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侯畢已受封 詔定元功十八人位次 皆曰 平陽侯曹參 身被七十創 攻城略地 功最多宜第一 鄂千秋進曰 群臣議皆誤 夫曹參 雖有野戰略地之功 此特一時之事 上與楚相距五歲 失軍亡衆 跳身遁者數矣 蕭何嘗從關中 遣軍補其處 又軍無見(現)糧 蕭何轉漕關中 給食不乏 陛下雖數亡山東 何常全關中 以待陛下 此萬世之功也 今雖亡參等百數 何缺於漢 奈何欲以一旦之功 而加萬世之功哉 蕭何第一 曹參次之 上曰善 於是乃賜蕭何帶劍履上殿 入朝不趨 上曰 吾聞進賢受上賞 蕭何功雖高 得鄂君 乃益明 於是封鄂千秋 爲安平侯 〈出蕭相國世家〉

열후의 논공행상들이 대부분 정해졌다. 이 때 악천추가 말하길 조참의 공이 1이라면 소하의 공은 10000에 해당한다고 조참의 공이 지나치게 높다고 이야기한다. 소하가 직접 자신의 공이 높다 말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 이후에 조참과 소하의 사이가 점점 벌어진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된 듯하다.

○ 初匈奴畏秦 北徙十餘年 及秦滅 匈奴復稍南渡 單于頭曼 有太子 曰冒頓 自立爲單于 遂滅東胡 走月氏 侵燕, 代 是時漢, 楚相距 中國罷於兵革 以故冒頓得自强 控弦之士 三十餘萬 圍韓王信於馬邑 信以馬邑降 匈奴冒頓 因引兵南踰句注 攻太原 至晉陽 〈出匈奴傳〉

선우(흉노족의 우두머리)인 두만에게 태자 묵특이 있었다. 묵특이 동호를 멸하고 월지로 쫒아내고 연, 대 지방을 침략하였다. 이 때 한과 초가 대결 중이었(유방 대 항우의 대결)기 때문에 묵특이 힘을 키울 수 있었다. 흉노는 한왕 신을 마읍에서 포위하고 남쪽으로 세력을 더 뻗친다.

○ 帝悉去秦苛儀法 爲簡易 群臣飮酒爭功 醉或妄呼 拔劍擊柱 帝益厭之 叔孫通 說上曰 儒者難與進取 可與守成 臣願徵魯諸生 與臣弟子 共起朝儀 帝曰 得無難乎 通曰 五帝異樂 三王不同禮 二者因時世人情 爲之節文者也 臣願采古禮與秦儀 雜就之 上曰 可 試爲之 令易知 度吾所能行 爲之 魯有兩生 不肯行曰 今天下初定 死者未葬 傷者未起 又欲起禮樂 禮樂所由起 積德百年而後 可興也 吾不忍爲公所爲 公往矣 叔孫通 笑曰 鄙儒不知時變 遂與所徵三十人西 及上左右爲學者 與其弟子百餘人 爲緜蕞 野外習之

황제가 진의 의식과 예법을 모두 제거하여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숙손통이 고조를 설득하기를 “노나라의 유생들을 데려와 조정의 예법을 조정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허락하였다. 노나라로 간 숙손통이 자신의 제자 백여 명 등과 예법을 익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