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깊고 추위는 심한데 폐하께서는 어찌해서 나오셨습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한 개의 탑(榻, 평상) 이외에는 모두가 다른 사람의 집이니 그러므로 와서 경을 보는 것이요."41
조보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천하를 적다고 하십니까? 남북으로 정벌을 하시려면 지금이 그때입니다. 원컨대 향하고자 계산하신 곳을 들려주십시오."
황제가 말하였다.
"내가 태원(太原, 산서성 태원)을 빼앗고 싶다."
조보가 잠자코 오래 있다가 말하였다.
"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제가 그 연고를 물었다.
조보가 말하였다.
"태원은 서북 두 쪽에 해당하니 한 번에 떨어뜨리게 하려면 변경의 걱정거리는 우리가 홀로 감당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 잠시 보류하지 않으십니까?42 여러 나라를 평정하여 없앤다면 저 탄환만한 작은 검은 점43은 장차 어디로 도망가겠습니까?"
황제는 일찍이 북한의 경계에 있는 첩자(諜者)를 통하여 북한의 주군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집안과 주씨(周氏, 후주)는 대대로 원수이어서 의당 굽혀서는 안 되었소. 지금 나와 그대는 틈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쪽 한쪽을 곤란하게 한다는 말이요? 만약에 중원지역에 있는 나라에 뜻을 가지고 있다면 의당 태행으로 내려와서 승부를 결정지읍시다."
북한의 주군이 첩자를 파견하여 복명(復命)하여 말하였다.
"하동지역의 토지와 갑병은 중원지역에 있는 나라의 10분의 1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구구하게 이곳을 지키는 것은 대개 한(漢)나라 황실이 혈식을 받지 못할까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황제는 그의 말을 애달프게 생각하고 첩자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유균(劉鈞, 926~968, 북한의 睿宗)에게 말하여 너에게 한 길을 열어주어 살게 하겠다고 하시오."
그러므로 그의 세대에는 대군(大軍)을 가지고 북벌하지 아니하였다.
북한의 유계업·풍진가(馮進珂)가 단백곡에 주둔하고, 위대(衛隊)지휘사 진정산(陳廷山)을 파견하여 수백 명의 기병을 인솔하고 와서 정탐하며 순찰하였다. 마침 이계훈 등의 전군(前軍)이 도착하였는데, 진정산은 즉각 부하를 가지고 항복하였다. 유계업·풍진가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인 것을 알고 역시 달아나서 진양(晉陽)으로 갔는데, 북한의 주군이 화가 나서 그들의 병권을 빼앗았다. 이계훈 등은 드디어 성을 포위하였다.
잠깐 사이에 쌓아 놓은 풀이 성 안에서부터 바람에 날려 나와서 곧바로 수구(水口)를 막고 그치니 송나라 군사들의 노(弩)에서 발사하는 화살은 뚫을 수가 없었고, 북한 사람들은 이어서 일을 할 수가 있어서 수구는 드디어 막혔다.
곽무위는 다시 북한의 주군에게 나가서 항복할 것을 권고하였지만 북한의 주군은 듣지 않았다. 엄인(?人, 환관)인 위덕귀(衛德貴)는 곽무위가 배반한 현상이 분명하니 사면할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여 북한의 주군이 그를 죽여 조리를 돌리자 성 안은 조금 안정되었다.
북한 사람들이 조금 있다가 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성에서부터 몰래 나와서 공격용 전투도구를 곧 불 지르려 하자 송의 군사들은 그들을 쳐서 달아나게 하고 목을 벤 것이 1만여 급이었다. 밤중에 홀연히 군영 벽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전해졌다.
"북한의 주군이 항복하였다."
태원성이 오래되어도 떨어지지 않으니 동서반도지휘사인 이회충이 무리를 거느리고 이를 공격하였으나 싸워서 승리하지 못하고 나는 화살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
전전지휘사도우후인 조정한이 제반의 위사를 인솔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먼저 올라가서 급히 공격하여 죽을힘을 다하기를 원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훈련된 바여서 한 사람이 백 명을 감당하지 아니할 사람이 없으니, 그러므로 주액(?腋)으로 대비하면서 휴척(休戚)을 함께 하고 있다. 내가 차라리 태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여도 어찌 차마 너희들을 몰아서 칼끝을 무릅쓰게 할 것이며 반드시 죽을 땅을 밟게 하겠는가!"
무리들이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사류(射柳)란 일종의 활쏘기 기교를 연습하는 놀이인데, 청명절에 시행되는 풍속이다. 이 놀이는 조롱박 속에 비둘기를 넣어서 버드나무에 높이 매달아 놓고 활로 조롱박을 맞추어 조롱박 속에 있는 비둘기가 날게 하는 것으로 비둘기를 높이 날게 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그런데 거란족은 비가 오기를 바라는 기우(祈雨)를 위하여 사류활동을 한다. 이때에 먼저 장막을 치고 먼저 돌아가신 황제에게 전(奠)을 드리고 황제, 친왕, 재상이 차례로 사류를 하고 패한 사람이 승리한 사람에게 술을 올린다. 둘째 날에는 천막의 동남쪽에 버드나무를 꽂고 자제들이 사류활동을 하며 자제들이 3일간 사류활동을 하는데 비가 오면 상을 내린다.
이달 기사일(22일)에 회주(懷州, 黑龍江省 鶴崗市)에서 봄 사냥을 하였다. 요주(遼主)는 곰을 쏘아 맞추었는데 시중(侍中)인 소사온(蕭思溫, ? ~970)이 이륵희파(伊勒希巴, 夷?畢)인 아리사(牙?斯) 등과 술을 올리면서 축수하였다.
요주가 술에 취하자 행궁으로 돌아갔는데, 근시(近侍)인 소격(?格)·관인(?人)인 화격(華格)·포인(?人)인 석곤(錫袞, 辛古) 등이 시해하였는데 나이는 39세였고, 묘호를 목종(穆宗)으로 하였다.
경오일(23일)에 소사온과 남원추밀사 고훈(高勳)·비룡사(飛龍使)86 니리(尼?, 女里, 경종의 근신) 등이 세종의 둘째 아들 야율현(耶律賢, 948~982)을 받들고 갑기(甲騎) 1천 명을 인솔하고 말을 달려 행재소로 달려갔다.
야율현이 통곡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기를 권하자 드디어 영구(靈柩) 앞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백관들은 존호를 올려서 천찬(天贊)황제라 하고 크게 사면하고 기원을 고쳐서 보령(保寧)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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