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4년 질지라는 수령이 몽골리아에서 자기 조상들의 땅으로부터 쫓겨나 현재 카자흐 공화국이 있는 발하쉬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 첫번째 분열이었다. 이렇게 해서 중국의 적으로 남게 될 몽골리아의 동흉노와 훈(앗틸라의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세계의 적이 될 발하쉬와아랄 초원의 서흉노가 갈라지게 된 것이다. 구에서 우리 외침의48년에는 동흉노 제국 자체가 분열되었는데, 오르콘 지역의 선우에게충성을 바치던 이들로부터 내몽골 내지는 남방에 있던 ‘여덟 개의 부락‘이떨어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두 개의 구별되는 집단이 형성되었는데, 외몽골 오르콘의 북흉노와 만리장성 북방쪽 내몽골의 남흉노가 그것이다. 방금본 것처럼 155년에 북흉노는 만주의 변경에 있는 동몽골의 흥안령 지역에서 기원한 몽골계 집단인 선비에게 격파되었고, 선비는 당시 만주의 경계에서부터 하미와 바르쿨 입구에까지 이르는 몽골리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 P108
이제 완전히 한화되어버린 탁발은 궁정 내의 정변, 황족 간의 분란,
그리고 내전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534년 이 나라는 하북·산서·산동·하남을 차지하고 업을 수도로 한 동위東魏(534-550)와, 섬서와 감숙을 차지하고 장안을 수도로 한 서위西(534-557)로 나뉘었다. 두 나라 모두 재상에게 황위가 찬탈되어,업에서 동위를 대체한 북제北(550-577)와 장안에서 서위를 대체한 북주北周 557-581)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 두 황실은 모두 한화되어버려서 더 이상 초원 역사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ht그들이 역사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초기 탁발 통치자에게 그렇게 특징적이었던 투르크적인 활력이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희석되어 중국인 대중 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이런 역사의 순환은 거란·여진·몽골·만주를 통해 수세기 동안 거듭해서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탁발인들이 약화되어가는 - 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