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찬 다락의 어둑신함과그 안에 서린 매캐하고 몽롱한 냄새, 모든 오래된 것의 안도감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어둠과 먼지, 오래된 시간, 이제는 쓰일일 없이 버려지고 잊힌 물건들 사이에서, 그 슬픔과 아늑함 속에서 우리는 둥지 속의 알처럼 안전했다. - P27
너도 커서 처녀가 되겠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서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야. 남자와 여자는 서로 원하는 게 달라. 그게모순이고 비극이지. 여자는 사랑을 원하지만 남자들은 육체만을 원해. 여자들이 아무리 옷을 잘 차려 입어도 남자들은 옷 속의 발가벗은 몸만을 꿰뚫어본단다. 네가 크면 다 저절로 알게될 거야. 누군가 배워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 나는 혼자있을 때면 그 여자의 말을 떠올리며 바지를 무릎까지 내려보거나 윗도리를 목까지 올려보기도 했다. 남자들 앞을 지나갈 때면그들의 눈빛으로 옷이 한 겹씩 활활 벗겨지는 듯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 P56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달아나는 그 여자의 뒤를 아버지가쫓아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거리가 좁혀지자 그 여자는 빨간구두를 던진다. 아버지가 있는 곳이 불바다가 된다. 불에 갇힌아버지는 온몸에 붙은 불을 간신히 끄며 빠져나와 다시 여자를쫓아간다. 여자의 긴 황금빛 머리털을 움켜잡으려는 순간 여자는 재빨리 파란색 구두를 던지고 시퍼런 강물이 아버지의 앞을막는다- - P64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감자 눈을 파내면서 그 여자가 내게 해준 말이었다. - P77
아저씨도 아줌마를 때릴까. 남자들은 돈을 벌지 못해 가난해지면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던진다. - P127
토토는 태어날 때처럼 한순간의 섬광으로 사라지고 마왕 아고라와 악마군단 철인간들은 그들의 심장과 허파와 뇌를 이루고 있던 나사못, 톱니바퀴들로 낱낱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토토가 죽는 순간, 거대한 마왕의 성은 무너진다. 토토의 눈물은 맑은 시냇물로 흐르고, 죽었던 나무와 풀 들은 푸르게 살아나 눈부신 햇빛과 바람에 이파리들을 흔들며 노래 부른다. 언젠가 돌아오리, 우리의 토토, 우주의 천사 정의의 사도여. 새장 속의 새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듯 조그맣게 울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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