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문 대우고전총서 50
잠바티스타 비코 지음, 조한욱 옮김 / 아카넷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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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지 않았다면 ‘비코’를 모르고 살았거나 뒤늦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철학사를 훑어 읽은지 이제 얼마 안 된 새내기라 지식이 너무나 얕은 탓이다. 특히나 서양 철학 지식은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다. 아무튼 비코를 만나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은 <오리엔탈리즘> 덕분이었다.

‘새로운 학문’이라… 우선 책의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과거의 학문은 잘못되었으니 새로운 방식의 학문을 제시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서양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데카르트는 명백하게 판단된 사실만이 진리라고 여겼다. 대표적인 학문인 수학, 과학은 수치로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어 이후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한다. 반면 기억에 의존한 과거를 다루는 역사학은 낮게 평가됐다.
비코는 그런 데카르트에 반기를 들었고, 인간 사회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라며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비코가 살던 당시만 해도 그의 철학은 주목받지 못했다. 대세를 거르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비코의 철학은 여러 모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환경의 중요성, 인간 정신의 파괴로 인한 윤리적 물음이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비코는 1723년 나폴리 대학 법과대학 교수직에 응모했다 탈락했다. 원래 그는 수사학 교수였는데 법과대학 교수는 6배의 봉급을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자격을 갖추었지만 소위 인사 로비를 잘하지 못하여 탈락해버리고 말았던 충격으로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짐작하겠지만 당시에는 그 책이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책과 사상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였던 미슐레, 20세기 역사가인 베네데토 크로체,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 에리히 아우어바흐, 에드워드 사이드 등등 근현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자처하고 그의 사상을 언급했던 것이다. 1944년 비코의 자서전이 나온 뒤 1948년 <새로운 학문>의 영역본(비코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이다. 당연히 이탈리아본이 원본)이 나오면서 그의 사상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코는 중세 말, 근대 초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세계에 신의 섭리는 중요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를 살았던 철학(사상)가들의 바탕에는 신의 관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의 앞부분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는 비코의 철학을 압축한 그림이다.

이 그림 전체는 여러 민족의 인간 정신이 땅으로부터 하늘로 격상되는 세 가지 세계의 순서를 표현한다. 땅 위에 보이는 모든 상형문자는 인류가 가장 먼저 몰두했던 여러 민족의 세계를 뜻한다. 가운데에 있는 지구의는 이후 물리학자들이 관찰한 자연의 세계를 나타낸다. 위에 있는 상형문자는 정신의 세계와 형이상학자들이 마침내 관조하게 되는 신의 세계를 의미한다.(P66)
그는 신성한 것과 세계를 구분했고 세계를 물질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신의 섭리가 (문헌학적) 정의와 준거를 바탕으로 형이상학을 이끈다. 그 준거가 되는 것은 ‘시적 지혜’인 만큼 비코는 시인을 중요시 여겼다.
비코는 민족의 자만심과 학자의 자만심이 인간 본성과 지성을 타락시킴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서는 ‘본연의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리란 종교, 혼례, 매장이라는 공통 원리다. 이는 세계에서 나아가 학문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까지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인간은 낯선 대상(물질)을 만날 때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대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시의 은유성, 비유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인간 사회의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적 지혜’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시적 지혜의 시작인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모든 학문들은 시적으로 피어난다.
인간의 활동은 궤적이 되어 역사가 된다. 비코는 역사적 시대를 총 세 시대로 구분하는데 이는 신의 시대, 인간의 시대, 영웅의 시대이다. 민족마다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도 세 시대를 거쳐온 것은 보편성을 띤다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관습이 출현하며, 관습으로부터 법 체계가 등장하고, 법의 결과 사회 또는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회나 국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언어나 문자가 개발되었다는 이유도 합리적이다. 민족의 역사 중 대표적으로 로마의 역사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옮긴 이의 박사 논문이 비코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이 책의 번역에 적임자라 여겨진다. 영역본이 나왔다지만 번역을 하는데 이탈리아 원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인데 작업을 결심해준 저자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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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6-0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코 관심 있으시면 <비코 자서전> 추천이요!

거리의화가 2025-06-02 11:42   좋아요 0 | URL
정보 감사합니다. 참고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