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 P45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 P46
여전히 여성의 노동과 투쟁보다 자궁 단속에 더 관심이 많다. - P73
연좌제는 비시민화시키기이다. 국가와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비국민을 꾸준히 발명해낸다. 중산층 지식인 남성의 위치는 가장안정적인 시민이다. 한편 노동계층과 여성은 원래 비시민이기에 이들의 시민되기 탈락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다. 농부가 농부로 살아가고, 노동계층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갈 뿐이다. 탈락된 자들은 원래 자리가 없었기에 그들의 고통과 상실은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부 지식인 남성의 서사가 역사를 과잉 점유한다. 지식인 남성은 그 위치 때문에 희생자 서사를 가지기도 쉽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중산층이되지 못한 지식인 남성‘ 서사로 급격히 좁아진다. 이들은 문학으로 울분을 표출하며 사회에서 지적으로 망명한 지식인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는 위치는 저항하는 위치보다 안전하다. - P114
나는 동네에서 정말로 가사만 하는 여성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농사를 짓거나 시내에서 장사를 했다. 가게나 논밭이 없는 보통의 여성들은 대부분 집 안에서 부업을 했다. 조금 멋지게 다니는 여성들은 ‘보험 아줌마‘였다. 어떤 아줌마는 군부대가 있던 춘천에 가서 미제물건을 가져와 야매로 팔았다. 화장품, 코코아, 커피, 농축 주스 등을가져왔고 어머니도 그 물건을 샀다. 아주 가끔 진한 오렌지 주스 농축액에 물을 타서 마신 적이 있는데 그 음료가 야매로 구입한 것이었다. 겉보기에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여자들은 다들 집에서 부업을 했다. - P141
‘양양하와이‘라는 속어를 연구한 이한길은 "양양하와이란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 군사적 충돌, 당시의 사회적 긴장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5년여의 인공생활, 다시 5년여의 전쟁과점령지로서의 생활, 도합 10여 년의 생활은 이 시대의 양양 사람들의의식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기에 충분했다며 양양하와이의 유래를더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양양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대화를 할적에는 항상 말 한마디마다 조심을 하였다. 그러니 말이 느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상대하던 남한 사람들은 양양 사람들을 가리켜 하와이라고 하였다. 마치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했던 것"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양양과 강릉은 가까운 지역임에도 미묘하게 말씨가 다르다. 지금도 나는 강원도말을 ‘북한 말씨 같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웃기 어렵다. - P180
3교대를 하는 노동자들이 시간을 아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일터에서 도시락을 먹으려면 누군가는 그 도시락을 싸야 한다. "간부들이나 밥 먹을 데가 있지. 그 시절에 무슨 구내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같지 않아." 모순되게도 1960년대에 할머니는 광업소에서밥을 했지만 그 밥을 먹는 사람들은 간부들이었다. 밥 짓는 노동계층여성은 정작 자신과 같은 계층의 노동자를 위한 밥 짓기 노동으로는돈을 벌기 어려웠다. 노동자의 밥은 주로 아내들의 무임노동으로 굴러갔다. 광산노동자인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한 아내가 "도시락 씻는게 싫더라고. 탄가루 막 묻혀 오고"라고 말하며 일회용 그릇에 도시락을 싸는 장면을 티브이에서 봤다. 이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회용품 사용을 비판하는 마음을 꺼내기는 어려웠다. 밥 위에 계란프 - P230
라이, 반찬으로는 두부 부침에 김치, 나물이 담긴 도시락이었다. 오늘날 광산은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여성들의 도시락싸는 노동이 그나마 줄었다. - P231
폐광촌에서 옛 광부들의 희생과 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힘들게 번 돈을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자신은 남은 돈으로 값싼 고기와 소주로 배를 채웠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만날 수 있는데, 다분히 가부장적 시선이다. 노동자들의 궁한 식사에 시선을 두다가도 여지없이 내 눈에 들어오는것은 남성들보다 더 먹을 기회가 없는 여성들의 위치이다. 집 밖에서식사할 기회가 많은 남성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음식을 접할기회가 더 많다. 아버지가 1980년에 처음 삼겹살을 먹었다면 어머니는 198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처음 삼겹살을 먹어봤다고 했다. 음식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에는 남편을 위한 보양식이 아니라, 결혼을 해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여성을 통해 새로운 조리법을 발견한 사례들이 엿보였다. - P239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머니마저‘ 밖에서 투쟁에 참여했을 때 자식들의 위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그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정상적인 어머니로 인정받는다. 다른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모범적인 어머니 되기는 중요한 가치다. 1980년 사북항쟁에서도 자식 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집단생활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투쟁에 참여하지않는 아내/어머니의 복잡한 입장이 있다. - P272
아버지는 일흔을 넘기면서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내가 가만히생각해보니까, 나는 이 집에서 지금 당장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더라고. 내가 없어진다는 게 정말 이 집에서 더 이상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아. 그런데 네 엄마는 아니야. 지금 우리 집에 니 엄마가 없어지잖아, 그럼 다 마비야. 엄마가 없으면 큰일이더라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쓸모가 없어." 어머니는 아들네집 돌봄노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집 밖에서 임금노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자신의 ‘쓸모없음‘을 느꼈고, 그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집 밖의 일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이제 한 달에 29만 원을 받는 노인일자리에 의존한다. 집 밖에서 쓸모를 다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노인일자리는 ‘일하러 밖으로 나간다‘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한 달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 외에 수입이 전무하고재산도 없는 노인들에게 노인일자리는 꽤 인기다. 어느 날 집 앞에서아버지는 우연히 옛날 양양광업소 동료와 마주쳤다. 그는 폐지 줍는일을 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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