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가 등장하기 전의 유대인들은 야훼를 모든 부족의 유일한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모든 히브리인들의 유일한 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모압인들에게는그들의 신인 그모스가 있었으며, 나오미는 룻이 계속 그모스를 충실하게 섬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바알세붑은 에글론의 신이었으며, 밀곰은 암몬의 신이었다. 이 민족들은 경제적 정치적 고립주의를 택하여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학적 독립성을 낳았던 것이다. 모세는 그의 유명한 노래에서 "야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며, 솔로몬은 "우리의 신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탐무즈는식자층을 제외한 모든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뿐만 아니라 그를 섬기는 의식이한때 유대에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에스겔은 탐무즈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의적인 울음소리를 신전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유대인 부족들은 이처럼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심지어 예레미야의 시대에도 그중 다수는 자체의 신들을 갖고 있었다.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그러므로 이 음울한 예언자는 그의 백성들이 바알과 몰록을 섬기는 일에 계속 저항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에 정치적 통일성이 점점 견고해지고 예루살렘의 신전이 종교의 중심지로자리를 잡아 가면서 신학이 역사와 정치를 반영하게 되자, 야훼는 유대인들의 유일한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언자들이 등장할 때까지는 이런 단일신교(henotheism)를 넘어 유일신교(monothcism)의 방향으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브리 - P506
아모스와 이사야는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의 모태이며, 가난과 전쟁이 인간의 형제애와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없는 유토피아의 물줄기가 흘러나온 원천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현세적인 권력을 다시 확립해 주고, 무산자들이 인류를 통치하는 독재 시대를 열어 줄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의 초기 개념을형성해 준 근거다. 이사야와 아모스는 호전적인 시대에 단순성과 온유함, 협력과 우정이라는 덕목을 높이기 시작했으며, 예수는 이런 덕목들을 자신이 내세우는 신조의 기본 요소로 삼았다. 그들은 "만군(萬軍)의 주"를 "사랑의 주"로다시 만들어 내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한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야훼를내세워 인도주의를 펼쳤다. 19세기의 급진론자들이 그리스도를 내세워 사회주의를 펼쳤던 것처럼 말이다. - P51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법전은유대인의 생활을 묘사해 놓은 기록이라기보다는 율법(사실상 "신관들의 유토피아"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법전들처럼 그 법전 역시 어기는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 대단히 존중되었고 위반되는 경우마다 새로운 칭송을 받았다. 그법전은 사람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유대인들이 2000년간 유랑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에게 무형의 정신적 국가, 즉 하이네 (Heine)가 말한 것처럼 "이동식 조국"을 주었다. 온갖 이산(離)을 겪었어도 그들에게 통일성을 유지시켜주었고, 온갖 패배를 당했어도 자부심을 유지시켜 주었으며, 우리 시대에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강인한 불멸의 구성원들을 안겨 주었다. - P539
제국은 본성상 곧 무너지기 마련이다. 제국을 세웠던 활력이 그 제국을 물려받은 사람들에게서 사라지는 순간, 식민지의 민족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싸울 힘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 종교, 도덕, 전통이 서로 다른국가들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어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한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통일체에는 유기적인 끈이 없으므로 인위적인 결속력을유지하려면 강압이 계속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은 이런 이질성과 원심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속력이 없는 여러 국가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는 그 국가들을 하나의 통일 국가로 만들려는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통일체를 보존하는 일은 해마다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의 구속력이 느슨해지면서 태수들의 대담함과 야망도 점점 커졌다. 태수들은 자신들과 권력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제한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장군들과 대신들을 매수하거나 위협하여 임의로 군대와 자금을 키워 나가면서 왕과 맞설 음모에 계속 가담했다. 반란과 전쟁이 계속되면서 왜소해진 페르시아는 활력이 고갈되었다.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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