그 짝을 찾을 수 있다. "죽음은 우리가 깨어난 뒤에 보는것들이고, 자고 있을 때 보는 것들은 잠(삶)이다" 같은 생각은 음양론의구조와 맥이 닿아 있다. 적어도 사유의 골격에 있어 두 전통은 적지 않게 상통한다 할 수 있으리라. 두 사유의 관계를 앞으로 면밀히 검토해볼필요가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서구 철학의 ‘주류‘가 되었다면 동서양의 관계는 사뭇 다른 것이 되지 않았을까. - P118

학이 갈마듦을 확인할 수 있다. 비판 위주의 사유는 세계에 대해 스스로적극적인 가설을 내기보다는 기존의 학설들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인식론이 대표적이다. 철학을 ‘메타적‘ 담론이라고 할 때 이 말의 한가지 의미는 비판적 사유에 있다. 이런 유형의 철학을 전개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형이상학에 대해서, 세계에 대한 거창한 사변들에 대해서부정적이다. 반면 종합 위주의 철학은 기존의 작업들을 비판하기보다는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인문·사회 • 자연과학을 종합해서 세계와 인간 그리고 역사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것이 ‘메타적‘이라는 말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이다. 칸트가 전자의 예라면, 헤겔은 후자의 예이다. 철학사는 비판철학과 종합철학의 대결의 역사이다. 종합철학자들이 큰 그림을 그려놓으면 비판철학자 - P119

들이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다시 또 다른 인물이 나와 보다 발전된 그림을 그리곤 한다. 철학사는 인식론과 존재론, 비판철학과 형이상학, 메타적 분석과 종합적 사유의 길항(抗)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P120

크세노파네스는 퓌타고라스학파와 대조적이다. 퓌타고라스학파가 교조성이 강한 종교 단체였다면, 크세노파네스는 헬라스 전역을 유랑하면서 활동한 비판철학자였다. 종교적 신앙과 비판적 사유는 단적으로 대립한다. 크세노파네스는 헤라클레이토스보다 더 분명한 방식으로 퓌타고라스학파를 비판했다. 크세노파네스의 문화 상대주의와 신화/종교 비판_은 헬라스 문화사의 중요한 한 사건이다. - P123

파르메니데스는, 오로지 논변(argument)을 통해서만 사유할때, 다자와 운동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감각을 통한 그런 경험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실재는 오로지 ‘영원부동의 일자‘라는 것이다. - P126

파르메니데스의 말을 압축하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이는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니다. 있음은 가능하지만 없음은 불가능하다는말이다. 없음은 없다. 즉, 무(無)는 불가능하다. 오직 있음만이, 존재만이가능하다. - P128

결국 완벽하게 연속적이고 균일하며 영원하고 부동인 그런 것이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라는 말은 추상 개념이 아닌가? 존재 개념과 세계, 우주, 자연 개념은 다르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일자=존재는 곧 세계이다. 퓌타고라스학파에서와 마찬가지로 파르메니데스에게서도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의 구분은 희미하다. 때문에 존재는곧 세계로 이해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가 완벽하게 연속적·균일적 · 영원적 • 부동적이라면, 결국 그것은 완벽하게 둥그런 구(球)가아닐까 생각했다.(따라서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는 유한하다) 우리에게 ‘구‘와 ‘존재‘라는 두 개념은 범주를 달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파르니데스에게는 존재=일자=세계=구이다. - P135

그리스 존재론 및 자연철학의 역사는 이렇게 파르메니데스 극복의 역사, 영원부동의 일자가 다자성과 운동으로 화하고 다자들의 관계와 운동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명되어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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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모피 판매에 가장 좋은 시장으로 보였지만 서유럽과 특히 미국 상인들이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있었다. 미국 상인들은 약 5개월 내에 미국 북서부에서 광둥으로 모피를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모피를 캬흐타까지 운반하는 비용은 턱없이 높았으며 시간도 많이 걸렸다(모피를 알래스카에서 운반해오는 데 보통 2년 이상 걸렸다). 또한 알래스카와 캄차카에 있는 러시아의 전초 기지에 대한 물자 공급이 심각하 - P569

게 부족했기 때문에 외국 경쟁자들은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전초기지에 물건을 팔고 그에 대한 대금으로 모피를 받아 광둥에 판매하는 식으로 이들 전초 기지의 핵심 기능 자체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아메리카 회사가 성공하려면, 좀더 심하게 표현해, 살아남으려면 유럽과 미국처럼 러시아도 해로를 통한 교역 허가권을 청조에서 얻어내야만 했다. - P570

