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 23

정월에 漢나라 군대가 宛물을 포위하였다. 春陵 戴侯의 曾孫 劉玄이 平林의 군중에 있으면서 이름을 更始將軍이라 하니, 이때 漢나라 군대가 이미10여 만이었다. 劉氏를 세워 사람들의 기대를 따르고자 하였는데, 南陽의호걸들과 王常 등은 모두 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新市와 林의 장수들은 방종한 것을 좋아하여, 의 위엄과 명철함을 두려워하고 劉玄의 나약함을 탐해서 먼저 함께 계책을 정하여 劉玄을 세웠다. 劉玄이 황제에 즉위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조회 받을 때에 부끄러워 땀이 흘렀으며 손을 들어올리고 말을 하지 못하니, 이로 말미암아 호걸들이 실망하여 대부분 복종하지 않았다. - ≪後漢書 齊武王傳≫에 나옴-3월에 偏將軍 등이定陵,
순행하여 모두 항복시켰다. 王은 물과 尋을 보내서 군대를 징발하여지방을 평정하게 하고, 또여러 맹수인 호랑이. 표범무소 · 코끼리 등속을 몰고 가서 군대의 威武를.
돕게 하고는 이름을 百大軍이라 하여 군대를 풀어 昆陽을 포위하였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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