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장

북한은 단순히 소련의 위성국이아니었다. 1945~1946년 널리 확산된 "인민위원회"를 기반으로 성립된 다소비중앙집권적인 통일전선정부에서 시작해 소련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행사한 1947~1948년을 거쳐 1949년(즉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기 전이며동유럽의 스탈린주의화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브워지미에서 브루스가 정의한 시기이에는 중국과 긴밀히 결속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은 두 사회주의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40년대 후반 북한 체제는 한국.소련·중국의 경험이 융합된 것으로, 한국의 정치문화가 모델로서 깊은 영향을 줬다. 또한 북한은 특히 당 구조와 지도 체제에서 소련·중국과는 크게 달랐다. - P432

1947~1948년 소련과 북한의 전략적 이익은 분명히 일치했다. 김일성이보기에 소련에 의존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필요했다. 이 시기의 시작부터 중국 국민정부군은 만주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됐다면 김일성은 앞문에는 호랑이가, 뒷문에는 늑대가 있는 상황에 빠졌을 것이다. 의심할 필요 없이 장제스와 이승만은 거슬리는 뾰루지를 짜듯 북한을 압박하려고 했을 것이다. 김일성은 몇 년 또는 수십 년 더 산속에서 유격대 투쟁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1948~1949년 중공군과 북한군이 국민정부군을 중국 동북 지역에서 몰아내면서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 짜낼뾰루지처럼 보인 것은 남한이었다. 마오쩌둥의 승리는 북한의 상황을 극적으로 바꿨고, 소련에 대한 요구 수준 또한 높였다. 이제 동북아시아는 현지의 거대한 공산군에게 지배됐다. 스탈린은 그것을 대단히 복잡한 심정으로바라봤을 것인데, 현지 정권을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것 외에는 어떤 시도도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 P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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