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가 없는 이 엄청난 행사의 목적인 에드워드는 종종 유럽의 아저씨로 불렸는데, 유럽의 지배계층만 가지고 하는 얘기라면 이 별명은 문자 그대로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카이저뿐만 아니라 자신의처제이며 미망인인 러시아 황태비 마리에를 통해 짜르인 니콜라스 2세에게도 아저씨가 된다. 그의 질녀인 앨릭스는 짜리나이고, 딸 모드는 노르웨이의 왕비이며, 다른 질녀 에나는 스페인의 왕비이고, 셋째 질녀 마리에는 후에 루마니아의 왕비가 된다. 그의 처가인 덴마크 왕실은 덴마크의 왕위를 차지하는 것 외에도 러시아 짜르의 외가가 되며 그리스와노르웨이의 여러 왕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친척들 즉, 빅토리아여왕이 낳은 아홉 명의 아들과 딸들의 다양한 후손들은 유럽의 여러 궁정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 P53

유럽은 잭스트로(조각들을 쌓아 놓고 다른 조각들을 움직이지 않게 한 개씩 뽑아내는 놀이: 역주)처럼 섬세하게 포개진 칼 더미였는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 것을 건드리지 않고는 자기 칼을 뺄 수없었다. - P75

슐리펜은 프랑스군을 완벽하게 포위하기 위하여 자신의 우익이 최대한 멀리 서쪽으로 릴까지 진군하기를 원했다. "프랑스로 진군할 때, 최우측 병사의 소매가 해협을 스치도록 하라"고 그는 말했다. 더욱이 영국 - P84

의 참전을 고려하고 있던 그는 프랑스군과 더불어 영국의 해외원정군(BEF)을 갈퀴로 긁어 모으듯 우익이 휩쓸어 주기를 원했다. 그는 영국의지상군보다는 그들 해군에 의한 해상봉쇄라는 잠재적 위험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의 지상군에 대해 신속한 승리를 쟁취하고, 영국의 적대적인 경제적 압박이 실효를 거두기 전에 전쟁을 조기 마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은 우익에 모아져야 했다. - P85

1910년 1월 자신의 두 번째 방문 때 윌슨은 포쉬에게 건넨 질문을 통해 프랑스 측이 기대하고 있던 영불동맹의 문제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답을 들었다.
"귀측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영국군 규모는 얼마냐"고 윌슨이 물었다.
"단 한 명의 영국 병사만 있으면 되고, 우리는 그가 전사하도록 놔둘것"이라는 것이 포쉬의 전광석화 같은 대답이었다.
윌슨 역시 영국의 확약을 받고 싶었다. 독일과의 전쟁이 임박했으며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신했던 윌슨은 이 위급함을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 P119

주입하기 위해 애썼으며 그 자신도 이 생각에 완전히 몰입되어 버렸다. - P120

거대한 러시아군은 유럽에 대해 마력을 미치는 존재였다. 군사 기획의 체스판에서 러시아는 그 크기와 수에서 단연 최대의 기물이었다. 러일전쟁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실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증기 롤러"라는 생각은 프랑스와 영국에게 안도감과 격려를 주었으며, 등 뒤에 도사린 슬라브족에 대한 공포는 독일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비록 러시아 군대의 결함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러시아 군대가 아니라 러시아의 겨울이 나폴레옹을 모스크바에서 물러나게 하였고, 자국영토인 크리미아에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에게 패하였고, 러시아의 엄청난 수적 우위 때문에 결국 졌지만 1877년 플레브나 공방전에서 터키가선전했으며, 일본군이 만주에서 그들을 물리치긴 했지만, 무적의 러시아군이라는 신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뢰와 같은 코삭(Cossack) 병사들의 저돌적인 기병 돌격은 유럽인들의 마음에 너무도 생생하게 각인되어있었기 때문에 1914년 8월 신문 삽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코삭 병사들이 아직 러시아 국경에서 10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도 그 역 - P129

동적인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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