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 국가를 건설했던 유목 권력의 소멸은 고비 남부의 괴뢰정권아사나사마의 약화와 646년 설연타의 붕괴로 현실화되었다. 이것은 고비남부만이 아니라 몽골 초원에 있던 모든 유목 부락에까지 당조의 영향력이 미친 전무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다. 더욱이 이는 향후 초원에 혼란을 야기해 새로운 유목 국가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태종에게는 이를 빨리 안정시켜야만 하는 심각한 상황이기도 했다. - P379

이것은 모두 유목 부락이 차지하고 있던 고유 범위에 도독부와 자사를 설치함으로써 유목 부락의 기존 거주지에 주현을 두어 통제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유목 부락 자체의 통제 구조도 당조의 체제를 받아들여 그 예하에 당의 관제에 따라 장사長史와 사마司馬 등의 하급 관직을 갖추게 했다. 또한 이들의 위상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도독과 자사에게 현금어부玄金魚符를 주고 황금으로 문자를 새겼으며, 천자가 먼 땅의 다른 족속들을 불러 은총을 베풀기위해 녹황색 비단 무늬 포錦袍, 보도寶刀, 진기한 그릇 등을 만들어 내렸다. - P382

평온했던 양자의 이해 합치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당조가 대외 확장 좋결로 군사적 동원을 끝내면서 유목 부락들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고유한 질서를 파괴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미부주를 내지와 마찬가지로 대우하려고 하면서 그동안 누리던 혜택이 없어지자 유목 부락들의 반발이 더욱 강하게 일어났다. 이는이제까지 기존의 부락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중국의 도움과 지지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왔던 추장들의 이익을 크게 침해해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처럼 유목 부락의 추장들은 자신의 입장이 관철될 경우에는 ‘당조의 백성(唐民)‘이 되기를 원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나름의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 P398

이때 고비 남부에 있던 선우도호부는 부흥 운동의 여파로 인해 돌궐이북방으로 이주함에 따라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몽골 초원의 안북도호부 역시 위구르가 패망해 하서로 내려와서 당조에 들어감에따라 완전히 유명무실해졌다. 이것은 이제까지 당조가 유목 부락들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 모두가 완전히 해체되었음을 의미했다. 즉 안북도호부와 선우도호부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이른바 ‘기미지배 체제‘가 와해되면서 당조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무너지고 다각적인 질서가 새롭게형성되었던 것이다.
1반면에 몽골 초원으로 돌아와 국가를 부흥하는 데 성공한 아사나는 그동안 자신을 옥죄면서 약화시켰던 당조의 기미지배에서 벗어나 ‘돌궐‘, 즉 ‘투르크 일(나라)‘을 재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돌궐은 단지 몽골 초원으로되돌아와 겨우 당조의 위협에서 벗어난 상태에 불과했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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