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갇힌 여인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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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특히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과 가졌던 관계며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행동 동기에 대한 완벽한 거짓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것, 또 우리를 사랑하고 또 우리를 하루 종일 포옹하고 있어 우리를 자신과 닮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존재에 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거짓말, 이런 거짓말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향한 전망을 열고, 또 마비된 감각을 일깨워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를 관조하도록 하는, 이 세상에서 드문 것 중 하나이다. - P42


브리쇼는 내게 베르뒤랭 살롱에서 주최하는 음악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전해준다. 샤를뤼스는 브리쇼가 젊은 남자와 산책한다는 이유로 소르본대학에 협박성 고발장을 날린다(이런 면에서 보면 샤를뤼스는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다). 샤를뤼스는 실수로 레아가 보낸 모렐의 편지를 열어봤다가 큰 충격을 받는데 이는 모렐이 남성에게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매력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에 두려움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 것이 아닐까. 


베르뒤랭 부인은 자신의 살롱이 공연 프로그램과 공연단을 일류로 꾸리며 관객들을 끌어모으려 노력한다.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살롱이 일류였기에 자신도 그에 견주어 뒤지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를뤼스 남작이 살롱 모임에 귀부인들에 해당하는 참석자들을 배제시키자 베르뒤랭 부인은 크게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베르뒤랭 부인은 샤를뤼스와 모렐의 관계를 이용하여 브리쇼로 하여금 샤를뤼스를 철저히 매장시킬 것을 주문한다. 


내 연로한 대화 상대자에게만 존재하여 내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빛깔을 가진,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 된 그 부분은, 외부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우리의 영혼 속으로 피신하여, 영혼에 더 많은 가치를 주고, 또 영혼의 일상적인 실체에 동화되어, 영혼 속에서 추억의 반투명한 설화 석고로 변하면서 기억 속에 떠올리는 파괴된 집들이며, 옛사람들이며, 야식용 과일을 담은 굽다리 접시며 오직 우리에게만 보이는그 빛깔을 우리는 결코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없으며, 그래서그들이 어떤 관념도 가질 수 없는 이런 지나간 물건들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그들이 보아 왔던 것과 전혀 닮지 않으며, 또 우리 자신도 어떤 감동 없이는 바라볼 수 없다고, 마음속에 꺼진 등불의 그림자나 더 이상 꽃피지 않을 소사나무의 향기가얼마 동안 존속하는 것도 바로 우리 사유의 존재에 달렸다고생각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 P161


모렐은 베르뒤랭 부인의 계획을 눈치채고 샤를뤼스에게 절교 선언을 한다(그는 철저한 권력 지향주의자다). 그러나 베르뒤랭 부인은 겉으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말하면서도 샤를뤼스가 그에게 세심함이나 배려는 부족했다며 은근한 비난조를 덧붙인다. 샤를뤼스는 이후 베르뒤랭 네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 세계에 더 이상 발을 못 붙이게 되었고 병까지 깊어진다.


평화에의 의지를 꽃피우기 위해 사람들이 권하는 가장 잘못된 격언인 전쟁 준비는, 이와는 반대로 각각의 적들에게 상대방이 결별을 바란다는 믿음을 야기하며, 이 믿음이 결별을 가져오고, 그래서 결별이 실제로 일어날 때면, 둘 중 하나에게 결별을 원한 것은 바로 상대방이라는 또 다른 믿음을 야기한다. 비록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일단 협박이 성공하면 그것은 또 다른 협박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 허풍이 어디까지 성공할지, 그 정확한 지점을 결정하기란 어렵다. 허풍은 진지함과 혼동되거나 교차할 수 있는데, 어제는 단순히 장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내일은 현실이 되는 수가 있다. 끝으로 적들 중에 어느 한쪽이 실제로 전쟁을 결심하고, 이를테면 알베르틴의 경우에는 머잖아 더이상 이런 삶을 계속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는 반대로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생각이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으며 그저 내 상상력이 송두리째 지어낸 것일수도 있다. - P296~297


