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들의 기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세계를 이루고 있는 실재는 영원하고 자기동일적이고 순수한 존재‘들‘이다.
2. 이 존재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무/부정 및 타자성을 매개해 운동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현상세계가 성립한다. - P148

엠페도클레스는 다원론을 시도한다. 영원한 것이 단지 하나(일자)가 아니라 넷이 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넷으로부터 나오고 넷으로 돌아가지만, 이 넷은 영원한 동일성이다.

네뿌리들은 결국 물, 불, 공기, 흙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바로 이 네뿌리가 태어나지 않는 것들‘(영원한 것들)로서의 4원소(stoicheia)-라틴어로 ‘elementa‘가 된다.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요소들‘로, 화학적 맥락에서는 ‘원소들‘로 번역된다. ‘stoicheion‘이라는 희랍어는 오늘날까지 화학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네 원소 각각은 영원한 동일성들이고 만물은 이 네 원소들의 조합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가 질적으로 서로 환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네 가지로 환원되지만 이 네 가지는 서로 환원되지않는다. - P150

사랑은 네 원소들을 결합하고, 미움은 이것들을 분리한다. 공기, 불,
물, 흙의 순서로 분리된다고 한다. 현대 화학에서도 원소들끼리의 결합•분리는 중요한 문제이거니와, 지금 엠페도클레스의 사유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 한다. 원소들 자체가 사랑/미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이들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는 근본적인 두 힘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 P156

엠페도클레스의 인식론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원리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알아본다(hé de gnösis tou homoiou to homoio)"는 것이다. 사물들은그 표면에서 여러 가지 방출물(aporrhoē)을 내고 그것들이 인식 주체의표면으로 이전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시각적 방출물들, 청각적 방출물들 등의 크기가 다 다르고 시각, 청각 등의 미세한 구멍 크기들이 또 다 달라서 결국 시각적 방출물들(예컨대 색)은 눈에만 들어간다고 한다. 물론 다른 감각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P161

아낙사고라스에게서 아페이론은 아무런 규정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차라리 무한한 규정성들이 얽혀 있는 상태이다. 아페이론은 모든 종자들이 함께 존 - P168

재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함께 있었고, 수적으로도또 작음에서도 무한했다." 여기에서 ‘모든 사물들‘은 모든 종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무한히 작은 무한한 종자들이 공존하는 상태, 그것이 아페이론 상태인 것이다. 무질서의 상태가 아니라 무한한 질서의 상태이다. - P169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정신이라는 것이 따로 설정되고 그것이 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정신을 신으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 십상이고, 실제 후대에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을그런 식으로 이어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라는말로 신을 가리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훗날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에서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을 보게 된다.
아낙사고라스가 말한 ‘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이렇게 분명하지가않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이 생각을 반겼다.
이들은 누스를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원리로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 P173

데모크리토스는 아르케로서 원자들(atomata)을 제시한다. 각각의 원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같지만, 원자들‘은 다자를 형성하며 또 운동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사유 또한 포스트-파르메니데스적 사유라는 점 - P176

을 확인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을 "어떤 것(to den)", "꽉 찬것(to naston)", "있는 것(toon)"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일자와 마찬가지로 이 원자들도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는 존재들이다. - P177

플리키우스는 이런 말을 전해준다.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의 원자들)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왔다고 말할 때(그러나어떻게, 그리고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발생(t‘automation)과 우연(tyché)으로부터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 P179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전해준 다음 구절이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앎의 능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적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출(庶)적인 것이다. 서출적인 것에는 다음의 모든 것들,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속한다. 반면에 적법한것은 이것(서출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 서출적인 것은 더 작은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접촉에의해 감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미세한 것에 대해서 <탐구해야 할 때는, <적법한 것에 따라야 한다. 적법한 것은 더욱 미세한것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론에서의 이런구분은 특히 근대 초(고전 시대)의 철학자들에게서 다시 분명하게 나타난다. - P18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삶의 목적을euthymia‘로 보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autarkeia‘, ‘psychagogia‘, ‘a kataplexia‘ 등을 들고 있다. ‘euthymia‘는 ‘thymos‘를 잘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thymos‘는 맥락에 따라서 기개, 의지, 격정 등을 뜻한다. - P187

"thymos와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것은 사려 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구절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데모크리토스에게 ‘thymos‘는 훗날의 ‘passion‘ 즉 ‘정념(情念)‘과 같은 것을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념을 극복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했던 것이고 이 점에서 그가 고중세의 철학자들 대부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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