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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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참 운이 좋지. 힘들게 사는 사람이 참 많잖아. 우리라고 부자는 아니지만." 살다 보니 어떤 개인에게도 어려운 한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이 어떤 일로 인해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이를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조차 잊고 멈추는 순간조차도 사치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평범한 일상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세 달째 계속 되고 있는 사회적 불안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분노를 넘어선 피로감이 내 일상에 타격을 주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 지나간 것(일)은 돌아오지 않으며 매일이 다름을 인식하며 살려고 노력중이다. 


펄롱은 아내와 다섯 명의 딸을 둔 아버지다. 석탄, 포탄, 무연탄, 분탄, 장작 등을 팔며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엄마는 자신을 낳았고, 자식이 없었던 윌슨은 펄롱의 양육을 도왔다. 펄롱은 이처럼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고 성실하여 잍터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펄롱은 수녀원에 일을 하러 갔다가 석탄광 창고 안에 여자 아이가 하룻밤 이상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수녀원은 세인트 마가렛 학교와 붙어 있었다.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다니는 세인트 마가렛 학교와 척을 지어서는 안 되었다. 수녀원 원장은 너무나 침착한 태도로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강요했다. 펄롱은 이상함을 느끼고 눈치챘지만 그럼에도 아이의 이름을 묻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불편한 기색을 내비추자 펄롱의 아내인 아일린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모른척해야할 것도 있는 거야."


아일린의 말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우냐 생각하고 말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갇힌 아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수녀원으로 갔고 원치 않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불운은 누가 결정한 것일까. 펄롱은 아이의 불운을 생각하며 부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펄롱은 아이를 데려오지 못했고 수녀 원장의 돈을 받았으며 미사를 보러 간 자신이 위선자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이 일은 펄롱을 괴롭힌다. 주중은 기계적으로 일에 매달리려 했지만 집중하지 못했다. 일요일이 되면 공허했다. 


주변 사람들은 펄롱에게 충고했다. 그곳과 척을 지면 안 된다고. 생각보다 그들의 힘은 강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애들한테 가봐야겠어.“


결국 자신도 모르게 펄롱은 석탄광 쪽을 향하고 있었다. 자기보호본능과 용기 사이에서 그는 용기를 택했던 것이다. 

그의 선택이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는 전에 없었던 당당함이 내면에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변 사람의 따뜻함으로 자신은 잘 커나갈 수 있었다. 펄롱은 하지 않은(못한) 일로 인해 어쩌면 평생 안고 살아갈 짐 대신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을 선택했다. 


펄롱의 선택 덕분이겠지만 말미에는 가슴이 정말 벅찼다. 펄롱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많다면 정말 좋겠다,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내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얇지만 진한 감동을 안겨 준다. 아마 당분간은 이 책의 감동을 뛰어 넘을 이야기를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 같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들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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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3-04 0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도 모르는 척하겠지요 그때는 용기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때 왜 그랬나 할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3-04 08:42   좋아요 1 | URL
분명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고 나조차도 어머니가, 주변에 나를 거둬준 사람이 없었다면 그런 처지가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한 가정의 아비로서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면 그런 감행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 같아요. 물론 집에 가서는 아내한테 잔소리 폭격을 당할 테고 그러다 여러 갈등을 겪게될 일이 눈에 보이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벅찬 감정에 눈물샘이 터지더라구요.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희선 님도 읽으시면 위로가 되고 따뜻함을 받으실 소설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