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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평점 :
한국은 제조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나라로 지금도 여전히 제조업 강국으로 통한다. 울산은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인데 그런 울산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울산의 현재를 진단하고 과거는 어떠했으며 미래는 어떨 것인지 예측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 문제에 멀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신문을 챙겨 보고 주간지를 구독한다. 덕분에 한국 산업의 문제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균형성, 나아가 원청과 하청 근로자 간의 차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이 울산의 현재를 바라보고 문제점만을 진단했다면 다른 책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가진 차별점은 울산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 나름의 분석을 통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전개부터 흥미를 끌어들인다. 2030년 울산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그려보고 이후 울산의 역사를 훓은 뒤 울산의 현재를 여러 장에 걸쳐 진단하는 방식이다.
2030년 울산의 미래는 암담하다. 정년 퇴직을 한 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정규 일자리가 없어서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여성 구직자의 문은 애시당초 좁은 문이라 말할 것도 없다.
철강, 자동차, 조선 3대 산업을 대표하는 울산의 시작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는 당연하게도 1960년대 국가의 주도 하에 공공 프로젝트로 공단이 들어서면서 시작되어 현대 정주영 이하 인력에 의한 개발 노력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일제강점기가 시작이고 그것도 일본인의 주도 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최근에는 지역사 연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연구자를 제외하고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지역사는 잘 알기가 어렵다. 나조차도 그렇다. 아무튼 잡설이 길었는데 울산은 이케다라는 일본인에 의해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공업도시 울산을 이해하려면 그 시작이 어떠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감하는 바였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이케다의 구상 아래 당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전투기의 급유지로 울산을 선택했다. 급유를 한 후 다시 전투기를 띄워 중국 또는 러시아와 교전 지역인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바로 출격할 수 있는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 물자는 배를 통해, 인력은 기차를 통해, 전투기는 바다를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울산. 모든 것을 병참기지로서의 기능에 최적화해 설계했다고 말할수 있다. - P50~51
울산이 왜 하필 선택되었는가에 대해서 여러 가설들이 존재한다. 앞서 보았던 입지적으로 유리했기에 선택되었다는 설 이외에 정유 공장을 준공하고 (멀리 가지 않고 가까이에 공급하는 것이 유리하므로) 석유화학단지 건설로 출발했다는 설, 그 외에 정주영을 비롯한 기업가들이 사업성을 보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정치적인 동맹을 맺어 진행했다는 설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결국 이 설들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공업 센터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 주도적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부터 울산에서는 '공부 못하면 공장 가면 되지.'가 가능했다. 게다가 울산의 산업 노동자들은 IMF 이후 여러 번의 노조 투쟁을 거쳐 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은 많이 올라갔다(일부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황금 노조'라 부르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정규직 노동자에 한해서 그런 것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은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을 비롯한 국제적 요인, 국내 불경기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원자재값이 상승하고 투자나 소비 심리가 위축된 지금 제조업은 무사할까. 기업이 현재에 안주해 투자하지 않고 정규직도 신입이 아닌 경력직으로만 채운다면 과거 혁신을 주도해 성장할 수 있었던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울산은 연구개발과 설계 조직이 수도권 등으로 다 옮겨 가고 생산 단지마저도 떠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 생산 현장과 연구 개발이 한곳에 있어 실시간 협업이 가능했던 것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실제로 한국조선해양은 판교에 연구소를 세움). 물론 요즘 세상에 단지가 따로 존재해도 협업은 가능하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면 몰라도 제조업은 실제 장비들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테스트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원격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울산에 필요한 전문 산업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세워진 울산과학기술대(UNIST)는 시민의 기대도, 산업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면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업은 신규 인력은 꺼려 하는 동안 일자리가 없는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수도권에 눈길을 돌리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남편을 따라 온 여성들도 일할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생산직 일자리에서 배제된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밀려나있거나 생산직이 아닌 서비스업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저자는 울산의 미래를 제시하며 스마트 주력 산업을 고도화시키거나 데이터 센터를 포괄하는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신산업의 육성을 꺼내든다. 이를 위해서 예시를 든 것이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의 두 산업도시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두 도시는 대표적인 미국의 산업 도시로 쇠퇴를 겪었으나 한쪽은 살아나지 않았고 다른 한쪽은 제조업 대신 서비스업과 신산업을 통해 도시의 재구조화를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울산은 후자의 모델을 따라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제조업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책은 있어야 하지만 후기 산업 모델을 따르면서도 중산층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확보가 되어야 도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좀 뻔한 책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가 읽을수록 꽤 잘 정리된 책이라 여겼다. 개인적으로 읽으려고 했다면 후순위에 밀릴 확률이 큰 책인데 함께 읽는 책이라 읽을 수 있었다. 올 초에 나온 책인데 이런 책은 시기가 지나면 시의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덕분에 적절한 때에 읽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필 책 나눔 토론이 있는 날 외근이 잡혀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