나는 계속하여 칩거 생활중이었으나 알베르틴과 ‘헤어질 결심’만 반복한 채 결별을 미루고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녀를 놓지 못한다. 자유로웠던 발베크의 소녀가 따분하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수인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자 그녀를 갇힌 여자라고 생각한다. 정작 갇혀 있는 것은 나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알베르틴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발베크에서처럼 끊임없이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며, 또 친구들과 함께 자러 간 수많은 작은 해변들 때문에 찾을 수 없었고, 게다가 그녀의 거짓말로 인해 더욱 포착하기 어려웠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집에 온순하게 홀로 갇힌 그녀는, 발베크에서 내가 그녀를 발견했을때 해변에서 보았던 그런 도망치는 신중하고 교활한 존재가아니었으며, 그 존재가 능숙하게 감출 줄 알았던 수많은 밀회로, 그토록 나를 고통스럽게 하여 사랑할 수밖에 없게 했던 밀회로 길게 이어지면서, 다른 이들을 대할 때면 그토록 냉정한태도와 진부한 답변 아래 전날과 내일의 밀회가 느껴지고, 또내게는 멸시와 술수로 에워싸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바람이 불어도 옷이 부풀지 않고, 특히 내가 날개를 잘라 버린 탓에 더 이상 승리의 여인이기를 멈춘, 오히려내가 떨쳐 버리기만을 바라는 귀찮은 노예였기 때문이다. - P311


‘예술의 실재’와 ‘실재’는 서로 다르다. 예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관객이 보는 대로 예술성이 전달된다. 나는 예술도 사랑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주체인 내가 보는 상대, 상대가 보는 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자연스레 서로 같은 비율일 수도 없을 뿐더러 각자의 모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옆사람을 만났을 때 먼저 좋아한 것은 그였다. 이후 어느샌가 나도 스며들어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의 시간은 다르다. 그리고 공간도 마찬가지, 내가 특별하게 느끼는 장소와 그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장소가 다른 적이 많았다. 우리의 사랑은 각자가 저장한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알베르틴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장소들을(그녀와 직접 관계없는 장소라 할지라도, 그녀가 맛볼지도 모르는 쾌락의 어렴풋한 장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몸을 스치는 장소),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과 장소에 관심이 없던 내 상상력이나 추억의 문턱으로부터 ㅡ 마치 개표구에서 수행원이나 한 무리의 친구들을 자신보다 먼저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는 누군가처럼 - 내 마음속으로 이제 그런 사람들이나 장소에 관한 나의 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고통이 되었다. 사랑이란 우리의 마음에서 지각되는 공간과 시간이다. - P337


나는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고 열망했다. 베네치아를 가고 싶었는데 그녀가 방해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지만 근본적으로 이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사랑의 부재이다. 출발한다고 하면 그제서야 절박해지는 아이러니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내가 떠나려 했지만 결국 그녀가 떠났다. 


내가 어두운 방에 있다 해도, 지금 내 양옆으로 수레국화와 개양귀비와 선홍색 클로버를 피어나게 하여 전원의 냄새처럼 나를 취하게 했으며, 그러나 산사나무에 부착되어 끈적거리는 짙은 요소에 붙들린 채 울타리 앞에서 뭔가 안정적으로 감도는 냄새처럼 한정되고 고정된 냄새가 아니라, 그 앞에서 길들이 사라지고, 지형이 달라지며, 성들이 달려가고, 하늘빛이 희미해지고, 우리가 가진 힘을 열 배로 커지게 하는 힘과 도약의 상징과도 같은, 내가 발베크에서 느꼈던, 그 크리스털과 강철로 만든 우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되살아나게 하는 냄새였다. 그 욕망은 낯선 고장에서 미지의 여인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파리지앵, 일어나요, 일어나요, 그늘 아래로 아름다운 소녀와 함께 점심 먹으러 가요, 강으로 보트를 타러 가요. 일어나요, 일어나요." 그리고 이 모든 몽상은 너무도 즐거웠으므로, 내가 부르지 않으면 프랑수아건 알베르틴이건, 어떤 '소심한 인간'도 나를 방해하러 '궁중 깊은 곳'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준엄한 율법'을 정해 놓은 일을 스스로 칭찬했다. - P37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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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9-30 14: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르뒤랭 부인을 보면서 그 세계가 무척 매정하다는 생각을 했고
모렐은 정말 나쁜놈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화자가 알베르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어요.
사랑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을까요~~

거리의화가 2023-10-01 09:30   좋아요 2 | URL
사교계는 지금의 정치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이 악귀처럼 느껴져서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화자가 알베르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어떠한 정형화된 이미지나 사물을 보는 느낌이어서 결국 알베르틴이 아니더라도 그 이미지에 맞는 사람에게는 동요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희선 2023-10-03 0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고 마음이 바뀌다니... 잘 모를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겠지만, 조금 가까워지면 달라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 책 앞으로 세권 남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03 07:58   좋아요 0 | URL
한 권 마무리해서 이제 2권 남았는데 진짜 이 책은 한 번에 쭉 읽기가 너무 힘든 책입니다ㅠㅠ 이달에 다 읽어버리고 싶긴 한데 어찌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가 갑자기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