러시아정부는 예카테리나 2세(1762~1796년 재위)의 통치 때부터 줄곧 ‘카슈가르와 정치적·상업적 관계를 확립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고 한다. 그러나 알티샤르는 반란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고청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서 더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1854년 크림 전쟁의 발발은 카슈가르와의 교역 접촉을바라는 러시아의 열망을 한층 더 부추겼다. 왜냐하면 이 전쟁이 영국과 러시아의 적대 관계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의 해상 교역, 특히차 교역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러시아는 내지 교역에서 경쟁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기를 한층 더 갈망하게 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영국의 교역이 육로로 인도를 출발해 신장을 거쳐 중국 본토의 심장부로 침투할까 두려워했다. 1854년 러시아는 러시아-청의 접경 지역에위치한 카자흐와 키르기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변경을 탐사하는 한편 카슈가르로 가는 대상 노선에 주의를 기울였다. - P585

1824년과 1825년 러시아가영국 및 미국과 각각 맺은 조약들의 결과로 러시아는 북아메리카에서더이상의 남부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아무르 강 북쪽의 청 영토에 보다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832년에디젠스키M. V. Ladyzhenskii 대령이 고르비차Gorbitsa 강 하류의 변경 표지.
치를 정확히 확정짓기 위해 파견되었다. 1840년에 러시아 외무부는베이징 주재 선교단을 통해 청조와 아무르강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나 베이징 당국은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그 문제는 일단락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린성과 헤이룽장 성 군정 장관들은 만주의 변경 지역에 대한개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청의 정책도 여전히 한족의 이주를 저지하는 쪽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만주 지역은 관심 밖의 무방비 지역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 P588

청은 특히 만주에서는 만주인이나 몽골인만이 만주 변경 지역의군정장관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을 파기하고 1853년에는 한족 기인을지린성 군정장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지린성과 헤이룽장 성의 지방재정을 재편성했다. 이 조치 이전에는 중앙 정부가 지린성 행정비의약 4/5와 헤이룽장 성의 행정비의 거의 전부를 부담했다. 중앙 정부는이런 관행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호부는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 대한 행정 보조금을 여러 다른 성에 분담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책임을 맡은 성들이 종종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그리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 만주 변경의 각성은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항목의 세금을 제정하고, 관전과군전을 개척하며 팔기군의 연간 수입을 보충하기 위한 특별 ‘수결지‘를 새로 만드는 등 자체 수입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P598

청 제국은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또 한족을 중국본토에만 가두어두려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에 계속 집착함으로써 극동아시아 북부의 넓은 귀중한 영토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유익한 교훈이었다. 점점 더 한족 지향적으로 변한 조정은 이 교훈에서 깨달은 바에 따라 제국의 다른 변경 지역에 대한 한족의 이민을 허락했•다. 중국령 내륙아시아의 이후의 역사는 한족의 정주, 한족화 그리고 - P610

전에 비중국적이었던 사회의 보다 큰 중국으로의 통합 등으로 특징지어졌다.
이런 손실을 입기는 했지만 청조가 이룩한 것도 부인해서는 안 될것이다. 내부 반란과 유럽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왕조는 살아남았고청의 질서는 최소한의 변화만을 허용한 채 계속 유지되었다. 청조가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청이 이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P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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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는 ‘철학‘사이자 철학사‘이다. 철학사는 철학을 다루지만 어디까지나 역사적 지평에서 다루며, 역사에 속하지만 어디까지나 철학의 역사이다. 때문에 철학사의 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사와 철학을 어떠헤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 P13

역사와 철학은 논의 대상의 성격에 따라서 유연하게 달리 배치되어야 하며, 어느 하나의 극으로 기울어질 때 철학사상 고유의 높이를 해치거나 철학을 역사와 괴리시키는 결과가 초래된다. - P15

해양 문명의 발달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전반적으로 강한 모험심을 가지게 해주었고, 농사짓기 어려운 척박한 땅은 무역이 발달하도록 만들었다. 우직하게 땅만 파면 되는 농사와는 달리 장사를 하려면 말을 잘하고 계산이 빨라야 한다. 그래서 말, 계산, 화폐가발달하고 합리적으로 사리를 따지는 문화가 성립했다. 지중해 특유의 부드러운 날씨는 사람들을 집 바깥으로 끌어내었고,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대개 개방적 · 사교적. 외향적인 성품을 보이게 된다. 그리스문명의 이런 특징들은 ‘logos‘라는 말에 단적으로 압축되었다. 때로 하나의 단어가 잘 찍은 사진처럼 한 문명 전체를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말, 계산, 비례 등을 뜻하고, 더 고급한 맥락에서는 이성, 추론 등을 뜻하는 ‘로고스‘라는 말만큼 그리스 문명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도 없다. - P30

