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들리지 않는 함성은 차츰차츰 도시를 휩쓸어가고 있었다. 상적이던 가정부(假政府), 상해에 있다는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실감하면서 무기력해진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희망의 빛을 보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조국. 그 조국이 내게로올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남녀노소 빈부와 계급의 차이 없이누구나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보다 더 가증스러운 배신자, 반역자, 한겨레의 뿌리에서 나온 친일파 앞잡이들에 대한 응징도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만일에 어느 누가 거리에 군자금 모금함을 내놓았다면 이 순간만은 사람들 마음이 가락지 비녀 다 뽑아 넣었을 것이며, 호주머니를 털어 먼지까지 털어 넣었을 것이며, 지게꾼 노점상 죽 팔던 노파까지 하루벌이를 다 털어 넣었을 것이다. 윤국이도 걸핏하면 남강 모래밭으로 달려나가 데굴데굴 굴렀다. 몸이 가려운 강아지처럼 굴렀다. 구르면서, ‘아버지다! 아버지가 다 꾸미신 일이다!‘ - P34
"나는 내 자식 내 손자 대꺼지 살아주기를 바래는 맴이니까이렇기 되믄 성하고 남이 되든지 해야겠소." "좀 더 알기 쉽기 말해봐라." "그라믄 내가 묻겄소. 성은 왜놈이 천년만년 우리 백성을 누르고 살 기라 믿소?" " "우리 백성들이 천년만년 왜놈의 종으로 살기라 성은 그렇기 믿고 있소?" "나중 일을 누가 알꼬." "모리지요. 나도 모리요. 하지마는 한 가지 틀림이 없는 일은만일에 나라가 독립한다믄 성이 역적이 된다. 그것만은 틀림이없을 기고, 삼족을 멸한다믄 조카 두 놈에 우리 새끼들은 우찌될 기요." "야가 무슨 소리를 하노.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이 개명천지에 삼족을 멸할 기라꼬? 자다가 꿈겉은 소리 하네. 하하핫핫핫………… 하하하핫……………" - P61
"저는 울부짖었습니다. 우리의 진실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저의 행동은 마땅히 돌로 쳐 죽여야 할 배신인 것을 저 자신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느 것에도 승복 안 할 결심입니다. 저는 새롭게 시작할거예요. 그렇습니다. 저는 속죄할 그 아무것도 없고 인간을 몰아넣는 그 비정한 것과 싸울 거예요." - P74
"여기 와 있는 몇몇 동창들은 그렇지 않아. 판검사, 고등관, 그걸 잡은 듯 안하무인이다. 개새끼들! 왜놈한텐 발발 기면서 동족에게는 거만스럽게, 정말이지 테러라도 하고 싶은 심정 알겠나? 자넨 모를거다." "더러 그런 사람도 있겠지. 자네가 그런 처지라면 어쩌겠나?" 수봉은 말문이 막힌 듯 환국을 쳐다보기만 한다. 그러다가환국이 묻는 말엔 대답을 않고, "공산주의 한다 하고 사회주의 한다 하고 껌적거리는 놈들, 날 만나면 피해 간다. 손 벌릴까 싶어. 그리고 내 행색이 초라하니까 그러는 거지. 참말로 사람 웃기는 거는 가시나들 끼고댕기면서 천석이다 만석이다 하는 놈들 떨어진 내복 안 입고카페 가서 고급 술 마시면서 공산주의 한다는 거지. 허 참." - P111
"앞으로 달라질 거라는 예상이지. 만보산사건으로 전쟁이 된다면………… 일본의 야심이 도중하차는 아니할 게야. 그렇게 되면여러 가지 양상이 나타나겠지. 안중에도 없는 조선의 예술인에게도 메가폰을 들릴 수도 있을 게고, 「청조」 같은 것 폐간시켜버리면 그건 다행이지만 인원 동원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고일본 찬송의 글 나부랭이 실어라 할 수 있고 악용당할 소지는있지. 그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조선일보」의 경우, 아주 교묘하게 악용당하지 않았나." - P160
선우일은 쩔쩔매며 얘기한다. "경거망동, 그게 민족주의가 가진 취약점이다. 민족주의만내세우면 어떤 범죄도 합리화하는, 나는 오늘날 식민지정책을강행하는 나라에 대해 민족주의보다 국가주의, 그러니까 그건제국주의지만 그들 스스로는 모두 민족주의자지. 생각해보게. 만보산에서 농민들의 충돌이 있었다 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인들을 습격하고 살상하고, 입맛 쓴 얘기야."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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