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自將擊韓王信 居晉陽 聞冒頓居代谷 欲擊之 使人覘匈奴 冒頓匿其壯士肥牛馬 但見老弱及羸畜 使者十輩來 皆言匈奴可擊 上復使劉敬往 敬還曰 兩國相擊 此宜夸矜見所長 今臣往 徒見羸瘠老弱 此必欲見短 伏奇兵以爭利 愚以爲匈奴不可擊 上怒罵敬曰 齊虜以口舌得官 今乃妄言沮吾軍 械繫敬廣武 帝先至平城 兵未盡到 冒頓 縱精兵四十萬騎 圍帝於白登七日 帝用陳平秘計 厚遺閼氏 乃解圍 上至廣武 赦劉敬 斬前使十輩 封敬爲關內侯 號爲建信侯〈出高紀及劉敬匈奴等傳〉

○ 帝南過曲逆 曰 壯哉縣 吾行天下 獨見洛陽與是耳 乃更封陳平 爲曲逆侯 平常從征伐 凡六出奇計 輒益封邑焉〈出平本傳〉

한왕 신(회음후 한신과 다름)이 흉노에 투항하자 고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고자 했다. 이에 사람을 시켜 미리 흉노의 사정을 보게 했는데 흉노 선우 묵특이 거짓으로 노약자와 비실비실한 가축만 보이도록 했다. 본 그대로 보고하였으나 고조는 한 번 더 유경을 시켜 흉노의 사정을 살펴보게 했다. 유경은 보이는 것은 그대로 믿기 어려우며 일부러 안 좋은 것만 노출시킨 게 틀림없다며 흉노를 공격해선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고조는 이를 믿지 않고 공격을 감행한다. 황제가 평성에 이르기도 전 흉노 기병 40만 군대를 만나 한나라 군은 7일 간 백등에서 붙잡혀 있었다(이를 ‘백등의 치욕’이라 한다). 이 때 진평의 계책으로 연지에게 후한 뇌물을 주고 포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진평은 6번 비상한 계책으로 한나라에 도움이 되었기에 한 고조가 곡역 땅의 지세가 훌륭함을 보고 그곳의 제후로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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