현실 역사와 그에 맞물려 진행된 담론사는 그리스의 역사가 바로 이렇게 정의 개념이 확립되고 실현되는 역사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과정이 그리스 민주정의 핵심을 이룬다. 여성, 노예, 외국인은 배제된 불완전한 민주정이었지만, 다른 지역의 고대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이런 민주정의 개화(開花)를 바탕으로 헬라스의 문화가 꽃피게 된다. - P44

허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철학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탄생설화가 지중해세계에서의 ‘철학‘이라는 담론의 성격을오랫동안 특징지어왔기 때문이다. 허무하다는 것은 참된 것, 영원한 것, 필연적인 것, 보편적인 것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삶에서 기댈 수 있는 것, 의지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우리의삶을 근거 지어주는 것, 그런 것(들)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절실하게 음미하면서 철학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P46

자연철학의 ‘탄생‘은 밀레토스 지방에서 이루어진 부분적인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서 가능했다. 흔히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은 사물의 ‘질료‘를 찾았다고 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이다. - P57

탈레스가 발견한 세계는 이전의 신화적 세계와는 판이한 세계였다. 그것은 더 이상 제우스가 번개를 던지고 포세이돈이 폭풍우를 일으키는세계가 아니었다. 자연은 자연 자체로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또 수학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탈레스는 신들과 영혼들의 존재를믿었고 세계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사유는신화와 구분되는 자연과학적 사유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세계관과 단절되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 P67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우리는 거의 완벽하게 탈신화화(脫神話化)된 세계를 만나게 된다. 나아가 추상적 사유, 이론적 사유가 분명하게 나타났음을 감지하게 된다. 또, 지각을 통한 경험보다는 논리를 더 숭상하는, 논리에 굴복하는 태도도 만나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최초의 ‘과학적 세계관‘을 만난다고 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담론사의 핵심적인 한 지도리를 만들었다. - P75

퓌타고라스학파는 추상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수 역시 어떤 사물이었다. (말하자면 남자가 3이고 여자가 4라면 결혼은 7이라는 식으로) 게다가 이들은 수를 신비화했다. 수비학(數學)의 원조인셈이다. 퓌타고라스학파는 특히 10을 ‘완전수‘라고 불렀다. ‘1+2+3+4" - P88

가 정삼각형을 형성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여기에서도 대수적 맥락과 기하적 또는 물리적 맥락이 혼동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수에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수비학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 곳곳에널려 있다.
결국 ①밀레토스학파는 질료를 탐구했고 퓌타고라스학파는 형상을탐구했다고 도식적으로 말하는 것은 일정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조심스럽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 ② 퓌타고라스학파의 수론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고 바로 이 점에서도 이 학파가 과학과 종교를, 합리와 신비를 기묘하게 뒤섞어놓은 학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89

철학은 분명 민주주의풍토 위에서 자란다. 그러나 자연철학자들이 전통적인 믿음들을 무너뜨렸을 때 그리스의 대중은 철학자들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으며, 특히 아테네 몰락의 원인들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대부분 이방인들이었던) 소피스트들에게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 철학과 민주주의는알력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철학의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철학을 못따라왔다고 해야겠지만, 소피스트들의 경우에는 이중적이다. 소피스트들이 한편으로 계몽적/비판적 역할도 수행했지만, 동시에 파괴적인 형태의 허무주의, 회의주의, 상대주의 사조들을 퍼트림으로써 아테네 몰락 - P90

의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민주주의의 상생(相生)이 그리스 문명의 영광을 가져온 한 요인이었듯이, 이번에는 철학과 민주주의의 알력이 그리스 문명의 쇠퇴를 가져온 한 요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철학은 늘 이렇게 시대와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맺어왔다. - P91

아페이론은 어떤 x이다. 물로도 불로도 공기로도 흙으로도 아직 규정되지 않은 무규정의, 비한정적인 무엇, 그러나 그 네 가지로 규정될 수있는 후대의 개념을 쓴다면 ‘분화(分化/différenciation)‘ 될 수 있는무엇이다. 이 점에서 아페이론은 곧 ‘페라스(peras)가 없는 것‘, 즉 경계선, 극한(limit), 가름, 한정, 규정이 없는 것이다. 미규정의 (undetermined)무엇이 규정됨으로써 (determined) 일정한 사물이 된다는 것, 이것은 그리스 철학, 나아가 사유 일반의 기초 요소들-철학소(哲學素)들-중 하나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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