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서 ]
그 시기에는 경서를 읽어 과거 시험을 보는 것이 바른 길이었다. 말하자면 서양식 공부란 사회에서 갈 길 없는 따위의 사람들이나 어쩔 수 없이 서양도깨비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로 여겨져, 곱절의 비웃음과 배척을 당했기 때문이다...
-> 난징으로 가 서양 학문을 배운 이유

강의가 일단락된 뒤에도 시간이 남으면 교수님은 풍경이나 시사에 관한 그림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면서 남은 시간을 때우곤 했다. 당시는 마침 러일전쟁 시기라 자연히 전쟁에 관한 화면이 비교적 많았다. 나는 이런 교실에서 언제나 내 동급생들의 박수와 갈채에 기꺼이 장단을 맞추어야만 했다. 한번은 화면에서 문득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은 묶여서 가운데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좌우에 서 있는데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으나 무감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설에 의하면, 묶여 있는 사람은 러시아를 위해 군사 기밀을 정탐하였기 때문에 바로 일본군이 참수하여 본보기를 보이려고 하는 중이었다. 둘러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본보기의 성대한 행사를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2 학년이 종강하기 전에 나는 도쿄로 나와 버렸다. 왜냐하면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의학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무릇 우매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멀쩡하고 건장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이 될 수밖에 없으며, 병으로 죽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하다고 여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첫 번째 중요한 일은 그들의 정신을 고치는 데 있다. 당시 나는 정신을 고치는 데 있어 최선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리하여 문예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다....
-> 일본에 유학가서 의학을 그만두고 문예 운동을 하게 된 이유

나 자신으로서는 지금 절박한 처지에 몰려 있다고는 하나 결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어쩌면 당시 나 자신의 적막한 비애를 아직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몇 마디 함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또 얼마간은 그런 적막함 속에서 내닫는 용감한 전사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데 거리낌이 없게 해주고자 함일 것이다. 나의 함성이 용맹한 것인지, 혹은 슬픈 것인지, 증오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 어떻든 그런 것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러나 고함인 이상 당연히 지휘관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 처음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 품은 생각. 이로써 최초의 작품 광인일기가 탄생한다.


[ 광인일기 ]
모든 일이란 연구해 보아야만 비로소 명확히 알 수 있다. 옛날에는 늘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니다. 역사책을 펼쳐보니 역사책에는 연대가 없고 비뚤비뚤 페이지마다 온통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는 몇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아 한 밤중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비로소 글자들 사이에서 글자를 찾아냈으니, 책 전체가 온통 ‘식인(食人)‘이라는 두 글자 뿐이었다.
책에 쓰여진 그 수많은 글자들, 소작인이 한 그 많은 이야기들, 그 모두 히죽히죽 웃으며 괴상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본다.
나도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 피해망상증인 화자.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 잡히고 급기야 ‘식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옛날부터 그래 왔다고 해서 옳은 거요?˝
->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습관들 중 분명 악습이 있음에도 여전히 계속됨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라 보임.

자신이 사람을 잡아먹고 싶어 하면서 또 남에게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서, 모두가 지극히 의심이 깊은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살핀다...
그런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안심하고 일을 하고, 길을 걸어다니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을 테니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이는 단지 문지방이요, 문턱일 뿐이다. 그들은 정녕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스승과 원수 관계이며, 또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까지도 모두가 한 패거리가 되어 서로 이끌어주거나 서로 견제하면서, 죽어도 이 한 걸음을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 먹고 먹히는 관계. 자본주의 사회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 국제 관계를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 내일 ]
루진의 ‘함형 주점‘은 한밤 중이 되어도 잠들지 않는 곳 중의 한 집이다. 다른 한 집은 산쓰 아주머니네 집이다. 과부인 산쓰 아주머니에게 하나 뿐인 아들 빠오가 시름시름 앓더니 사망했다. 마지막엔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관을 장만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산쓰는 꿈에서라도 아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꿈이 현실이길 바라는 마음이던가.

많은 나쁜 일들은 물론 요행이 있음으로 해서 좋아지기도 하나, 많은 좋은 일들은 도리어 그것 때문에 그르치기도 한다.


[ 작은 사건 ]
인력거를 불러 가던 길에 한 노파와 부딪혔는데 인력거꾼이 가까운 파출소에 그 노파를 그곳에 데려다줄 때 인력거 위에 있던 이는 감동을 받았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뒷모습이 일순간 몹시 커지더니, 한걸음씩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그것은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우러러보아야만 보일 만큼 커졌다. 또한 그는 내게 점차로 일종의 위압에 가까운 것으로 변하여, 심지어는 내 가죽털옷 속에 숨겨져 있는 ‘작은 것‘을 눌러 짜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의 기력은 이때 거의 응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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