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도대체 어떠한가? 자연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이는우리 세계와, 우리 세계의 데카르트적인 어리석은 시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이 시도가 생태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는 이제겨우 측정되기 시작하였다)가 아니라 주위의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만들기 위해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술 전체를 놓고 볼 때 더 이상 원시사회가 기술적으로 낙후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시사회 역시 공업화된 기술 사회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자면 모든 인간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외부로부터의 구속이나 폭력을 제외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 공간에 형성된 사회는 전혀 없었다. - P237
원시사회의 인간에게 있어서 생산 활동은 정확히 필요의 충족에 의해 측정되며 제한된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란 기본적으로 에너지의 필요이며, 생산은 소비된 에너지의 양을 원래 수준으로 채우는 것으로한정된다. 다른 말로 하면ㅡ축제 때의 사회적 소비를 위한 재화의 생산에 있어서 -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의 양을 확립하고 결정하는 것은자연으로서의 생명이다. 즉 일단 에너지의 필요를 완전히 충족시키고나면 원시사회가 그 이상의 것을 생산하도록, 달리 말하면 어떤 목적도 없는 노동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거나 소외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그 시간을 게으름을 피우거나 놀이나 전쟁또는 축제를 하는 데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P244
대다수 사회의 수렵에서 농업으로의 이행과 몇몇 사회의 농업에서수렵으로의 반대되는 이행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것은 이러한 변동이 사회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지 않고도 이루어진다는 것, 사회의 물질적 생활 조건이 완전히 변화하는 경우에도 사회자체는 변화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신석기 혁명이 당시의 인간집단의 물질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생활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계적으로 사회질서의 전복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원시사회들에 관한 한, 맑스주의자들이 경제적 하부구조로 명명한 수준에서의 변화는 정치적 상부구조에 "반영되어" 그것을 - P249
규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후자는 물질적 기초로부터 독립되어 있기때문이다. - P250
당시의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연대기 작가들은 부 - P264
족 연합의 대추장에게 "지방의 왕"이나 "소왕"이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였다. 투피-과라니 사회의 이 심오한 변화 과정은 유럽인의 도래로돌연 중단되었다. 그것은 만일 신세계의 발견이 예컨대 1세기 늦어졌다면 브라질 해안 지역의 인디언 부족에서 국가 형성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어떤 것으로도 반증할 수 없는 가설적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쉬우면서도 위험하다. 그렇지만 이 투피-과라니족의 사례에 한해서 우리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즉 투피 - 과라니 사회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던 국가의 출현을 막은 것은 서구인의 도래가 아니라 원시사회로서의 사회 자체의 자각이었다. - P265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적어도 그것과 똑같은 정도의진리로서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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