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ㅡ 혹은 우릴 먼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나서 그 후엔 결코 손에서 놓아주지 않는―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미리 정해진 오후에 일어날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달 동안 필요한 신선한 공기 전부를 마시려고 산책하기를 열망하면서도,
입고 나갈 외투나 우리가 부를 마부를 고르면서는 망설이고, - P11

그런 후 합승 마차에 오르면 하루가 당신 앞에 온전히 놓인 듯보이지만, 여자 친구를 맞이하려고 때맞춰 집에 돌아가기를바라기에 하루가 짧다고 느끼고 다음 날에도 날씨가 좋기를바라곤 한다. 그리하여 다른 쪽에서 당신을 향해 걸어오던 죽음이,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 바로 그날 몇 분 후 마차가 거의샹젤리제에 도착할 바로 그 순간을 선택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어쩌면 보통 때는 죽음 특유의 기이함 때문에그 공포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런 종류의 죽음에서 - 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과의 접촉에서 - 그것이 우리가 아는 일상의 친숙한 모습을 띤다는 사실에 오히려 어떤 안도감 같은 걸느낄지도 모른다. 죽음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찾아오기도 하고, 건강한 사람의 외출길에 찾아오기도 한다. - P12

우리를 배신하는 중이라고 의심하며 압박하는 것은 우리 삶 그 자체이다. 이 삶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걸 느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삶을 믿고, 삶이 마침내 우리를 버리는 날까지 어쨌든 의혹 속에서 살아간다. - P15

우리가 사는 거리에 도착하기전 마차가 쫓아가야 하는 그 끝없는 벽을 불태우던 석양빛은 말과 마차의그림자를 벽에 투사하면서 마치 폼페이의 구운 점토에 그려진영구차마냥 붉은바탕에 검은빛으로 뚜렷이 드러나게 했다. - P17

대개의 경우, 통증은 우리 몸의 기관을 위협하는 어떤 새로운 상태를 의식하고, 그 기관이 이런 상태에 맞는 감각을 필요로 할 때 발생한다. 우리는 이 통증의원인을 어떤 불편한 증상에 따라 식별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그런 증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연기로 가득한 방 안에 둔감한 남자 둘이 들어와 일에 열중한다.
그런데 이들보다 예민한 세 번째 남자는 그 방에서 끊임없이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의 콧구멍은 그가 맡아서는 안 되는것처럼 느껴지는 냄새를 계속해서 근심스럽게 맡을 것이며, 매번 그것이 정확히 무슨 냄새인지를 알고 그 불쾌한 후각에익숙해지려고 애쓸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아마도 뭔가에깊이 몰두하면 치통을 호소하지 않게 되는지도 모른다. - P24

독창적인 화가나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안과 의사처럼 해야 한다. 그들이 그린 그림과 그들이 쓴 산문으로 진행 - P31

되는 치료가 언제나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치료가 끝나면 의사는 "자, 이제 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세상은(단 한 번만창조되는 게 아니라 독창적인 예술가의 수만큼 창조되는 세상은) 우리 눈에 과거 세상과는 아주 다르게, 그렇지만 전적으로 투명하게 보인다. 여인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들이므로 예전과는 다르다. 우리가 예전에 여인으로 보기를거부했던 그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들이다. 마차 또한 르누아르가 그린 것이며, 물이나 하늘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첫날보았을 때는 결코 숲으로 보이지 않던, 숲 고유의 빛깔이 없이수많은 빛깔로 아롱지는 장식 융단 같던숲에서 우리는 산책하기를 열망한다. 바로 이것이 지금 막 창조된 새롭고 덧없는우주다. 이 우주는 독창성을 지닌 새로운 화가나 작가가 일으킬 다음번 지질학적 대변동 때까지 그대로 존속할 것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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