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 말고 주재소 순사라도 됐이믄 사람을 잡아도 몇은 잡았일 기다. 세상에 사람 영악한 것겉이 무섭은 기이 어디 있노. 그 악종들은 건디리지 않는 게 상수라." "엽이네 처지가 기막히제. 까막소에서 나온 오서방이사 진작 식솔 데리고 떠났이니 빌어묵든 얻어묵든 다리 뻗고 잘 기다마는." "떠나고 싶어 떠났나아? 우가 놈의 식구들, 밤낮없이 직이겠다고 굿을 치는데 견딜 재간 있던가? 그 억울한 사정, 다 말못하지. 적반하장이라 카더마는 우가 놈이 오서방 직이겠다, 낫을 들고 나왔는데 그라믄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나? 안 죽을라고 실갱이를 하다 보이, 그리 된 긴데 전생에 무신 원수가 졌일꼬." - P222
"과연 이놈의 돌대가리, 형의 호주머니 축내가면서 공부를계속할 필요가 있겠는가, 해서 술 마셨고, 처자를 내동댕이친채 평생을 자신의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내 부친 말이오, 얼굴도 모르는 그 양반의 그 배신과 기만을 씹으며 술을 마셨고, 철저하게 속았소. 세상 떠난 억쇠할아범한테 속았고 어머님한테속았어요. 밤이면밤마다 삯바느질로 지새며 한숨 쉬던 어머님의 세월, 상전이 뭐길래 뼈를 깎고 살을 저미듯, 백발이 되고허리가 꼬부러질 때까지 봉사한 억쇠할아범, 유월이할멈, 도대체 그분들 희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거짓의 지릿대 때문이었소. 할아버님처럼 아버님도 나라를 위해 큰일 하신다. 하하핫핫 하하핫………… 그 큰일이 알고 보니 방탕이었습니다." - P232
민우는 억지를 썼지만 윤국은 할 말이 없었다. "사나이의 풍류로써 기생과의 로맨스,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딸애도 낳을 수 있는 일이지요." "듣기 거북하군." "내 말이 뭐 틀렸습니까? 다만, 그렇지요. 다만 내가 분노를느끼는 것은 늑대 울부짖는 벌판에 처자식을 내동댕이치고 떠난 사람, 형은 모를 겁니다. 가난이 어떤 것인지를, 겉은 멀쩡하면서 속으론 찬 바람 굶주림에 웅크려야 했던 우리들 세월을 모를 거요. 평생을 외가의 도움, 넉넉지 못한 숙부의 도움으로 연명했던 우리들 심적 고통.……… 무책임하게 비정하게 내버리고 간 부친의 목적이 무엇이며 가치관은 무엇이냐, 새삼스럽게 그걸 따지자는 건 아니오.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어떤면에선 모질고 강한 거지요. 하면은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또 뭡니까? 기생과 동서했고 기지배까지낳았으면" - P233
"양반 꼴 좋다. 세상에 며느리보고 이년 저년 욕하는 시애비가 어디 있노. 우리 겉은 상사람도 그런 망측한 짓은 안 하거마는 늙어서 덕 본다. 젊었이믄 동네 가운데 두기나 할 기든가?" 동네 사람들 말이었다. 언젠가 병수는 혼잣말같이 말한 적이있었다. "내가 불구자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며 저런 부친의 아들로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운명을 어찌 거역하겠느냐." 비애에 젖은 눈으로 병수는 휘를 바라보았다. 휘는 그때 눈물을 흘렸다. - P245
"사람 아닙니다. 밥이나 믹이달라꼬 기어들어와도 그 꼬라지못 볼 긴데, 그 곱새도령 몸은 병신이지마는 마음은 관옥이오. 이 세상 사람 아닌갑소. 컬 때도 보아서 알지마는 그 눈이 실프고 우찌나 맑고 빛이 나던지. 우째서 그리 착한 사람이 그렇기도 무도한 부모한테서 태어났을까요." - P248
어디 병수의 한이 그것뿐이겠는가. 불구의 몸으로 서희를 엿보았던 마음, 서희와 자신을 결합시키려 했던 부모의 간교에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던 그 세월, 서희는 그에게 빛이었고우주의 신비였다. 관음상이요 숭배의 대상이며 그것은 인간적이 아닌 천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길상을 만날 수는 없었다. 간절하게 만나고 싶은 길상이지만 서희의 존재는 그것을상쇄했다. - P266
"저는 아마도 부친을 버렸을 겁니다. 미움을 버리면서 부친을 버린 셈이지요. 그, 그렇소. 부친에 대한 연민은 혈육에 대한 그런 아픔과는 다르오. 한 생명에 대한 것, 그, 그것 이외 아무것도 아닐 거요, 아니 그보다 나는 불효라는 말을 두려워했소, 불효라는 말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소." 오종종했던 얼굴이 풀어지면서 병수는 솔직하고 담담하게심경을 털어놨다. 지감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올곧잖게 해도사를 노려보면서, "몹쓸 사람이구먼." - P288
‘혹 떼러 왔다가 혹을 붙이고 가는 꼴이군. 겁을 좀 주어서, 집안이 조용하게끔 하기는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가고나면 송장 썩은 물 대신 날 잡아오라고 성화겠지. 그거야 뭐 몸에 해롭잖은 풀이나 풀뿌리면 당분간은 괜찮을 게고.‘ 해도사는 휘한테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똥벼락을 맞은 조병수가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 가엾고 측은하며 사람이 어찌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떠날 길을 왜 생각지 않는가 하며 통곡을 했다는 얘기, 해도사는 병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심정이 바로 지금 그와 같았다. 측은하고 가엾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정말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구제받지 못하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하늘 아래 홀로 서 있는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삭을 대로 삭아버린 육체를 안고 버둥거리는 한 생명에 대한 슬픔이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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